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이의 주인-26화 (26/164)

#26. 괴이의 주인 25

“그러면 릴리 씨는...

“릴리 라고 불러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녀는 내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았다

시현 씨도 똑같이 느꼈는지 내 앞을 가로막고 대신 말했다

“그래요 릴리. 저희가 그쪽을 지켜줘서 얻는 게 뭐죠?

“당신에게 제 이름을 부르는 걸 허락한 적은 없습니다만. 당신의 허락은 필요 없어요. 전 시우 씨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두 분이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아니 사실 잘 모른다

내 기억은 헝가리에 있는 보육원에서부터 시작되니깐

내 부모는 나를 보육원에다가 버리고 도망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보육원의 원장님이 매우 친절하셨다

원장님은 본인이 보육원을 운영하셨지만, 기부도 하시고 입양 가는 아이들을 보며 진심으로 축하하셨고 기쁨의 눈물까지 흘리는 착한 사람이었다

원장님은 이름이 없는 내게 릴리 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셨다

보육원에 있는 모든 아이가 원장님을 따르며 행복한 생활을 보냈지만, 그 생활이 계속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7살이 되는 해에 게이트의 침공이 시작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헝가리 근처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는 일반적인 괴수가 아니었다

그 괴수는 슬라임과 같았으며 온갖 촉수가 달려있었고 그 모든 게 피로 이루어진 것 같이 새빨갰다

그 피의 슬라임이 지나간 자리는 피로 흥건했으며 그 피는 건물은 멀쩡했지만 모든 생명체를 말살했다

하지만 그 슬라임은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으며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게이트로 돌아갔다

그 잠깐 사이에 헝가리는 초토화됐으며 그사이에 다른 게이트에서 나온 괴수들이 헝가리를 차지했다

내 눈앞에서 보육원의 아이들이, 원장님이 다 녹아내렸지만 나는, 나만이 그 피를 맞아도 멀쩡했다

내가 왜 살았는지 느끼기도 전에 온갖 이상하게 생긴 괴수들이 헝가리에 들이쳤다

나는 살기 위해 악착같이 도망쳤다

하지만 난 고작 7살의 아이였고 결국엔 괴수들에게 잡혔다

잡아먹히기 직전 나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능력을 각성했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괴수가 갑자기 피를 뿜으며 죽었다

그 피는 내 몸을 뒤집어썼고 내 몸은 그 피를 빨아들였다

거기서... 엄청난 쾌락을 느꼈다

마약을 했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 당시에 어렸던 나는 그 감정을 조절 못 하고 괴수들을 사냥하며 그 피를 빨아들였다

자그마치 5년이나

5년간의 기억은 거의 없지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의 시간은 지구가 침공당하고 5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니 5년이라고 생각할 뿐

내가 정신을 차린 이유는 주변에 괴수가 없어 피를 더 흡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5년 전에 기억이 생각이나 슬픔에 잠겨 적어도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다 허물어가는 폐건물에 틀어박혀 지냈다

슬픔에 잠긴 사이에 난 내 몸에 대해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기본적인 물과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7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냈다

최상위 헌터들도 7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버틸 순 있지만 탈수 증상은 올 수 있다

나 또한 목이 말랐지만 이건 다른 현상이었다

내 몸이 점점 피를 원하고 있었다

다른 먹을 것을 구하고 싶어도 주변의 살아있는 생명체라곤 나 하나뿐이었다

그때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엾이 여겨 데리고 가 음식과 물을 줬다

피에 대한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완화는 되었다

그 사람들은 중국의 높은 사람들이 시켜 헝가리를 복구시키려고 온 건축업자들이라고 했다

사실 업자들이라기보단 원래부터 헝가리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괴수들에게 터전을 빼앗겨 도망친 사람들을 중국의 높은 사람들이 싸게 고용했을 뿐이었다

나는 어디 갈 곳도 없어 그 사람들과 같이 지내며 건축하는 것을 도와줬다

그렇게 15년에 걸쳐 사람들을 도우며 헝가리를 복구해 나갔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나에 두 번째 가족이 되었다

나는 내 몸이 일반인과 전혀 달라진 것들을 이용해 무거운 것들을 대신 들어주고 건물을 부수는 역할을 했다

중간중간 가끔 괴수들이 나타났지만, 오히려 난 그 괴수들의 피를 먹으며 내 갈증을 채울 수 있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무리 괴수가 없다곤 하지만 헌터 한 명을 지원 안 해줬다는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상 내 가족들은 노예계약을 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삶의 터전을 전부 잃었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죽든 말든 상관 안 한다는 뜻이었다

난 그런 사람들을 지켜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고작 15년 만에 헝가리를 거의 다 복구시켰다

15년 사이에 건축 전문 헌터로 각성한 가족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곳을 마약 공장으로 만들 테니 협력하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반박했지만 협력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엄포했다

우리도 나름 헌터들이 있어 저항했지만, 숫자가 달랐다

압도적인 수의 헌터들이 우리 가족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아 애초에 저항조차 불가능했다

우리는 그렇게 8년을 더 착취당하며 마약을 만들었지만 남은 건 마약에 대한 후유증만이 남았다

나 또한 마약 공장에서 일했지만, 나만이 후유증이 없었다

하지만 마약을 제조하며 내 감각은 점점 옅어져갔고 피를 원하는 내 갈증도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마약에 의한 착각이었고 나는 그렇게 공장 안에서 폭주했다

난 그렇게 내 두 번째 가족을 내 손으로 직접 죽였다

나는 시체도 남지 않은 공장에서 오열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어찌저찌하여 복수를 해냈지만, 그 대상은 SSS급 헌터였으며 나는 전 세계에서 나를 쫓는 1등급 범죄자가 되었다

그렇게 난 2년간 범죄자로서 도망 다니며 살아왔다

돈을 벌기 위해 던전을 몰래 다녔으며 헌터 범죄자로 등록되어 기본적인 협회를 이용할 수 없어 암시장을 이용해 마석을 팔아왔지만, 당연히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것마저도 협회에 들켜 계속 나라를 옮기며 살아왔다

더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던전에서 반지 아티팩트를 얻었다

암시장에서 만난 마법 부여가를 찾아가 아티팩트의 감정을 부탁해 알아낸 정보는 죽은 자로 변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반지가 마지막 희망이라고 느껴 괴수에 대한 대처를 가장 잘했다는, 물론 운도 있었지만, 남한을 찾아갔다

하지만 남한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건 나를 노리는 암살자였다

그 암살자를 제압하려고 했지만, 또 오랫동안 피를 흡수하지 못해서일까, 힘을 조절하지 못하고 죽여버렸다

어차피 나를 죽이러 온 암살자일 테니깐 죄책감은 없었다

하지만 남한에까지 내 소문이 퍼져있다는 걸 깨달았으니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 즉시 내가 죽인 암살자로 변했지만, 그 반지의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점점 내가 죽인 민시영이라는 암살자로 동화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설시우와 이시현을 죽이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나는 민시영과 동화되어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사용하지도 못했고 기억도 제대로 못 했다

그렇게 이시현이라는 사람과 싸우며 내 한쪽 팔이 불에 탔다

하지만 다행이게도 그 고통으로 인해 내 정신이 점점 돌아와 반지를 급히 빼냈다

반지를 빼냈지만, 기억이 동화된 탓일까 할 줄도 모르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설시우 라는 남자에게 이유 모를 호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숨겨도 될 내 정체를 굳이 밝혔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 남자 곁에 있고 싶은 감정이 계속 생겼다

하지만 옆에 있는 여자가 방해였다

“시우 씨랑 저는 동거하고 있거든요? 따라서 저도 상관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요? 그래서 사귀고 있는 건가요?

“그건...

“관계는 맺었나요?

“네?

“키스는요?

“어...

“하다못해 손은 잡았나요?

“...

“뭐 하나 한 것도 없으면서 시우 씨를 강제하려 하는 겁니까?

“아니에요! 저희는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요!

릴리 씨는 사실이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사실입니다. 저도 시현 씨를 좋아하고 시현 씨도 저를 좋아하죠

릴리 씨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에요? 뭐 플라토닉한 사랑 그런 건가요?

거기에 대해선 단순한 내 이기심 때문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러게요...

시현 씨는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서로 싸우더니 어느새 릴리 씨는 시현 씨를 위로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 그건 알겠으니 릴리 씨의 말을 믿겠습니다. 우선 돌아가죠

우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던전에서 나왔다

돌아오는 사이에 왠지 모르겠지만 여자 둘이서 친해졌다

“더우샤오가 살해당했을 때는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었죠. 하지만 그런 내막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연금술사인 더우샤오가 헌터에게도 통하는 마약을 만들었다니...

“그 사실은 인간 협회에서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SSS급 헌터인데다가 매우 중요한 연금술사 였으니 묵인하고 있었겠죠

연금술사는 말 그대로 돌을 금으로 만들 수 있는 돈을 쓸어 담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연금술사는 마석을 대체연료로 만드는 있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마석을 변환시켜 전기로 만들 수 있었다

그걸 발명한 게 바로 더우샤오

하지만 릴리 씨는 그 더우샤오를 죽였으니 전 세계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릴리 씨는 그런 사정을 안고 계셨군요...

“이 말을 믿어주신 건 시우 씨와 시현 씨밖에 없었습니다. 헌터 범죄자의 말을 애초에 듣지도 않았죠. 정말 감사합니다

릴리 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이셨다

그 심정을 우린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고생을 생각하면..

“저도 솔직히 말하면 안 믿었습니다. 릴리 씨 하지만...

“릴리 라고 불러주세요

릴리 씨는 눈에 눈물이 맺었지만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릴리. 하지만...

“방금 만난 여성은 바로 릴리라고 불러주면서! 저는요?!

시현 씨가 섭섭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확실히 좋아하는 여성은 씨를 붙이며 부르는데 다른 여성은 이름으로 부르면 서운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불러주시길 바라나요?

시현 씨는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내게 말했다

“시현...누나라고 불러줘요

라고 말한 시현 씨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숙이셨다

“그래요. 시현이 누나

내 말을 들은 여성 둘은 꺅꺅거리며 손뼉을 쳤다

어느새 저리 친해진 걸까..

“축하해요! 시현 씨! 한발 더 내디뎠네요!

“감사합니다. 릴리 씨 덕분이에요

“그럼 저도 시우 씨와 가까워 지면 되나요?

“그건 안돼요!

나는 왜 릴리 씨가 나에게 호감을 가졌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가지며 우리는 시현 씨의 집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