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129화 (129/164)

#129. 괴이의 주인 128

나는 베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샬롯을 바라봤다

“내가 네게 뭐라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네게 문제가 있나 물어보러 왔을 뿐이다.

예전부터 샬롯은 자신의 본모습인 거미의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걸 꺼려했다. 이번에는 회색의 용 앞에서 힘을 숨길 순 없었는지 거미의 모습으로 변했지만, 그녀는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

고작해야 거미줄로 회색의 용을 한번 막아준 거? 그것 외에는 별달리 한 게 없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가샤가 온 시간을 벌어다 준 걸 수도 있지만..

“이고르의 말도 그렇고 글레이의 시선도 난 기억해. 주인에게 버림받은 거미라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샬롯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나는 과거에 한낱 거미에 불과했다. 그래도 거미 중에서는 꽤 나 강한 축에 들었지만 그것뿐. 그저 인간 동굴에 흘러들어오는 인간의 아이를 잡아먹는 거미 중 하나였다

성인 인간은 내 거미줄을 벗어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그만 아이가 적당했다

이번에도 한 인간의 아이가 흘러들어왔다. 인간의 아이는 별미라 입맛을 다시며 거미줄에 걸리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조그마한 아이가 드디어 거미줄에 걸렸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인간의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계속 발버둥 쳤지만,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점점 옥죄어오는 게 내 거미줄이다. 나는 룰루랄라 하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소녀였다. 여자아이보단 남자아이가 더 먹을 게 많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나는 그 소녀에게 계속 다가가 소녀의 목덜미를 물려고 했다

그런데 물어 지지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 소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어느새 소녀는 나를 보고 있었고 소녀가 말했다

“쉴롭?

나중에 알고 보니 쉴롭은 소녀 자신의 이름이었다. 소녀는 지능이 낮아 버려졌는데 나를 만나고 우연히 주인으로 각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녀는 주인으로 각성함으로써 오히려 지능이 보통의 인간들보다 높아졌다. 그와 동시에 내 힘도 계속해서 강해졌고 그녀와 나는 괴이와 주인의 관계가 아닌 파트너로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며 성장해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인간인 그녀는 나이가 들며 반려를 맞이했다. 나는 당연히 평범한 거미보단 컸지만 가면 갈수록 커졌으며 이내 현재의 크기로 커졌다

그녀의 반려가 나를 싫어하고 혐오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녀가 막아주며 우리는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반려가 생기고 임신을 하며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찾아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나는 인간을 잡아먹는 것을 그만두고 사람들을 도와줬으며 인간들을 공격하는 괴수들을 내가 직접 나서서 정리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임신한 주인이 아이를 낳았고 주인은 더는 나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하필 거미 알러지가 있었다. 그녀는 나와 아이 중 생각도 할 필요 없이 아이를 선택했다

물론 그 정도는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자식이 소중하니깐. 인간들은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런데 나중에 인간들이 나서서 나를 공격했다. 나는 그들을 죽이지 말고 잡아서 왜 나를 공격했는지 물어봤다

그 뒤에는 주인의 남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남편은 자신의 아이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인 거다

사실 나는 주인의 곁에 계속 있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주인의 근처에서 둥지를 틀어 지냈고 쥐죽은 듯 지냈다

그런데 내가 있음으로써 주변에 거미들이 증식한 거다. 남편은 내가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들이 주변을 수색한 것이 아닌 정확히 내 둥지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되는 사건이 있었다

주인의 곁에는 당연히 나 말고도 다른 괴이들이 있었다. 그런 괴이가 내 둥지에 침입한 거다. 다른 인간들과 함께 나를 죽이러

하지만 둥지는 내 영역이었고 그들은 전부 거미줄 덫에 걸렸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들을 무력화했고 물어봤다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냐고. 괴이들은 주인의 말이 아니면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즉 그들은 주인의 말에 따라 내 둥지에 온 거다

“주인의 아이가 죽었어. 그 아이가 사고를 당했는데 하필 주변에 거미가 있었어. 거미 알러지 때문에 호흡 기도가 막히면서 소리를 치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싸늘하게 죽어있는 주인의 아이를 발견했지. 그리고 근처에는 거미가 있었어. 네가 죽이지 않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주인은 탓할 곳이 필요해.

괴이의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그들은 나를 보고 살려달라며 구걸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담담하게 말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괴이가 있었다

그자는 내 거미줄을 가볍게 찢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자는 그저 내 선택에 맡기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자의 이름은 스쿠틈. 나중에 내 은인이 될 자다. 방패가 괴이로 변한 스쿠틈이란 자는 온화한 자였다

스쿠틈은 나와 함께 주인에게 같이 가주었다. 주인의 남편이 나를 극도로 말렸지만 난 억지로 비집고 옛날부터 주인이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볼 수 있었던 건 폐인이 된 주인이었다. 한때 우리는 주인과 괴이가 아닌 파트너였다

하지만 거기서 볼 수 있었던 건 자식을 잃고 절망에 빠진 한 여인밖에 없었다. 그녀는 거미의 모습인 나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저리 꺼지라고. 네가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심지어는 그녀의 마나로 나를 공격하기까지. 스쿠틈이 도와준 덕분에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충격받았다.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해야만 했다

나는 그녀의 집에서 도망치듯 쫓겨났다. 그리고 주인의 집 근처에 있던 내 둥지를 전부 부숴버렸다

주인도 주인이었지만 다른 인간들도 충격이었다. 그들은 내가 대신 괴수를 잡을 때 나를 거의 신처럼 모셨다

비록 거미의 모습이지만 그들은 나를 좋아 해주었고 떠받들어줬다. 그런 그들이 바로 돌변해서 주인의 남편 말만 듣고 나를 죽이러 온 것이다

배신당한 기분이다. 아니 배신을 당한 거다. 나는 그 길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은거했다

“스쿠틈이 저를 많이 도와줬습니다. 주인이 죽을 때까지 저와 주인 사이를 계속 화해하려 했지만... 결과는 아시겠죠.

평생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다. 우리로 따진다면 부모님이거나 같이 평생을 살아온 가족이 자신을 버린 거다

게다가 괴이의 주인이 괴이를 버림 말로 쓰일지언정 아예 버린 괴이는 샬롯이 처음이라고. 사실 그 두 개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문제가 있겠지

그리고 샬롯은 지금까지도 주인이 자신을 배신한 이유를 자기가 거미라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만났을 때 거미의 모습이었지만 아라크네의 모습으로 변했고

하루도 안 돼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아마 그것이 거미의 모습에 트라우마가 돼서 계속 모습을 인간으로 변하고 싶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샬롯. 그건 변명밖에 안 돼. 네가 자신의 본모습인 거미의 모습을 싫어하는 건 알겠어. 그러면 인간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했어야지. 인간의 모습으로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알겠어. 그래서 네가 싫어하는 거미의 모습으로 변했었지. 하지만 그 모습으로 변했음에도 제대로 힘을 사용하지 못한 건...

“거미의 모습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단지... 주인이 거미 모습을 보고 저를 혐오할지... 그게 두려웠습니다.

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샬롯이 제일 잘 알 거다. 말하면 상처받겠지만 난 솔직히 거미보단 지네의 모습을 더 징그러워했다

그냥 다리 6개 초과하면 징그러워한다. 보통 곤충은 좋아하지만, 다리가 많으면 뭔가.... 징그럽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거미의 모습은 내게 전혀 혐오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그리고 전 주인도 거미의 모습을 싫어한 게 아니다

그냥 거미 자체가 문제였을 뿐이지. 만약 그 주인의 자식이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었으면 강아지를 싫어했겠지

“그리고 네 거미의 모습은 여러 번 봤잖아. 왜 지금 와서 그래?

내 말에 샬롯은 침묵했다. 북한에서도 샬롯은 거미의 모습을 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란 게 그런 거다

자기가 의식을 못 할 때는 상관이 없지만, 의식한 순간 모든 게 변한다. 아마 샬롯도 그렇지 않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다리 6개 초과하는 생명체를 싫어하긴 했어. 그건 지금도 그렇고. 하지만 그건 조그마한 나보다 작은 것들에게나 그렇게 느끼는 거지. 차라리 너희들처럼 압도적으로 크면 별로 그런 느낌도 안 들어.

물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어차피 샬롯은 나 말고는 상관 안 하겠지

“전에도 말한 것 같은데. 네가. 다른 아이들이 나를 떠나고 싶어 해도 난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할 거야. 물론 한 번 말려보긴 할 테지만 뭐... 어쨌든 내가 말하는 건 너희가 배신하지 않는 이상 내가 너희를, 너를 배신할 생각도 이유도 없어.

솔직히 말하면 이 아이들이 없다면 난 그냥 흔한 헌터 중 하나일 뿐이다. 아이들을 최대한 존중해줘도 모자랄 판에 버리다니. 이해할 수 없는 주인들이다

그때 가샤가 땅속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그저 뼈 무더기와 같은 모습이었다. 전에 본 뼈로 된 드래곤의 위용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뼈 무더기였다

난 가샤도 궁금했다. 도대체 뭐 하는 아이니 넌? 아니 생명체긴 한 거니? 진짜 그냥 뼈가 괴이가 된 경우인가

가샤의 자유분방한 뼈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 기괴한 모습을 가리키며 나는 샬롯에게 말했다

“네가 그런 말 하면 얘가 상처받는다?

농담 식으로 나는 말했다. 샬롯도 그 기괴한 모습에 기가 찼는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그랬었죠. 전에 주인이 저를 한 번 구원해 주셨음에도. 저는 그걸 믿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샬롯은 내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샬롯을 말렸겠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싸움에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나도 샬롯을 감싸고 돌 순 없다

“가샤에게 고마워해. 물론 도망가려 한 걸 가샤가 마무리한 거지만 그 용은 흑색의 용과 해태가 없었다면 우리도 힘들었을 테니.

샬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베타의 몸속에 옮겨둔 해태에게 갔다. 해태는 아직도 깨어나고 있지 않았다

발로그 옆에 해태를 나란히 눕혔고 엘프들이 그들을 보살펴주고 있었다. 둘 다 글레이의 피해자... 괴이이다

그때 이고르가 내게 다가왔다

“얘기가 끝났습니까?

“응. 왜?

이고르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가샤, 저 뼈의 정체를 대충 알 것 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