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30화 (30/164)

#30. 괴이의 주인 29

언제 나와 같이 자고 일어나고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는데 내 방안에는 릴리가 있었다

이리는 내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었고 시리는 똑같이 몸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릴리는 내 방구석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듯이 방을 돌아다녔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릴리의 모습이 이상해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릴리는 내가 깨어난 걸 보자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제가 도망자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혼자서 깊이 자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요. 저도 모르게 시우 씨의 방으로 이끌렸네요

하긴... 1등급 헌터 범죄자이니 눈에 불을 켜고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겠지. 1등급 헌터 범죄자의 현상금은 부르는 게 값인 수준으로 그 사람을 목격했다고만 해도 돈을 많이 받는다

“이젠 괜찮을 거에요. 그리고 저도 이름으로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릴리

“아뇨... 뭔가 시우 씨를 이름으로 부르는 게 이상해서... 시우 님으로 할게요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뭐 본인이 좋다면 상관없지만

그때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시우...야? 릴리 거기 있니? 방에 들어가 봤는데 아무도 없어서

“아...네 시현 씨. 여기 있어요

방문을 열고 들어오신 시현 씨는 뭔가 삐진듯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누나라고 불러주시기로 했잖아요?

“아... 죄송해요. 입에 안 달라붙어서 그랬어요. 시현이 누나

그제 서야 만족한 얼굴을 지으셨지만, 다시 의문인 얼굴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근데 릴리는 왜 시우 방에 있나요?

내가 말하긴 뭐해서 가만히 있었다. 릴리는 나에게 했던 말 그대로 누나에게 했다

“오만식 선생님이 부탁하셨으니 금방 괜찮아질 거에요. 선생님 부탁 거절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우리 길드에게 미안하지만 왜 저희 길드에 남아있으신지도 의문이에요

선생님이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지도 몰랐고 그게 별비 길드란 것도 어제 처음 알았다

“저희가 아침마다 조깅 나가는데 릴리도 같이... 아... 아직은 안 되려나

별비 길드 소속 훈련장에서 조깅을 하는 터라 아무래도 지금의 릴리를 데려가는 건 무리가 있겠지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려고 다가가는데 문이 저절로 열렸다

“설시우 씨 친척이 생기신 걸 축하합니다

들어오신 분은 부 길드장님 이었다. 근데 친척...

“정확히는 재종형제라고 시우 씨의 아버지의 사촌 형제의 자녀를 재종형제라고 합니다. 이름은 설 아로 외자입니다. 축하드려요

그러면서 릴리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주며 말씀하셨다. “그쪽이 내 딸의 믿음을 배신할 경우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죽여버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부 길드장님 뒤에 내가 아는 유일한 길드원인 준석 씨와 민정 씨도 포함 수많은 길드원들이 뒤에 서 있었다

부 길드장님은 그렇게 경고를 내리고 나를 한번 쳐다본 다음 그대로 나가셨다

과연 부 길드장님은 초창기부터 헌터이신 분이라 그런지 이리에도 뒤지지 않을 살기를 보여주셨다

문제는 그 살기 중 일부가 나한테 향했다는 거지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네요

“어쩔 수 없지 뭐. 이번 건은 시우가 잘못했어

“예?

“제가 봐도 저 같은 헌터 범죄자의 말을 듣는 사람이 어딨어요

당사자가 뻔뻔히 저렇게 말하는 게 어이가 없네. 그렇게 한숨 한번 쉬며 말했다

“이젠 같이 조깅갈 수 있겠네요. 릴리... 아니 설아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던전을 들어가죠

설아는 자신의 새로운 이름이 적응이 안 되는지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훈련장으로 조깅을 나갔다

다행히 우리 셋이 조깅을 하는데 눈길을 끌진 않았다

아마 오늘 아침 부 길드장님이 이끌고 온 길드원들은 아마 별비 길드 내에서도 최정예들이었겠지

설아는 아직 다친 부위와 체력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나보다도 천천히 뛰셨다

그 모습을 보고 최대한 빠르게 던전을 가자고 마음먹었다

던전은 오후에 바로 구해졌다. 급하게 구하느라 C급 던전이긴 하지만 설아의 체력이 돌아오게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겠지

설아는 이리보다 더욱 들떠 보였다. “죽이는 건 도와드릴게요. 이런 말 하는 게 조금 이상하지만, 피가 나오게 하는 건 자신 있거든요

설아는 나를 이상하게 봤지만 뭐 베타가 확실하게 괴수를 죽이는 방식이 그런 건 맞으니깐

C급 던전에서 나오는 괴수는 들개들이었다. 들개들은 날렵하고 모여 다녀서 일반 C급 헌터분들이 잡기는 힘든 괴수지만 우리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들개 괴수들은 우리가 찾지 않아도 먼저 공격하려 했지만, 이리를 보고 도망쳤다

“그럼... 베타? 저 녀석들 좀 잡아줄래?

베타는 반지에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뭔가 삐친 듯이 나한테 얼굴도 안 보였다

왜 그런가 싶어 생각하다가 어제 고블린을 죽이고 나왔던 스태프가 생각났다

“아... 그거 때문에 그래? 미안하다. 다른 일이 있어서 까먹고 있었어

시현 누나도 의아한 듯이 물어봤다

“왜 그러세요? 베타는 왜 삐친 것 같죠?

“아... 그게

시현 누나에게 어제의 일을 자초지종 설명했다

“안돼요 시우. 전에도 말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물론 저도 알고 있죠. 하지만 베타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서... 생각 해보니 어제 그 고블린의 마석도 아직 아이들에게 안 먹였네요

이번 고블린을 죽인 게 이리라 이리에게 마석을 주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러면 시리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생기지 않을텐데... 그렇다고 매번 계속 특수 개체가 나타나면 이리와 시리에게 번갈아 가면서 상대하게 할 순 없지 않은가

“미안하다 이리야. 마석은 시리를 줘야 할 것 같아. 대신 다른 마석 많이 줄게

지금은 마석이 일반 고블린 마석 밖에 없으니 이거라도 많이 줘야지

애들 먹이려고 마석은 꼭 들고 다닌다. 그렇게 이리에게 고블린 마석 여러 개를 먹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시현 누나도 알다시피 베타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에요. 안 그래도 저 부 길드장님한테 미운털 박혀서 베타가 언제 반지에서 해방될지도 몰라요. B급으로 성장했을 때 검은 쇠사슬이 옅어진 거로 보아 성장하면 반지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지 몰라요

시현 씨는 내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셨다

“하... 저희 어머니는 한번 약속한 건 어기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러니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베타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 하...

시현 누나는 고민이 많아 보였다. 설아는 베타에게 쇠사슬이 달려있는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셨다

“이 검은 쇠사슬...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네요. 하지만 역겨운 기분이에요. 베타라고 했죠? 이 아이가 그 스태프를 원하는 거 아닌가요? 안 줄 이유가 있나요?

“그렇게 쉽게 얘기할 게 아니에요. 베타는 시우와 마나가 연결돼 있어요. 전에 베타가 급격히 성장했더니 시우의 몸이 견디지 못해 기절한 사건이 있었어요. 물론 그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우는 그걸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죠? 난 시우를 믿으니 이번 일도 믿어요

설아의 의문 모를 나에 대한 믿음이 부담스럽지만 할 말은 해야지

“그래요. 저도 시현 누나의 말을 따라 마석을 함부로 안 먹였잖아요. 하지만 이번은 베타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비췄어요. 이번만큼은 제가 아닌 베타를 믿어보시면 어떨까요?

시현 씨는 연달아 한숨을 여러 번 쉬더니 이내 말했다

“알겠어요. 이번만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안돼요. 시우를 케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하죠

“그럼요. 애초에 지금 스태프도 없어요. 들었지 베타? 집에 돌아가서 스태프 줄게

베타는 그제 서야 나를 돌아봤다. 이리와 시리와 다르게 베타는 참... 도도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는 다시 던전을 공략했다. 이리가 들개들을 금방 찾아냈고 시리가 독을 내뿜어 마비를 걸었고 베타가 마무리했다

나랑 시현 누나는 일찍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고 설아는 들개 괴수 근처로 이동했다

C급 괴수에게 베타가 굳이 높이 올라가서 공격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은 피가 목적이기에 똑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피는 사방으로 튀었지만, 귀신같이 설아에게는 피가 전혀 안 튀었다

하지만 들개 괴수에게서 나온 피가 저절로 떠올라 설아의 앞에서 구의 형태로 모였다

그 피의 구는 이내 설아의 몸속으로 마치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피의 일부는 다친 팔로 빨려 들어가더니 그 팔은 피로 변하더니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으며 그 팔은 전부 치료된 것처럼 보였다

기분 탓일까. 그녀의 머리카락이 조금 길어진 것 같았다

“어때요 설아? 겉으로 보기엔 다 나은 것 같은데요?

“음... 네 거의 다 나은 것 같은데 C급 던전이라 회복이 덜 된 걸까요?

“우선은 더 돌아보죠

들개 괴수는 아직 던전에 많이 남았다. “힘이 어느 정도 돌아오신 것 같아요? C급 던전은 사냥할 수 있을까요?

“음... 한 무리만 더 잡으면 가능할 것 같아요

“어때요?

“흠...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번 해볼게요

설아는 이리의 도움 없이 혼자서 들개 괴수를 찾아냈다. 피의 냄새로 알아냈다고 하지만 그게 뭔진 모르겠다

설아는 보기에는 엄청 여리여리해 보이지만 싸우는 모습을 보니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신체 능력자와 같이 들개에게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에는 30cm 정도 돼 보이는 피로 된 손톱의 칼날이 달려있었다

들개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지만, 그녀는 달려드는 속도 그대로 팔을 가볍게 휘둘러 들개를 갈라버렸다

들개는 죽었지만, 그녀의 손톱이 줄어들었다

순식간에 한 마리의 들개가 죽은 모습을 봤지만, 들개들은 거리낌 없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여럿이 달려드는 게 익숙한지 자리에 멈춰 섰다. 그녀는 손톱을 없애버리더니 죽은 들개의 피가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닌 땅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물방울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 물방울은 순식간에 들개들에게 날아갔다. 그 들개들은 마치 쇠 구슬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죽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설아가 주저앉았다

시현 누나와 내가 놀라서 달려가려는 순간 죽은 들개들의 피가 솟아나 다시 설아에게 흡수됐다

“괜찮으세요?

“네. 이런 기술은 아직 무리였나 봐요

“과연 멋있었어요. 아마 세상에서 설아밖에 못 쓰는 능력이겠죠

진심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들개를 뚫어 버렸을 텐데 힘이 없는 게 이렇게 서럽네요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어떻게 지금까지 버텨오신 거에요?

확실히 그녀는 SSS급 헌터를 죽였다는 말이 무색하게 너무나 무력해 보였다

“피를 흡수 못하니 힘이 점점 약해지더군요. 그래서 숨어지냈죠. 머리도 염색하고, 며칠 동안 씻지도 않아 몸에서 냄새나 사람들이 근처에도 오지도 않게 해보고... 별의별 짓 다 해 봤어요. 아득바득 힘을 아껴왔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민시영을 만나서... 그런데 변장하고 풀리면서 원래의 모습이 들어났네요

안타깝다. “더는 그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설아는 고맙다는 듯이 환히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시현 누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