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142화 (142/164)

#142. 괴이의 주인 141

그렇게 내게 우호적인 사람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 별비 길드는 물론이고 가디언즈 길드마저도 나에 대한 의견 피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지만, 문제는 나였다. 아니 정확히는 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 가족들이지

가족들이 나보다 훨씬 더 패닉에 빠졌다. 그들은 헌터도 아니었고 일반인이었으며 갑자기 내가 게이트 사건에 원인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서는 나를 욕하기 시작했고 가족마저도 욕하기 시작했다. 내 가족은 지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

경호원 헌터들을 데리고 나가도 일반인인 사람들이 내 가족을 욕하면 헌터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일반인인 경호원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내 가족을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결국, 가족은 별비 길드가 마련해 준 별장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별장은 최고급 호텔 못지않았지만, 가족은 이미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내 가족보다도 문제가 있는 종족이 있었다

바로 오크

엘프는 이미 베타의 몸속에서 지내고 있고 다른 인간들과 교류하고 있지 않지만 오크는 다르다

오크는 다른 인간들과도 교류가 활발했고 그들의 특성상 강한 인간을 좋아했다. 엘프와 드워프에 비해서 비교적 수도 많았던지라 인간과 그들이 파티를 짜는 건 근근이 보였다

그런데 글레이가 게이트에서 오크를 보여줬었다. 그렇다는 건 오크 종족도 게이트 사건에 관여한 거 아닌가, 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렇게 엘프와 오크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종족에서 인간을 위험에 빠트린 원인으로 전락했다

드워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고 오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역시 인간은 이럴 줄 알았어요. 원래부터 비겁한 종족...

“아나리엘.

에이엘 씨가 아나리엘을 말렸다. 아나리엘은 인간에게 딱히 좋은 감정은 없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앞에서 인간의 욕을 하는 건 조금 그랬다

나도 인간이니

하지만 그녀의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었다. 다들 자기 일 아니라고 그냥 나를 보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다른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대부분 사람이 그러겠지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전쟁한다면 걱정할 것이다. 자기한테도 피해가 갈 수 있으니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강도에 당해 죽었다고 한다면 안타깝다. 그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감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글레이한테 보내는 건 밑져야 본전이다. 일반인들은 내가 SSS급 헌터애 준하는. 아니 그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모른다

아니 강하다는 걸 알아도 보내겠지. 내 일행도 가디언즈 길드도 별비 길드도 나에 대한 걸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글레이는 지구에서 나를 완벽히 고립시킬 생각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엘프와 오크에게도 적용됐고 성공했다

오크들은 지구의 인간들에게 배척받았고 결국엔 엘프와 같이 베타의 몸속으로 이주해왔다. 오크와 엘프들은 앙숙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해주었다

“... 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설시우 헌터. 당신은 어쩔 생각이지? 엘프도 그렇고 우리 오크, 드워프도 똑같다. 인간은 인간과 살아야 한다.

카잔은 비참한 표정으로 베타의 몸속으로 이주했지만, 감정을 숨긴 채 오히려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인간은 동족애가 없나? 하긴. 수가 그리 많으니 인간 하나둘쯤 없어져도 상관이 없겠군.

용인족 가샤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도 가샤의 말에 심히 공감했다. 이 막막한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나도 마찬가지로 베타의 몸속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한국 헌텨 협회장은 이때다 싶어 내게 현상금까지 걸어버렸다

물론 내가 범죄자도 아니고 반발이 있었지만, 그 말은 무시하고 강행했다. 그리드 녀석도 내가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게 현상금이 걸렸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게다가 현상금이 걸린 금액도 백지수표였다. 그저 나를 잡기만 한다면 그 어떠한 보상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공표했다

사람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무시하고 진행하니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제는 현상금이 있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나를 두둔하려던 별비 길드와 가디언즈 길드 등은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옹호하려던 순간 바로 글레이가 반응했다

바로 한국에 게이트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게이트 청정 나라였던 한국이 순식간에 게이트에 침공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게이트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엘프와 오크를 비롯한 여러 종족이 게이트 안에서 나타났다

당연히 그 종족들은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였고 그저 아무 말 없이 인간들을 학살했다. 민간인들은 물론이고 헌터들 마저도 사상자가 엄청났다

총사상자 수가 만이 넘어갔다. 별비 길드를 비롯한 한국에서 한가락 한다는 헌터들이 그들을 막으러 나갔지만 역부족이었다

우리 일행들이 기생충들을 막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계속해서 사상자가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사상자들이 십만이 되기 직전에 그들은 다시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별비 길드에 동맹 길드인 가디언즈 길드에 최정예 인원이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귀신같이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말의 희망도 없이 그 게이트가 사라져버렸다. 그때 나는 베타의 몸속에 은거하고 있던 상황이라 내게 지구의 소식도 전해져오는 게 늦었다

그걸 빌미로 또 나를 욕하는 소문이 일어나고 나를 찾으려는 헌터들이 늘어났다. 글레이는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겠지

“하아...

답답하다. 이 상황을 타개할 대책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일행들은 물론이고 가족들마저도 못 본 지 한 달은 지난 것 같았다

베타의 몸속은 먹을 것도 풍족하고 놀 거리도 많았다. 엘프들은 물론이고 오크들도 이주해왔고 용인족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항상 던전을 추구하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휴가 나온 것 같았다. 물론 안에서도 오크와 용인족들이 싸움을 걸어왔고 받아줬지만

내 아이들도 오히려 던전을 안 가서 그런지 다들 자신의 시간을 가졌다. 엘리는 원래 모래 속에서 살던 아이라 그런지 모래찜질을 즐겼다

시리는 똑같이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유일이 이리만이 던전을 안 가서 심심해했지만, 오크와 용인족들이 싸움을 걸어오면서 녀석도 즐거워했다

샬롯은 언젠가 내가 알려준 실뜨기를 여유롭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고귀한 귀부인으로 보였다

이고르는 용인족 가샤와 함께 용의 브레스를 연구하고 있었다

구스타프는 딱히 별로 원하는 것이 없어 보여서 엘프들에게 늪과 같은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부탁했고 구스타프는 그곳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오크들도 처음에는 참담한 분위기였지만 이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고 있었다. 오히려 엘프들과 사이가 좋아지고 용인족들과 대결하며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오베른들은 요즘 세계수와 뭔가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나다. 나만 이 베타의 몸속에서 겉돌고 있었다

나도 다른 오크나 용인족들과 같이 힘을 단련하고 있었다. 마나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연습하고 공부했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이런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계속... 갇혀 지내야 하는 건가?

생각이 들면 들수록 내 정신이 피폐해졌다. 그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건 사람에게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숨어지내야 하지? 남의 눈치를 왜 봐야 하지? SSS급 헌터도 이긴 내가?

당연히 내가 이긴 것이 아닌 아이들이 이긴 거였지만 내 정신이 이상하다는 걸 내가 직접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안 좋은 생각이 들 무렵에 기억에서 잊고 있던 아이가 돌아왔다

“가샤 님!

뼈 드래곤의 형태인 가샤가 하늘을 찢으며 돌아왔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뼈 가샤를 보자마자 깨어났다

나는 헌터가 된 이후로 이렇게 크게 기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환히 웃으며 가샤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어?!

그런데 가샤는 뼈 드래곤의 형태로 계속해서 있었다. 녀석은 항상 나랑 있을 때는 뼈 강아지의 모습을 하더니 왜 그런가 싶어서 쳐다봤는데

뼈 가샤가 하늘을 찢어서 공간이 생긴 곳에서 다른 무언가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보이는 순간 용인족들의 표정은 울기 직전이었다

“자네가 가샤 님을 찾은 인간인가.

그곳엔 엄청난 위용을 보이는 수많은 용이 있었다. 이미 크기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고 여러 색색의 용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엘프와 오크들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들은 나를 압박하려는 것처럼 하늘에서 정지 비행을 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거대한 날개를 가진 붉은색 용이 나를 보며 말했다. 용인족들은 물론이고 엘프와 오크들마저도 그 모습에 압도되었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답하는 동안 그 붉은색 용은 내려와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마치 이고르의 모습에 온몸이 붉은색이면 저런 모습일까

머리카락도 붉은색 눈썹도 붉은색 입은 옷도 붉은색이다. 그의 몸에 붉은색이 아닌 건 피부밖에 없었다

표정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 말이 거슬렸는지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나로서 저들은 괴이 하나도 못 이긴 종족들이다. 세계 최강의 종족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겐 별로 와닿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내가 느끼기에 내 정신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데 저 붉은 용이 시비 거는 말투라 그런지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니... 시비 거는 말투는 아니었나

“인간은 거만한 게 특징인가?

“그럴 리가. 용에게 반말하면 거만하다는 건, 너만의 생각 아니야? 아님, 용 전체의 생각인가? 그렇다면 좀 실망인데.

하지만 굳이 예의를 차려줄 이유는 없었다. 저 붉은 용도 기본적으로 인간을 깔보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깐

딱 봐도 붉은 용이 용들의 대표로 보였다. 내가 용 전체를 모욕하자 날고 있던 용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붉은 용도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았다

내 기분을 아이들이 눈치챘는지 다들 자신의 본모습으로 변해 용족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용인족들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엘프와 오크들은 용들을 보고 두려워했지만 다들 무기를 잡고 내 뒤에 스며 용들을 바라봤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뼈 드래곤 가샤가 내 뒤에 큰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그리고 천둥이 울리는 소리로 착각할 만큼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크롸롸롸롸

나를 제외한 베타의 몸속에 있던 자들 전부가 귀를 막았다. 용족들은 그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뒤 뼈 드래곤 가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뼈 드래곤 가샤는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갑자기 내게 앵겼다. 그래서 나는 녀석을 안아주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