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괴이의 주인 71
고치의 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 아이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고치를 강제로 뜯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다가 고치 안에서 굶어 죽거나 하면 어쩐단 말인가. 10개의 거미 고치가 전부 이런 상태였다
나는 샬롯이 가장 처음에 만들었고 가장 마나를 많이 들인 첫 번째 고치에게 다가갔다
샬롯이 이 아이를 만들어낸 지 3개월이 넘어갔다. 죽었다면 진작 죽었겠지
그럼 도대체 이 아이들이 안 태어나는 이유가 뭘까. 고치를 쓰다듬고 있을 때 갑자기 고치의 아이가 내 손에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내 손에 뭔가 닿는 느낌이 나더니 내 마나를 갑자기 빨아들였다
“주인님?
나는 당황했지만, 이 기분을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어 얌전히 기다렸다
샬롯은 자기 아이가 주인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게 불안했는지 안절부절못하길래 진정시켰다
이 아이는 금세 내 마나를 거의 다 빨아들였고 이내 고치가 깨어나며 부화했다
“응? 이 아이는...
어느새 옆에 와서 구경 중인 세계수는 깜짝 놀랐다. 물론 나와 샬롯도 마찬가지
고치 안에서 깨어난 아이는 30cm의 조그마한 인간의 형태에 뒤에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요정의 형태였다
“우리 세계수에겐 세계수를 관리하는 요정이 있다. 아마 내 마나의 영향을 받아 이런 형식으로 태어난 것 같은데.
세계수가 그렇게 말했고 나는 요정을 잠시 쳐다보고 있었다. 이 아이는 딱히 말을 할 줄 모르는 것 같았고 그저 천사같이 이쁜 얼굴로 나를 마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요정에게서 시선을 벗어나 샬롯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어?
하지만 샬롯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 아이인지도 확실하지 않아요. 주인의 마나가 제 마나를 뒤덮어 제 마나가 느껴지지도 않아요.
나는 세계수를 쳐다봤다
“세계수의 요정은 뭐지? 너 때문에 이 아이가 태어난 건가?
“세계수의 요정은 말 그대로 세계수의 요정. 세계수의 동반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너무 늙어 세계수의 요정도 떠나갔지. 물론 인간의 시간으론 백 년도 더 남아있지만, 우리에겐 짧은 시간이다. 요정은 장난기가 많고 호기심이 많지만, 그 천사 같은 모습을 보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요정은 무한한 시간을 보내는 자. 요정에게 수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한 시간을 보낸 요정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요정은 나도 처음 본다만.
세계수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요정의 날개를 쳐다봤다
마치 그 날개는 나비의 날개와 같았고 세 쌍의 날개는 반투명했다. 여전히 요정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요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샬롯. 이번엔 네가 이름을 지어볼래?
전에 세계수가 이름 함부로 지어주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무시했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이름 지어주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할까 봐 샬롯에게 떠넘겼다
“제 아이에게도 이름을 지어준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그리고 주인의 마나를 품은 아이니 주인께서 이름을 지어주시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역으로 내게 떠넘겼다. 큰일 났네. 그럼 앞으로 깨어날 저 아이들의 이름도 다 내가 지어줘야 하는 건가
그때 나한테 얌전히 잡혀있던 요정이 갑자기 거미 고치들로 날아가 하나하나 다 자신의 조그만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갑자기 내 마나가 요정에게 빨려 들어갔고 이내 고치에선 3마리의 두 쌍의 날개인 요정이, 한 쌍의 날개인 6마리의 요정이 태어났다
샬롯과 세계수는 이렇게 많은 요정을 처음 본다며 멍하니 쳐다보았고 나는 그런 요정의 모습에 번뜩이듯 생각나는 게 있었다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요정은 마치 진두지휘하듯 다른 요정들을 보살폈고 나는 그런 그 아이의 모습에 이름이 생각났다
“오베른. 어디선가 봤던 요정 왕의 이름이야. 앞으로 네가 애들을 돌봐주렴.
요정들은 갓 태어나자마자 베타의 몸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베른을 제외한 한 쌍의 날개를 가진 아이들은 8살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고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아이는 중학생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말은 즉 이 아이들이 태어난 환경과 같이 내가 나쁜 것을 배우지 않게 잘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팔자에도 없는 아이들을 왜 이렇게 많이 키워야 하는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샬롯은 그저 이 상황을 신기해했다
“제 마나를 담은 아이인데 요정이 나오다니...
그렇게 말하며 요정들에게 손을 뻗었고 요정들은 샬롯의 손가락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군. 나조차도 요정이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모르는데 요정이 태어난 순간을 보았고 심지어 그 요정이 거미 고치에서 나오다니...
세계수는 이 상황 자체를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가장 먼저 세계수에게 물어봐야 할 것을 물어봤다
“요정들은 무얼 먹고 삽니까?
“요정은 마나를 좋아한다. 세계수의 요정들은 세계수의 마나를 먹고 살아왔기에 세계수의 마나만 먹고 산다. 저 요정들은 내 마나와 저 거미의 마나. 그리고 당신의 마나를 먹었으니 앞으로 그 마나만 먹고 살겠지.
요정은 마나를 먹고 사는구나. 그래도 다행이었다. 내가 애들 식비 걱정할 정도로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일이 애들 밥 먹이긴 힘들었으니깐
그런데 오베른이 뭔가 웅얼거리더니 내 마나가 조금 빠져나갔다. 그러더니 세계수 근처에서 온갖 식물들이 나타났다. 이름 모를 꽃들과 식충식물들이 보였다
마치 세계수 근처가 정원이 된 것 같았고 오베른이 정원을 만들자 다른 요정들이 그 정원을 가꾸더니 정원의 크기가 점점 커져 나갔다
이윽고 정원은 베타의 몸속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세계수는 그 모습에 놀랐다
“이건... 이미 멸종했던 식물들도 몇몇 보인다. 오베른이라고 했지. 저 요정의 능력은 식물을 생성하는 능력. 그리고 다른 요정 아이들은 그 식물을 가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군. 심지어 저 능력을 사용할 때 내 마나를 가지고 갔다. 즉 저 아이는 내 마나만 충분하다면 멸종된 식물들을 복원시킬 수 있을 것 같군.
나는 그 말에 의문이 생겼다
“오베른이 능력을 쓸 때 내 마나도 가져갔는데? 샬롯 너는?
하지만 샬롯은 고개를 저었다
“제 마나는 가지고 가지 않았어요. 아마 저 아이는 여러 능력이 있고 그 능력과 관계가 있는 자의 마나를 가지고 가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샬롯의 말에도 또 의문이 생겼다
“난 식물이랑 전혀 관계없는데?
내 말을 듣고 샬롯은 고민하더니 오베른에게 말했다
“혹시 거미줄을 뿜을 수 있니? 아니 뭐라도 좋아. 나와 비슷한 능력을 써 보렴.
오베른은 샬롯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에서 거미줄을 뽑아냈다. 하지만 그 거미줄로 뭔가를 하기보다는 샬롯 쳐다보더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거미줄을 뽑아낼 때 내 마나도 조금이지만 들어갔다
“제 마나를 사용했습니다. 주인께서는?
“내 마나도 사용했어.
“그러면 아마도 주인의 마나가 주체인 것 같습니다. 주인의 마나를 기본으로 하고 그다음 저희 마나를 사용하는 거죠.
세계수도 그 말에 동의했다. 나도 이프닉스가 시현 누나와 내 마나를 같이 쓰니깐 어느 정도 이해는 했다
요정들은 어느새 내 그림자를 톡톡 쳐보고 있었으며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구스타프가 슬쩍 눈치 보며 올라왔다. 나는 혹시나 이 녀석이 요정들을 잡아먹을까 싶어 그러지 말라고 전해뒀다. 이리도 요정들을 보고 좋아했고 어느새 이리의 등에 타고 있는 요정들이었다
이리가 고속으로 움직이자 요정들이 걱정됐지만, 오히려 요정들은 꺄르르 웃으며 열심히 이리의 등을 붙잡고 있었다
오베른은 내 앞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짓으로 이리를 보고 있어 그 모습이 귀여워 놀다 오라고 말했다
그제 서야 오베른은 괜히 내 눈치를 보다가 구스타프의 콧잔등 위에 앉았다
구스타프는 귀찮은 듯했지만 내가 말한 게 있어 이미 나온 얼굴을 다시 집어넣지도 못한 채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나는 구스타프의 얼굴에 올라가 있는 요정들을 불러들였다. 나는 소심하지만 과격한 모순적인 행동을 보이는 구스타프의 콧잔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구스타프는 기분 좋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 이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리도 즐거워 보이기에 이리를 불러들여 오베른과 비롯한 요정들을 이리의 등에 손수 태워줬다. 그리고 이리가 달리자 그제야 오베른도 꺄르르 웃으며 그 나이 때와 같은 웃음을 보여줬다. 물론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이들이었지만
하지만 나는 이런 아이들을 전장에 이용해야 하는 생각에 맘이 아팠다
그런데 세계수가 내게 말했다
“저 아이가 만들어낸 식물 중에선 위험한 식물도 있다. 만약 그런 식물들을 선택해 소환할 수 있다면 그 전장이라는 곳. 초토화가 될 거다.
나는 세계수의 말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오베른이 소환한 식물 중에서는 식물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도 알 파리지옥 같은 식물이 있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거의 엘리만 했다
그런데 그런 식물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 세계수가 한 말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전 식물들을 잘 몰라요. 뭐가 어떤 식물인지 알면 전장에서 활용하기도 쉬울 텐데요. 혹시 세계수 당신 형태만 따로 게이트에서 못 나오나요?
만약 세계수가 게이트에서 나와 나를 따로 도와준다면 꽤 도움이 될 것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군. 내 형태만 따로 게이트에서 빠져나가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나는 세계수에게 말해 조그마한 형태로 만들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전에 나무로 된 매의 형태를 1미터 정도 크기로 만들었다
나는 그 즉시 베타에게 말해 세계수의 형태를 삼켜보라 말했고 세계수는 게이트 밖에 나왔다
“간신히 형태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내 힘을 사용할 수 없겠군.
세계수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아쉬웠다. 그래도 엘프들에게 신으로 불리는 세계수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오베른과 요정들이랑 함께 힘을 합친다면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다
그래도 만약 이 아이들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전장을 정리할 수 있다면 나는 최대한 힘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다. 태어나지도 별로 안된 애들에게 나쁜 것을 보여주긴 싫으니
“미안하지만 세계수. 내가 전장에 있을 때 요정들이랑 놀아줘. 만약 정말 위험해진다면 부를 테니깐.
세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이들. 시리와 이리, 엘리와 구스타프, 그리고 샬롯까지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사용하겠지만 그러고도 만약 전장을 정리하기 힘들다면
그때는 요정들이 나설 차례겠지. 이 아이들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 모르겠지만 세계수가 장담했으니. 나는 그저 내 아이들을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