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42화.
딸랑-.
가게 입구에 달아둔 풍경종이 맑게 울렸다.
“오빠, 저희 왔어요.”
이른 시간이라 아직 손님은 오지 않는 시간이니 올 사람은 뻔하다.
김태영은 살짝 미소를 띈 얼굴로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왔어? 시은이는 이번 학기에도 장학금 받았다며? 대단하네.”
“헤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요 녀석. 아주 기고만장 하구나? 도진이는?”
“오빤 내일 올라오기로 했어.”
그 말에 태영이는 주방에서 나와 바 테이블에 놓인 의자 하나에 걸터 앉았다.
“아, 맞다! 뉴스에서 봤는데, 이번에 금강산까지 고속 도로 개통하기로 했다면서?”
“그래. 해양 몬스터들 때문에 배로 이동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됐기도 하고.”
“준비라면··· 역시 통일 준비지?”
시은의 물음에 태영은 정확한 답변 대신 가벼운 미소만 지었다.
“또! 맨날 중요한 대답은 피하고. 치사해!”
“나 같아도 너한테 말해주는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것 같은데?”
“언니!”
시은이가 씩씩대는 모습을 못 본채하며 시연이는 태영이를 쳐다봤다.
웃고 있지만, 얼굴 한편에 자리한 쓸쓸함은 늘 그대로.
“오빠, 그러지 말고 저희 집으로 와요. 여기서 맨날 혼자만 지내면 외롭지 않아요?”
“괜찮아. 그리고 그 사람도 가끔 찾아와 주니까, 오히려 혼자인 편이 편하기도 하고. 또, 사장님 방은 비워둬야지.”
“···그건 그렇죠.”
세 사람이 일순 조용해졌다.
언제나처럼 갑자기 나와버린 이진의 이야기는 늘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곤 하니까.
딸랑-.
분위기를 깨워주기라도 하듯이 안정민 과장이 맑은 종소리와 함께 가게로 들어섰다.
“역시 다들 여기 있을 것 같더라니.”
“아저씨.”
이진이 게이트로 들어간 지 벌써 1년.
그 사이에도 안정민 차장은 가게에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들렸다.
때로는 업무에 관련해서, 때로는 그저 인사차.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신주희 박사와 함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려.
“오늘은 이 서류에 서명을 받아야 해서 왔어요.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유전에 파견되는 사람들 목록인데, 시연양이 확인해 주셔야 하거든요.”
“주세요. 근데 삼촌 소식은··· 아직 없는 거죠?”
“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 분이라면 분명히 무사히 돌아오실 테니까요.”
함께 한 시간은 고작 일년 남짓이었지만 이진이 남기고 간 발자취는 이 곳에 있는 이들에게 너무나 크게 자리잡았다.
이제는 그가 없이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랗게.
“지난 번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크흠. ···사실 이건 조금 설레발 같아서 말씀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안정민 차장의 자신없는 목소리에 세 사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뭔데요? 무슨 소식이라도 있어요?”
“말씀해주세요!”
“아저씨, 사소한 거라도 말해주기로 했잖아요!”
한 차례 어색하게 웃은 안정민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 알겠어요. ···그러니까, 최근 자금성 근처에서 마력의 흐름에 이상이 생긴 모양입니다. 중국에서는 어떻게든 쉬쉬하려고 하는데, 미국에서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죠. 세계 헌터 연합회 하밀 회장이 모레 아카데미로 온다는 것도 아마 그것때문에 이루 학장님과 만남을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마력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
각성자이긴 하지만 시연이도, 시은이도 그쪽에 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활동 자체는 물론이고, 각성 사실조차도 국가 기밀로 다뤄질 정도로 철저하게 숨겨지는 실정이니.
“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의밉니다. 보통 게이트의 등급에 따라 생생되기 전 기간이 길거나 짧은데, 자금성 주변의 마력 흐름 이상은 벌써 2주가 넘었어요. 삼영 그룹에서 게이트 발생 사전 탐지기를 개발한 뒤로 이렇게 길었던 적은 처음입니다.”
“작년 여름 영국에서 생긴 것 보다요?”
“네. 그 당시 영국 맨체스터에 생겼던 S등급 게이트도 고작 5일이었으니까요.”
그 말에 시은이는 약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
“···근데, 아저씨. 그럼 엄청 위험한 거 아니에요?”
영국 맨체스터에 생긴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 때문에 그 근방은 거의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다.
당시 하밀은 물론이고, 아카데미의 교수로 있던 유리코프와 메를린까지 지원을 나섰었으니까.
본격적으로 훈련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뒤로는 후대 양성에만 힘을 쏟겠다고 발표한 뒤로 ‘귀환자’가 나섰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시은이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물론 위험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건 그만큼 어마어마한 마력을 지닌 ‘존재’가 게이트를 넘어올 거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게 그럼···.”
“저희 관리국에서 작년 자금성때의 게이트와 그 크기를 비교해 본 결과 만약 그 정도의 게이트가 다시 생겨나려면 저런 현상이 적어도 2주에서 길게는 4주정도는 이어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2주에서 4주라니.
갭이 너무 큰 것 아닌가?
말하고도 스스로 뭔가 민망했던 모양인지, 안정민이 살짝 말을 정정했다.
“···물론 게이트 관리국의 기술력이 아직까지 조금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라미야 부학장에게도 확인을 받은 내용입니다.”
“언니한테요? 언니도 같은 생각이라는 거죠?”
“네. 라미야 부학장도 이진 선생님이 통과할 수 있는 정도의 게이트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도과학은 짧은 시간 사이에 엄청난 발전을 이뤄냈다.
삼영 그룹은 마석을 이용해서 그 이전에는 그저 공상으로 치부되던 각종 장비들을 만들어냈고, 지금은 모두가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럼 진짜로···.”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저희들의 판단으론··· 네. 곧 돌아오실지도 모릅니다.”
또륵-.
훌쩍.
시연이는 테이블 위에 티슈를 뽑아 가만히 눈물을 닦았고, 시은이는 작은 콧망울을 움찔거렸다.
“조,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
“알아요··· 저도 좋아서 그래요.”
안정민 차장은 두 사람을 보며 뭔가 뭉클한 감정이 떠오르는 걸 느꼈다.
처음 이진이 태평양에 돌아와 다시 자금성의 게이트로 들어갈 때까지, 누구보다 옆에서 오랜 시간을 봐왔기에···.
지금 이 두 사람이 어떤 심정일지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느낌일지 공감할 정도는 되니까.
“아, 그리고 시은양. 이것도 좀 부탁을···. 하하. 이거 제가 너무 염치가 없네요.”
“아니에요. 이리 주세요. 어차피 다른 데 쓸 일도 없는 힘인데요, 뭘. 그래도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니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어차피 공짜도 아니잖아요?”
안정민 차장은 어색한 얼굴로 휴대용 ‘충전 단말기’를 내어 놓았다.
시은의 말대로 국가에서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주곤 있지만, 이 기적에 가까운 힘을 사용하는 대가로 과연 합당하냐하면 누구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을 정도로 초라할 보상이니까.
“저도 마침 드릴 게 있네요. 사진으로 보내드릴게요.”
“아, 뭔가 또 보신 겁니까?”
“네. 글자로 봐선 아마 러시아인 것 같아요. 제가 러시아어는 몰라서 정확한 이름은 따로 확인하셔야 겠지만.”
“이건···. 러시아 중앙은행이네요.”
사진을 전송받은 안정민 차장의 미간이 찡그려지자, 단말기에 충전을 하던 시은이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아저씨. 러시아 어도 할 줄 알아요?”
“하하. 아주 조금이지만 이 정도는 읽을 수 있죠.”
“되게 의외다. 나름 엘리트셨구나, 전에 보니까 중국어도 잘 하시던데.”
“하하···. 국정원 요원이라면 외국어 서너 개는 기본으로 합니다.”
나름 이란 단어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안정민은 시은이의 그런 점을 싫어하지 않았다.
직설적이긴 하지만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지 않는 솔직하고도 밝은 성격.
“그리고 또 있어요. 여긴 저도 아는 곳이네요.”
“이건···. 루브르 박물관까지? 그나마 아카데미 출신 중에는 아직 없다는 게 천만 다행이지만, 갈수록 가관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러시아에서 유리코프 교수의 연장 계약에 불편한 기색을 비쳤는데, 이걸로 좀 무마가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이제 게이트는 갑작스러운 위협이 되지 못한다.
최우혁이 만들어낸 사전 탐지기는 짧게는 6시간, 길게는 일주일 전에 미리 게이트가 나타나는 지역을 찾아낼 수 있다.
덕분에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 나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자신들을 향해 쏟아지는 마력탄 무기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각성을 한 인간 범죄자, 빌런들은 예외다.
대부분의 헌터가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데 그 능력을 사용하곤 하지만, 그걸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아직도 있다.
그리고 시연이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활용해 미리 범죄 대상이 되는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곤 했다.
물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범죄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다른 국가에서 일어날 예정인 중범죄를 사전에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외교적으로 상당한 우위에 설 수 있게 됐으니까.
역시 이 일에도 한국은 나름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그 능력에 비해서는 초라하지만.
“감사는요. 그런데 왜 그 사람들은 그런 힘을 좋은 곳에 쓰려고 하지 않을까요. 헌터가 되어도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을텐데.”
“목숨이 아까워서죠. 아무리 훈련 통해 사망률을 낮추곤 있지만 우리나라만해도 매달 100명에 가까운 헌터가 몬스터와의 전투중 사망하니까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헌터들은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다.
간혹 그런 이들을 향해 조롱하는 일부 단체가 있긴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심지어 자신들 역시 그런 일이 창피하다는 걸 알아서인지, 온라인이 아닌 곳에서 본색을 드러내는 일도 거의 없고.
“그래도 시은양의 능력을 담을 수 있는 이 단말기 덕분에 목숨을 건지는 헌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저야 그냥 충전만 해주는 걸요. 현장에서 직접 싸우지도 못하는데, 이런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니 뿌듯해요.”
“···세상 사람들이 두 사람 만큼만 선한 마음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과한 칭찬 릴레이에 시은이가 살짝 부끄러워 하는데, 가게 문을 열고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시은아, 저녁까지 여기 있을 거야?”
“아, 테린 언니. 아직 안 가셨어요? 먼저 가셔도 된다니까···. 오늘은 여기서 저녁 먹고 언니랑 같이 들어갈게요. 그러니까 걱정말고 먼저 들어가세요.”
“혹시 또 다른데 갈까 싶어서 잠깐 기다린 건데 뭘. 그래도 혹시 중간에 계획 바뀌면 말해줘야 해? 언제든 올 테니까.”
“네···. 늘 고마워요, 언니.”
아카데미에서 차석으로 졸업한 인재가 고작 자신의 개인 경호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된다니까 그러네.”
‘네가 고쳐준 이 팔이 없었으면 난 아마 살지 못했을 거야.’
테린은 그 말은 삼켰다.
시은이는 아직도 자신이 이 팔을 고쳐준 장본인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죽어서도 지켜야 할 비밀.
그건 치유가 아니었다.
비록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시간의 역행’이라고 할까.
이미 사라져 버린 팔을 ‘재생’시킨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잘린 적이 없었던 순간으로 돌려놨으니까.
지금이야 게이트 관리국에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그녀의 능력이 탄로난다면?
한국이 자신들에게 해준 일은 까맣게 잊고 시은이를 납치하려는 이들이 주변에 득시글 거린다.
테린은 그런 순간이 왔을 때를 위해서 그녀를 지키고자 마음 먹었다.
스윽-.
시은이에게는 이만 집에 가겠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마음이 편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
그녀는 마력을 지운채, 가게의 지붕에 조용하게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