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44화 (144/153)

귀환자 식당 144화.

“저··· 여기까기가 전부에요.”

시연의 말이 끝나고, 라미야는 이루와 유리코프를 쳐다봤다.

혼자 듣고 판단을 내리기에는 사안의 심각성이 너무 높다고 생각해서 곧장 두 사람을 찾아온 건 확실히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라미야,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말 안해도 알지? 각 나라의 대통령이나 왕족까지 모여있는데, 만약 대피시켰다가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면··· 진짜 난리난다고.”

“물론 나도 잘 알지. 내 친적인 나예프 왕세자도 저기 와 있거든? 그렇다고 이런 걸 들었는데도 그냥 넘길 수는 없잖아.”

이루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선.

“라미야, 여기가 어딘지를 잊은 건 아니지?”

“···그건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정보를 듣고 무시하진 않을 거 아냐. 특히나 네 말처럼 힘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아무 일도 없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긴 힘들 걸? 이건 그냥 너 하나뿐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피해가 갈지도 몰라.”

“설마. 그쪽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무슨 수로.”

이번엔 꽤 여러 사람이 라미야를 향해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공주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서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구나 하는 안쓰러움을 가득 담아.

“언니, 중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심지어 난 어떻게 나올지 이미 머릿속으로 영상이 펼쳐지는데?”

“그건 이루 말이 맞을 거다. 하지만 네 말처럼 이런 걸 직접 들었는데도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중국의 엄청난 뻔뻔함과 막무가내식 외교는 인접한 국가일 수록 너무나 뼈저리게 잘 안다.

걔중에서도 특히나 한국과 일본이라면 더욱.

“거기다 제일 큰 문제는 이번 일로 인해 시연이의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는 거야.”

“으음···. 그건 진짜 확실히 큰 문제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리안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왜 나타나지 않냐는 이야기가 조금씩 들려오는 상황이라.”

“당장이야 시연이가 예지 능력을 가진 각성자라는 걸 숨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상대는 중국이야. 한 번 의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파고 들 걸? 결국은 얼마 가지 않아서 알아낼 확률이 높아.”

만약 이진이 돌아온다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게 아닐 경우에 발생한다.

예지 능력이란 잘만 이용하면 세계 정세를 뒤집을 수도 있는 귀한 능력.

분명 알려지면 탐내는 곳이 한 두곳이 아니게 될 거다.

회유와 설득, 심지어 강제력을 동원하려는 곳도 나타날지 모른다.

리안 네필스는 그래서 차라리 반대의 선택을 했었다.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오픈해 스스로를 세계적 유명인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어느 정도의 금액만 지불하면 자신이 본 미래를 아낌없이 공유하면서 오히려 자기 능력을 세계적인 공공재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적중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큰 흐름만은 비슷하게 흘러갔기 때문에 예지가 빗나간다고 해도 크게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적었다.

그럼에도 늘상 각성자로 구성된 경호 인력이 애워싸고 다녔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지만 말이다.

“만약 진이 여기 있었으면 어땠을까?”

의미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결정을 하기 전에 한 번쯤 더 신중을 기해야 할 상황이라면 적절한 질문.

이루와 라미야, 유리코프는 고개를 저었다.

“진이라면 허락할리가 없지.”

“어차피 형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 아냐? 게이트에서 뭐가 나오든 상관없을 텐데.”

“진이 아니라면 여기 이렇게 많은 유력 인사들이 모일 이유도 없지. 게이트에서 나오는 게 진이라 다들 모인 건데.”

“뭐야, 그럼. 지금 이 난리가 전부 다 진때문이네?”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은 이진이었다.

“우리 삼촌이라면 분명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고 하셨을 거예요.”

“언니 말이 맞아요! 삼촌이라면 분명히 그랬을거야.”

두 자매는 분명히 그렇게 믿었다.

그간 옆에서 봐온 이진은 늘 쌀쌀맞게 구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엔 그들을 위해 나서곤 했으니까.

“그래. 두 사람 의견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 지는 결정된 거네.”

* * *

대한민국 대마도 헌터 아카데미.

이름도 거창한 그 곳의 영광스러운 첫 졸업생들의 활약은 과연 대단했다.

400명이 넘는 인원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간 직후,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몬스터에게 입는 피해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게이트 초기 진압 시간이 평균 5시간에서 무려 1시간 까지로 줄어들면서 인명, 재산 피해는 기존의 10% 이내로 줄어들었다.

그러니 몇 개월의 짧은 교육 과정을 마친 이들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해서 돌아온 이들을 환대하며 열광할 수밖에.

하지만 모든 나라가 다들 기쁨의 눈물만 흘린 건 아니었다. 황당하게 상실의 아픔을 겪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그리스다.

“이번에 테린 도로시의 경호 대상자인 이시은 양도 행사에 참석한다고 하니 어떻게든 접촉을 해서 데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괜찮을까요? 상대는 이진의 조카입니다. 거기다 특히나 예뻐하는 둘째라고 하던데···.”

“하지만 테린 도로시는 무려 차석입니다. 아카데미 졸업 성적이 바닥을 기는 졸업생들도 난다긴다 하는데, 졸업 성적이 차석인 그녀를 놓치면 그리스는 그야말로 보물을 눈 앞에서 빼앗기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테린은 졸업하자마자 단호하게 고국으로 귀환을 거절했다.

그 이유가 이진의 조카를 경호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모른다.

아카데미 1기 졸업생들에 대한 영입 경쟁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마도 안에서도 나라를 대표해 각국의 각성자들을 서포트해주는 관리자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물밑 작업을 많이 하긴 했지만, 대놓고 영입을 시도하진 못했다.

다른 국가의 각성자에게 졸업전 영입을 시도한 사실이 밝혀지면 이유를 불문하고, 그 나라의 관리자는 대마도에서 추방하겠다는 이루의 엄포가 있었으니까.

당연히 졸업을 하자마자 가장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은 건 졸업 성적 상위 5%이내의 각성자들.

물론 처음부터 이들의 몸값이 천문학적으로 올랐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그래봐야 겨우 몇 달 훈련한 것뿐인데’, 그러니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서 얼마나 강하겠냐. 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졸업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채 3일도 되지 않아 그들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겨우’ 몇 달을 훈련한 게 아니라, ‘무려 몇 달이나’ 훈련을 받은 게 바로 아카데미 졸업생들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본격적인 ‘아카데미 졸업생 영입 대란’이 펼쳐졌다. 실로 입에 담기도 힘든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갔고, 미국은 그 와중에 가장 많은 졸업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헌터들이 소속된 국가에 보상금까지 지불하며 최대한 많은 인원을 확보했지만, 졸업성적 최상위 5인은 미국도 영입에 모두 실패했다.

아카데미 1기의 수석 졸업생은 같은 동기들 사이에서도 ‘괴물’이라고 불리던 네스티라는 아이였다.

자세한 신상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라미야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공주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항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단 몇 개월 만에 초등학생 정도였던 아이가 고등학생으로 자랐다는 말까지 들렸다.

얼마나 단 시일에 성장했기에 그런 말까지 들렸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라미야 공주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영입 대상에서 논외가 됐다.

세계 최대 산유국의 왕자를 돈으로 유혹할 수 있는 나라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내 차석인 테린 도로시에게 눈이 돌아갔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나라는 그녀의 영입 시도도 하지 않은 채 포기했다.

그 힘든 훈련을 마치고 그녀가 선택한 길은 일개 평범한(?) 여대생의 경호 임무.

모두가 그 결정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대상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 초대 학장이자 귀환자이기도 한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헌터, 이진의 조카.

얼마나 더 성장하고 싶어서 그런 걸까.

처음에는 대부분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진의 조카를 밀착 경호하다보면 자연히 이진과의 접점도 많아질 테고, 지나가는 말로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닐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 이진은 없다.

지난 번처럼 다시 돌아올 거란 말이 거의 진리처럼 굳어지긴 했지만, 사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대체 그 아이가 뭐라고···! 자기가 태어난 나라보다 중요하다는 겁니까?! 여기 있는 친구, 가족들보다 그 아이 하나가 더 중요하다니!”

“모르셨습니까? 가족들은 이미 그녀가 졸업하기도 전에 모두 한국으로 갔습니다. 사전에 우리가 그녀의 가족들부터 챙겼어야 하는데···.”

“···그, 친구들은 있을 것 아닙니까!”

“조금 독선적인 성격때문에 학창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는 거의 없는 모양입니다. 그마저도 지금은 많이 괜찮아진 것 같지만···. 그보다 관리자의 보고에 따르면 아카데미 내에서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은데, 황당한 건 함께 한국에 남기로 한 그 남자 친구도 상위 5인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상위 5인에 남자중에서 네스티를 제외하면···. 설마, 그 남자친구가 네이트 그리먼 이란 말입니까?!”

“네. 네이트 그리먼은 지금 대마도 아카데미에서 서도진 교수의 조교로 일하는 중이죠. 졸업 당시에도 미국에서 자신을 놔줄리 없다는 걸 알고, 테린과 함께 한국에 남기 위해 선수를 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아카데미에 남겠다고 하면 아무리 미국이라도 어쩔 수 없었을 테니까요.”

생각할 수록 아쉬웠다.

“테린 도로시만 데리고 오면 네이트 그리먼까지 덤으로 얻게 될 수도 있단 이야기군요.”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테린과 접촉부터 시도해보죠. 그녀의 마음을 돌릴만한 무언가가 분명 있을겁니다.”

“사실, 이건 확인된 정보는 아닙니다만···.”

“뭡니까?”

그리스 게이트 관리국 최고 간부 회의실.

브리핑을 하던 남자는 흐릿한 사진 한 장을 화면에 띄웠다.

“아주 어렵게 입수한 아카데미 내부의 화면 자료입니다.”

“오-! 아카데미 내부 사진을 어떻게···!”

“선명하진 않지만··· 여기 보시면 테린 도로시의 오른 팔이 뭔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아 보실 수 있을겁니다.”

“잠깐, 저게 언제 사진이지?”

줄곧 회의를 지켜보던 게이트 관리국장이 입을 열었다.

“화면 자료는 작년 2월로 예상되며, 시기상 아마도 아카데미 1기 생들의 첫 게이트 실습 직후로 보여집니다.”

“···저거, 지금 팔이 잘린 건가?”

“그럴리가요. 지금은 그렇게 멀쩡한데.”

“불가능하진 않지. 아카데미에는 귀환자 힐러인 블랙 선생도 있으니까. 잘려나간 팔만 있다면 접합 정도야···.”

브리핑 담당자는 잠시 기다렸다.

관리국장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니까.

“···그걸 보여준 이유는 다른 의심 정황이 있어서겠지?”

“네. 그렇지 않았다면 이 화면 자료를 굳이 비싼 돈 들여 구해올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뜸은 그쯤하면 됐으니 이제 속 시원하게 말해보지. 자네가 생각하는 게 뭔지.”

브리핑 담당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테린 도로시. 22세. 각성 능력은 신체 강화 계열, 그 중에서도 대단위 전투에서 특히나 강점을 나타내는 스피드 강화 타입입니다. 어려서부터 펜싱을 배워 빠른 검술이 특기로 그녀의 찌르기는 동기생들 중에서도 한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막아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프로필 낭독이었지만, 아무도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분명 필요하니까 이야기를 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오른 팔을 잃었을 때 그녀는 차리리 죽는 게 나았다고 생각했었을 겁니다. 만약 오른 팔을 되찾지 못했다면 정말로 실행에 옮겼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은 그녀와 함께 같은 조에 속해있던 헌터에게 확인을 마친 상태입니다.”

“···아카데미 내부 조 편성 정보까지 알아냈단 말인가?”

“어렵사리 겨우 한 명이 전부였지만 말입니다.”

“좋아. 그 부분은 넘어가지.”

아카데미에 이 일이 알려지면 쉬이 넘어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

이제는 ‘어떻게’ 알아냈느냐가 아니라, ‘왜’ 그걸 알아내야 했는지가 중요해진 시점이다.

“테린 도로시는 아마도 그날 실습에서 불의의 사고로 오른 팔을 팔꿈치 아래부터 절단 당했습니다. 그리고 잘려나간 그 팔은 결국 찾지 못했죠.”

“···이해가 안 되는군. 그럼 지금 그녀의 팔이 의수라는 이야긴가?”

저렇게 정교한 의수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가 나타났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렇다면 쓸데없이 서론이 너무 장황했는데.

“아닙니다. 그녀의 팔은 의수가 아니라, 완벽하게 ‘재생’된 겁니다.”

“···블랙 선생이 그 정도의 능력자였나?”

“일반적으로 힐러의 능력은 인간이 가진 자가 치유력을 끌어올리는 게 전부입니다. 그걸 얼마나 더 강하게, 빠르게 하느냐가 곧 힐러의 능력인 거죠. 하지만 사라진 신체 부위의 재생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잘린 팔은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돌아오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리스 게이트 관리국 소속 간부들이 잠시 서로를 돌아봤다.

혹시나 지금 자기가 생각하는 걸 남도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처럼.

혼자 미친 놈이 되긴 싫었으니까.

“그럼 자네는 지금 그런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게 얼마나 황당한 말인지 알고는 있겠지?”

“물론입니다. ‘회복’이 아니라 ‘재생’··· 이건 그야말로 신의 영역이니까요. 정말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어쩌면 영생도 가능한 능력일 겁니다.”

알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확신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리고 저는 아마 테린 도로시가 한국에 남은 이유는 분명 그것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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