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48화 (148/153)

귀환자 식당 148화.

중국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워낙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가 나타난 것도 있지만, 그 자리에 각 나라에서 참석한 유력인사들이 많았던 것이 역시나 큰 역할을 했다.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그들을 경호하기 위한 각성자들도 제법 많았지만, 아무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을 모른다지만, 그 덩치만 보더라도 거인의 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상태.

마력이 차라리 없는 일반인들은 그저 거인의 외형만 보고도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는 게 전부였지만, 마력이 있는 각성자들은 달랐다.

마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되려 그 강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보니 발도 채 떼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 와중에 머릿속에는 목소리까지 들려왔으니 정신이 반쯤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릿속으로 울려오는 목소리는 일반인들에겐 들리지 않는다.

오직 마력을 각성한 이들의 머리에만 들렸고, 그게 그들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서란다고 나설 수 있는 이가 과연 있을까.

섣불리 저기에 나갈 생각도 없지만, 미친척하고 나간다한들 자신의 역량으로는 저 거인의 앞에서 입을 떼는 건 물론이고 아마 고개도 들지 못할 게 뻔하니까.

“···어쩌지? 정말 이대로 그냥 가?”

“의사소통이 되는 몬스터라니, 본 적 있어?”

라미야의 말에 이루는 고개를 젓고선 유리코프를 바라봤다.

하지만 유리코프라고 다르지 않았다.

“나도 본 적없어, 하지만 들어본 적은 있지.”

“···진이 형이 만났다던 그 녀석.”

“그래. 그럼 지금 이게 뭘 말하는 지 알겠지? 뭐가 됐든, 이건 이진과 연관된 일이라는 거야. 우리가 나선다고 될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지금 이대로 가버리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텐데···.”

당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피하는 데만도 곳곳에서 괴성이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뒷사람들에게 밟혀죽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

라미야라고 그런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자신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지금 라미야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냉정해지고 있었다.

“나라고 지금 도망치는 게 좋겠어? 하지만 지금은 냉정해야져지.”

“···하밀같은 말투네.”

“너야말로 지금 그런 싸구려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야.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했다간 후일을 도모하지도 못해.”

그래. 냉정한 말이지만, 정답이다.

그걸 알면서도 다리가 섣불리 떨어지진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꾸욱-.

조금 전 휘둘렀던 칼이 아직 자신의 손에 있다.

‘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건가? 만약 이 자리에 형이 있었더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평소에도 문제에 봉착하면 가끔 떠올리는 질문.

이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고 따르다보면 제법 풀리는 문제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그것조차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이루야. 가자.”

“···응.”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 어쩌면 목숨을 바쳐 시간을 조금 끌어줄 수 있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것뿐이다.

그 시간마저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테고, 헛되이 목숨만 버리는 셈이 될 거다. 그것도 앞으로 귀중한 전력이 될 수있는 힘을 가진 이를.

잠시 뒤를 돌아 거인을 바라보던 이루는 마음을 다잡고서 발걸음을 뗐다.

* * *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거인의 다음 행보가 어디로 이어질까 하는 두려움을 가득한 눈으로 말이다.

북경이 초토화된지도 벌써 2개월.

거인은 다행히 그 사이에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가 무너져 내린 자금성이 마음에 든 것인지, 그저 거대한 몸체를 움직이기 귀찮아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들의 머리로는 떠올리기 힘든 다른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중국은 베이징이 초토화되면서 임시로 상하이에 정부를 구성했지만 지금은 거의 국가 기능을 상실한 상태가 됐다.

가장 큰 원인은 초반의 무리하다 싶을 정도의 각성자와 군대 투입.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와 함께 공산당을 지지하던 국민들의 대다수가 정부에 많은 비난을 쏟아냈다.

덕분에 그간 눈치를 살피던 소수족들이 하나 둘 독립 선언을 시작하면서 중국 분열은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생각이지?”

“글쎄. 마치 뭘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보고에 의하면 잠을 자지도 않고, 딱히 음식같은 것을 섭취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위성으로 24시간 감시하고 있는데도 그저 간혹 주변을 돌아다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게 전부인데,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대마도에서도 연일 회의가 이어졌지만 이렇다할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상태.

이유는 그 무엇보다 거인의 전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

중국 정부에서는 대마도 교수진의 파견을 거의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이루는 중국에 원수라도 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몰차게 그 요청들을 단번에 거절했다.

물론 그때문에 아카데미에 국제적인 비난도 쏟아지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걸 강요할 수 있는 이는 전무한 상태.

“게이트는 아직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특정 몬스터들의 등장 빈도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정 몬스터라면?”

“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사이클롭스나 오우거, 트롤같은 대형 몬스터들이 최근 점차 사라지는 추세입니다.”

안정민 차장의 말에 라미야와 이루가 시선을 교환했다.

“···뭔가 짐작가는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음.”

이루는 잠시 고민했다.

확실한 이유도 아닌데다, 이진이 없는 상황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될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최대한의 정보를 공유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실 형이 떠나기 전에 해준 이야기가 있는데···.”

이루가 운을 떼고, 라미야가 가끔 보충을 해주며 이야기가 흘러갔다.

다른 차원의 세상, 그곳을 지키는 ‘왕’의 존재에 대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군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이해하기 어렵겠지. 하지만 분명한 건, 진이형은 지금 아마 다른 세상에 있을 거라는 거야.”

“그럼 지금 저 거인이 다른 세계에서 온, 그 왕이란 존재일 확률이 높겠··· 아니.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군요.”

왕의 존재.

이게 일반인에게까지 알려지면 어떤 혼란이 찾아올까.

전 세계의 존망이 한 사람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주는 개인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들, 그 중심을 자신이라 생각하지.

자신이 그저 세상을 구성하는 작은 부품 하나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껍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거다.

“···선생님들. 이 사실은 당분간 저희만의 비밀로 하시죠.”

“하밀도 알고 있으니 미국은 알고 있다고 봐야겠지.”

누구 하나 꼬집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귀환자가 소속된 국가의 정보기관은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독일이나 러시아는 물론이고, 사우디아라비아도.

“학장님. 혹시 일본에는···.”

“물론 알리지 않았지. 난 이제 한국 사람이라고?”

“···무례한 질문이었네요. 죄송합니다.”

“됐어. 그보다 지금은 만약 저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움직일지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니까.”

정면승부는 철저하게 피한다.

메를린, 유리코프, 이루.

세 명이 중심이 되어 팀을 구성해 최대한 발을 묶는 작전.

베이징을 중심으로 삼각 구도를 이뤄 공격과 방어를 반복하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의견이 쏠렸다.

“지금으로선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라미야와 블랙은 후방 지원을 맡아주고, 하밀은 상황을 지켜보다 위험한 구역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지루한 소모전이 될 텐데? 기한도 없이 무작정 버티기만 해서는 우리쪽에서 먼저 지쳐 떨어질 지도 몰라.”

귀환자들이야 어떻게든 버틸 수있을지 몰라도, 다른 헌터들은 아니다.

경력이라고 해봐야 이제 겨우 1년 남짓된 아이들이 그나마 가장 고참인 격인데, 저런 피말리는 작전을 몇 달이나 지속하면 마력이 고갈되기도 전에 스트레스로 먼저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어. 일단 이진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게 최선이야.”

“···돌아오겠지?”

이진이 모습을 감춘지 어느새 1년하고도 2개월.

만약 저 거인이 이곳에 온 것과 비슷한 시기에 이진 역시 다른 세상에 간 거라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올지 감도 오지 않는다.

애초에 돌아올 수있긴 한건 지 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당연하지. 이진이잖아.”

“그렇네.”

지금은 그저 그렇게 믿는 수밖에.

* * *

흔히들 무모한 일을 두고,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사마귀가 달리는 마차를 막아서는 격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편이 더 쉬워보이는데.

이 넓은 지구상-아마 크기는 변하지 않았을테니까-에서 그 녀석이 숨겨둔 힘을 찾아야 한다.

과거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있는 힘.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있는 힘.

‘···시연이랑 시은이인가?’

왜 그 두 사람에게 그런 힘이 생겼는지는 알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가장 신뢰하기 때문이겠지.

예전에는 어째서 그런 힘이 리안이라는, 나랑은 하등 관계도 없는 타인에게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보자면 그때의 나는 너무 약했기 때문일 거다.

너무나도 약한 마력 탓에 능력을 조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서 그저 무작위로 힘이 흘러들어갔던 게 아닐까 추측해볼 뿐.

역시나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거인도 나랑 같을 거라 생각할 수는 없지.

그 녀석은 분명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이해도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시간이 없어.’

마음이 계속 불안해진다.

해와 달은 분명 지구와 동일하게 뜨고 지는 곳인데도 지구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곳.

도착하고 난 뒤로 아직까지 대화가 통할만한 지적인 생명체를 만나지 못한 게 제일 답답하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텐데, 도무지 감각에 잡히는 게 없었다.

지금까지 몬스터를 몇 마리나 죽였지?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한 나라의 인구수만큼은 도륙했던 것 같은데도 온통 본능대로 움직이는 생명체뿐이라니.

인류가 벌써 수백만 년 전부터 등장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상한 일이다. 아니면 몬스터들에 의해 이 세상의 인류는 이미 멸종했던가?

스읍-.

앉은 자세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력을 한껏 몸안으로 받아들였다.

대기 중의 마력이 워낙 충만해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일 틈이 없다.

혼자 움직이는 만큼 그것 하나는 장점이라고 꼽을만했다.

덕분에 시간이 날 때면 마력을 넓게 퍼트려 감각을 극대화하고 있지만, 이렇다할 반응이 잡힌 적은 좀처럼 없었다.

이러다간 정말 이 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없애야 할지도.

느껴지는 거라곤 내가 지나온 길에 쌓여있는 괴물들을 시체뿐.

그것들을 제외하고 굳이 찾아보자면 이름모를 식물들과 바닥을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들 정도일까?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면 찾기가 수월했을지도 모르는데, 어중간한 마력을 가진 것들이 너무 많아서 또 문제.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중요한 것들을 저런 이름 모를 괴물들에게 심어두진 않았을 거라는 점.

나는 그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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