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97화 (97/164)

#97. 괴이의 주인 96

엘프들은 멍안히 내 연설을 듣고 있었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엘프들이 자신의 부모를 못 믿어서 그런 것 같았다

“후... 그래서 어찌 됐든 가족을 믿으라는 겁니다. 그리 존경하고 모시고 있는 세계수를 못 믿으면 누가 세계수를 믿습니까?

나는 힘든 연설을 마치고 숨을 고르며 엘프들과 세계수를 쳐다봤다

“그렇게 흥분하면서 말하는 건 처음 보는군.

“우리의 은인께서 하는 말씀이다. 새겨듣도록.

그런데 에이엘 씨가 처음 듣는 말씀을 하셨다

“은인이요?

“네. 우리 엘프를 구해주셨으니 은인입니다.

그 말씀에 아나리엘이 덧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 그래도 이 세계로 넘어온 엘프가 별로 없는데 엘프가 설시우 헌터를 습격했다는 소리가 들려왔죠. 하지만 전 애석하게도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둔 인간 협회와 설시우 헌터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이 잘못을 먼저 저질렀음에도 단지 우리의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게도 제, 멍청함이 부른 착각입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아나리엘을 비롯한 모든 엘프가 전부 경례하듯 내게 고개를 숙였다

“““세계수 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은인이시여.””

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치며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나리엘이 선수 쳤다

“은퇴한 세계수 님이 처음으로 우리 엘프도 아닌 인간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만큼 서로를 믿는다는 뜻이죠. 세계수 님에 따라 우리도 설시우 헌터 님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아나리엘은 에이엘 씨를 바라보았고 에이엘 씨는 그 눈빛에 답했다

“엘프들이여!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엄청난 숫자의 정령들이 나타났다. 물의 정령 땅의 정령 숲의 정령을 비롯한 불의 정령까지. 말고도 여러 정령이 나타났지만 아쉽게도 내가 잘 모르는 정령들이었다

모든 엘프는 정령과 계약을 진행해 정령을 부를 수 있었고 에이엘 씨가 부른 정령은 마치 바람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최상급 바람의 정령이었다. 하지만 장관은 아나리엘이었다. 그녀는 이 엄청난 숫자의 정령들의 절반 이상을 불러냈다. 그중에는 다른 최상급 정령들도 있었다

“세계수 님이여. 유례가 없는 일이지만 허락해주시길 바랍니다. 설시우 헌터 님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나리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얌전히 기다렸고 세계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괴이의 주인이 이 이상 강한 힘을 가진다면 문제가 생길 것을 두려워했지만 그동안 그의 행보를 보아 인정하겠다.

아나리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엘프의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축복은 장로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축복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축복을 받았고 엄청난 마나와 힘을 가지게 되었죠. 죄송하지만 앞으로 와주시겠어요?

아나리엘은 뭔가 인자한 모습으로 말했고 나는 엘프들이 동그랗게 서 있는 공간 가운데로 들어갔다

아나리엘은 내 앞으로 오더니 까치발을 들어 내 이마에 입맞춤했다

“세계수 님의 축복을.

마찬가지로 에이엘 씨도 다가오시더니 내 이마에 입맞춤하며 말했다

“엘프의 축복을.

그렇게 의식이 끝난 것 같았지만 나는 뭔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때 아나리엘이 조금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령의 축복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멋대로인 존재라 엘프를 제외한 존재에게는 별 관심이...?

하지만 나는 아나리엘의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워낙 시끄러워서

“저 인간 뭐지? 뭔가 친숙한 기분이 느껴져.

“엘프들이 둘러싸고 있어. 설마 의식을 치루는 건가?

“맞나? 맞네! 그럼 우리도 축복해줘야 하는 거야?

라는 느낌의 생각이 계속 내게 전해져오고 있었다. 계속 조잘조잘 시끄럽게 떠들고 있고 그 생각이 내게 전해져 와서 정신이 없었다

몇몇은 어느새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었고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저기... 얘들아? 조금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줄래?

하지만 그 말이 실수였다. 정령들은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알고 이것저것 다 물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말에 더 놀란 건 엘프들이었다

“정령들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역시 우리의 은인인 것인가..

역시나 가장 놀란 에이엘 씨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정녕 인간이 맞는 겁니까? 조상 중에 엘프가 있다거나 하진 않고요?

데자뷰같은데. 언젠가 카잔한테도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똑같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우리 가족도 지구 태생입니다.

에이엘 씨는 여전히 의문만 남는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계셨다

“그래서 정령의 축복이란 뭔가요?

그제 서야 아나리엘이 멍안히 정령들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말 그대로 정령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은 엘프는 자신의 반려 정령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정령은 계약자가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저는 이 아이입니다.

아나리엘이 보여준 정령은 뭔가 특이했다. 이프닉스가 동양의 용의 형태였다면 그 정령은 서양의 용의 형태였다

그녀의 머리 색과 같이 초록색의 용이었으며 녹색의 불꽃을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크기가 내 손이랑 비슷해 뭔가 귀여웠다

“정령들이 축복을 내리면 정령 중 하나가 당신에게 계약됩니다. 어떤 정령이 될지 아무도 몰라요.

“안타깝지만 아나리엘 님이 태어났을 때 이보다 훨씬 많은 정령이 모였습니다. 그래도 강력한 정령들이 많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나리엘과 에이엘 씨가 순서대로 말씀하셨다. 적어도 수백의 정령은 모인 것 같은데 이것보다 더 많으면... 정신없겠는데

안 그래도 신기한 광경을 봐서인지 오베른들과 내 아이들도 신기해하며 날뛰고 있었는데 정령들도 시끄러워서 정신없었다. 간신히 애들을 진정시키고 정령에게 물었다

“너네 들이 나를 축복해줘야 한다는데? 그리고 나랑 계약할 사람? 아니 정령?

그때 주변이 적막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조잘조잘 대는 정령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뭔가 꺼리는 생각을 전해왔기에 내게 문제가 있나 싶었다. 아쉽게도 정령들은 내게 계약은커녕 축복조차도 내려주지 않았다

“정령들은 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나 봅니다.

“예? 정령의 말을 알아듣는 자가 정령이 싫어할 리가 없는데...

아나리엘의 말에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싫다는 걸 어쩌겠는가

“괜찮아요. 엘프의 축복을 받았으니 그걸로 만족할게요. 다들 감사합니다.

엘프들이 오히려 정령들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전에 못다 한 얘기를 했다

“그래서 엘프들의 거주를 이곳에서 한다고 하죠. 그러면 나가는 곳을 어디로 할까요?

아나리엘과 에이엘 씨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다시 표정들 다잡고 말했다

“설시우 헌터 님이 편한 곳으로 하세요.

“맞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SSS급 헌터가 2명이나 있고 엘프 전원 마나를 다룰 줄 알기에 어디 내놔도 잘 살 겁니다.

음... 고민이다. 그들을 미국에 그대로 두기엔 글레이에게 이미 들킨 전적이 있다. 그렇다고 한국에 들이기엔 한국은 땅이 너무 좁다

“아! 그전에 우선 밖으로 나가죠. 제가 나가고 며칠이 지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행이 찾고 있을 수도 있으니깐요.

물론 체감상 2시간도 안 지난 것 같았지만 그 게이트 안은 시간이 흐르는 게 달랐기에 지금 며칠이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저는 여기까지만 안내하겠어요. 이제부터 다시 세계수 님과 함께 지내야 하기에 제가 없다면 실례겠죠.

아나리엘은 결계를 아예 해제하며 말했다. 오베른들은 엘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어 베타의 몸속에 두고 왔고 시리와 이리, 엘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에이엘 씨는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나를 밖으로 인도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온 거니 구스타프야

그런데 내가 이곳이 궁금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니 에이엘 씨가 말렸다

“이 공간도 결계에 일종입니다. 제가 움직이는 나무 사이를 정확히 지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혹시나 이리가 다른 곳으로 갈까 봐 조심히 이리를 내 옆에 붙였다

“내 옆에서 떨어지면 안 돼. 알겠지?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디디니 평범한 건물의 옥상으로 나왔다

“여기면 충분하겠죠. 그리고 저희가 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신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나는 베타에게 에이엘 씨를 삼키라고 시켰다. 자... 이제 어쩐담

나는 어찌저찌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하루도 지나지 않았고 일행들은 내가 사라진 지도 모르고 있었다

“미안해 샬롯. 변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위험할까 봐 다른 아이들도 다 안 데려갔어. 절대 너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니깐 오해하지 마.

하지만 샬롯은 사건을 다 알고 있었고 삐진 상태였다. 나는 간신히 숙소로 돌아온 뒤 샬롯을 달래는데 그날 하루를 다 썼다

다음날

한국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은 북한에 남아있는 괴수들을 전부 처리했다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는 공략이 안 된 엄청난 숫자에 던전이 있다고 한다

북한은 지금 꿀과 젖이 흐르는 땅이 된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의 헌터들도 북한을 탐내고 있었다

“마침 잘됐네.

나는 길드장 님을 찾아갔다

“북한의 지분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정확히는 넓은 땅을 원합니다.

“... 땅 투기라도 하려고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냥 묵묵히 할 일을 다 하셨다. 정부에서는 답을 줬고 대신 흔쾌히 땅을 내줬다. 자그마치 만평이라는 크기의 땅을 내줬다

그 공간은 오직 내 사유지고 누구도 그 땅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물론 이제는 아예 들어오기도 힘들겠지만

“마침 한국에 좋은 땅이 생겨서요. 이 땅을 맘대로 개조하든 뭘 하든 상관없습니다. 베타의 몸속에 있어도 상관없고 여기서 전과 같이 결계를 펼쳐 살아도 상관없습니다.

엘프분들은 어느새 조금 더 늘어나 있었다. 아나리엘이 전 세계에 있는 엘프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들은 내가 준 땅을 안타깝게 보고 있었다

“괴수로 인해 전부 망가졌군요. 이곳을 복원하려면 오래 걸리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부가 왜 흔쾌히 이 땅을 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필 이곳은 전에 보았던 슬라임이 날뛴 곳이었다

게다가 오베른들이 불러낸 지옥초도 지나간 곳이라 땅이 아예 말라 있었다. 그래도 공짜로 땅을 준 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여기서 몰래 지내셔도 상관없고 밝히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엘프들은 지금 동안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니깐요.

오크들이나 드워프 분들도 극히 적지만 굳이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엘프는 불가능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 아닌 조건이 있습니다. 물론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북한이 전부 정리되었으니 이제 게이트 속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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