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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46화 (146/153)

귀환자 식당 146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당연히 안 됩니다!”

“저우비장 총리. 만약 우려한 일이 발생하면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거요.”

“유리코프 선생, 지금 여기 와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압니까? 무려 40개가 넘는 나라에서 총리 이상의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왔습니다. 장, 차관급까지 따지면 수백이 넘는단 말입니다.”

“그러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더욱···.”

“만약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요? 유리코프 선생의 말만 믿고 그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이 창피를 당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집니까! 애초에 그 말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도 없질 않습니까.”

후우.

유리코프와 안정민이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답답하잖아.’

아욕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거다.

그저 지금 당장 권력자들의 눈 앞에서 중국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일에만 온 정신이 쏠려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중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는 어쩌실 겁니까. 미리 예고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 국제적인 비난을 면하기 힘들겁니다.”

“지금 당국을 협박하는거요? 아무리 그대가 귀환자라고 하지만 우리 중국을 욕보이는 언행은 용납할 수 없소!”

‘이건··· 틀렸다.’

안정민은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오직 중국이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것을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이 멍청한 자들은 무슨 짓이든 할 거라는 걸.

그게 설령 허세뿐인 거짓모습이라고 해도 말이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눈과 귀를 막아버린 상대와 대화할 방법따윈 알지 못한다.

이렇게 된 이상 한국에서 온 이들, 혹은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이들만이라도 우선 대피시켜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저기요. 증거가 있냐고 했죠?”

“시, 시연양. 뭘 하시려고요.”

뭘 하려는 건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하지만 위험하다.

다른 곳도 아닌 중국.

예지 능력자가 제 발로 자신들 앞 마당에 찾아와줬는데, 알고도 그걸 뻔히 구경만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이들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명확하다.

‘시연 양, 이러지 않기로 약속 하셨잖아요.’

이진과 함께 시연이를 옆에서 지켜본 게 벌써 2년이다.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어느 정도까지 선한 마음을 가졌는지 모를리가 없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 스스로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웃으며 기꺼이 감내할 그런 여자.

그래서 안정민은 오기 전에 신신당부를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스로의 능력을 드러내지 말 것.

그녀도 굳게 약속했고, 믿었다.

물론 상대가 상상이상의 멍청이라는 걸 눈 앞에서 확인하긴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 사실을 알게 둬서는 안 된다.

지금 이 곳에 이진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가 없는 상태에서 눈이 뒤집힌 중국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이루나 유리코프, 라미야도 두고 볼 사람들은 아니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그게 안정민 과장의 생각이었다.

‘시연 양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중국은 생각보다 더 정신나간 짓을 할 수도 있는 곳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안정민은 필사적으로 작게 고개를 흔들며 그렇게 눈빛을 보냈고, 시연이는 굉장히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괜찮아요. 걱정하시는 일은 하지 않을게요.’

혹시 다른 생각이라도 있는 건가?

안정민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붙잡고 있던 시연이의 옷소매를 살짝 풀었고, 시연은 다시금 저우비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가씨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안녕하세요. 전 이진 삼촌의 조카인 이시연이라고 해요.”

굳이 삼촌의 이름을 들먹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기를 그냥 유리코프의 비서쯤으로 보지 않을까 해서 일부러 이진이라는 이름을 먼저 입에 올렸다.

“물론 알고 있소. 이진 선생이 돌아오는데 조카 두 분이 오지 않을리가 없지. 자리는 편안하시오? 일부러 좋은 자리로 배정했는데.”

“배려에 감사드려요.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사람들의 대피가 먼저에요.”

“허어···.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시오.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지금 이곳에 있는 각성자가 몇이나 되는 줄 아시오? 중국 최고 헌터 부대는 물론이고, 초대를 받고 온 분들의 개인 경호원의 숫자도 엄청나지. 심지어 이곳에는 귀환자 세 분도 계시질 않소. 걱정할 것은 전혀 없단 말이오.”

그 말을 들은 안정민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이 작자가 지금 그걸 믿고 이렇게 버티는 거였어?’

자신들의 말을 아예 믿지 않은 게 아니었다.

자신들이 준비한 패만이었다면 불안했을지도 모르지만, 귀환자가 세 명이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중인 거다.

설마하니 처음부터 이런 걸 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만약 세 사람이 만약의 사태에 나서지 않는다면 비난의 화살은 그대로 귀환자들에게 향하게 만들거다.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는 거야 말로 중국이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재수없지만, 저 말은 맞다.’

지금 게이트에서 나오는 게 이진이 아니라 그 어떤 존재라고해도 솔직히 저 세 사람이 있으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긴 힘들지.

최근에야 제법 많아진 아카데미 출신들의 활약으로 나설 필요가 거의 없긴 하지만, 아카데미가 세워지기 전에는 꽤나 바쁘게 다녔었다.

그때의 찍힌 영상들은 아직도 ‘전설의 귀환’이나 ‘헌터의 시조’ 라는 이름 따위를 붙여서는 인터넷을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심지어 조회수가 아직도 꾸준히 오르는 중이다.

‘일단 돌아가죠. 설득으로 해결하긴 힘들겠습니다.’

유리코프와 이시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온 안정민은 우선 빠르게 자리로 돌아갔다.

“언니, 어떻게 됐어요?”

나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가장 먼저 물었지만, 시연이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그럼··· 어떡해요? 우리라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서운데.”

“하하! 걱정마라. 너희 세 사람은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래.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은이 옷깃이라도 다치면 아마 도진이 녀석이 날 잡아먹으려고 들 텐데. 그게 무서워서라도 잘 보호해줘야지.”

하지만 나리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유리코프나 이루의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나리는 귀환자라는 존재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아직 잘 몰라서다.

각성을 했지만 아직 특별한 능력을 찾지 못한 것도 있고, 신체 능력 자체도 일반인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 건 아니라 실감을 하지 못하는 거다.

“괜찮아. 언니들 있잖아.”

“···응.”

그래도 시은이가 이젠 언니라고 나리를 다독거리는 사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우우우웅—.

게이트에서 심해深海 밑바닥에서 울리는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같은 것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잠깐, 이건 뭔가 이상한데?”

라미야가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꼈고, 이루가 답을 하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루, 너도 느껴져?”

시연이는 지금 이 상황과 대화가 낯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게 완전히 같지는 않다.

“···당연하지. 아무리 마력에 둔감한 나라도 이 정도도 못 느낄까봐?”

라미야가 자신의 양팔을 끌을 안듯이 감싸고 작게 몸을 떨었다.

당연히 추워서는 아니다.

“···이렇게 소름끼치도록 어두운 느낌의 마력은 처음이야.”

“왜, 전에 비슷한 건 한 번 있었잖아.”

유리코프는 어느새 입고 왔던 정장 자킷을 벗어던지고, 양 손에 묵직한 건틀렛을 착용했다.

거무튀튀한 강철로 만든 것 같으면서도 은은한 푸른 빛이 도는 그런 신비한 느낌의 건틀렛.

“오랜만에 보네. 아티.”

“···라미야. 이름 멋대로 줄여서 부르지 말랬지. 이건 아다만티움 피스트라고.”

“너무 길어. 그리고 아다만티움이라는 것도 그냥 네 멋대로 가져가 붙인 이름이잖아.”

“아냐! 이 색을 딱 보면 몰라? 이건 분명 아다만티움이라고.”

갑자기 난데없이 벌어진 유치한 말싸움에 나리는 겁먹는 것도 잊고서 잠시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두 사람이 그걸 노리고 한 연극은 아니었겠지만.

“···뭐, 됐나.”

“근데 다른 사람들은 왜 아무런 반응이 없어?”

두 사람이 제법 큰 소리로 싸웠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조금 모으긴 했지만,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넋놓고 구경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저 똑같았다.

“뭐야. 이것들. 왜 멍하게 있는 건데?”

“···모르는 거야.”

“모르다니, 뭘? ···설마, 이 소름끼치는 마력을 못 느낀다고?”

라미야는 이루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대답은 시연이가 대신 해줬다.

“죄송하지만 저도 뭐가 뭔지···. 마력이 분명히 느껴지긴 하지만 계속 게이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잖아요.”

“그게 아니라···. 아무튼, 너흰 피해있···. 아씨, 우리 옆이 제일 안전한가?”

“그냥 한국으로 보내면 어때? 대마도로 보내면 도진이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아, 그럴까?”

세 사람의 의견을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안정민 역시 그 의견에 찬성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시연이도 가기는 싫지만 동생들을 생각해서인지 거부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자, 그럼 보낸다?”

“···네.”

정말 이진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다름 아닌 귀환자 세 사람이다.

자신들의 삼촌이기 이 전에, 목숨을 걸고 함께 세상을 구했던 사람들이 이진의 마력을 못 알아볼 리는 없겠지.

여기서 괜한 투정을 부려봐야 그저 철없는 어린 아이의 억지쓰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본인들 역시 잘 안다.

그래서 미련이 남지만 담담하게 이동 준비를 했는데.

“···뭐해? 안 보내줄 거야?”

“···안 돼.”

“안 되긴 뭐가··· 뭐, 공간 이동이 안 된다고?”

“대마도의 공간을 불러올 수가 없어. 꼭 무슨 벽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럼 그냥 서울로···.”

“그쪽이 문제가 아냐. 여기 게이트를 중심으로 대략 반경 10km··· 그 밖으로는 공간이 접히질 않아.”

10km 라도 멀리 보낼까 싶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겨우 그 정도 거리라면 차라리 지금은 이곳에 있는 편이 더 안전하니까.

‘···대체 언제부터 마력 차단막이 생겼던 거지? 아무리 신경을 쓰고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걸 놓칠 정도로 정신을 놓고 있진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평소에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 정도를 놓칠 자신이 아니라는 건 단언할 수 있다.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

‘나보다 마력 수치가 월등히 높은 자가 펼쳤다는 이야긴가? 그것도 내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말이 되나?

신의 재능을 물려받은 각성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해도 마력을 쌓는데는 필요한 시간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각성자가 나오기 시작한지 이제 겨우 2년도 되지 않은 사이에 자신을 월등하게 뛰어넘는 사람이 새롭게 나타났을리는 없다.

설혹 수십 억 분의 일도 되지 않을 확률을 뚫고 그런 자가 나타났다고해도, 이런 짓을 할 필요는 없다.

마력 차단막은 사물의 물리적인 이동까지 막지는 못하니 뚫고 지나가면 그만이니까.

그렇다고 이 안에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 애써 힘들게 만들 필요가 전혀없는 셈이다.

굳이 이유를 찾으라면 아마도 하나.

외부에서 이 안의 마력을 느끼지 못하도록 할 목적.

이런 짓을 할 필요가 있는 존재라면 역시 하나뿐이겠지.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손.

“···하, 하하···.”

모습을 드러낸 건 겨우 왼손으로 추정되는 손바닥을 보며 이루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손바닥만으로도 전체적인 크기를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으니까.

“저런 크기를 가진 몬스터가··· 있을 수가 있는 거야?”

뒤쪽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비명이 난무하고 있었다.

태화문이 병목현상으로 막히게 될 즈음, 드디어 얼굴이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외눈박이 몬스터.

물론 그 크기가 일반적인 사이클롭스에 비할바가 아니긴 하지만, 외형적인 특징은 분명 사이클롭스였다.

꽈지지직-.

바닥을 받치는데 걸리적 거렸는지, 태화전을 통째로 뜯어낸 오른 손이 하늘을 향해 뻗어지더니, 이내 거대한 중국식 궁궐 한 채가 허공을 날았다.

“···이거, 우리끼리 감당이 될까?”

“하는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싫지만 갑자기 다른 녀석들 무지하게 보고 싶어지네. ···하밀이랑 메를린도 곧 오겠지? 아, 블랙은 무조건 와야하는데···.”

온 몸의 신경세포가 날뛰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아냐, 지금은 우선 피하자. 이건 우리끼리 어찌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닌 거 같아. 게다가 지금은 아이들을 지키는 게 우선이니까.”

어떻게든 싸우자면 싸울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희생이 따를거고, 지금 여기서 누군가를 잃었다간 정말 뒤를 도모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진이 올때까지 버티기라도 하려면, 지금은 피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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