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괴이의 주인 127
게이트에서 나온 건 뼈로 된 드래곤이었다. 그 드래곤은 어느새 다시 회색의 용으로 변해 날아가려 하는 용을 덮쳤다
“당신은... 설마?!
회색의 용이 뼈로 된 드래곤을 보고 당황하더니 모든 공격을 멈추고 급격히 몸을 숨기며 도망갔다
하지만 뼈로 된 드래곤은 도망가는 회색의 용을 낚아채더니 목을 물어버렸다. 그런데 고작 목을 물어버린 것으로 회색의 용은 꼼짝 못 하고 있었다
“글레이 개자식.... 끄아아악!
그것뿐만이 아니라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분명 대화도 가능한 용이었지만 그 소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그 강대한 용의 처량한 울음소리는 현장에 있는 전부가 들었으며 그건 싸우고 있던 흑색의 용조차 당황하게 했다
그 울음소리는 대피하고 있는 일반인들조차 처량한 울음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회색의 용은 몸이 점점 기괴하게 변해갔다
온몸이 볼록볼록 튀어나오다가 다시 줄어들고 얼굴의 골격이 변하고 날개가 찌그러졌다. 이고르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다
“저렇게 비참한 모습을 보이는 건 제가 지금껏 죽였던 용에게서도 보여준 적 없었습니다.
이고르는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는 그때. 회색의 용의 몸이 터져나갔다. 우리는 그 광경을 멍안히 쳐다봤다
회색의 용안에 있던 뼈의 골격들이 몸 안에서 제멋대로 뛰쳐나와 뼈로 된 드래곤에게 들어갔다
그 모습은 어디서 본 광경이었다
“...가샤니?
회색의 용의 몸은 안에서 폭탄이 터진 듯 터져버렸고 그 몸체는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워낙 거대한 용인지라 피와 함께 쏟아지는 게 폭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설아가 그 피를 전부 빨아들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의 피라니... 지금껏 먹어봤던 피 중에 최고야!
저렇게 하이텐션인 설아는 처음 봤다. 그런데 그때 다시 허공에서 게이트가 나타났다. 도대체 하늘에서 게이트가 왜 이리 많이 나타나는지 보고 있을 때
“이젠 쓸모가 없어져서 보냈는데 말이죠. 설마 진짜로 에이션트 드래곤을 죽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 게이트에선 흑색의 남성. 글레이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은색 정장의 모습이 아닌 검은색 쇠사슬에 묶인 글레이였다
“오랜만입니다. 주인.
글레이는 내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조그마한 인간의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서 위화감이 들었다
“... 그 드래곤을 데려가서 어쩔 셈이지?
“제 실험체니깐요. 게다가 아직 주인에게 반감이 전혀 없는 것 같더군요. 자신이 키운 용이 세계를 멸망시킬 용이니 뭐니 떠들더니... 괜히 믿었군요.
글레이가 말한 용은 회색의 용이고 세계를 멸망시킬 용은 흑색의 용이겠지
“넌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은 건가?
“그럴 리가요. 제 목적은 알고 있으실 텐데요.
모를 리가. 녀석의 목적은 더는 주인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회색의 용이 세계를 멸망시킬 용으로 키우겠다는 말을 듣고도 용에게 넘겨줬다? 말의 앞과 뒤가 달랐다
“그럼... 왜 그 용을 데려가려는 거지?
“말했다시피 제 실험체니깐요. 이 용은 제 실험체로서 주인, 당신을 죽일 무기가 될 겁니다.
나를 죽일 무기라... 저 말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내가 뭔가를 더 물어보려고 할 때 글레이가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살아있는 것 같은데요?
글레이의 말투가 바뀌었지만 자주 그래와서 나는 별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고 그곳에는 해태가 있었다
해태는 회색의 용의 브레스에 직격을 맞고 더는 움직이지 못했고 그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위독해 보이지만 당신의 마나면 치유될 겁니다.
글레이는 그렇게 말하며 흑색 용의 아이를 데리고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샬롯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글레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글레이는 손쉽게 풀어내고 게이트로 들어갔다
하지만 들어가기 전 샬롯을 연민의 감정을 내비쳤다. 다른 일행들도 뒤늦게 글레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글레이는 게이트 속으로 사라지며 동시에 게이트도 사라졌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멍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글레이가 말한 해태에게 달려갔다
해태는 글레이의 말대로 다행히 숨만 쉬고 있는 상태였다. 해태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힘을 다해서 그런지 아니면 회색의 용에 브레스에 맞아서 그런지 온몸이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글레이가 말한 대로 해태에게 내 마나를 부여해주었다. 내 마나를 받은 해태는 몸의 색이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해태는 깨어나고 있지 않았다. 해태가 게이트를 타고 나타났었지. 그리고 흑색의 용만 계속해서 공격했다
회색의 용이 자신을 공격함에도 그걸 무시하고 말이다. 아마도 해태는 기생충으로 착각하고 흑색의 용을 공격한 것이 아닐까
해태는 전에 기생충으로 인해 살아난 동족을 내가 죽여서 착각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글레이가 해태에게 기생충의 존재를 알린 것이겠지
글레이는 흑색의 용을 회수해가기 위해 해태를 미끼로 이곳에 불러들인 것이다. 아마도 내가 직접 나서서 글레이를 공격했다면 그도 위험해지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깐
그렇게 내가 해태를 치료하는 틈을 타 도망갈 속셈이었겠지. 하지만 해태는 내가 마나를 계속 주는데도 일어나질 못했다
“발로그랑 비슷한 상황인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이고르는 다시 조그마해진 이프닉스의 곁눈질하다가 해태에게 다가가는 내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그 회색의 용... 제가 알기론 용 중에서도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온 힘을 다한 브레스를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있는 용은 거의 없습니다.
그럴 만했다. 엘프분들이 없다곤 하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최정상 헌터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SS급 헌터의 공격에는 흠집도 가지 않았고 마사무네 님이나 카잔의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정말 우리 전부와 싸웠지만, 그 용은 전부 맞받아쳤다
아마 흑색의 용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위험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가샤가 다시 뼈로 된 강아지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넌... 도대체 뭐니?
하지만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그래 내가 네게 뭘 바라니. 날 따라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이리도 언제 다쳤는지 모르겠지만 다리를 절며 다가오고 있었고 시리는 몸에 살짝 구멍이 난 것 말고는 상처가 없었다
구스타프도 입이 찢어졌지만 자기가 알아서 금방 재생했고 엘리는 내가 집중적으로 케어해 줘서 그런지 큰 상처는 없었다
나는 다른 헌터들에게 회색의 용의 공격이 가지 못하게 잘 막아준 엘리가 대견해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다
시리는 어느 때 와 같이 내 몸에 달라붙었고 나는 다친 이리에게 마나를 주며 치료했다. 글레이 덕분에 괴이에게는 내 마나가 치료하는 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리도 늠름하게 내 옆에 서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리가 귀여워 마찬가지로 녀석을 쓰다듬어주며 엘리도 머리에 얹으며 구스타프한테도 마석을 주었다
그때 샬롯이 쭈뼛쭈뼛 다가오고 있었다. 샬롯은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지금껏 열심히 활약했던 샬롯이 유독 오늘은 활약하지 못했다
샬롯은 죄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다가오고 있었다. 글레이의 시선도 있어서 샬롯에게 말했다
“나중에 따로 둘이서 얘기하자. 지금은 전장을 정리해야 해.
“...네.
제임스 님이 부서진 전초기지를 진두지휘하며 정리하셨다. 그리고 전초기지에 있던 모든 헌터에게 나는 거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용을 죽인 자. 드래곤 슬레이어!
그들 대부분은 가디언즈 길드원이었지만 그래도 여러 나라의 원정대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중국 전역을 돌아보고 다시 전초기지로 돌아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다들 함께했으니 가능했습니다. 너무 저만 치켜세우지 마세요.
그냥 나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인데 다들 겸손이라 생각하셨다. 그때 병상에서 일어난 알렉산더 님이 말씀하셨다
“결국, 마무리는 자네의 아이가 하지 않았나. 솔직히 마사무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전부 도망쳤을 거다.
다들 알렉산더 님의 말에 동의했다. 마사무네 님의 공격은 단순했지만, 매우 강력했다. 알렉산더 님에게조차 공격이 통했으니
카잔도 강력하긴 했지만, 카잔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벨런스 형이라고 해야 할까. 알렉산더 님은 방어형 마사무네 님은 공격형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그리고 나 말고도 유명해진 사람이 있었다
“이시현 헌터라고 했나? 과연 대단하군. 혼자서 던전을 공략한다고 했었지. 나도 그렇게 해볼까?
시현 누나가 다른 SSS급 헌터와 같이 회색의 용이 공격을 막는 것을 보고 마찬가지로 SSS급 헌터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었다
설아는 이번엔 큰 활약을 하진 못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다른 헌터들에게 공격이 가지 않게 시선을 분산시켜줬다
준석 씨와 민정 씨는 안타깝지만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민정 씨는 희귀한 버프와 치유형 헌터라 다들 알고 있었지만..
준석 씨는 그냥 골렘으로 변한 신체 강화형 헌터였을 뿐이다. 준석 씨는 아쉽지만, 다음에 활약할 때가 올 거라고 굳게 믿고 계셨다
만약 엘프분들이 있었다면 싸움이 훨씬 편해졌겠지만, 그녀들이 잠시 베타의 몸속으로 들어가 재정비를 하고 있을 때 회색의 용이 덮친 것이다
그녀들을 부를 새도 없이 급작스럽게 싸움이 시작된 거라 그녀들을 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늦었지만 그녀들을 부르려고 할 때 나는 가샤를 바라보았다. 가샤는 아직도 뼈로 된 강아지의 형태로 내 옆에 붙어있었다
“왜 안 돌아가니?
가샤는 베타의 몸속이 맘에 들었는지 그 안에서 전에 보았다시피 땅속에 파묻혀 지내고 있었다
녀석은 귀엽지만 뭔가... 노묘라고 해야 할까? 귀엽지만 하는 행동은 늙은 고양이 같았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뭔가 행동하기를 귀찮아했다
그런데 녀석은 뭔가 원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바라봤다. 엘리가 전초기지를 보수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고 있었다
무거운 자제를 수십 개에서 백 개 가까이를 옮겨주는 것을 보고 헌터가 아닌 사람들에게서 환호를 받고 있었다
물론 헌터들도 여러 개를 옮길 수 있지만, 사람의 골격 구조상 한계가 있었다. 이리도 마찬가지로 도와주고 있었고 시리와 구스타프는 자신의 자리에 있었다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쭈그려 앉아 가샤를 쓰다듬었다. 시리가 소리를 내긴 했지만, 전과 같이 위협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리도 자기 나름대로 가샤를 인정한 것이겠지. 가샤는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베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베타야. 네가 게이트 열어줬어?
베타는 아니라고 생각을 전해왔다. 아니 도대체 가샤는 뭐 하는 녀석이지? 글레이도 그렇고 회색의 용도 그렇고 가샤를 아는 것 같았다
음... 우선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따로 해결할 게 남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