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156화 (156/164)

#156. 괴이의 주인 155

“쉬어야 합니다. 이시현 헌터.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지만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합니다.

그녀에게 말한 건 리암 헌터였다. 리암 헌터와 그의 파티원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윌리엄 헌터는 온몸이 만신창이였고 벨라 헌터는 한쪽 팔이 없었다

올리버 헌터는 한쪽 다리가 아작나서 제대로 걷기도 어려워했다. 유일하게 리암 헌터만이 멀쩡했지만, 그도 악으로 버티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시현은 이 금쪽같은 시간에도 쉬지 않고 왜 괴수들이 덤비지 않고 방벽을 둘러싸고만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글레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에 이상해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제 말 하면 나온다고 했을까

엄청난 크기의 게이트가 열리더니 그 안에서 글레이가 나타났다

그런데 글레이의 모습이 평범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모습이 바뀌긴 했다. 빛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칠흑의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회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머리 색이 새치가 난 것처럼 하얀색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위화감이 들어 마치 일부로 그렇게 색을 칠한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글레이가 입은 회색의 정장이 전체적으로 흐트러져있었다.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었다

글레이는 언제나 깔끔한 차림을 고수했다. 그게 일부로인지 아니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때 원래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 있는 일인 건 사실이다

게다가 글레이의 표정도 일그러져 있었다

항상 여유롭던 그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것도 이상했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그의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어이가 없는 듯한 짜증이었다

글레이의 앞에 수많은 종족이 무릎을 꿇는 모습이 마치 신을 숭배하는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글레이는 기생충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때 순식간에 글레이의 온몸에서 회색의 쇠사슬이 터져 나왔다

근처에 있던 기생충들이 쇠사슬에 꼬챙이처럼 꿰이며 죽어 나갔다

그리고 그건 갈라드리엘도 예외가 아니었다. 갈라드리엘은 알렉산더도 마사무네도, 설아마저도 그를 죽일 순 없었다

원초부터 SSS급 헌터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던 갈라드리엘이었고 오크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토자라와 함께 그는 기생충에게 감염되기 전에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강함은 격을 달리했다. 토자라는 카잔도 힘들어하던 상대였다. 갈라드리엘도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다

애초에 그는 싸움을 받아주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 어떠한 기생충도 이시현에게 상처는커녕 손가락 하나 대지 못했지만, 그는 달랐다

어쩌면 지금 알렉산더나 마사무네 보다도 강하다고 평가를 받은 그녀를 그저 화살 한 번 쏘아내서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그랬던 그가

고작 글레이가 기생충들을 노리고 공격한 것도 아닌 쇠사슬에 꿰뚫리며 정말 허무하게 죽었다

그렇다면 글레이의 쇠사슬은 어디로 갔을까

정답은 방벽이었다

글레이의 온몸에서 나온 쇠사슬은 순식간에 방벽을 강타했다

쇠사슬이 인간들은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날아왔고 방벽을 강타했다

그 방벽 근처에는 이시현과 그의 일행, 마사무네와 알렉산더, 안타깝지만 다치지 않은 유일한 리암 헌터의 파티원 들 중 리암 헌터가 그곳에 있었다

설아 조차도 그 쇠사슬의 속도에 반응하지 못했고 그들은 방벽이 무너질 걸 예상해 방벽의 주변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방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하지만 이시현의 눈은 방벽에 향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방벽 위에 덧씌운 마나로 향하고 있었다

방벽에 부여된 푸른 마나의 균열이 생겼다. 그러더니 파스슥 소리가 나며 부서졌다

글레이의 쇠사슬이 닿은 부분부터 부서지더니 방벽 전체로 퍼져나갔다

“방벽에 마나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전부 부서지고 있습니다!

방벽 안에서 군인들과 헌터들의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다. 방벽에 마나가 전부 사라졌고 그들은 패닉이 왔다

방벽에 마나가 없다는 건 그냥 건물이다. 방벽 밖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괴된 건물과 다름없었다

즉 인간들을 지켜줄 방벽은 무너진 거나 다름없다는 거다

문제는 그들을 진정시킬 지도자나 헌터가 없다. 안타깝지만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우다가 기생충의 공격에 맞고 죽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을 부통령이나 다른 자들도 전부 기생충의 공격에 죽었다

그 이후엔 이시현이나 알렉산더, 마사무네가 대통령의 역할을 했다. 살아남은 헌터 중 가장 강력한 자들이었고 설아는 그런 것을 싫어했으니 그들 셋이 도맡아 했다

그런 셋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벽이 무너지는 상황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인간들이 힘을 합쳐 대응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 와서도 그 잠시 괴수들이 들이닥치지 않을 때 어떻게든 방벽을 보수하는 인간들이었다

그런 그들도 방벽의 모든 마나가 사라지는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던 이시현과 그의 일행들도 할 말을 잃었다

“정말 인간에겐... 희망 따위는 없는 건가?

“쯧. 레비아탄이 그렇게 강할 줄이야. 시간이 너무 걸렸군.

마사무네가 말함과 동시에 뒤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워낙 작아서 다들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 뒤에 나온 말은 그들의 귀에, 아니 인간들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늦었나. 도대체 이번 대의 주인은...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들은 패닉인 상황에서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설마...?!

이시현도 마찬가지고 하늘을 바라봤고 그곳에는 형형색색의 용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용들은 날아오면서 그들의 몸 색과 똑같은 브레스를 입에서 뿜어냈다

S급 SS급 괴수도 똑같았다. 전부 브레스에 의해 녹아버렸다

그런데 용 중에서도 혼자서 단연 돋보이는 이상하게 생긴 용이 있었다

아니 그건 용이 아니었다

뱀의 몸에 날개가 달린 그것의 위에서 하나의 인영이 뛰어내렸다

마찬가지로 그 뒤로 뛰어내린 늑대의 현상도 있었다

“...시우야!

뛰어내린 건 설시우와 이리였다. 이시현은 인영이 뛰어내릴 때 긴가민가했지만 그 뒤로 늑대의 현상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도우러 왔어.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뒤에서 엄청난 숫자의 게이트가 열렸다. 그 안에선 샬롯을 비롯한 3 종족들이 모든 무장을 끝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었다. 하지만 괴수의 시체는 물론이고 괴수와 기생충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안 좋은 생각이 머리에서 스쳤지만, 그 생각은 알아서 지워졌다

러시아로 날아오면서 수많은 멸망한 나라를 보았다. 그곳들도 마찬가지로 괴수와 기생충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건물들이 무너져 있었지만

그곳에는 인간의 것인지 아니면 괴수의 것인지 모를 피들이 말라붙어있었다. 바닥에도 건물의 외벽에도 마치 하늘에서 피를 쏟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건물이 파괴된 것은 똑같았지만 거리가 정말 깨끗했다. 인간들이 없어져 수많은 동식물이 거리에서 살고 있었다

인간들이 사라져 어떻게 보면 지구는 쾌적해지고 있었다. 멸종된 줄만 알았던 동물들과 식물들이 거리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인간이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은데. 최대한 빠르게 가야겠어.

지구는 더는 내가 알고 있던 지구가 아니었다. 러시아로 날아오면서 사람의 사자도 보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괴수와 기생충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즉 놈들도 인간을 죽이러 한곳으로 몰리고 있다는 소리다

사람들을 찾기는 쉬웠다. 러시아를 와본 적은 없지만 절대 저런 만리장성과 같은 장벽이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리고 주변의 괴수들이 그 방벽을 공격하고 있었고 그 위에선 정겹다면 정겨운 총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의 괴수들을 전부 죽여.

“알겠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고르와 함께 날고 있던 용들에게 말했고 용들이 괴수를 죽이는 사이에 나는 방벽의 위로 올라갔다

“도우러 왔습니다. 혹시 위험한 곳이 있습니까?

군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군인이겠지. 그들은 나를 알고 있는지 어버버 거리다가 정신을 되찾고 내게 말했다

“방벽이 무너진 곳이 있습니다! 여기는 버틸 수 있으니 그쪽으로 가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그 군인은 한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사이에 용들이 주변에 있던 괴수들을 전부 죽였다

“감사합니다. 지금껏 버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맘 같아서는 내 일행의 생사를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군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뒤 이고르를 타고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 방벽 안을 확인했다

확실히 방벽 안은 농사와 가축을 기르는 등 자급자족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넓었고 풍족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정말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아서 이고르를 재촉했다

그런데 그때. 방벽에 부여된 마나가 부서지는 것을 목격했다

“...글레이다.

내가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마나가 부여된 방벽의 마나를 한순간에 부술 수 있는 건 글레이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부서진 방벽이 눈앞에 보였고 그곳으로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난 보았다. 글레이가 헝클어지고 다친 모습을

“베타. 미안한데 글레이가 어딨는지 알 수 있어?

나는 전에 그렇게 물어봤었다. 베타는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었지. 하지만 베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베타는 가끔. 아니 계속해서 사라졌었다. 나는 그걸 궁금해했지만 녀석의 자유라고 생각해 따로 묻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베타가 계속해서 사라졌던 이유를 알았다

녀석은 처음부터 글레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가둔 글레이를. 반지에서 풀리자마자 계속해서 말이다

그리고 베타는 글레이를 찾아냈다

베타가 정말 나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본인의 복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글레이를 공격하며 시간을 끌었다

가끔 내가 베타를 불렀을 때 뭔가 기운이 없는 것 같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베타는 계속해서 글레이를 공격해 인간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용들에게 말했다

“마나가 사라졌으니 괴수들의 공격에 취약할 거다. 최대한 넓게 퍼져서 인간들을 지켜라. 그리고 가장 강력한 용 몇 명만 나를 따라와.

“알겠습니다.

용 중에서도 강력한 용을 추렸다. 분명, 이 앞에는 글레이가 있을 것이다. 약한 용들은 있어도 도움이 안 됐다

물론 용들이 약해봤자 인간들이랑은 차원이 다르지만

그렇게 이고르를 타고 날아간 곳에는 내 예상대로 글레이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그다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내 일행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행들의 근처에 글레이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급히 이고르의 위에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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