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27화 (27/164)

#27. 괴이의 주인 26

“네? 릴리 씨는 헌터 자격증이 없으시다고요?

“아뇨

“네?

“릴리

“...

은근히 고집이 센 분이다

“그래요. 릴리. 어떻게 SSS급 헌터를 죽일 힘을 가졌는데 헌터 자격증이 없으신 거죠?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헝가리 복구하고 바로 마약 공장으로 잡혀가 기본적인 지식이 없었습니다만, 2년간 도망자 생활에 눈치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어요

릴리 씨는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오신 탓인지 눈치 하나만큼은 대단하셨다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마나를 느끼고 각성을 한다고 했죠? 전 아니에요. 마나를 느껴 본 적도 없고 능력을 각성하는 유예기간도 없었어요. 전 그저 살기 위해 제 능력을 각성했고 지금도 여전히 마나라는 걸 느끼지 못합니다

“그건... 이상합니다. 그러면 릴리 씨는... 뭐죠?

시현 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때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릴리...는 그 피의 슬라임의 피를 맞았어도 녹아내리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셨죠?

“네

릴리는 내가 릴리로 불러줘서 기쁘지만, 그때의 생각이 나서 슬프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저한테 관심이 간다고 하셨죠?

분명 이리와 시리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지네와 늑대같이 보였다

물론 크기도 훨씬 크고 가진 힘도 달랐지만, 겉으로만 보면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이레귤러들은... 내 친화 특성에 영향을 받아 나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나를 따른다

이리와 시리 또한 어떻게 자신이 태어났는지 모른다

“릴리는... 이레귤러 일 수도 있어요. 헌터가 된 이후로 헌터들도 일반인들도 많이 만나봤지만 제 특성이 통한 건 시리와 이리밖에 없었습니다. 릴리가 예외라고 생각하긴 힘듭니다. 실제로 릴리도 설명 불가능한 힘을 가지고 있고요

“네?

시현 씨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날 봤다

“릴리 씨는 아무리 봐도 사람입니다. 분명 괴수 중에 인간형 괴수도 있기도 하고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괴수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릴리 씨는 이레귤러가 뭔지 몰랐지만, 시현 씨의 말을 듣고 괴수라는 걸 알아차리고 내게 변명하듯 말했다

“제가 괴수일 리 없어요! 분명 저의 부모님이 누군지도 모르지만, 보육원에 입양됐고 그때까지는 평범하게 식사도 했어요. 분명...

릴리의 말을 듣는 중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그때까지는요?

“이런...

릴리는 자신의 말실수를 눈치챈 듯 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현 씨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를 감싸 안고 화염이 땅에서 솟아나 릴리를 가뒀다

시현 씨 집은 헌터들이 사는 집이라 마나로 코팅된 자제들을 사용했지만, 시현 씨의 화염을 막은 순 없었는지 집이 속절없이 타들어 갔다

스프링클러가 터져서 우리 전부가 젖었지만, 시현 씨의 화염만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릴리도 젖었지만 헐벗은 옷을 입고 있던 터라 모습이 색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믿었던 연인에게 차여서 처량한 여성으로 보였다면 착각일까

“저희는 릴리를 믿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부디 진실을 말해주세요

하지만 이런 생각 하면 실례일 수도 있지만, 이리와 시리 같다고 생각해서일까? 그녀를 믿을 수 있게 된다

물론 릴리가 화염 감옥에 갇혀있지만, 시리와 이리가 아무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리는 릴리가 민시영으로 변해 있을 때는 살기를 내뿜었지만 릴리로 돌아오고 나선 경계를 더는 안 하고 있다

시리는 내 말을 착실히 들었을 뿐. 시리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그때 릴리가 입을 열었다

“저는...

“그건... 뭔가 흡혈귀 같네요

“아마 그래서 엘리자베스 바토리란 별명이 생긴 거겠죠

“그럼 릴리는 피가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건가요?

“아마 그럴 거에요. 일정 이상 피를 못 먹으면 폭주를 하는 것 같아요

SSS급 헌터가 마약 공장을 만들었다는 건 비교도 안 될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다

“반지를 착용하셨을 때 민시영의 기술을 사용하신 거 보면 분명 마나는 있을 겁니다. 그 기술이 릴리의 기술이라 하더라도 허공에서 한 번 더 점프를 하는 건 난생처음 보네요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움직임은 마나를 가진 헌터만이 가능하다

“아마 지구에서 첫 번째 헌터가 릴리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마나고 뭐고 배울 시간도 없었겠죠. 자신이 다루는 게 마나인지 아닌지도 몰랐을 수도 있겠네요. 자기 특성이고 능력이고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으니깐요

자신의 특성이나 능력을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나를 통해 각성하면 자신의 특성이나 능력을 깨닫지만, 그 특성이나 능력은 각자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같은 특성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차이가 달라서 그 누구도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마나가 없는 사람이 헌터가 된 경우는 없고 마나를 느끼자마자 바로 헌터가 된 경우도 없다

그녀는 게이트가 나옴과 동시에 괴수의 습격을 받았지만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은 이유가 불분명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닌 이상 이건 명백히 이상 현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상 현상을 이미 알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일 뿐, 이리와 시리도 비슷했다

이리와 시리도 이레귤러가 된 이유가 불분명하다

시리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이리는 나를 따랐으며 릴리는 나에게 호감을 가졌다

우연이 계속되면 필연이라고 한다지

“릴리는 아무리 봐도 이레귤러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되네요. 이유 모를 호감이 저에게 느껴진다고 하셨으니... 피의 슬라임이 열쇠가 될 것 같은데...

그 피의 슬라임의 정체가 궁금하지만, 게이트로 돌아간 괴수는 우리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구를 침공해온 괴수가 나온 게이트는 인간이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건 그 이후에 생긴 던전으로 들어가는 게이트뿐

“그런데 릴리? 피를 흡수하는 것도 특성의 일환인 듯합니다만, 최근에 피를 흡수하신 적이 있나요?

“아뇨... 최근에 던전을 들어간 적이 없어서 피를 흡수 한지는 오래된 것 같아요. 그... 사람의 피를 흡수하는 건 거부감이 들어서요

아마... 그녀가 자신의 가족의 피를 흡수한 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가족을 죽였을 때의 감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면 릴리. 지금 거처도 없나요?

“민시영의 길드 하우스가 있지만, 길드원이 전부 죽어서요... 게다가 더는 변장도 못 하는 터라 그냥 깔끔히 전멸당한 거로 알려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러네... 생각해보니 우릴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지

“아... 제가 까먹고 있었네요. 시우 씨. 아마 시우 씨도 알고 있을 사람입니다. 국회의원 김대식이라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이름은 김호현이라고 하고 콜로세움에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인맥으로 구금되진 않았다고 하네요

충격이었다

“정치에 전혀 관심 없는 저도 알고 있는 사람이네요. 그 사람의 아들이 범인이었군요. 문제는 증거가 있어야 할 텐데요. 릴리는 알고 계신 게 있나요?

아무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사람을 잡은 순 없겠지. 심지어 국회의원의 아들을

“아뇨. 당연히 흔적이 없게 처리했죠. 그리고 기억의 동화는 제가 변장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최근의 기억만 남아있네요

하긴 아무리 멍청해도 증거를 남기진 않겠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지금은 안정되었다지만 지구는 침공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꼰대 들의 문화는 그대로 남아있다

여전히 인맥과 지연, 혈연과 학연이 난무했다

그걸 이용해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러도 봐준다

이럴 거면 법이 왜 필요한가

그 문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하긴 애초에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 임에도 똑같았지

“시현 씨 어떻게 해야...

“누나요

“... 시현이 누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이 안 보였다. 국회의원들은 헌터들 때문에 전보다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그들의 돈이 적어진 건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자기들이 가진 돈을 이용해 헌터들의 용품을 사고 그것을 이용해 헌터들의 환심을 사 자기만의 세력을 늘린다

김대식은 전부터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한 국회의원이라 그를 따르는 세력들은 분명 많을 것이고 그만큼 헌터도 많을 것이다

무턱대고 쳐들어가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설령 죽인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헌터 범죄자가 될 뿐. 그렇다고 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현 씨도 뚜렷한 무언가를 제시할 수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밤꽃 길드 하우스로 가면 뭐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나랑 시현이 누나가 거기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대식이 밤꽃 길드가 전멸된 걸 알기 전에 빠르게 가봐야 합니다. 죄송하지만 릴리. 길드 하우스에 가서 증거가 될 만한 거로 싹 다 긁어 모아오실 수 있을까요? 다 같이 갈 수도 있겠지만 분명 감시가 있을 겁니다. 그나마 얼굴이 안 알려진 릴리가 가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 말은 분명 사실이긴 하지만 다른 속셈도 섞여 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만, 이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여러 번 배웠다

릴리를 시험한 거나 다름없다

물론 내 말을 듣고 그녀도 깨닫겠지. 내가 자기를 시험하고 있다는 걸

“그럼요. 제가 도망 다니면서 읽힌 스킬이 한 두 개가 아니에요. 서류로 보이는 건 싹 다 긁어올게요

하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내 요청을 들어줬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릴리는 그렇게 말하는 즉시 바로 방을 나섰다

“괜찮을까요? 잠깐 얘기했지만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시현 씨가 극도로 경계하셨지만, 지금은 오히려 내가 경계하고 시현 씨가 느슨해졌다

“사실이라면 혼자서 SSS급 헌터도 죽인 분입니다. 저희가 걱정하는 게 오히려 실례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릴리 씨는 한 손을 못 쓰는걸요...

이런... 그건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를 치료하려면 저희가 신뢰할만한 사람이 필요한걸요. 헌터 범죄자를 치료하고 싶은 의사는 없을 겁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녀는 헌터 범죄자. 도움을 함부로 줬다가 의사도 같이 범죄자로 등록될 수도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도와줄 의사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희도 가만히만 있을 순 없죠. 길드장님이나 부 길드장님한테 도움을 요청해야 하겠습니다. 릴리의 치료를 위해서든 신분을 위해서든요

그리고 시현 씨는 모르겠지만 시리에게 그녀를 미행하라고 말해뒀다

릴리가 아무리 시리와 이리 같다 하더라도 그녀는 엄연한 지성체이다

얼마든지 배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릴리가 시리를 눈치채 공격하면 낭패지만, 난 그녀와 시리를 믿는다

제발 배신하지 말아 주세요. 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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