#162. 괴이의 주인 161
발록에게도 통할 마나는 지금 이곳에는 강력한 용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용이 샬롯에게 마나를 빌려줄 상황도 아니고 빌려줄 수도 없다. 그렇다는 건
“주인만 있었다면...
물론 샬롯도 설시우의 마나를 받았다. 하지만 다른 괴이들보다는 적게 받았다. 그게 샬롯을 믿는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글레이를 직접 상대해야 했기에
설시우도 마나를 아껴야 했다. 바다와도 같은 그의 마나였지만 그게 글레이와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기에
그도 샬롯을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분명 이곳에 글레이가 수작을 부릴 것이 뻔했기에 가장 믿는 샬롯을 두고 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좋은 선택이었다
샬롯의 거미줄에 설시우의 마나가 극히 조금이지만 들어는 가 있었다. 그렇기에 발록의 움직임을 미세하게나마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구름이 모이더니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시현의 이프닉스가 화염을 아나리엘, 엘프들이 물의 정령을 사용하면서 수증기가 나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이고르가 바람을 모으면서 구름도 같이 몰려든 것이다
그리고 천운이 따랐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샬롯은 그걸 보자마자 바로 거미줄을 피뢰침처럼 만들었다
그러더니 귀신같이 천둥이 샬롯이 만든 피뢰침에 적중했다. 샬롯은 그 피뢰침을 발록들에게 연결했고 발록들은 순식간에 천둥에 맞는 형태가 되었다
발록들이 천둥에 맞자 대부분의 발록이 움직임을 멈췄다.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발록도 제대로 된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다
갑자기 발이 풀린 것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일어나더니 다시 용과 방벽을 공격했다. 그렇다고 샬롯의 공격이 전혀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용과 4 종족, 인간들이 공격한 상처가 눈에 띄게 회복이 느려진 것이다. 그리고 몇몇 천둥에 맞은 발록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생충이 전부 제거된 것은 아닌지 눈알이 뒹구르르 움직이고는 있었다
기회였다
움직이는 발록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어린 용들은 천둥에 맞은 발록과 붙어있어서 그런지 마찬가지로 몸으로 천둥에 맞았다
발록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도 충격이 컸고 그들은 비틀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강력한 용들이 나설 차례였다
“마지막이다! 발록을 전부 죽여라!
용과 4 종족, 인간들이 협력해서 발록을 공격했다. 인간 중에서는 마사무네가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발록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알렉산더와 마사무네들은 지금껏 기생충과 싸운 경험을 바탕으로 발록에게 기생충이 기생할만한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천둥에 맞아서 그런지, 마나 항마력도 낮아진 것 같았고 마사무네는 물론이고 알렉산더의 공격도 통했다
이시현과 설아는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이 피와 화염의 구를 이용해 그들의 몸에 구멍이 난 곳에 집어넣었다
콧구멍이든 귓구멍이든 신경 쓰지 않고 집어넣었고 몸속을 휘저었다. 원래 같았다면 몸속을 휘젓긴커녕 제대로 몸에 닿지도 않았을 거다
샬롯의 계략이 통한 것이다
여전히 강력한 발록들이었지만 이제는 상대할만했다. 그런데 문제가 따로 있었다
샬롯이 발록에게 천둥을 내리꽂기 전에 발록들은 어린 용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방벽을 강타했다
발록의 힘인지 글레이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용들의 마나로 재가공된 방벽을 순식간에 부숴버렸다
항마의 힘을 가진 발록에게는 방벽은 그저 하나의 건물일 뿐이었다. 순식간에 방벽이 무너져내렸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수많은 사선을 겪으며 닳고 닳은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인데도 인간들은 발록의 힘 앞에서 무력했다
그리고 방벽이 무너진 틈을 타 가만히 보고만 있던 괴수들이 들이닥쳤다
다행히 샬롯이 즉각 대응해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잠깐 사이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래도 부서진 방벽은 샬롯이 거미줄로 막았고 강력한 괴수를 제외하곤 그 거미줄을 뚫어내지 못했다
그때 게이트가 다시 열렸다
처절한 전투를 예상했지만 그건 우리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글레이는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자 방어만을 고집했다. 베타의 몸속에서는 게이트도 맘대로 열고, 닫지 못하는지 게이트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저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꽁꽁 둘러싸서 구의 형태로 만들어 버티고 있었다. 가샤를 비롯해 이고르와 공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
가샤가 브레스를 쏘아내도 이고르가 새로운 공격 방식인 바람으로 자신과 비슷한 바람의 용을 만들어 쇠사슬 구를 공격해도
끄떡도 없었다
아니 부서지고 구멍이 뚫리고 그 쇠사슬에서 오베른들이 심은 꽃이 자라나도. 쇠사슬은 다시 복구됐고 멀쩡해졌다
그 어떠한 공격도 없어서 나도 내 마나로 붉은 창을 만들어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확실히 내 마나로 직접 만든 창이라 그런지 글레이의 쇠사슬을 손쉽게 뚫어냈다
쇠사슬 구를 뚫고 반대편으로 나오기까지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작 구멍만 뚫렸을 뿐이고 그 구멍은 순식간에 복구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마나로 보따리에 담은 구 마냥 글레이의 쇠사슬을 감쌌다
내 마나에 닿은 부분부터 점점 쇠사슬이 사라지고 있었고 나는 마나를 계속해서 좁혔다. 그렇게 거대한 글레이의 구는 사라졌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도대체 몇 개가 있는 거냐.
이 멸망한 세계는 그리 넓지 않다. 하지만 그 넓지 않은 곳에 수십, 수백여 개의 쇠사슬 구가 곳곳에 널려있었다
그 구 안에 글레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쇠사슬이 글레이고 글레이가 쇠사슬이었으니
게다가 내가 아니면 그 구를 부수기도 어려웠다. 가샤나 이고르가 그나마 잘 부쉈지만, 워낙 많았다
계속해서 부수고, 부수고 부숴서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녀석이 이 구를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마나가 드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만큼 부담 가진 않겠지
나는 아이들 전부에게 마나를 계속해서 나눠주며 직접 글레이의 구를 부수러 다니기도 했다
나조차도 내가 얼마나 많은 마나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계가 다가온 것 같았다. 머리가 점점 아파 왔으며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글레이의 쇠사슬 구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마나를 아끼면 내 아이들이 위험할 수가 있다
실제로 내가 살짝 마나를 아낀다고 여기 중에서 그나마 강한 해태와 가샤에게 마나를 덜 주었다
그랬더니 바로 쇠사슬 구가 안에서부터 열리더니 그들을 마치 잡아먹으려는 듯이 안으로 잡아끌었다
다행히 근처에 내가 있어서 바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식겁한 상황이었던 건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글레이는 내 아이들을 죽일 준비가 얼마든지 되어있었다
점점 어지러워지고 코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방법을 고수할 순 없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고 코에서는 물론이고 너무 집중해서인지 눈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글레이의 쇠사슬 구는 남아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쇠사슬 구가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쓰러지거나 하면 바로 녀석이 활동하겠지
정말 악으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진짜 한계였다. 무슨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다
문제는 이제 내 머리가 돌아가지도 않았다. 생각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머리에서 딱 하나의 생각이 번뜩였다. 그리고 내가 글레이를 뭐라 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베타. 아이들을 데리고 내보내.
내 아이 중에서 베타만이 이 싸움에 끼지 않고 힘을 보존하고 있었다. 베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글레이와 혼자서 싸웠다는 건 적어도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
가샤조차도 글레이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최초의 최강의 드래곤이라는 가샤도 당하지 못하는 게 글레이다
물론 가샤의 브레스는 비교적 쉽게 글레이의 쇠사슬을 부술 수 있었지만 그게 글레이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이고르의 능력도 이 멸망한 세계 안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으로 돌아가면 된다
어차피 글레이가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물론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녀석은 주인을 죽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녀석은 직접 적으로 나를 죽일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는 건 즉 나 혼자 있어도 녀석에게서 안전하다는 뜻이겠지
나는 아이들이 반대하기 전에 베타에게 강력히 말했고 베타는 결국 내 말을 따라줬다
순식간에 내 아이들이 사라졌고 나는 여기 어딘가에 있을 글레이에게 말했다
“글레이. 전쟁이 더 길어질 것 같네.
게이트 안에서 나온 건 다행히 괴수들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반겨야 할 존재들이었다
“가샤 님!
바로 설시우의 아이들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압도적인 크기와 모습인 뼈 드래곤 가샤였다
하지만 가샤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설시우가 자신을 피난시켰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났다
그리고 그 화를 주변에 있는 살아있는 발록과 괴수들에게 화를 풀었다. 뼈 드래곤 가샤는 바로 브레스를 내뱉었다
드래곤 가샤의 브레스는 말 그대로 죽음이었다. 가샤의 브레스가 휩쓸고 간 자리는 살아있는 생명체 따위는 없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전부 사라졌다. 심지어는 발록까지도
발록도 손쉽게 죽일 수 있는 가샤였고 계속해서 글레이와 싸웠는데도 쌩쌩했다. 지친다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당연히 설시우도 그런 가샤의 상태를 알았지만 단 1 퍼센트의 확률이라도 위험이 있다면 그는 그걸 배제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이고르의 공격인 태풍도 멸망한 세계 안에서와는 궤를 달리했다. 마나 항마력을 가진 발록들에게도 이고르의 공격은 치명적이었고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그나마 이고르의 공격은 재생했지만 드래곤 가샤의 브레스는 버티지 못했다
그런 이고르를 보고 샬롯이 급히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주인은... 주인은 어떻게 된 거죠?
하지만 이고르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직 글레이와의 결판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무리하면서까지 글레이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죠. 아마 주인은 글레이가 자신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 말을 들은 샬롯은 격분했다
“그렇다고 주인을 혼자 내버려 두고 옵니까? 당신이 그러고도 괴이에요?! 만약 주인이 죽는다면...
“쉴롭. 아니 샬롯. 저희가 전에 괴이였다면 주인이 죽도록 내버려 두었을 겁니다. 실제로 글레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괴이도 많았고 그를 돕는 괴이도 많았죠. 저도 솔직히 말하면 주인이 죽는다면 안타깝다고 생각하겠지만 제 목숨 바쳐서까지 살려줄 의리는 없습니다.
샬롯이 그 말에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이고르가 그녀를 막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주인들과 달랐습니다. 제 평생의 숙원이던 용이 되고 싶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저를 도와주시려고 했고 심지어는 이루어 주셨죠. 이제는 정말로 제 목숨 바쳐서 주인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은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주인이 슬퍼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레비아탄, 베타도 주인의 말을 바로 들었죠. 주인을 믿어봅시다. 우리가 그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마찬가지로 주인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