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143화 (143/164)

#143. 괴이의 주인 142

“더 할 말은?

인간으로 변해 고개를 숙인 용들은 말이 없었다. 인간으로 변한 그들은 자신의 몸 색과 같이 옷도 그들의 몸 색과 같았다

용들이 내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지만 뭐 나쁠 건 없었다

“그래서 왜 온 거야?

“가샤 님이 오라고...

음... 나는 용들의 위치를 찾으라고만 했지, 데리고 오란 말은 없었는데 말이지. 뭐 어차피 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깐

“잘됐네. 글레이 알아? 너네들에게는 세계를 파괴하는 자라고 불리는 것 같은데.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게 놀랐는지 눈에 띄게 몸을 움찔거렸다. 아니 얘는 사전 설명도 없이 그냥 데려왔어

“가샤에게 들은 거 없어?

“네... 딱히.

갑자기 존칭하는 게 웃기긴 했지만 참으며 가샤를 바라봤다. 녀석은 마치 칭찬을 바라는 듯이 뼈로 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태초의 용이라는 애가 성격이 바뀐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구스타프는 괴이임에도 처음부터 나를 경계한 것을 보면 애초에 이 녀석의 성격이 이런 거겠지

“그래... 데리고 온 것은 잘한 거야. 어차피 도움이 필요했으니깐.

하지만 내가 가샤를 쓰다듬는 것을 보고 용들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가샤 님이 왜...

“저 인간은 도대체 뭐지?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전에는 이런 거 저런 거 뭐든 의심하고 봐봤지만, 이제는 머리 아파서 포기했다

“도움이라면...?

용들의 대표인 붉은 남자가 내게 의문을 물었다

“너희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거야. 방금 말한 세계를 파괴하는 자. 글레이. 녀석을 다시 봉인하거나 죽이는 걸 도와줬으면 해.

내 말에 붉은 남자가 일어나며 말했다. 물론 내게 안겨있는 가샤의 눈치를 보며

“세계를 파괴하는 자. 그자는 우리에게도 골칫거리인 존재입니다. 가샤 님이 따르는 것도 그렇고... 당신이 지금의 괴이의 주인이군요.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전에 괴이의 주인과 같이 글레이를 퇴치 작전? 뭐 그런 걸 같이 했으니

“그런데 죽이진 못해놓고 어떻게 봉인을 한 거야?

죽이는 것보다 봉인하는 게 더 어렵지 않나

“괴이의 주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심성이 좋은 인간이었죠. 마지막은 좋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때 주인이 여자였나? 별 상관은 없지만. 글레이는 괴이의 주인의 마나를 필두로 만들어진 결계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 봉인이 약해져서 글레이의 수많은 인격 중 몇몇이 탈출했다. 게다가 용 중에서 글레이에게 협력 중인 용도 있어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 용은 가샤가 죽였어. 혹시 하나가 아니야?

“네?

그 말에 붉은 남자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뇨. 한 녀석 맞습니다. 그자는 우리 용 중에서도 이단아였습니다. 인간들의 말을 빌리자면 중 범죄자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범죄자라고 하기에는 질이 극히 나빴습니다. 우리 용들이 중립을 중요시하는 종족이란 건 알고 계시겠죠.

이고르에게 들었으니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중에는 탐욕스러운 용도 있다고 했지. 인간들도 전부 성격이 똑같지는 않으니

“선을 택하는 용도 있고 악을 택하는 용도 있습니다.

선...? 악

“선이란 기준도 악이란 기준도 결국엔 너희들이 정한 거 아닌가?

“...맞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웬만하면 다른 세계에 관여하지 않았죠. 그런데 세계를 파괴하는 자에게 협력하는 용은 달랐습니다. 그 용은 세계를 파괴하는 자, 전에는 그 용이 있었죠. 그 용도 봉인된 상태였지만 세계를 파괴하는 자를 상대할 때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였죠. 그래서 잠시 그 용의 봉인을 해제했고 같이 싸움을 이어나갔지만... 우리가 한눈판 사이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세계를 파괴하는 자가 봉인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녀석의 소재를 놓쳤죠.

즉 그 말은 봉인 당했던 용과 봉인 당한 글레이가 협력했다는 건가. 그런 거, 치고는 그 회색의 용이 당했는데도 별 상관 없어 하는 것 같던데 말이지

“회색 용. 맞아?

“네.

“그럼 가샤가 죽였어. 엄청나게 강하긴 하더라.

“맞습니다. 그 용은 저랑 같은 에이션트 드래곤이니깐요. 고대부터 있었던 존재입니다.

결국엔 용들도 사람 사는 데랑 똑같다는 말이 구만

“그러면 도움을 구할게. 처음에 예민하게 말 받아서 미안해.

그나마 서로 얘기를 듣고 해결책이 보여서 그런지 내 정신이 안정된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사과를 했고 붉은 남자도 받았다

“그래서. 너희는 무엇 때문에 글레이를 피해 숨어있었지? 도대체 글레이의 힘은 어느 정도인 거야?

나는 지금껏 주적을 글레이라고 생각하면서 정확한 힘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용들을 무시한 건 아니지만 세계 최강의 종족이라는 용들조차도 글레이에게는 힘도 못 썼으니

“용들이 전부 사라진 것 같은데?

“주인께서 승부수를 둔 것 같군.

“승부수는 무슨. 용들은 우릴 이기지 못해. 너희도 알잖아?

“게다가 그때 강한 용은 우리가 골라 죽이지 않았어?

“뭐래. 넌 그때 있지도 않았으면서.

“아니 난 있었는데?

“그만.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말하던 모든 인격이 한 인격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 인격은 글레이의 주체가 되는 인격이고 괴이의 주인이 이름을 지어줄 때 생긴 인격이었다

“우리의 숙원이 곧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직이야. 마지막 주인이 남아있다. 우연의 일치로 우리가 주인을 죽인 적이 있다곤 하지만 그걸로 자만하지 마라.

“알았다고. 그래도 마지막이잖아? 즐기자고~

글레이의 주체가 되는 인격이 그리 말했지만 다른 인격들은 귓등으로도 듣는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그 인격도 흥분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수천, 수만 년 동안 계획하고 만들어 간 게 결실을 맞이하기 직전이었다. 그 누가 흥분하지 않겠는가. 저 글레이도 그러한데

하지만 글레이에게도 불안한 건 있었다

“지금 주인은 본인의 몸의 상태를 모르는 것 같았다. 자칫하면 우리도 위험해.

자신의 몸이 쇠사슬이라 그런지 글레이의 공격 대부분은 쇠사슬이었다. 문제는 그게 일반적인 쇠사슬이 아니란 거지

그 쇠사슬에는 모든 생명체에게 취약한 마나를 억제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건 쇠사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글레이는 쇠사슬을 자신이 알고 있는 무구로 만들어 공격했다. 검이든 창이든 방패든 우리가 알고 있는 무구부터 모르는 무구까지

녀석이 만든 모든 무구에 담겨 있는 힘은 일정하지 않았다. 글레이가 원할 때마다 힘을 담거나 말거나 해서 모든 공격을 무시할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꽤 까다롭네.

그것을 제외하고도 글레이는 여러 능력이 있었다. 용들과 싸웠을 때부터 이미 게이트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설아의 능력인 피를 다루고 화염도 다룰 줄 알았다. 물론 그게 본인의 능력보다 그렇게 강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건 글레이의 힘에 비해 약할 뿐이었다

물을 다루는 용에게는 글레이의 화염이 통했고 용들에게서 나오는 피는 허공에서 모습이 변해 다시 용에게 돌아가 공격했다

게다가 그 피는 일반적인 피가 아니라 용들에게서 나온 피라 용에게도 꽤 나 위험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가능성 있어 보여?

나는 글레이와 싸운 전적이 있는 붉은 용에게 물어봤다. 지금 여기에 온 대부분의 용들은 글레이와 싸워 살아남은 강력한 용들이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용이 희생했기에 지금의 용족이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서려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때의 괴이의 주인은 마나가 우리 용들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잘 모르겠군요.

나도 내 마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본인의 마나가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고요...? 대강이라도 모른다는 겁니까?

그런데 용들이 저렇게 말하니 뭔가 멋쩍었다. 용들마저도 나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기분이 더더욱 이상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 잠시 기다리시겠어요? 제가 만들어보겠습니다.

응? 뭘 만들겠다는 거지

붉은 남자는... 아 아직 이름도 안 물어봤네. 뭐 상관없겠지. 붉은 남자는 마나를 한곳에 집약시키더니 붉은 구슬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붉은 남자도 그 붉은 구슬을 만드는데 현기증이 나는지 잠시 머리를 잡고 휘청거리다가 다시 중심을 잡았다

“후... 이 구는 제 마나를 가득 담은 구입니다. 옛날에 강력한 용이 발견한 방법인데 이 구에 마나를 부여하면 색이 바뀝니다. 대신 구를 만든 자보다 더 많은 마나를 부어야 색이 바뀌기 시작하죠. 제가 용 중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마나로 따지면 저보다 강력한 용들이 많죠. 그래도 우선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용 중에서도 마나가 가장 많은 용이 강력한 건 아닌가 보다. 정말 온 힘을 다해서 만들었는지 그 붉은 구에서 엄청난 마나가 느껴졌다

붉은 용도 힘들었는지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녀석이 만든 붉은 구에 마나를 부여했다

과연 용이었는지 내 마나가 끝도 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붉은 구의 색이 변하고 있었다

붉은 용이 만든 구는 핏빛처럼 붉었다. 하지만 내가 마나를 부여하니 내 마나의 색과 같이 점점 까매졌다

내 마나도 녀석과 마찬가지로 붉은색이었지만 훨씬 짙은 붉은색이었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색이 변하니 붉은 용은 쉬다가 놀라서 일어났다

“벌써 구의 색이 바뀌다니...?!

그러면서 붉은 용은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땀 하나 흘리지 않았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힘드시지 않으십니까?

“딱히?

그저 마나를 부여만 하는 일이라 그런지 그렇게 마나를 많이 사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힘든 것만으로 따지면 마나 양탄자 만드는 게 더 힘들었다

붉은 용은 나를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정말 몸에 무리가 없는 겁니까?

“딱히 느껴지는 건 없는데...

내 말에 붉은 용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내가 마나가 많아서가 아니라 뭔가 안 좋은 표정이었다

“아니... 상관없겠지.

뭔가 혼자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나가 너무 많아서 그런 건가? 나도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는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러면 저희에게 당신의 마나를 두를 수 있겠습니까?

“응? 그냥 내 마나만 두르면 되는 거 아니야?

붉은 용이 말하길 용들은 마나의 종주나 다름없는 종족이라 다른 생명체, 심지어 같은 용들도 서로의 마나에 저항력이 있다고 한다

자신들의 마나가 워낙 강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를 만들 때도 마나를 서로 집약시켜서 만드는 데 힘이 많이 든다고

일부 용들은 글레이의 위치를 찾고 나는 붉은 용과 아이들과 함께 글레이를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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