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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43화 (143/153)

귀환자 식당 143화.

“이미 얽혀버린 차원은 하나가 남을 때까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시간이 지체되면 될 수록 그 속도는 점차 가속화되지. 그 전에 각 차원을 유지하는 에너지의 근원되는 것을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

“시간의 얽힘이라는 것을 풀 방법은?”

“···안됐지만 시간의 얽힘을 풀 수 있는 방법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잠깐의 망설임은 연민이었던 건가.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럴리가. 모든 문제에는 답이 있는 법이야. 아직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을뿐이지.”

그는 그렇게 묻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그렇게 느껴졌다.

“오만하구나, 인간이여. 인간은 늘 그랬지, 아니··· 네가 늘 그랬다고 해야하는 건가.”

“···그건 무슨 의미지?”

“왕이란 곧 세상의 모든 것과 같은 존재. 그들은 죽되, 죽는 것이 아니란 의미다. 사건의 지평선 경계에서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어 몇번이고 소멸과 부활을 반복하지. 그리고 너 역시 그래왔고.”

“···내가 여기 온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물론 ‘지금’의 너는 이곳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수백, 수천 번을 이곳에 찾아와 늘 같은 질문을 했을 거다. 그리고 늘 같은 대답을 들었을 테고.”

“···정말 다른 방법은 없나?”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연민의 눈빛을 보내온다.

“시간의 얽힘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일어나는 ‘섭리’일 뿐. 처음부터 ‘답’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태초에 다차원의 공간이 생겨날 때부터 수없이 반복되는 그런 당연한 이치다.”

“결국··· 하나가 남을 때까지 싸우라는 말인가.”

이곳에 모인 5명의 왕.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그들과 전투를 해야 한다?

‘차원의 섭리’라는 거창한 이름치곤 너무나도 저급한 방법이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런 방식이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드나? 하지만 이것 역시 당연한 섭리다. 차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더욱 강력한 차원을 남겨야 하는 것이야 말로 자연과 우주의 섭리. 인간들 역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나.”

강한 유전자, 우월한 유전자.

인간 역시 그렇게 살아남았고, 그렇게 문명을 이룩했다.

인간이 두 발로 걷고,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기 시작했을 까마득한 오래 전부터.

그래, 그의 말은 모두 맞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더욱 강한 차원.

“차원의 힘이 강하다는 것은 곧 차원의 왕이 얼마나 강하냐로 귀결될 뿐이지. 그 단순한 이치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내가 진다면··· 내가 있던 세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돌아가겠지. 그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될뿐이다. 고통도, 슬픔도 없겠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니까.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것···.”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분명 내 앞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 누군가를 향해.

“···너는 사라진 차원의 왕이군.”

“맞지만, 틀렸다. 나는 패배한 모든 왕들의 감정이 만들어낸 존재, 나는 곧 너이기도 하며 다른 왕들이기도 하고, 동시에 지금은 이미 무無로 돌아간 존재. 이곳에 존재함과 동시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사실 논리적으로, 물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차라리 신주희 박사가 있었다면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나로선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섭리’에 대한 강의는 그저 복잡하고 난해한 단어의 나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최선을 다해서.

“이기면 그만이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사실 전투는 이미 시간의 얽힘이 발생한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니까.”

“···뭐?”

“말하지 않았나? 왕의 힘은 혼자 오롯이 가질 수도,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도 있다고. 네가 있는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곧 너의 힘. 얽힘이 일어난 뒤부터 전투는 이미 시작된 것이란 소리다. 무슨 말인지는 알 텐데?”

“그럼 굳이 왜 우릴 이곳으로 부른 거지?”

어차피 시작된 일이었다면 굳이 번거롭게 이곳으로 불러들였어야 할 필요가 있나?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말처럼 그저 흘러가게 두면 되었을 일을.

한데, 이 녀석··· 웃고 있다.

“왜 웃지?”

이 상황에서 웃을 포인트가 대체 어디 있다고.

“조금 전, 네가 나에게 물었지. 내가 이곳의 왕이냐고. 정확히 말하면 이곳의 왕은 너희 모두다. 나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너희 자신의 과거이기도 하니까.”

그게 웃은 이유와 무슨 상관인가 싶은 찰나.

말이 이어졌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내가 질문은 그만하라고 했던 것 역시, 아직 내게 남은 너의 ‘예전 기억’이 한 충고였다. 넌 아마 내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거다. ‘이번에도’ 말이야.”

“그건 또 무슨···.”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이미 언제나 그랬다는 것처럼 휑하게 비어있는 이곳에는 나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보이질 않았다.

“대체··· 언제 사라진 거지?”

“언제냐고? 아직도 이곳에 시간 개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나?”

어느 순간부터 혼자였는지 모르겠지만, 마치 이곳에는 줄곧 혼자만 있었던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간에 있는 것은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어디로 갔냐고 묻잖아!”

“물론 각자의 전장戰場으로 향했지.”

“전장?”

“조급해할 것 없다. 이곳은 차원의 경계.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닥치고 문이나 열어.”

“좋다. 역시나 오만한 인간의 왕답군. 너에겐 모두 4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이중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어째서 4개지?”

이곳에 있던 왕은 나를 포함해 모두 5명이었다.

문이 있으려면 5개가 맞는 것이 아닌가? 각자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통로니까.

“왕은 자신의 세상으로 가지 못한다. 그 분기점을 나누기 위해, 모두가 모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승패는 어떻게 결정하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로는 결국 5명 남은 왕끼리 전투를 벌여야 한다는 말인데, 애초에 다른 왕을 만날 수 없다면 성립 자체가 되질 않으니까.

“왕은 곧 세상. 왕에게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의 힘이 존재한다. 그것을 찾아 파괴하면 된다.”

“가장 강력한 두 가지의 힘?”

솔직한 말로 나는 이미 충분히 강하다.

우주의 섭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권능만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을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래. 두 가지의 힘이란 바로 과거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힘,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

* * *

“언니! 준비 다 됐어?!”

“자, 잠깐만! 시은아, 이게 나아 아니면 이게 나아?”

시연이가 옷 두 벌을 들고선 당장이라도 홍당무처럼 변해버릴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시은이가 오른 손을 턱에 괴고선 심각한 눈빛으로 양쪽을 번갈아 보더니.

“···으아! 둘 다 너무 이쁜데? 나리야. 네가 좀 골라줘.”

하얀 바탕에 파스텔 톤의 푸른 색 물감이 흩뿌려진 듯 몽환적인 드레스.

푸른 바탕에 하얀 한지로 멋을 낸듯한 한복 풍이 느껴지는 단아한 드레스.

“어, 언니 전 이런 거 몰라요. 입어본 적도 없고···.”

“그냥 딱! 느낌이 오는 걸 하나만 찍어봐. 응?”

“그럼 전 이··· 한복 같은 게.”

“좋아. 그럼 나리는 이걸로 입자.”

갑작스러운 흐름에 나리가 흠칫했지만, 두 사람은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해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리의 강제 환복을 시작했다.

“나리야, 오른 팔 좀 들어봐.”

“네? 네.”

얼떨떨한 와중에도 두 사람의 지시에는 착실히 따른 결과.

“와··· 진작에 이렇게 좀 입힐 걸.”

“그러게. 우리가 너무 무심했다. 그지?”

“자, 이제 나리는 됐고. 진짜 내 옷 골라야지-!”

우우웅-.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쁜 펜트 하우스에 시연이의 휴대전화까지 가세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언니?”

-어휴···.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네. 아직도 안 끝난 거지?

“히잉- 어떡해요. 우리 때문에 괜히 늦어지는 거 아니죠?”

-이 아가씨야, 비행기는 벌써 출발했네요.

“그, 그럼 어떡해요?!”

딩동-.

-그래서 이 언니가 왔잖니. 얼른 문이나 열어줘.

“꺄아- 역시 언니! 잠시만요.”

달칵-.

문이 열리고 현관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10대 후반이나 20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애.

그리고, 시연이는 라미야와 함께 다니던 어린 남자 아이를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네스티? 어, 엄청 컸네.”

“쳇- 오랜만이야?”

키는 커지고, 싸가지는 없어진 네스티는 퉁명스럽게 인사를 건네고선 누가 말릴새도 없이 안으로 훌쩍 들어가버렸다.

꺄아아아아-! 이 변태 새끼! 너 누구야! 언니-!

누, 누가 그딴 거 보고 싶데?! 넌 대체 누군데!

나리의 비명과 네스티의 억울한 변명이 교차하고, 시연이가 얼른 들어가 두 사람을 말렸다.

“잠깐만, 여기는 네스티라고··· 라미야 언니 아들.”

“···아들이요?”

“닮진 않았지만, 그렇단다.”

시끌시끌한 소개가 잠시 이어지고, 시연이와 시은이는 서둘러 준비를 마무리했다.

“아··· 아니야! 이것도 뭔가 마음에 안 들어.”

“시은아, 그 정도면 충분히 예뻐.”

“그래도, 삼촌 일 년만에 보는 건데···. 더 이쁘게 보이고 싶단 말야.”

“어차피 진이야 너희 두 사람은 거적만 걸쳐도 이쁘다고 할 텐데, 걱정도 팔자다.”

“그래. 그럼 이제 옷은 됐고··· 아! 시은아 삼촌이 준 팔찌 챙겼지?”

“당연하지. 난 이거 잘 때도 안 벗는데?”

“그럼··· 진짜 다 된 건가?”

심장이 미친듯이 방망이질을 해댄다.

어차피 준비는 헌터 협회와 게이트 관리국에서 모두 했을 테고, 자신들이야 그저 그곳에 참석만 하면 되는 일인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지?’

어젯밤 이상한 꿈을 꿔서 그런가.

시연이는 고개를 흔들어 애써 상념을 날려버리려고 했다.

“시연아, 왜 그래?”

“아뇨···. 그냥 어젯밤 꿈이 좀 뒤숭숭해서요.”

시연의 말에 라미야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다른 사람이야 꿈 속에서 슈퍼맨이 되어 우주를 날아다니든, 지구를 부시든 상관할 필요 없지만··· 꿈을 꾼 사람이 앞에 있는 이시연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꿈이 왜?”

“신경쓰지 않으셔도 되요. 전 그림으로만 그리고, 꿈을 꾼 적은 없거든요. 그냥 개꿈이었어요.”

“···그래도 말 해줄 수 있어?”

거대한 게이트가 자리한 자금성.

오늘 이곳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 상태였다.

“우리가 태평양에서 나왔을 때랑은 너무 다른 거 아냐? 왠지 섭섭하네 이거.”

“섭섭할 것도 많다. 그때는 30년이었고, 이번엔 겨우 1년 이니까 그렇지. 아직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으니까.”

“그나저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많이 몰려들었데?”

“어떻게든 눈 도장이라도 찍고 싶어서겠지. 특히 중국에선 지금 안달이 났을 거다.”

유리코프와 이루가 툴툴거리면서 귀빈석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한쪽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왔다.

“아! 저기. 귀환자 라미야 알 사우드다!”

기자들이 빛을 따라 불나방처럼 몰려가고 나자 조심스럽게 주변으로 다가와 앉는 세 사람.

“시연이, 시은이 오랜만이네. 나리도. 너희들이 조용히 올 수 있게 라미야가 시선을 끌어준 건가?”

“헤헤- 이루 오빠도. 아무래도 우린 언론에 노출되면 조금···. 그나저나 아카데미 학장 일은 좀 할 만하신가요?”

“할만은 무슨. 괜히 맡았어. 요즘 후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피-. 은지 언니 말로는 아주 달콤한 권력의 맛에 푹 빠졌다고 하던데. 뭘.”

큼큼.

“권력은 무슨···. 그나저나 이 형은 오늘 오는 거 확실한 거야?”

“네. 확실합니다. 오늘 오후 12시에 게이트가 완전 오픈 될 거라고 했으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제 10분도 안 남았네요.”

어느새 나타난 안정민이 스리슬쩍 이루의 옆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뭐 그리 대단한 사람 온다고 이렇게들 난리인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이며 카메라만 수백 대가 넘어가고, 각 국에서 모여든 귀빈들까지.

자금성 태화전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우웅-.

그런 장내를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이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

“오! 열리나 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자들의 셔터가 쉴새없이 터지자 다시금 시끌시끌 해지는데는 순식간이었다.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한데···.”

“그래. 이루, 너도 느꼈지?”

공기 중에서 떨려오는 마력.

이건 이진의 마력이 아니었다.

···이렇게 소름끼치는 게 이진의 마력일리가 없으니까.

유리코프와 이루의 눈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자리를 박찼다.

“모두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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