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41화.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가도 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검은 초승달의 모습에서 처음에는 그저 거리가 워낙 멀어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하늘을 향해 공간을 박차도 전혀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이미 내가 있던 곳은 얼핏 공처럼 보일 정도로 작아졌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 위화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모래밖에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이내 구슬처럼 작아졌고, 그 주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태양도, 달도.
지구라고 생각했던 것 주변에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저 텅빈 공간일 뿐.
만약 저곳이 내가 있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간대의 지구나 혹은 그와 비슷한 어떤 곳이라 해도 불가능한 모습.
내가 알고 있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조금 혼란스러워 진다.
미지의 현상을 마주한 본능적인 공포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이 지독한 외로움이 싫었을 뿐이다.
나에게는 마치 텅 빈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이 기분이야 말로 가장 끔찍한 무언가였으니까.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는 마치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형상화 시킨듯한 곳이었다.
걷고 또 걸어도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
그저 그 곳이 싫었다.
그래서 마력의 고갈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본능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한참을 더 날아오른 뒤에야 조금씩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력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한다.’
완전히 말라 있다고 생각했던 마력이 조금씩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계속 소모만 해서는 아직도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나 있나 걱정이 되던 차에 드디어.
‘그러고 보니, 나 숨은 어떻게 쉬고 있지?’
공기도 느껴지질 않는 공간, 하지만 우습게도 난 멀쩡히 숨쉬고 있다.
아무리 나라도 공기가 없이는 살 수 없다.
적어도 난 아직 ‘인간’이니까.
속도를 더욱 높였다.
마력이 차오르기 시작한다면 이제 가성비를 따질 필요는 없지.
마력은 무한한 에너지와 같으니까.
꾸-웅!.
묵직하게 발을 구르자 이전까지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속도로 몸이 쏘아져 날아가기 시작했다.
공기가 없는 공간은 그런 속도를 더욱 높여줬고, 무한하게 차오르는 마력은 자신감을 충만하게 채웠다.
마력이 없는 공간이라면 모를까, 마력이 있는 공간에서 나는 감히 내 입으로 무적이라는 단어를 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찾았다.’
공기가 없는 공간이라 그런지, 중간중간 가볍게 발을 몇 차례 더 굴리는 것만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속도가 붙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오르고 나서야 드디어 조금씩 무언가가 감각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단의 무리.
‘몇명이지? ···5? 6?’
마력은 느껴지는데 그게 아직도 명확하질 않다.
검은 초승달에 가까워지기는커녕 아직도 여전히 그대로이건만, 마력만큼은 점차 가까워진다.
후욱-.
거의 지척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내 몸은 어느새 땅을 딛고 서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인간들의 왕이여. 그대가 마지막이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서 있었던 것같은 느낌.
하지만 그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지는 바닥의 감각도.
나는 알지 못하는 상대방은 마치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는 듯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희들은 누구지? 날 알고 있나?”
“질문을 하면서도 답은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은 채 날 바라보는 이는 머리에 뿔이 달린··· 누군가였다.
적어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머리에 솟아난 뿔도 그렇지만 키가 적어도 3미터는 넘어 보이니까.
더 황당한 건 그 옆에는 눈이 하나뿐인 거대한 여인이었다.
‘사이클롭스?’
분명 지구에서는 몬스터로 분류되는 괴물.
앉아 있음에도 한참이나 고개를 치켜들어야만 그 거대한 눈을 마주볼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덩치.
“···당신들 모두가 다른 차원의 지배자들이라는 건가?”
나를 제외한 4명의 존재들.
생김새나 외형이 제각각인 이들은 아마 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왜 넷이지?’
만약 나와 네스티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총 6명이다.
내가 마지막이라고 했으니 모두 8개의 차원이 있다고 한다면 숫자가 부족한 셈.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네가 그랬듯 우리 중 누군가가 다른 세계를 먹어치워서 숫자가 안맞는 거니까.”
“···너는 누구지?”
“나? 나 역시 그대와 같은 한 세계의 왕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마족이라 칭하지.”
마족? 그 말은 저 자가 마왕이란 소린데.
하지만 내가 아는 마왕이라면···.
그보다 더 이상한 점은 어째서 나를 제외한 이들 모두가 지금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냐는 점이었다.
의문에 의문이 겹치면서 생각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가장 우선은 지금 내가 있는 이 곳.
얼핏 신전같아 보이는 장소에 놓인 의자 5개 이외에는 중앙에 구슬이 가득 담긴 상자 하나가 전부인 이 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자신을 마족의 왕이라 칭한 이는 이중 가장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실제로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았다.
그에게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드디어 모두 모였군.”
갑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들려오는 목소리.
‘···뭐지?’
6번째 인물의 등장.
내가 놀란 건 5명이 전부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냐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있었다면 당연히 놓쳤을리가 없다.
공간이동으로 왔나 싶기에는 아무런 기척도, 기운도 느끼지 못했으니 역시 아니다.
“당신은···.”
무엇보다 나는 이 자가 ‘뭔지’를 모르겠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차치하고 그가 살아있는 생명체인지인지 아닌지 조차 구분이 가질 않는다.
분명 내 눈 앞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나는 이런 존재를 알고 있다.
그리고 아마 지구상의 꽤나 많은 이들이 존재의 유무를 궁금해하는 존재.
“신인가?”
물으면서도 참으로 어이가 없다 싶은 질문.
하지만 이 중에서 그런 나를 비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이라··· 맞다고 해야할까. 아니라고 해야할까. 일단 신과 비슷하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
그는 분명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인지’하도록 만든 것인지도 모르지.
“이미 알고 있는 이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겠지. 시작은 공평해야 하니,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도 좋다.”
사양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나는 지금 알아야 하는 것도 있고, 알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그럼 일단 묻겠다. 여긴 어디지?”
우선 그것부터 시작했다.
묻고 싶은 것들은 너무 많았고, 당연히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차원의 틈새.
솔직한 말로 머리로 이해한다기 보단 그저 ‘아, 그렇구나’하고 넘겨야 하는 답변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나는 확실히 이해했다.
내가 지나왔던 곳이 바로 다른 세상의 왕에게 먹혀버린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먹혀버린 수 많은 차원이 바로 저 가운데 셀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한 상자에 담겨 있다는 것도.
“내가 죽으면 내가 살던 세상도 저렇게 되는 건가?”
“물론. 왕의 없는 세상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니까.”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순 없던데. 이미 오래 전에 썩고 말라버리긴 했지만 나무도 있었고, 모래로 된 사막도···.”
“본디 무너져 버린 차원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그건 네가 가진 의지의 힘이 무의식중에 만든 것뿐이지. 죽음이라는 것의 형태를.”
내가 상상한 죽음이라는 것이 그런 형태였던가?
···외로움.
“왜 처음부터 이곳으로 오지 않고 그런 곳을 거치게 만든 거지?”
대체 나에게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우습구나.”
처음으로 질문에 답변이 아닌 대답이 돌아왔다.
“···뭐가 우습다는 거지?”
“마치 무언가 의도가 있어서 너를 그곳으로 보낸 것처럼 생각한 다는 것이 말이지.”
“그게 무슨···.”
“그저 이 모든 일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단 소리다. 네가 왕이 된 것은 그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고, 네가 이곳에 온 것도 그저 이렇게 됐을 뿐이다. 무언가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이건 그저 ‘섭리’일뿐이란 소리다.”
특별한 이유도, 의미도 없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나만 더 묻겠다. 왕이란··· 무엇인가.”
“마지막 질문이 그나마 본질에 근접했구나. 왕이란 곧 세상의 중심, 차원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왕이 사라지면 세상이 사라지는 것아 아니다. 왕이 없이는 세상이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
세상의 중심이자 에너지의 근원.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를 잡는 것이 단순히 게이트를 닫는 게 아니었다는 말인가?
“모든 왕은 ‘의지’를 통해 자신의 세상을 조율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적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정도는 알겠지? 왕은 각자의 힘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세상에 드러낸다. 힘은 혼자 간직한 채로 감춰둘 수도, 모든 이들에게 공정하게 나눠줄 수도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이들에게만 줄 수도 있지. 그것은 왕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권능.
나는 지금까지 내 능력을 그렇게 불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곧 현실이 되는, 어찌 보면 만능에 가까울 정도의 힘.
다른 이가 죽으면 그 힘을 흡수하는 능력···.
하지만 그건 능력이 아니었다.
나는 죽은 이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눠준 힘이 내게 돌아온 것뿐이었나.”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왕이 가진 고유의 권한. 아무도 그것에 대해 간섭할 수 없지. 차원의 관리자인 나 조차도.”
차원의 관리자라는 말에 내 고개가 다시 들렸다.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왕의 말은 무겁다. ···하지만 이번은 처음이니 봐주도록 하지. 마지막 질문이 무엇이지? 인간의 왕이여.”
조금씩이긴 하지만 모든 게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가진 힘, 그리고 능력까지.
어째서 내가 사라진 뒤 각성자와 게이트가 모두 사라졌는지.
그리고 돌아온 뒤,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는지까지.
“내가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이유는?”
“세상이란 곧 하나의 차원. 왕은 사건의 지평선에서 계속해서 태어나고 자신만의 차원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무한대로 늘어나는 차원은 어느 순간 시간의 얽힘을 통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지. 한 번 부딪히기 시작한 차원은 결국 하나가 남아야만 끝이 나는 법이니까.”
예상과 크기 다르진 않았다.
처음 그 열쇠라는 원판을 받아 들었을 때부터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거라 의심하고 있었으니.
그저···. 너무 갑작스러웠을 뿐이다.
“그렇다고 굳이 누군가를 원망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그저 이렇게 되어버린 것뿐이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니까.”
이른 바, 우주의 섭리라는 건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곳’의 왕인가?”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
“나는 이 열쇠라는 것을 받아 이곳으로 왔다. 이것은 당신이 만든 건가?”
“질문에 답을 해주는 것은 끝이라고 했다.”
이 존재는 왜 내 이런 질문에 답을 해준 걸까?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받으면서도 그 점이 내심 궁금했다.
그의 말대로 그저 일이 이렇게 흘러갔을 뿐이었다면 왜 이렇게 친절하게 답변을 해준 걸까?
지금까지 그가 해준 답변을 정리하자면 우주에는 세는 것이 불가능한 숫자의 차원이 존재한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곳에서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고, 사라지는 ‘왕’이라는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차원들.
어쩌면 그들이야 말로 우리가 말하는 ‘신’에 가까운 존재다.
그럼 나는 인간인가, 신인가?
나는 언제 태어난 거지?
어머니의 자궁에 잉태되었을 때인가, 그렇다면 그 이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는 건가?
분명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무언가가 내가 이 곳에 온 진짜 이유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