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괴이의 주인 98
어차피 시간은 많고 게이트는 도망가지 않았으니 천천히 공략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알렉산더 님이 거진 30분 넘게 곰을 두드리고 계셨다
“38선에 있는 헌터들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것 같군. 벌써 재생력이 다 떨어졌는데?
괴수가 불쌍하다고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30분 동안 두들겨 맞던 괴수는 재생 능력이 점점 떨어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더는 재생하지 못하고 땅에 싸늘히 누워있는 시체로 변했다
곰 괴수의 팔이 뜯겨 나가 있었고 그 안에는 말라비틀어진 기생충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기생충에 입에서 뭔가를 토해낸 흔적이 있었다
“한계까지 재생하다가 죽은 것 같네요.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데.
샬롯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렉산더 님의 30분은 절대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거의 10초에 한 번씩 괴수가 죽었으니 백번을 넘게 죽은 것이다
어쩌면 짧은 시간에 숙주가 너무 많이 죽어서 기생충이 탈진해 죽은 것일 수도 있다. 그때 괴수의 몸에서 살아있는 기생충 한 마리가 꾸물꾸물 나왔다
알렉산더 님이 밟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막았다. 혹시나 그 녀석을 내버려 두면 뭔가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기생충에 몸에는 징그럽게도 몸에 알 같은 게 달려있었지만, 그 알 또한 전부 터져있었다. 이내 기생충은 뭔가를 입에서 토해내며 죽었다
기생충이 워낙 작아 토해낸 것도 작았지만 나는 가까이 가서 토해낸 것을 주웠다. 다들 그런 내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나는 다른 것에 깜짝 놀랐다
“이거... 마석입니다. 전장에 나오는 괴수들은 마석이 없는 것 아니었나요?
분명 전장에 괴수는 시체를 남기고 그 시체를 이용해 소재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됐다. 그런데 이 기생충은 시체도 남고 마석도 남겼다
“샬롯. 원래 이 기생충 죽였을 때 마석이 나왔어?
“아니요. 마찬가지로 마석을 토해내는 것도 처음 봅니다.
나는 알 수 없는 의문에 잠시 마석을 쳐다보았다. 이리가 먹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왔지만, 이 마석에 무슨 부작용이 있을지 몰라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모르니 나오는 생명체 전부를 잡아보죠.
마석에 대한 의문만을 남긴 채 우리는 게이트 속을 나아가며 나오는 생명체를 일일이 죽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석이 나온 것은 기생충뿐이었다. 처음에 봤던 다리가 6개인 악어에게도 기생충이 있었고 벌레에게는 없었지만, 기생충보다 조금 더 큰 다리가 8개인 개구리에게도 기생충이 나왔다
나는 오히려 그 모습에 시리가 걱정됐다. 시리가 주변에 모든 것을 먹어치울 때 분명 기생충도 같이 먹어치웠을 게 분명했기에
“괜찮아요. 만약 시리가 진짜 데스웜이라면 뱃속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생물은 없으니깐요.
샬롯에 말에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때 엘프 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이건...!
비명소리에 우리는 급히 그 엘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그 엘프는 우리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나무에... 기생충이 가득해요.
그 말을 들은 윌리엄 헌터는 자신의 무기인 메이스로 나무를 가격했다. 그런데 나무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나무는 흠집도 나지 않고 멀쩡했고 이내 뿌리를 드러내며 일어섰다. 그런데 그 뿌리에 온갖 생명체가 꿰어있었다
나무는 뿌리로 생명체를 관통해 그것에 피를 빨아먹고 있었고 뿌리를 통해 나무도 기생충에 감염된 것이다
시현 누나는 나무가 일어나는 순간 즉각 반응해 이프닉스와 함께 나무의 뿌리에 집중적으로 화염을 뿌렸다
하지만 뿌리는 불에 타면서도 채찍처럼 우리에게 공격해왔다. 뿌리가 날아오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고 일반적인 불이 아닌 시현 누나의 화염이라 더 위협적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놀고만 있진 않았어.
시현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날아오는 뿌리와 몸체가 함께 허공에서 터졌다. 뿌리가 잘려나가며 나무에게서 다시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끼이익!
그 소리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 소리는 처음에 질렀던 소리보다 훨씬 크게 소리쳤고 이내 주변에서 같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끼이이익!”
그리고 주변에 있는 여러 나무가 뿌리를 들고 일어났다. 우리는 순식간에 나무들에게 둘러싸였다
시현 누나의 폭발에 휘말린 나무는 기생충이 무색하게 갈기갈기 터져나가서 재생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시현 누나의 화염에도 잘 안 죽지 않는 것을 보아 화염에 저항이 꽤 나 있는 것 같습니다. 엘프 분들은 최대한 바람의 정령을 이용해 나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세요. 샬롯이 동쪽, 설아가 서쪽, 알렉산더 님과 리암 헌터의 파티원 분들은 남쪽을, 제가 북쪽을 맡겠습니다. 엘프분들은 그때그때 상황 보셔서 도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전투는 시작됐다
샬롯은 순식간에 거미줄을 넓게 펼쳐 한 구역을 통째로 막아버렸고 나무의 뿌리가 거미줄에 닿는 순간 녹아버렸다. 그리고 샬롯은 그 거미줄을 점차 전진시켰다
설아는 피의 날개를 펼쳐 뿌리가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설아는 피의 날개를 점점 크게 펼치더니 어느새 하늘을 가릴 정도로 크게 펼쳤다. 하늘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고 그 피를 맞은 나무들은 구멍이 뚫렸다
알렉산더 님은 순식간에 뿌리에 둘러싸였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뿌리를 찢으시며 나오셨고 그 뒤로 리암 헌터의 파티원들이 보좌했다
하지만 남쪽은 대량 살상 능력이 부족했고 나를 제외한 우리 파티원이 남쪽에 참전했다
나와 아이들은 시리를 선두로 전원에게 마나를 주어 북쪽 전체를 휩쓸어버리고 있었다. 엘리가 최대 크기, 어느새 샬롯보다 커진 모습으로 변해 엘프들에게 못 가게 꽉 막고 있었고 시리가 날뛰고 있었다
이리는 뿌리가 엘리와 시리를 뚫고 날아오는 것을 물어뜯어 없애버리고 있었다. 나 또한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에게 마나를 나눠주었다
그중 오베른들에게 마나를 최대한으로 주어 네 방향 모든 곳에 식물을 자라나게 했다. 식물은 씨앗을 내뱉어 공격하기도 했으며 거대한 이파리로 나무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기도 했다
하지만 나무들은 끊임없이 재생했고 끊임없이 몰려왔다. 엘프와 정령들이 분투하고 있었지만, 나무들의 숫자는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갈기갈기 찢겨 진 나무에서 기생충들이 기어 나와 전투의 여파에 죽은 생물들에게 들어가서 다시 공격해왔다
안타깝지만 게이트 속 공략은 무리라 판단하고 후퇴해 돌아가자고 외치려고 했다. 그때 아나리엘이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
“정령의 왕이시여. 제, 부름에 응답하소서.
그러자 녹색의 인간 형태의 정령이 나타났다. 그 정령은 4 미터 수준으로 여타 다른 정령들에 비해 월등히 컸다
“감히 나무에 기생하는 벌레라니. 역겹기 그지없군.
“대지의 정령 왕이시여. 괴로워하는 나무들을 구원해 주소서.
대지의 정령 왕이라고 불린 정령은 한숨을 쉬며 아나리엘에게 말했다
“그 이유로 아무 대가도 없이 나를 이용하겠다는 말인가?
“그건...
“됐다. 이번 한 번은 귀엽게 봐주지. 그리고...
대지의 정령 왕은 나를 힐끔 쳐다봤다
“괴이의 주인께서도 있으니. 이번 엘프 장로는 행동력이 좋군. 아직 미성숙한 주인을 찾아내다니. 그리고 나쁘지 않은 관계까지.
정령 왕은 뭔가 흐뭇한 표정으로 아나리엘을 보고 계셨다. 그러더니 표정을 지우고 주변에 끔찍한 나무들을 보셨다
“내가 정령 왕 중에서는 공격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하지만 정령 왕이 손짓 한 번에 나무가 바스러졌다
“식물에 한해서는 나를 따라올 정령은 없지.
말 그대로 손짓 한 번에 모든 나무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기생충이 기생하고 있는 나무만 전부 사라졌다
일행들은 물론이고 아나리엘마저도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나는 입을 떡 벌리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대지의 정령 왕이 내게 말했다
“너무 그렇게 놀라지 말게. 세계수를 제외한 모든 식물은 내 아래에 있으니.
뭔가 내게 친숙하게 대하는 대지의 정령 왕은 그렇게 말하고 아나리엘도 아닌 내게 손짓하며 사라졌다
“대단하군. 과연 대량 살상 능력에는 최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군.
알렉산더 님이 대표로 말씀하셨지만, 우리 전원이 깜짝 놀랐다. 너무 사기적인 능력이 아닌가? 그래도 정령 왕의 도움으로 그 어떤 희생도 없이 나무를 전부 제거했다
그런데 기생충이 나무가 전부 바스러지자 전부 나무 밖으로 나왔고 주변에 죽어있는 생물들에게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시현 누나가 화염을 땅을 기준으로 넓게 펼쳐 지상에 있는 모든 생물이 불에 타버렸다. 대지의 정령 왕이 남겨 뒀던 나무까지 전부다
그런데 나무가 전부 불에 타버리자 보이는 것이 있었다
“뭐지? 우리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건물은?
우리 세계에서는 정말 평범히 있을 건물이지만 딱히 문명이라고 보이지 않는 정글 같은 곳에서 볼 법한 건물은 아니었다
“설아야. 네가 하늘로 올라갔을 때 안 보였어?
“응? 응. 전혀. 시현이가 정글을 전부 불태워 버리니깐 마치 땅에서 솟아난 듯 나왔어.
그건 나도 확인했다. 정말 정글을 전부 불태우자마자 보인 건물이니깐. 심지어 저렇게 높이 솟은 건물은 아무리 나무에 가려졌다고 해도 못 볼 수준이 아니었기에
“여기까지 온 이상 안 들어가 볼 순 없습니다. 전과 같이 강한 헌터 순으로...?
그때 건물 안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형태가 창문을 깨며 뛰쳐나왔다. 그 형태는 우리 앞에 착지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알렉산더 님에 목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알렉산더 님이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고 리암 헌터의 파티원들이 급하게 그것을 결박했다
“할...멈?
그런데 알렉산더 님이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그럴 리 없습니다! 당신의 아내는 이미 죽고 없다고요!
리암 헌터가 급하게 말씀하셨다. 분명 앞에 떨어진 그것은 평범한 인간 여성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절대 늙은 모습이 아니었다
알렉산더 님의 아내는 헌터가 아니었고 전에 천사라고 불린 존재에게 현혹되어 던전에 들어가 처참한 시체로 변해 오셨다고 했다
“할멈의... 젊었을 적 모습과 똑같다. 그 손을 놔라, 리암.
분명, 이 상황은 절대로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알렉산더 님은 자제력을 잃으신 것 같았다. 알렉산더 님이 리암 헌터의 손을 붙잡아 때려고 하는 순간 에이엘 씨가 화살로 여성에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알렉산더 님은 멍안히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소름 끼치는 무표정으로 에이엘 씨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당신 같지 않군요. 그 어느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당신이. 감정이 부족한 당신이 이렇게 자제력을 잃을 줄은.
알렉산더 님은 에이엘 씨의 말을 듣고 달려들려고 하셨다. 그때 그것에 변화가 있는 것을 본 내가 급히 소리쳤다
“리암 헌터! 떨어지세요!
리암 헌터는 알렉산더 님과 마찬가지로 에이엘 씨가 터트려버린 머리를 멍안히 쳐다보다가 재생되는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 떨어지셨다
“사람에게 기생을 안 한다고 보장할 순 없지.
에이엘 씨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활을 여성에게 겨눴다
“어떻게 자네 아내의 모습으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자네 아내의 시체를 기생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머리를 터트린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 하지만 여기선 할 일을 다 해야 하지 않나? 알렉산더.
알렉산더 님은 피가 나올 정도로 주먹을 꽉, 지더니 처음 보는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처리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