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47화.
처음 게이트를 통과한 직후, 누가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지만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말이다.
그다지 오래 고민하거나 주위를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생소했으니까.
마력이란 공기와 성질이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것은 비슷하지만 특수한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퍼져나가는 걸 막지 못한다.
즉, 지구상의 모든 마력 농도는 늘 동일하다는 소리다.
묵직하게 내려앉은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의 마력 농도라니, 만약 이곳이 지구라면 각성자들이 아마 지금보다 2배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 정도다.
“···더 강한 녀석들이 살고 있단 소리겠네.”
조금 이상한 건 주변에서 느껴지는 생명체의 기척은 많은데, 이 녀석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거다.
보통 지금까지 경험해본 몬스터를 떠올리면 특이한 일이긴 하다.
몬스터들은 상대의 강함 여부를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거의 맹목적이라고 해도 부족할 정도로 달려들고 보는 것들이니까.
“언제까지 거기 숨어서 구경만 할 거냐.”
도발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했다.
왜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고 있는 건지 말이다.
언어가 같을리야 없겠지만 의사소통을 하는데는 딱히 지장이 없으니 알아듣지 못할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내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가 한 백만 년즈음 진화를 이상한 방향으로 하면 저런 모습이 되려나?
주름이 잔뜩 진 민머리의 가죽은 마치 늙은 코끼리 가죽같아 보이고, 눈은 커다랗고 팔다리는 짐승의 그것처럼 기괴했다.
주둥아리는 늑대의 그것처럼 길고 상당히 지저분했다.
거기다 겁이 많은 건지, 조심스러운 건지.
섣불리 다가오질 않는다.
케르르르륵-!
괴상한 소리를 내며 혀를 길게 내미는데, 그것이 어찌나 길고 징그러운지 절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혹여나 말이 통할까 싶었는데, 지금 모습을 봐선 어려울 것 같고.
‘가만 보자···.’
인벤토리를 열어 적당한 무기가 있나 찾았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선 대략 50여 마리.
딱히 무기를 쓸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지만 마력을 이용하는 권능은 생각보다 마력의 소모가 제법 크다.
어차피 어딘가는 사려져야 끝나는 싸움.
나는 결국 이 세상의 왕을 없애야 하고, 그 왕이란 아마도 나와 동등한 힘을 가진 상대일 거다.
티끌정도에 불과할 지라도 처음부터 마력을 낭비한다면 나중에는 그 차이가 제법 벌어질지도 모르지.
그래. 이 정도면 적당하겠다.
다양한 종류가 들어있는 인벤토리에서 적당한 무기 중에 하나를 골라 집었다.
아주 예전에 B등급 게이트에서 우연히 얻은 것인데, 검신이 길고 가벼워서 이렇게 ‘여럿’을 한 번에 상대하기에 적당하다.
“내가 바쁘거든. 그러니까 얼른 끝내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형이 자칫 인간을 닮았으면 도륙하기가 조금은 껄끄러웠을 텐데, 이것들은 적어도 그런 죄책감을 갖게 하지는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말도 안 통한다니, 금상첨화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나를 포함한 5명이 총 5개의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 말은 내가 살던 곳으로도 누군가는 갔다는 이야기.
‘···그 거인만 아니면 좋겠는데.’
대기실에서 봤던 그 어마무시한 크기의 괴물.
느껴지는 마력만 떠올려도 몸에 전율이 들 정도로 강력했었지.
그런 괴물은 내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다. 물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강해보이는 녀석이었다.
아마 귀환자 6인이 완벽한 작전을 짜서 덤비면 잠시 발을 묶을 정도는 되려나? 그걸 쓰러트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이 살던 곳으론 가지 못한다 했으니 그 거인이 내가 살던 곳으로 갔을 확률은 25%.
꾸욱-.
칼자루를 쥐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미래를 바꿀 힘과 과거를 바로잡을 힘···.’
분명 그 두 가지를 찾아 없애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 무슨 수로 찾지?
···일단 당장 눈 앞에 있는 것부터 치워야 생각의 정리를 좀 할 수 있겠네.
* * *
고작 10여분.
게이트에서 저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지 이제 겨우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뿐이다.
그런데 그 잠깐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600년을 넘게 중국의 심장에 자리하고 있던 역사의 한 부분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폐허.
별 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그 한 마디로 모든 게 설명되는 수준의 상태가 지금의 자금성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걸 슬퍼하지 못했다.
지금은 건물이 무너진 걸 슬퍼하기 보다는 달아다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너희들은 라미야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마. 알겠지?”
“···네!”
지금이야 라미야의 능력을 이용해 자금성 밖으로 이동했지만, 저 거대한 생명체는 이곳에서도 눈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얼굴 한 가운데 커다랗게 박힌 눈은 마치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는 듯한 소름끼치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로도 거인의 시야는 굉장히 넓어보였다.
후와아아앙-.
그 순간, 머리 위로 전투기 십여대가 날아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언니! 중국 공군이 출동했나봐요!”
그 잠깐 사이에 이 정도 대응이라니, 평소라면 칭찬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라미야는 비행기들이 머리 위를 지나는 걸 보고선 욕지거리를 내 뱉었다.
“이런 병신들이 진짜···!”
아마도 마력탄 무기를 장착했겠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사용해야 하는 법이다.
이거야 말로 코끼리를 죽을 때까지 바늘로 찔러보겠다는 것이랑 별 차이가 없는 짓이다.
아마 가죽에 제대로 박히지도 않겠지만, 설혹 바늘이 그 두꺼운 가죽을 뚫고 박힌다 한들 코끼리가 그걸 보고만 있을까?
드디어 박혔다면서 바늘을 들고서 히죽거리는 인간을 어찌할까? 굳이 그 육중한 무게를 이용해 자근자근 밟을 필요도 없을거다.
귀찮다며 가볍게 코를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이미 생과 사를 오가는 상태가 될 테니까.
그리고 화가 난 코끼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한 마디로 지금 저건 의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쩌지?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겠지?”
“당연하지. 그보다 저것들 먼저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괜히 벌집을 쑤셔봐야 좋은 것도 없으니까.”
라미야의 말에 이루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지나쳐간 전투기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정확하게는 어느새 꺼내어 쥐고 있는 검을 휘두른 것이지만, 검은 그 궤적을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잠시 후, 날개를 잃은 전투기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추락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야, 그렇다고···.”
“그럼? 친절하게 무전으로 말해줘?”
“그건 아니지만···.”
“괜찮아. 날개만 잘랐으니까 탈출할 거야.”
이루의 말대로 떨어지는 나뭇잎같던 전투기 근처에서 낙하산 여러개가 펼쳐지는 게 보였다.
하필 그 근처에 거인이 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거기까지야 어찌해줄 수 없는 부분이고.
“서,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안정민은 지금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이진을 마중하기 위해 왔건만 기다리는 이진은 오지도 않고 난데없이 초대형 거인이 등장해 중국의 역사를 눈 앞에서 부시고 있으니.
“일단 한국으로 가야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괜찮을 겁니다. 지금은 다른 것들보단 여기 세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는 게 우선이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에서 온 것은 여기 일행뿐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재형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물론 함께 왔었다고 해도 라미야가 굳이 그를 챙겼을지는 의문이지만.
“우선 이 차단막을 벗어나는 것부터. ···뭐지? 점점 넓어지고 있어.”
“거기서 더 넓어지고 있다고? 미친··· 도대체 마력이 얼마나 된다는 소리야. ···진짜 진이 형보다 마력이 더 높은 거 아냐?”
상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세계 최강이란 수식어가 너무 당연한 귀환자 여섯 사람의 마력을 합친 것보다 더 높은 마력의 소유자가 바로 이진이다.
이 부분은 굳이 밝힐 이유도 없긴 하지만 은근 그들의 자존심에도 영향이 있는 부분이라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지만 당사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니 지금 이루는 그 여섯 사람이 힘을 합쳐도 저 거인을 어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셈이다.
물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유리코프와 라미야도 이미 직감했을 내용.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설령 정말 그 말이 맞다고 하더라도,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이런 일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게 바로 헌터 연합 아닌가.
한 국가의 힘으로 감당할 수없는 사태에 힘을 합쳐 타개하자는 의미를 담은 범국가적인 기관.
“하밀 녀석도 이 상황을 알고 있겠지?”
“네, 지금 온라인에서도 난리에요. ···사람들 반응도 엄청나고.”
평소에는 하등 쓸모없는 SNS라고 생각했지만 이럴 땐 도움이 되네.
라미야는 피식 웃고선 모두를 재촉했다.
“자, 얼른 빠져나가자. 일단 여기서 벗어난 다음에···.”
혹여나 마력 간섭이 일어날까 싶어 차단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거기다 차단막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공간 이동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1km는 더 이동해야 한다.
세 사람뿐이었다면 눈 깜짝할 사이면 되겠지만, 시연이나 시은이, 나리는 아직 그 정도로 움직이지 못한다.
심지어 안정민은 각성자도 아니니 이동 속도가 그리 빠르진 못했다.
외곽으로 나가려는 이들이 워낙에 많은 탓에 차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걷는 것조차도 여의치가 않았다.
“빌어먹을···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렇지 않아도 많은 인구가 사는 도시는 낮에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사람들까지 더해진다.
거기다 오늘은 커다란 행사가 있어서 구경을 온 이들도 부지기수.
그 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 나오니 도로는 자연히 마비될 수밖에.
크우워어어어!
일대의 공기가 진동을 할 정도의 포효.
사람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본능적인 공포를 샘솟게 하는 보스 몬스터들 특유의 기술, 피어.
그 뒤로도 몇 번이고 이어진 포효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울음을 터트리는 사람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앞에 비켜! 비키라고!”
왕복 8차선이 모두 빠져나가는 차들로 가득찬 상황에서 거꾸로 들어오는 이들.
중국의 각성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잠시 보던 라미야가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겨우 저정도 각성자를 보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라미야의 말은 누군가를 향한 질문이 아니었다.
“라미야 선생님, 중국은 각성자 평균 마력 수치가 한국의 1/3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나마 아카데미에 온 이들의 마력이니 그게 아니라면 더 낮을 겁니다.”
“고작 1/3 이라고?”
라미야 역시 아카데미의 교수.
딱히 수업을 하면서 인종이나 국가별로 차이를 두진 않았기에 몰랐지만, 아시아인 중에서도 유독 마력 수치가 약한 이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게 중국인들이었던 모양이다.
공군이 알 수없는 이유(?)로 추락하자 이번에는 지상군을 보낸 모양인데, 저들이 가봐야 그저 개죽음이 될뿐이다.
애초에 나오자 마자 앞뒤 잴 것도 없이 무작정 건물부터 부시고 시작하는 몬스터에게 대화가 통할리도 없으니 지금은 피하는 것이 상책인 셈.
저런 걸 상대하기 위해서는 작전과 대책 마련이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다시 몸을 돌리고 차단막 밖을 향해 움직이는데.
[내 말을 알아듣는 인간이 있다면, 나서라.]
거인이 내지르던 포효가 언어로 바뀌었다.
그리고 라미야와 이루, 유리코프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