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괴이의 주인 84
우리는 괜히 시카고까지 와서 기분 나쁜 일만 겪었다
“다른 던전은 없나?
“...시우야?
“알았어. 그럼 설아는 뭘 하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걸 했으니 이번엔 네 차례야.
물론 미국에 오자마자 LA에 간 건 설아가 구경 가자고 해서 같이 간 거지만. 설아 한번 나 한번 했으니 다시 설아 차례라고 하지 뭐
“설아... 씨는 이미 했으니 이젠 제 차례 아닌가요?
하지만 그때 샬롯이 자기 의견을 표출했다. 샬롯의 말을 내가 설아에게 번역해줬고 설아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했지만, 별수 없었다
설아가 원해서 둘이서 LA를 다녔으니 이번엔 샬롯의 차례다
“설아 씨도 단둘이서 다녔으니 저도 주인이랑 둘이서 다닐래요.
똑같이 번역해줬고 더욱 볼을 부풀렸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이번엔 내가 양보해야지 뭐. 하지만 시우야 그건 알아 둬.
그렇게 말하며 설아는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너 요즘 이시현한테 관심이 없더라. 그것 때문에 지금 이시현이 벼르고 있다? 여기에 나만 오는 것도 엄청나게 부러워하더라. 너도 이시현 잘 챙겨줘.
나는 설아가 왜 그런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설아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나와 있는 베타에게 부탁해 베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나 말고 베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신기했지만 하필 지금
“그래도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 주네요? 저 아가씨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온갖 핑계를 대며 같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뭔가 여자들의 무언가가 있는 건가
“샬롯. 너는 설아가 말한 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어?
“저는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샬롯은 뭔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 웃음을 잠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그래서 너는 뭐 하고 싶은데? 너는 미국 지리도 잘 모르고 애초에 미국이란 나라도 잘 모르잖아. 나도 비슷하긴 하지만 말이야.
애초에 미국에 온 것도 샬롯이 있는 게이트로 가기 위해 처음으로 미국에 갔으니. 그래서 설아와 놀러 다니면서 LA를 구경했다
“이럴 때는 원래 남자가 리드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는 또 어디서 배웠니...
큰일 났네. 시카고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데..
“장난입니다.
샬롯은 호호 웃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보는 샬롯의 이면이었다. 항상 내게 깍듯이 대하던 샬롯이 어느새 내게 장난도 쳐오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글레이에 대해 말할 게 있습니다.
하지만 샬롯은 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진지하게 말해왔다. 샬롯의 그런 모습에 나도 장난스러운 모습을 지우고 말했다
“그래도 여기서 할 말은 아니니 잠시 기다려줄래?
나는 존 씨에게 부탁해 근처 숙박할 곳을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무슨 5성급 호텔을 잡아주셨다
“돈은 가디언즈 길드에서 낼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심지어 룸서비스도 맘대로 시켜도 된단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와인과 치즈 등을 시켜보았다
“음... 별로네.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지 그냥 삼겹살에 소주를 먹는 게 더 맛있다
“그래요? 저는 나쁘지 않은데.
샬롯이 우아하게 와인을 먹는 모습을 보니 겉모습만 보면 마치 동화에서 나오는 성질 나쁜 귀부인 같았다. 그저 겉모습만
“그래서 글레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더 있어? 전에는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샬롯은 와인잔을 내려놓고 잠시 심호흡을 한 뒤 말했다
“네 맞아요. 하지만 주인과 글레이와 얘기하는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습니다.
나도 반쯤 누워있던 자세를 바로잡고 경청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전 주인들은 각자 능력이 전부 달랐습니다. 지금 주인의 능력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서로 간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힘을 강화하는 능력 갔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그건 왜?
“글레이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태어난 괴이입니다. 그리고 전에 들은 이야기지만 주인의 능력에 따라 태어나는 괴이도 달랐죠. 지금의 주인이 나타났을 때 태어나는 괴이들을 보면 전부 짐승이죠. 그것도 원래 주인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던 평범한 동물과 곤충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내가 나오고 태어난 아이들은 시리와 이리, 엘리와 구스타프였다
“아마 그것은 주인이 평소에 동물이나 곤충에 관심이 있으신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전 주인들은 어땠을까요?
“... 드워프 같은 사람이 주인이 되면 아티팩트가 괴이가 되는 거야? 무생물이 괴이가 될 수도 있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샬롯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글레이가 괴이가 될 때 주인은 드워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노예로 잡혀있었다고 합니다. 감옥에서 주인으로 각성을 했죠.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가 미쳐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묶고 있는 검은 쇠사슬에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말이죠.
검은... 쇠사슬
“주인께서 생각하고 계신 게 맞습니다. 그 쇠사슬은 글레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주인을 속박한 자. 어떻게 보면 지금 그의 행보는 예정된 거일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나는 샬롯의 말에 의문이 있었다
“너...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네. 내게 숨기고 있는 게 있지?
분명 처음에는 생각할 것이 늘어났다고 말했는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그냥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샬롯이 당황한 듯한 표정을 보니 내 생각이 맞았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샬롯이 말할 때까지 기다릴 뿐
“...죄송합니다. 너무 옛날의 일이었고 글레이란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지금이라도 기억해냈으면 됐지. 그래서?
샬롯이 고개를 90도로 숙이면서까지 말하길래 나는 재빠르게 대답했고 대답을 요구했다
“글레이에게 이름을 준 주인은 또 다른 자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쿠틈. 방패의 괴이였습니다. 노예였던 드워프 주인은 강제로 장비들을 만들었으며 그중 하나가 스쿠틈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은인과 같은 분이었죠.
“은인?
샬롯에
“예. 스쿠틈과 글레이에게 이름을 준 드워프 주인은 그 이후 노예로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미 미쳐있던 주인이라 쓸모가 없다고 판단. 쓸모없는 노예를 죽였다고 합니다.
“그걸 스쿠틈이라는 자에게 들었다는 거지?
“...예.
“그럼 그자는 어디 있어?
“죽었습니다.
“...응?
죽었다고? 글레이와 같이 태어난 괴이라면 마찬가지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죽었다고
“괴이가 영생을 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래 사는 거지 무한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쿠틈은 제가 괴이가 됐을 때 드워프 주인 말고도 자신이 겪은 주인에 대해서 말해주셨죠. 그리고 괴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때도 나이가 들 만큼 들은 상태였죠.
노환으로 죽었구나..
“그래도 편안히 가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
“네...
잠시 침묵이 있었다
“그래서. 글레이는 도대체 뭔데? 그게 다였다면 굳이 나를 따로 불러서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겠지.
“...네. 글레이는 쇠사슬로 된 괴이라고 했죠. 그런데 그는 주인이 죽은 후부터 세상에 모든 쇠사슬을 먹어치웠습니다. 왠지는 저도, 스쿠틈도 몰랐습니다만... 주인이 글레이랑 대화할 때 예상이 가는 것이 있습니다.
...다중인격자
“아마 그는 자신과 같은 것을 먹으면서 힘을 키워나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주인이 생각하는 것. 다중인격자. 수많은 쇠사슬을 먹으면서 수많은 인격이 생성된 것 같습니다. 그가 쇠사슬을 먹을 때 전 세계 모든 범죄자가 풀려나면서 세상은 큰 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나는 글레이에 대해 느껴지는 게 없었다
“음... 그래서?
“...네?
“나는 그 녀석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물어본 것이 아니야. 글레이의 약점, 지금 어디 있는지, 그것들이 궁금했을 뿐. 물론 지금 너를 탓하는 건 아니야. 그래서 그 녀석에 정체는 쇠사슬이니 뭐... 불에 녹인다거나 해서 죽이면 된다는 거나 아니면 전에 오그렌 님이 아티팩트를 부술 때 사용했던 그 망치라던가. 그런 게 있으면 쉽게 죽일 수 있을까?
나는 그저 평범하게 말했을 뿐인데 샬롯이 나를 보며 충격받은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주인의 입에서 괴이를 죽인다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실 줄 몰랐습니다. 모르는 괴이가 실험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노하셨던 주인이... 말이죠.
...? 그게 무슨 소리람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생체실험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누구라도 분노할 거야. 당연히 생체실험 당한 사람이 내 아이라면 더더욱 이지.
“아...
샬롯과의 그다지 영양가 없는 시간을 끝내고 시간이 지나 어느새 알렉산더 님과의 대결 날짜가 되었다
“어휴. 내가 싸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긴장되지?
설아와 샬롯은 그런 나를 보며 꺄르르 웃었다. 샬롯이 최근에 감정이 많아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긴 했지만 뭔가 찝찝하다
“왜 나를 놀릴 때만 감정이 풍부하니?
나는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고 SSS급 헌터들이 모이는 장소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시 봬서 반가웠습니다.
존 씨가 우리를 다시 한번 헬기를 통해 데려다주셨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시간 스타디움이란 곳을 개조해서 경기장으로 만든 곳이었다
나는 잘 몰랐지만, 꽤 나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런 곳을 빌려서 경기장으로 개조한 가디언즈 길드에 행동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고작 10명 남짓한 사람이 오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경기장은 넓어야지 않겠나?
내 혼잣말에 대답해주신 것은 어느새 옆에 오신 제임스 님이었다. 그런데 옆에 키가 작고 근육질인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이네. 설시우 헌터. 옆에 분은 드워프 그림스워드 님이다. SSS급 헌터이고 아티팩트에 대가이네. 우리 길드에 소속되어있는 두 번째 SSS급 헌터시다.
“반갑네. 그림스워드라고 하네.
그림스워드 님이 손을 내미셨고 나는 그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설시우라고 합니다. 옆에 빨간 머리의 여성은 설아. 이번에 새로운 SSS급 헌터가 된 친구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설아에게 눈치를 줬다. 설아는 마지못해 인사를 건넸다
“설 아입니다. 소속은 헝가리로 되어있지만 한국인이에요. 이번에 국적도 땄죠.
사실이었다. SSS급 헌터를 받아주지 않을 나라는 없었으니
“그리고 흑발의 키가 큰 여성은 샬롯이라고 합니다. 제 아이입니다.
아...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런가
“알고 있네. 알렉산더가 워낙 떠들어 재껴서 말이야. 말도 별로 없던 녀석인데 그렇게 신난 모습은 처음 보았지. 오늘 좋은 대결이 있길 바라네.
그림스워드 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쿨하게 떠나가셨다. 이런 말 하기 조금 그렇지만 드워프 분들은 전부 비슷하게 생기셨다
“흠... 평범해 보이는데.
그때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나서 반가워~ 난 라훌이야.
그곳에는 시현 누나가 SSS급 헌터가 되지 못하게 한 원인인 인도 남자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