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괴이의 주인 145
허무했다. 고작 글레이들이 자신의 세계가 파괴됐다고 저렇게 죽어버리다니
“이제는... 진짜 글레이도 혼자겠군.
아니 혼자는 아닌가. 녀석이 만든 실험체와 괴수들이 있을 테니
그런데 그때 주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이 나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엔 처음 보는 생물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형인 것을 보니 아마 글레이의 실험체일 것이다
녀석은 멍하니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눈을 부라리더니 나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녀석의 눈은 이미 죽어있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고 혀를 차며 마나로 창을 만들어 녀석에게 던졌다. 물론 가볍게 던진 것이긴 한데 저 생물체는 내 창을 가볍게 피해냈다
그 모습에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맞을 거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녀석은 내게 달려오다가 자연스럽게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사라졌지
물론 내 몸에 여전히 마나를 두른 채라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녀석은 내 몸에 손가락 하나 닿지 못했다
정말 말 그대로 달려오다가 먼지로 변한 거다
“저것들도 글레이의 인격 중 하나라고 했으니... 괴이가 내게 공격하려고 하면 저렇게 되는 건가...
안타깝네
“베타야.
돌아가자
“...
뭐지? 분명 여기는 한국일 텐데... 왜 아무도 없지
가장 먼저 가족을 보기 위해 가족이 살던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저택도 빈 건 물론이고 근처에 아예 사람이 없었다
베타의 능력을 활용해 몸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게이트로 바로 한국으로 넘어왔는데... 가족은커녕 진짜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또다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곳을 바라보니 헝가리에서 봤던 생명체가 또 있었다
“여긴... 한국인데?
놈도 똑같이 나를 향해 달려오다가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대체... 왜 저놈이 한국에 있는 거지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나 처리를 한 가족이 살던 저택은 멀쩡했다. 그런데 주변에 일반적인 건물들은 멀쩡하지 못했다
건물이 무너지고 파괴되어 제대로 된 형체를 유지하지도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다행히 설시우 헌터의 가족들의 몸은 멀쩡했다. 문제는 몸만 멀쩡하다는 거다
“...정신이 나간 것 같습니다.
그의 가족은 하나같이 전부 허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베타의 몸속은 신기하게도 하늘에 태양과 같은 것이 떠있었고 확실히 하늘은 이뻤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하늘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고르의 말 그대로 주인의 가족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가족의 집에서 가족을 데리고 나올 때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기생충에 감염된 것도 아닙니다.
...이 상황은 좋지 못했다. 분명 글레이가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한데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주인은 가족을 끔찍이 여긴다. 주인이 온다면 마나를 주어 저 상태를 풀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 저 상태인 것을 안다면..
“씨발...
처음으로 상스러운 말을 내뱉은 샬롯이었다. 그녀는 설시우 헌터에게서 어떻게 보면 구원을 받은 괴이다
전 주인에게 버림받고 충격을 받아 은거했던 괴이를 다시 지상으로 꺼낸 게 설시우 헌터다. 그런 그의 가족을 못 챙겼다는 것이 샬롯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혹시나 이 일로 버려지면 어떡하지. 날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닌가. 온갖 생각이 들었다. 샬롯은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구에서 있던 일에 전부 관심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의 주인의 고향이었으니 당연했다
정작 그녀 자신의 고향은 파괴되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녀가 주인의 가족을 베타 몸속으로 데려오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 건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그녀의 주인은 자신의 가족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걸 원했다. 정확히는 주인의 가족이 원한 것이지만
게다가 또 주인의 가족만 사라지면 특혜를 받는다는 둥 말이 많아질 게 뻔했다. 언젠가 이 게이트 사건이 끝났을 때 그런 소문이 남아 있다면 주인의 가족은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지금이 지구가 멸망하네, 마네. 설시우 헌터를 잡아야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미래를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마지막. 글레이가 주인의 가족이 살고 있던 저택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인간들은 대피할 나라를 결정했다
바로 러시아. 지구상에서 땅 면적만 보면 가장 큰 나라인 러시아인데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게이트 침공을 잘 막고 있었다
이유는 그들이 가장 많은 군인이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군인이 아닌 특수부대로 훈련된 헌터들로 구성된 군인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신체 강화형 헌터였지만 총을 다루는 솜씨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났다. 러시아는 게이트 사건이 터지자마자 즉각 대응했다
수많은 훈련받은 군인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수를 맞이했으며 그들이 가진 마나를 가득 담은 총알을 쏘아냈다
그 총으로 괴수들은 막을 수 있었지만, 기생충에 감염된 종족들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생충도 한계가 있었고 총알을 계속해서 쏘면 결국엔 그 종족들도 죽었다
게다가 마나를 담은 총알을 만드는 공장의 숫자가 전 세계를 합쳐도 러시아에 있는 공장의 숫자가 안 됐다
문제는 그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가 기생충에게 먹히고 있었다. 전 세계 인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첫 게이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70억 명이었다. 첫 게이트 사건 이후에 세계가 안정됐을 때는 30~40억 명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아니 마지막일 게이트 사건이 있고 고작 한 달. 한 달 만에 10억 명 이하로 떨어졌다
살아있는 자들은 대부분이 헌터였고 그들의 가족이었다. 글레이는 일부로 집중적으로 힘이 없거나 약한 자들을 노렸고 지금이 그 결과다
얘기로 돌아와서 샬롯이 설시우 헌터의 가족은 베타의 몸속으로 데려오지 않은 이유는 이미 최대한의 경비를 그의 가족에게 해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러시아로 대피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필 글레이가 나타난 것이다
정말 절묘하게도
샬롯의 몸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주인이 혹시 자기를 버릴까 불안해하면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트라우마가 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후. 주인이 돌아왔다
나는 베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베타의 몸속도 성치 못할 줄 알았다. 글레이가 침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엘프들이 한국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기에
그런데 내가 착각한 것이 있었다. 글레이는 엘프도 나와 마찬가지로 고립시키기 위해서인지 한국에 있는 엘프의 터전을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엘프들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베타의 몸속에서 지냈으며 지구에 상관하지 않았다
내가 베타의 몸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시리를 비롯한 내 아이들이 전부 내게 다가왔다. 신나게 달려왔기에 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고 녀석들을 안아주었다
고작 잠깐 떨어져 있었는데 극성으로 달려드는 녀석들을 오구오구 달래주었고 아이들을 뒤로 이고르가 걸어오고 있었다
“걱정했지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이고르 녀석은 답지 않게 말장난을 하며 나를 반겼다. 그런데 녀석의 얼굴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야. 내 가족은 어딨고.
나는 내 가족과도 같은 아이들이 내 진짜 가족을 내버려 둘 린 없었다. 특히 샬롯은 내 가족을 잘 알고 있으니
물론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나는 가족의 얘기를 샬롯에게 자주 했었으니깐
“...따라오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민아는 정신을 잃은 채 침대에 누워있었다. 엘프들이 만들어 줬는지 나무로 된 침대였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글레이가 무슨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지구에 녀석의 마나가 느껴져서 바로 찾아갔지만...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고르는 내게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 실수다
“개새끼가... 가족을 노려?
내가 멍청했다. 글레이는 정말 나를 죽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주인은 이기적이군요.
글레이의 말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글레이가 직접 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녀석이 말하고자 하는 건 똑같았다
“그래서... 지구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줘.
이고르가 지구에서 있던 일을 일축해서 알려주었다
“내가 글레이에게 간 지 3달이 넘었다고?
처음부터 녀석의 계략이었구나. 다시 한번 내 멍청함에 탄복했다. 게이트 속에 시간이 다른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녀석을 순순히 따랐다니
그런데... 고작 3달 만에 지구가 멸망하다니. 글레이는 자신의 힘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력도 구축한 상태였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린 것도 있었다. 인간들은 전혀 협력하지 못했다. 그들은 너무나도 거만했다
자신의 힘을 과신해서 이 정도 괴수의 침공은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가. 유일이 협력한 곳이 가디언즈 길드와 별비 길드였다
문제는 그 두 길드가 떨어져도 너무나 떨어졌으니. 결국엔 나라를 포기하고 러시아로 도망가는 선택할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잘 막고 있던 한국도 미국도 러시아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막아도 주변의 나라가 멸망해 기생충이 다른 나라에서도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땅도 넓으면서 마나를 담은 총알을 사용해 비교적 쉽게 기생충들을 막아냈다
“그런데... 샬롯은?
나는 엘프들과 오크들을 전혀 탓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초에 고향이 지구가 아니었고 인간들에게 배신당했으니
뒤늦게 들어온 드워프들은 사실상 쫓겨나온 것이기에 안타까웠다. 그들은 사실상 이곳에 주인인 내가 돌아온 것을 알자 내게 감사를 전해왔지만 내가 한 일은 그저 장소만 제공한 것이기에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드워프들은 다들 하나같이 나이가 많으셔서 내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베타의 몸속에 있던 자들이 전부 내가 돌아온 것을 알자 안부를 물었다
아나리엘도 마찬가지고 에이엘 씨도 인사해오셨다. 그런데 제일 먼저 올 것 같던 샬롯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주인의 가족을 지키지 못한 것에 큰 죄책감을 느껴 베타 님의 몸속 어딘가에서 칩거 중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 가족을 베타의 몸속으로 이주시키지 않은 것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고르가 샬롯이 왜 그랬는지 알려주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글레이가 내 가족을 노릴지를 누가 알았겠는가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베타의 몸속으로 가족을 데려왔으면 이 안이 초토화됐을지도 모른다. 글레이가 베타의 몸속을 모를 리가 없으니깐
어떻게 보면 샬롯이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을 제외한 3종족들은 멀쩡하게 잘 있으니깐
“베타. 샬롯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