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151화 (151/164)

#151. 괴이의 주인 150

“저들의 말이 사실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다들 진정하십시오! 함정일 게 분명한데 걸리는 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알렉스 헌터가 열심히 소리치고 있었지만 헌터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헌터들은 이 오랫동안 이어진 전쟁에 지친 상태였다. 희망도 보이지 않았고 저 괴수의 끝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정말 악으로 버틴 거다. 뒤에는 가족이 있었으니깐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고작 저 말에 흔들리는 것이다. 희망이 없었는데 눈앞에서 희망이 아주 조금이라도 보이니깐

평소라면 절대 걸리지 않을 함정을. 알아서 걸리고 있었다. 그만큼 헌터들은 정신이 피폐해졌다

문제는 심각했다. 정말 그가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눈앞에서 죽지 않고 괴수들 사이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저 모습도 일부러 보여줬겠지만, 고작 저 모습만 보고 희망을 느낀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알렉스 헌터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대통령도 진정하라고 말했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강력한 헌터들이 줄줄이 방벽 아래로 내려갔다

가족이 없는 헌터들이 먼저였고 가족이 적은 헌터들이 차례대로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방벽 아래로 내려갔다

형용할 수 없게 생긴 괴수부터 SSS급 괴수까지. 인간들은 희망을 잃고 있었다

대표로 나온 엘프. 갈라드리엘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린 너희 인간들과 다르다. 그들은 확실히 살려주지. 그리고 제안도 똑같다. 설시우 헌터를 준다면 이 전쟁을 끝내주지.

그들은 분명 설시우 헌터가 없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있었다면 협력이 안 된 건 둘째치고 이렇게 인간들이 밀리지 않았을 거다

“오늘 하루다. 오늘이 지나면 그 방벽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은 몰살이다.

그 말을 끝으로 엘프 갈라드리엘은 수많은 괴수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자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분명 갈라드리엘은 강한 헌터를 데리고 간다고 했지만 정작 내려간 헌터의 등급을 딱히 확인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갈라드리엘 나름대로 마나를 감지하는 방법이 있는 거겠지. 처음에 내려간 헌터는 S급 헌터로 강한 헌터 축에 낀 헌터였으니

그 사실을 깨닫고 한 가닥 한다는 헌터들이 전부 방벽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알렉스 헌터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대통령도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다른 가족이 없는 S급 헌터가 방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뛰어내리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인간들은 물론이고 괴수 사이에서도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

갑자기 뛰어내린 헌터의 몸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어차피 가서 죽을 거 내가 먼저 죽여줄게. 내려가 봐.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니 그곳엔 설아가 있었다. 설아는 SSS급 헌터였고 이 상황에서 전혀 지치지 않은 유일한 헌터였다

아니 설아는 이 사태로 더더욱 강해졌고 강해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그녀는 알렉산더와 마사무네도 그녀의 능력을 경외시 할 수준이었다

설아는 계속해서 피를 먹었고 애초에 그녀는 특이한 능력뿐만이 아니라 힘으로도 SSS급 헌터 수준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런 상황에 규격 외에 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설아의 활약상을 봤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고작 쳐다보는 것만으로 S급 헌터를 죽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몰랐다

그런 그녀의 행포에 한 헌터가 그녀에게 말했다

“어쩌면 저게 마지막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막는다니요!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을. 사람의 선택을 당신 혼자서 막을 권리는 없습니다!

그 말에 근처에 있던 이시현이 한숨을 쉬었다. 이시현은 지금 설시우 헌터의 걱정에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이시현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설아가 그것에 훨씬 더 예민해 있었다

이번에 설시우의 가족이 당한 것도 한껏 짜증 나 있었는데 꾹 참고 있었다. 그녀도 이 전쟁에 점점 강해지고 있었으니 스트레스를 그것으로 풀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는데 그런 그녀를 건드린 게 저 쓸모없는 별 도움도 안 되는 방벽 아래로 떨어진 한 헌터였다

설아는 바로 그의 몸을 터트려버렸고 그것에 불만을 가진, 한 헌터가 설아를 다시 한번 건드린 것이다

그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말리지마. 이시현.

“...안 말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애초에 지금 상황도 이시현의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도 설아만큼은 아니지만, 한껏 예민한 상태

사람 하나둘 죽는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그들은 이미 감정이 옅어져 있었다

“뭘 말리지 말라는...!

어리둥절하며 헌터는 말하려 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터져나갔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으며 내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지만 설아는 일부로 그런 장면을 연출했다. 자신의 몸에 튄 피를 전부 빨아들이며 그녀는 말했다

“남들의 선택은 내 알 바 아니야. 전에 들은 얘기가 있지. 오크는 오크가 있기에 살 수 있으니 인간도 인간이 있어야 살 수 있다고. 시우가 오기 전에 이곳이 멸망한다면 나는 그를 볼 면목이 없다.

설아의 말은 시우에게 직접 들었었다. 설시우의 파티원들은 가끔 베타의 몸속에 있는 설시우를 만나러 갔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다

물론 자리를 오래 비우면 설시우 헌터 만나러 간 거냐고 난리를 펴 대서 자주 만나러 갈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설아의 입에서 설시우가 나온 것에 그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설아의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말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정말 죽일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안 그래도 막기 힘든데 이렇게 하나둘 빠져나가면 방벽 안에 있는 사람은 전부 죽으라는 겁니까? 제발 생각을 하고 행동하시죠. 다들 이렇게 멍청하지 않았잖습니까.

이시현은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전에 할 말을 했다. 물론 그녀의 말도 날이 서 있었지만 다들 설아에게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런데 알렉산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지금 말한 헌터. 무슨 헌터지?

“...예?

“신체 강화형 헌턴가 아니면...

“아. 아닙니다. 방벽을 관리하는 자 중 하나입니다.

방벽을 관리하는 자. 그들 중 대부분은 장인들이었다. 마나를 부여하는 직업이든 장비를 만들든 아티팩트를 만들든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그걸 왜 물어봤을까

“처음에 뛰어내린 헌터도. 그다음 처음에 자네가 죽인 피가 쏟아져 죽은 헌터도. 전부 신체 강화형 헌터는 아니었다. 지금 신체 강화형 헌터 중에서 저 방벽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헌터가 있나? 설아. 자네는 가만히 있어 주게.

알렉산더가 뭔갈 깨달은 것 같았다. 설아는 그의 말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팔짱을 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모습에 잠시 헌터들이 위축했지만 한 명도 손을 드는 헌터가 없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설아. 자네가 방벽 위에서 죽인 헌터를 제외하고는 신체 강화형 헌터가 방벽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자가 없다. 물론 그 헌터도 자신이 내려가고 싶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됐다.

“알렉산더 님은 뭘 말씀하시고 싶은 거죠?

신체 강화형 헌터가 아닌 다른 헌터가 이번 사태가 맘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과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 같다. 방벽에 계속 구멍을 뚫으려는 건지 뭔지 모를 일을 했으니 아마 그때인 것 같은데...

알렉산더의 말에 다들 갑자기 정신 차렸다

“설마... 방벽 아래로, 도망치게 하려는 것이 저들의 술수라는 겁니까?

“아마도. 아무리 다들 전쟁이 오래 지속 되어 정신이 피폐해졌다고 한들 누가 봐도 함정으로 보이는 것에 다들 당할 뻔했지 않은가. 그나마 신체 강화형 헌터들은 이런 것에 면역이 있지만 다른 헌터들은...

알렉스는 함정이 뻔히 보이는 데도 알렉산더가 그곳에 들어가려 해서 다들 알렉산더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렇다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의 말에 다들 침묵했다. 그런데 그때 방벽 안에서 소란이 나고 있었다. 그쪽을 바라본 헌터들은 얼굴이 헬쑥해졌다

그들의 가족이 방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비교적 낮은 등급의 헌터들도 있었다

그들이 안에서 방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방벽의 마나는 전부 겉에 치중되어있었다. 안에까지 마나를 두르려고 하니 괴수와 기생충의 공격이 너무나 강했다

그 뜻은 안에서의 공격은 취약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총을 쏠 순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총을 든 헌터들의 친구고 가족이고 지인이었다. 분명 저들에게는 엘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터인데도 그들은 방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뭐해? 막아!

“안됩니다! 밖에는 괴수들이...!

인간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자 괴수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은 괴수 뒤는 가족과 지인. 진퇴양난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숨어있던 괴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로 강력한 괴수를 한곳에 모아서 마찬가지로 강력한 헌터들을 그곳에 파견하게 만든 다음 다른 방벽 주변에 숨어있던 괴수들이 나타났다

“안에는 어떻게든 할 테니 밖을 막아!

그나마 방벽 안에도 신체 강화형 헌터들이 있었고 비교적 정신이 말짱한 헌터들이 일반인들을 열심히 막고 있었다

다행히도 벽을 부술 능력이 있는 신체 강화형 헌터들 대부분이 정신이 멀쩡했다. 그들이 일반인들을 막는다고 하니 방벽 위에 있는 헌터들은 그들을 믿을 수밖에

하지만 그 뜻은 방벽 위에 있는 헌터들로만 저 강력한 괴수와 쥐 떼 같이 많은 괴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다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겠군요.

방벽 위에 있는 군인 중 하나가 말했지만 다들 그 말에 무언으로 동의했다. 그들의 눈은 땅만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하늘에도 수많은 괴수를 비롯해 날아다니는 기생충에 감염된 종족도 있었다. 오랜 전쟁 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수는 지금껏 보이지 않았거늘

“마지막까지 살아남아라!

그 말을 끝으로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수많은 괴수가 방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에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냥 밀어버리면 안 되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생충에 감염된 종족은 지능이 뛰어났다. 그는 엘프. 갈라드리엘에게 물었다

“물론 글레이 님이 오시거나 우리가 가진 힘을 전부 들이부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글레이 님에게 연락이 없다. 그렇다고 멋대로 이곳을 점령하면 글레이 님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다시 실험체의 삶을 살 수도 있겠지. 너는 그러고 싶은가?

갈라드리엘의 말에 그는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럴 리가. 그 기억은 다신 꺼내고 싶지 않아. 그래서 글레이 님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른다.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지. 우리는 그저 이 상황을 유지하면 된다. 얼마든지 죽이는 건 상관없겠지만 전부 죽이면 안 된다.

“그럴 거 대비해서 인간들을 데리고 오려고 한 거 아니야? 아쉽지만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이지를 상실한 한 헌터와 그의 여동생이 있었다

“많은 인간이 왔다면 그냥 전부 몰살했겠지만... 생각보다 우리의 계획을 인간들이 빨리 깨달은 것 같다. 우리는 이 상황을 유지해서 인간들을 최대한 꾀어내면 된다.

갈라드리엘이 말하며 바라본 헌터와 여동생의 콧속에서 기생충이 보였다

“살아는 있잖아? 살아는. 죽이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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