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괴이의 주인 97
마침 알렉산더 님과 리암 헌터의 파티원들도 한국에 있었으니 잘 됐다
“돌아올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게이트로 들어갑니까? 심지어 가장 위험해 보이는 곳으로요.
준석 씨가 나를 나무랐다. 당연히 다른 일행을 둘러보았지만 다들 비슷한 의견인 듯했다. 나는 항변했다
“그렇다고 미뤄둘 순 없습니다. 마침 한국에 다들 계시니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들이 안 된다면 저도 강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 비장의 수도 있어요.
“비장의 수?
설아가 되물었지만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엘프들이 내게 협력한다고 했고 게다가 아나리엘과 에이엘 씨도 참가한다고 한다
거의 엘프 전원이 내게 협력한다고 했고 그들은 전원 A급 헌터 이상이었다. 그들은 활도 정령도 다룰 줄 알아 다재다능한 사람들이다
전장을 공략했던 원정대원들보다 지금 엘프들이 더 강할 수도 있다
“후... 알겠어. 대신 알렉산더 님과 리암 헌터가 거절한다면 끝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그들은 바로 내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자신감에 찬 시현 누나의 말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알렉산더 님과 리암 헌터의 성격을 잘 모르고 있었다
“자네가 부탁한다면 얼마든지. 그래서 언제 가지?
“차기 SSS급 헌터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요. 우리에게 빚진 겁니다?
시현 누나는 깊은 한숨을 쉬고 계셨다. 나는 누나의 눈치를 보고 말했다
“다들 지치신 것 같으니 조금 유예의 시간을 가지죠. 원하는 날짜를 말씀해보세요.
물론 일행들은 내가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을 때 시간을 보네 쉬셨고 나를 걱정하시고 계신 것이었다
나도 그 마음을 알고 있지만 글레이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마음이 점점 급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누나의 말은 하등 틀린 것은 없으니 쉬어야지
게다가... 아직도 발로그가 깨어나고 있지 않았다. 엘프분들도 발로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셨지만 오히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만약 발로그가 깨어나고 그가 내게 협력해 준다면 큰 전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발로그는 전혀 일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오베른들과 엘프들이 내가 준 땅과 베타의 몸속을 가꾸면서 난잡하게 자라나 있던 식물들이 아름답게 변했다
마치 건물 없는 식물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식물들이 계속 자라나면서 발로그의 몸에서도 식물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발로그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엘프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저 식물은 마나와 생기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발로그가 깨어난다고 해도 내게 협력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깐. 마찬가지로 엘프들에게도 발로그가 깨어나면 예의주시하라고 말씀드려 놨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게이트로 들어가는 날이 다가왔다
게이트로 들어가는 방법은 나와 베타가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 엘프들과 일행들을 데려올 생각이다. 애초에 그들은 게이트에 들어올 수 없었으니
“오랜만이네요. 알렉산더.
“오! 이거 에이엘 아닌가! 반갑군. 옆에는 여전히 철부지 여왕님이 있구만.
“여왕이 아니라 장로입니다.
알렉산더 님과 에이엘 씨, 아나리엘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알렉산더 님은 그저 담백한 반응을 보여주셨지만 우리 일행과 리암 헌터의 파티원들은 달랐다
“평생 볼 엘프들을 여기서 다 보는구만...
“잠시 못 본 사이에 무슨 일을 벌인 거지?
올리버 씨와 리암 헌터의 반응이었다. 준석 씨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계셨지만, 우리 여성 진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피부에 잡티 하나 없지?
“게다가 대부분 여자야. 시우야 한눈판 거 아니지?
“남자들도 잘생겼네. 뭐 우리 시우보단 아니지만.
마지막 말은 시현 누나의 말이었다. 낯부끄러운 말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엘프 남성들은 내가 봤을 때도 잘생겼다는 말이 나올 수준이었으니깐
뭐 나도 헌터가 된 이후로 몸도 좋아지고 잘생겨졌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결국엔 한계가 있다. 잡설은 그만하고
“이번에 게이트에 같이 들어가시게 될 엘프분들입니다. 물론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차별하지 마세요.
바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내가 실종됐다는 소릴 듣고 한국에 오신 제임스 님도 같이 들어오셨다
제임스 님은 입을 떡하니 벌리며 말씀하셨다
“엘프들은 내가 사정사정해도 잘 듣지 않는 종족이었거늘... 아니 세계수가 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미래였군.
마찬가지로 게이트 능력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베타의 몸속까지 들어오신 적이 없는 우리 별비 길드장 님과 부길드장 님도 들어오셨다
“시현이가 안목이 뛰어나네. 역시 내 딸이야.
“시현아. 아직도 뭔가 진전이 없어? 술김에 그냥...
“아니 엄마!
부 길드장 님이 시현 누나에게 뭔가를 말씀하시는 것이 들렸지만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가족과의 이야기에 내가 끼면 안 되니깐
발로그는 이미 식물로 뒤덮여 그게 거인인지도 알기 어려워서 그냥 내버려 두고 그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린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제 계획은 이렇습니다. 제 아이들과 샬롯이 먼저 게이트로 들어가고 그다음 부르겠습니다. 게이트 속이 어떤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경계하고 조심할 겁니다.
물론 엘프분들은 대부분 활과 정령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장에 간 원정대원들보다는 범용성이 떨어지겠지만 그들 개인으로서는 훨씬 다재다능하다
“만약 우리가 게이트 속을 정리한다면 세계에서 처음 사례가 생깁니다. 우리의 가치가. 특히 엘프분들은 훨씬 올라갈 겁니다. 우리 별비 길드도 세계권은 가뿐하겠죠.
“... 이미 자네로 인해 세계권이지. 어떤 감사 인사를 해도 모자랄 거야.
길드장 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그들에게 뭔가 동기부여가 될 만한 걸 얘기하고 싶었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너무 쟁쟁한 헌터들이었다
SSS급 헌터가 3명 SS급 헌터도 3명 그리고 내 아이들과 샬롯. 거기에 엘프들까지. 전원 나랑 관계가 있는 자들이라 믿음직스러웠다
“다들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이트 속을 정리하지 못해도 좋으니 무리하지 마세요. 절대 죽지 마세요.
나는 전장에서 죽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다들 나를 좋아해 주셨지만, 결국엔 죽은 사람이 있다는 거다
나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기에 나는 그들의 가족이나 연인을 찾아가 죄송하다고 직접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국 참전용사분들이 받는 훈장 같은 거를 드리고, 연금을 챙겨주라고 한국 정부에게 부탁했다
이번 게이트에선 절대 그 누구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혼자서 북한으로 향했고 게이트 앞에 섰다
“괜찮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글레이는 고작 저 정도 숫자의 엘프들은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겁니다.
“알고 있어. 직접 겪었으니. 그래도 거기서 희망을 봤어.
내 마나가 글레이에겐 치명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면 엘프들은 미끼들이다. 만약 글레이가 나온다면..
“안 나오는 것이 제일 베스트겠지만. 들어가자 샬롯.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긴장을 유지한 채 이리와 샬롯과 함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이 태양이었다. 처음에 손을 집어넣었을 때 매우 후덥지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태양이 2개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태양만 2개가 뚜렷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은 정글과 같았다. 나무가 울창했으며 늪 또한 있었다
그리고 평범히, 조금은 다르지만 여러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다리가 6개인 악어. 각종 날벌레와 다리가 8개인 개구리. 그리고 전에 봤던 곰까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베타를 불렀다
“사람들을... 음?
그때 갑자기 샬롯이 내 위로 거미줄을 날렸고 거미줄에 걸린 벌레가 있었다. 그 벌레는 특이하게도 금색이었다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벌렙니다. 주변을 정리하고 사람을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흠... 시리야?
어차피 정리하려고 했으니깐. 이 세계에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주변을 전부 먹어치워.
시리에게 마나를 주며 말했다. 나는 시리가 변한 형태인 데스웜에 대한 것을 샬롯에게 들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지렁이란 뜻의 데스웜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하지만 샬롯이 말하길 시리는 일반적인 데스웜은 아니라고. 전장에서 날뛰던 시리의 모습은 땅속에서 이상한 가시 같은 게 튀어나와서 괴수들을 죽였다
당연히 일반적인 데스웜은 그런 힘이 없다고 했고 시리처럼 큰 데스웜은 거의 없다고 한다. 시리가 어떻게 데스웜으로 변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거겠지
시리는 지네의 형태로 땅속에 들어갔고 주변을 다 뒤엎으며 땅에서 나올 때는 데스웜에 형태였다
마치 농사기구로 땅을 갈아엎는 것처럼 주변이 전부 사라지고 있었다. 물론 주변의 모든 생물이 시리를 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덤벼들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이내 주변은 싹 사라졌고 땅 지반이 조금 내려갔지만 황폐한 땅으로 변해있었다. 시리는 다시 지네의 형태로 돌아와 땅에서 나와 내 몸에 달라붙었다
나는 시리를 쓰다듬어주고 날뛰고 싶어 하는 이리를 진정시킨 다음 베타를 불러 사람들을 내뱉게 시켰다
“여기가 게이트 속인 가요? 생각보다 평범하군요.
아나리엘이 가장 먼저 말하며 나왔고 이내 모든 사람이 나오셨다. 그들은 전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우선 주변을 정리하긴 했습니다만 앞을 보시면 알다시피 정글입니다. 극독을 가지고 있는 벌레도 있다고 하니 조심하며 이동하죠.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당연하다는 듯이 알렉산더 님이 가장 먼저 나섰다. 엘프분들은 전원 정령을 소환하고 천천히 나아갔다
설령 정령들은 공격당해도 본체가 이 세계에 있지 않았기에 역 소환된다. 물론 정령들도 타격을 입긴 있지만 죽진 않았기에 정령들을 앞에서 우리는 정글을 나아갔다
그런데 시리를 통해 주변을 갈아엎는 것을 생명체들이 봐서일까.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절대로 달려들지 않았다
알렉산더 님이 달려가서 잡으려고 해도 조금의 달려드는 움직임이 보이면 재빨리 도망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알렉산더 님은 샬롯이 말한 극독을 가지고 있는 벌레를 잡아 자신의 몸에 댔다
물론 그 벌레의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알렉산더 님은 실망하며 손으로 으깨 죽여버렸다
“생각보다 너무 평온하군. 그냥 다른 세계에 게이트가 열린 것인가?
그때 전에 보았던 곰이 나타났다. 그 곰은 알렉산더 님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고 급작스럽게 달려들었다
엘프분들과 정령이 나서려고 할 때 알렉산더 님이 뒤를 향해 손짓했고 앞으로 달려나가셨다. 엄청나게 큰 곰 괴수가 달려오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알렉산더 님이 그냥 달려나가시더니 어깨로 부딪쳤다
곰 괴수 또한 마주 달려들 줄 몰랐던 것인지 반응하지 못했고 이내 몸이 터져버렸다. 그런데 전에 보았던 그 기생충들이 나타났다
기생충은 곰 괴수의 몸을 순식간에 재생시켰다
“과연 어디까지 재생할지 궁금하군.
곰 괴수도 같이 공격했지만, 알렉산더 님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고 알렉산더 님은 곰 괴수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