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51화.
이루의 손에 들린 걸 보던 도진은 잠시 말을 잊었다.
그건 검이라기 보단 거대한 채찍처럼 보였으니까.
“···저것도 검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유리코프에게 도진이 물었다.
“이루는 저걸 유검柳劍이라고 부르더군. 보이는 것처럼 정말 채찍처럼 휘둘러지곤 하지. 그리고 이루의 손에 저게 들리면···. 피해야 돼.”
그 말과 동시에 유리코프는 도진의 손을 잡고 뒤로 잡아당겼다.
당겼다기보단 뒷덜미를 잡아 날려버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콰과가가가각-!
거의 동시에 도진이 서 있던 자리까지 초토화가 되버리는 위력.
‘이건 검술이 아니잖아.’
솔직한 심정이었다.
검을 휘둘렀다기보단 그저 주변 모든걸 휩쓸어버리는 토네이도.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먼지로 화해 흩날릴 정도의 검풍을 몰고다니는 재앙과 같은 모습.
“···이게 진짜 스승님의 실력입니까?”
우물 안 개구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말을 이렇게 실감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평소에는 그저 실없을 정도로 유쾌하게만 보이던 사람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이런 모습은 도진이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모든 것들이 그저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로 놀라면 아직 이르지.”
우드득.
유리코프의 빠졌던 팔이 듣기에도 끔직한 소리를 내며 제 자리로 찾아들어갔다.
근육을 움직여서 빠진 뼈를 맞추는 건 그냥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 아니었나?
“우리가 괜히 이진과 마왕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줄 알았냐?”
이긴 것도 아니고, 그저 그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을 가진다는 게 조금 우스웠지만 그렇다고 진짜 웃음이 나는 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웃고 있으면 미친놈이겠지.
“지금 저기 접근하는 거, 너는 무리니까 여기서 보고 있어라. ···그리고 혹시나 우리가 위험하다 싶으면 넌 그 즉시 몸을 피해.”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저도 돕겠습니다! 선생님들 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충분히···!”
유리코프는 살짝 미소를 짓고선 도진의 어깨에 커다란 손을 올렸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너만은 살아남아야 한다. 너까지 잃으면 정말 미래마저 사라지는 거니까. ···만약 우리까지 진다면 너야말로 우리가 남긴 마지막 희망이다.”
“···선생님.”
“아무 말 하지 말고, 내 말대로 따라다오. 알겠지?”
도진은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불명의 검을 채찍처럼 휘두르고 있는 이루나, 당장에라도 저 검풍이 난무하는 곳으로 뛰어들어가려는 유리코프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가슴 깊숙히 와 닿았으니까.
“무모하구나. 결국 선택한 것이 겨우 이런 목숨을 건 자살 공격이라니.”
“자살은! 난 죽을 생각 없다. 이 자식아!”
카가가각!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외눈 박이 괴물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몸 여기저기 작은 생채기가 생기고 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듯이.
“흥, 고작 이 정도로 날 어쩔 수-.”
쾅-!
순식간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이번에는 제법 효과가 있었는지, 하나뿐인 눈이 살짝 일그러졌다.
“너도냐?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힘을 감추고 있었다는 건가? 하지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 결국 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힘이다!”
“와··· 그런 오글거리는 멘트를 참 잘도 뱉어내는 구나.”
유리코프의 손에 들린 건 건틀렛이라기보단 돌덩어리에 가까웠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바위에 가까운.
“···저건 위험한데.”
상황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도진의 뒤로 블랙이 나타났다.
“블랙 선생님! 저게 뭔지 아세요?”
“알지.”
“······그래서 뭔데요?”
둘둘 감싼 검은 마스크 밖으로 드러난 건 눈밖에 없는데도 명백하게 느껴지는 귀찮음.
“최후의 게이트에서 마주쳤던 스톤 골렘의 눈 알.”
“스톤 골렘이면···. 그렇게 강한 몬스터는 아니지 않아요?”
“···하긴, 너도 실전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
한심하다는 듯한 블랙의 말투에 도진의 표정이 살짝 머쓱하게 변했지만, 블랙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스톤 골렘은 약하다? 그럼 사이클롭스는 저 세 사람이 애를 먹을 정도의 몬스터냐? 몬스터의 능력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어. 너도 아카데미 교수라면 그 정도는 알아둬. 당시 우리가 마주했던 스톤 골렘은 일반 돌덩어리가 아니었어. 이루의 칼날을 튕겨낼 정도의 강도를 가진 녀석이었으니까. 잘 느껴봐라, 저 건틀렛의 기운을.”
조금 전까지 귀찮다는 듯한 사람이 과연 맞나 싶을 정도의 장황한 설명.
도진은 블랙의 설명에 다시 한 번 유리코프의 주먹을 감싸고 있는 돌덩어리에 가만히 집중했다.
‘···뭐, 뭐야. 이 마력은···.’
“표정을 보니 그래도 느낄 수는 있는 모양이구나. 알다시피 골렘은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핵이 있는데, 저게 바로 그 핵이자 눈이었다.”
“하지만 골렘은 핵을 파괴해야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맞아.”
‘제발 설명 좀 이어서 해주시죠.’
자꾸만 끊기는 대화의 흐름에 도진이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파괴하지 않고··· 그걸 심지어 무기로 쓸 수 있는 겁니까?”
“나도 몰라.”
“네?”
“이진이 저렇게 만든 거니까. 그 녀석 말론 골렘의 마력을 강제로 핵 안에 봉인시킨 거라고 하던데. ···우리도 거기까진 이해하지 못해. 그냥 그러려니하고 쓰는 거지.”
도진은 이진의 그랬다는 말 한 마디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진이 그랬다면야.
‘···설마?’
“혹시, 지금 스승님이 들고 있는 무기도?!”
“이루의 무기? 맞아. 저건 이상한 여성형 몬스터가 들고 있던 거였는데··· 얼핏 채찍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용자의 마력에 맞춰 형태를 조금씩 변환시키는 능력이 있지. 이루는 그걸 검처럼 만든 거고.”
채찍을 든 여성형이라.
도진은 얼핏 뭔가가 떠오르려고 했지만 괜히 바람을 피는 것 같은 느낌에 얼른 생각을 날려버렸다.
“···문제는 저 무기들은 오래 쓸 수 없다는 거야. 쓰면 쓸수록 사용자의 마력을 타고선 정신을 침식해 들어가거든.”
“위, 위험한 거 아닙니까?”
“맞아. ···그러니까 빨리 좀 돌아와라. 이진, 이 빌어먹을 놈아.”
평소의 블랩답지 않게 말이 많았던 날, 그는 마지막 말을 하면서 먼 곳을 응시했다.
어딘가에서 이진이 듣고 있기라도 한 듯이.
* * *
끄어어억···.
끼에엑-!
주변에 널부러진 외눈박이 괴물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붙어있다.
수십 배가 중첩된 중력의 압박 속에서 아무리 괴성을 질러본들, 저 거대한 몸체를 일으킬 수 있는 녀석은 없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쪽이 아니다.
“젠장, 결국 여기도 없나.”
이 곳으로 넘어온 지 벌써 2달의 시간이 흘렀다.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는데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는 날들의 연속.
‘···아직까지 무사한 것 같긴 한데.’
어떻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시연이나 시은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 최대한 빠르게 돌아가야한다는 사실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
“···차, 착각하지 마라. 인간···.”
“착각?”
고개만 겨우 든 녀석은 여기서 말이 통하는 극소수의 원주민.
커다란 무리를 이룬 게 아니라, 일종의 부족 단위로 뭉쳐 사는 녀석들중에서는 거의 부족장의 위치에 있는 녀석들이기도 했다.
“저, 정의는 우리에게 있다. 우, 우리를 먼저 공격한 것은 너희 인간들이었잖느냐!”
“···헛소리도 정도껏 해라.”
벌써 몇 번째 듣는 소리인지.
계속 듣다 보니 진짜 우리가 먼저 공격을 한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확실히 게이트가 처음 열리던 시기와 지금은 방식이 조금 다르다.
지금이야 게이트가 생겨나면 몬스터들이 먼저 튀어나오곤 하지만, 당시에는 처음 단 하나의 게이트를 제외한다면 인간들이 먼저 게이트 안을 공략하러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게이트를 연 건···.’
게이트를 연 건 어느 쪽이지?
우리가 몬스터라고 부르는 존재들? ···아니다.
이건 그저 ‘섭리’라고 했지.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우리나 이 녀석들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다.
지금까지 줄곧 난 세상을 지키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의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들의 세상을 멸망시키러 온 존재였던 거다.
‘뭐가 됐든, 지금은 이런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제와 누가 먼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싸워야할 운명이었다면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
“어차피··· 너는 여왕님을 절대 이기지 못한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무슨 소리냐. 비교할 것도 없이 키는 네가 훨씬 짧은데.”
“말이 그렇다는··· 됐고, 묻는 말에 답이나 해. 모른다고 하면 네 식솔들 전부를 죽이겠다.”
“크윽! 이, 이 악마같은 놈! 모르는 걸 대체 어떻게 말하란 거냐!”
몬스터에게 저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황당하기도 하고, 이러고 있으니 정말 내가 나쁜 쪽인것 같기도 하네.
이녀석들은 정말 모르는 걸 지도 모르고.
‘···사실 그럴 확률이 더 크긴한가? 그렇게 중요한 걸 아무나 알고 있진 않겠지.’
우리 쪽에도 시연이나 시은이의 능력을 알고 있는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물론 그걸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이들만.
어쩌면 이곳도 만찮가지 일 거다. 혹여 다른 사람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겠지.
‘그럼··· 대체 어떻게 찾으란 거지?’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아니, 분명히 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있다.
‘분명 시간의 분기로 생겨난 또 다른 차원이라고 했지. 그렇다는 말은 나뉘기 전에는 같은 세상이었단 소리인데···.’
세상의 왕은 하나.
그렇다면 차원이 나뉘기 전의 왕 역시 하나.
‘그럼 나와 그 녀석이··· 원래는 같은 존재였다는 건가?’
도대체 언제 그렇게 된 건지 가늠도 되질 않는다.
적어도 인류가 기록을 남긴 이후부터는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자료는 흔적도 없으니까.
어쩌면 수만 년, 혹은 그 이전의 세상? 아니면 그 후에 새롭게 나타났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나와 그 녀석이 가진 힘의 본질은 동일하단 소리.
‘내가 가진 힘에서 나눠진 것이라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시연이나 시은이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비슷할 수도 있다.
천천히 눈이 감기고, 주변의 소리가 차단된다.
완전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들면서 신체의 무게마저 사라진 듯한 느낌.
그 고요의 바다 속에서 나는 곧 세상이 되었다.
드넓은 세상에 무수하게 퍼져있는 듯한 작은 마력들이 속속들이 느껴진다.
심지어 깊은 바다의 밑바닥에 기어다니는 이름 모를 생명체의 박동조차 느낄 수 있는 상태.
왕이 곧 세상이라 했던 게 바로 이런 말이었나 이해가 될 듯한 느낌.
반짝.
어두운 하늘에 유일하게 빛을 내는 작은 별빛럼 반짝이는 무언가.
그것은 마치 갓 태어난 쌍둥이처럼 서로를 꼭 안고 있었다.
‘그렇게 멀지는 않다.’
마음먹으면 아마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곳.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 주변에는 강력한 마력을 가진 개체가 셋.
아마도 호위로 남겨둔 존재인 것 같은데, 마력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루나 하밀이 가진 마력을 훨씬 웃도는 존재가 셋.
그리고 그 뒤에 웅크린 작고 연약한 생명체.
아니, 저걸 연약한 생명체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으려나? 분명 지금이야 약할지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될 게 너무 확연히 예상이 되는데.
“이건 놀랍네. 쌍둥이라고 생각했더니··· 트윈 헤드라니.”
“결국 이곳을 찾아냈구나. 하지만 지금까지 이곳에 도착해서도 우리를 이겼던 상대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한 번의 승리를 경험하긴 했지.
그래서 그런지, 지금 저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가 된다.
“이긴 게 아니라, 진적이 없다는 말은 결국 너희는 방어에 특화되어 있단 말이겠구나. 너희들이 왕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돌아오는 말은 없었지만 그건 결국 긍정의 의미.
힘을 아낄 생각도,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그그그-.
마력을 천천히 끌어올리자 대지가 진동을 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후우웅-.
“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눈 앞으로 펼쳐진 작은 반구형의 쉴드는 한 눈에 보기에도 일반적인 방어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졌다.
아마 방어 마법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이들이겠지.
쉽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긴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는 법이니까.
“미안하지만 나도 전력을 개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조절이 잘 안 되거든? 그러니까 원망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