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40화.
마법진이 깨지고 드러난 게이트를 앞에 두고 꽤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정민이는 그들과 간혹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류를 작성하다가 나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아, 선생님. 우선 게이트 내에서 얻는 소유물의 권한은 선생님으로 결정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됐으니 저쪽에서도 안달인 모양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대가 중국이다 보니 이런 것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네.
“잘했다.”
“참, 그리고 중국 측에서도 헌터를 들여보냈으면 한다고 전해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상관없어. 물론 목숨은 보장하지 않는다고 하고.”
살아날 가능성은 0에 무한대로 가까울 확률이지만 굳이 들어가서 죽겠다는데 말리진 않는다.
누가 따라들어오든 신경도 쓰지 않을 생각이니까.
“진. 난 준비 다 됐어.”
“나도. 뭐 준비라고 할 것도 없긴 하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쪽 상황이 궁금하긴 했는지, 간이 의자 하나를 가져다 놓고 누워서 쉬고 있던 하밀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배웅이라도 할 참인가.
“함께 못해서 아쉽네.”
“아쉬울 필요 없어. 어차피 나 혼자 들어갈 생각이니까.”
“···혼자? 이루와 라미야는?”
분명 함께 들어가면 든든한 지원군이지.
내 마력이 다른 이들에 비해 분명 대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마도 높은 확률로 다른 차원의 왕이 있을 곳.
그 전까지 이루가 가진 무력은 상당한 도움이 될 테고, 라미야의 공간 이동 능력은 게이트의 공략 시간을 많이 줄여줄 거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혼자는 절대로 못 보내! 저 안에 어떤 놈이 있을 줄 알고!”
“맞아, 진. 아무리 너라도 혼자는 너무 위험해. 이번 만은 나도 이루 말이 맞다고 봐.”
맞는 소리다.
다른 차원의 왕이 있는 곳에 혼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겠지.
지난 번 게이트의 공략에서도 마지막에는 내가 거의 다했다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래. 위험해서 혼자 가는 게 낫겠다는 거야.”
하지만 이번엔 지난 번과는 다르다.
최정상급 헌터들의 힘을 받아들인 지금의 나는 솔직한 말로 혼자 있을 때가 가장 강하다.
주변에 신경쓸 사람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가 못 미더워서 그런 거야?”
“그런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지.
가장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이기에 함께 가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이유다.
“그럼?”
“만약을 대비해서.”
혹여나 있을지 모를 일.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람 일이란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니까.
만약 지난 번처럼 수십 년의 간극이 벌어진다면 어쩌지?
혹여라도 내가 전투중 사망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에···. 또 만약에······.
수만 가지 걱정이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고, 내린 결론이 바로 이거였다.
“만약이라니. ···무슨 만약?”
“설마 거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런 생각하는 건 아니지?”
게이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번, 태평양에 떠올랐던 거대한 게이트를 ‘최후의 게이트’라고 불렀던 이유는 하나.
그게 나타난 뒤로 다른 게이트들이 모두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만 없애면 지긋지긋한 몬스터가 사라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지.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엔 어떤가.
지난 번보다 더 커다란 게이트가 떡하니 나타났음에도 지구상에는 아직도 실시간으로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중이다.
인벤토리 안에서 진동하고 있는 작은 원판.
게이트에 가까워질 수록 크게 공명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이 게이트가 바로 열쇠로 열어야 하는 그 ‘문’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만약에 저 게이트를 닫아도 몬스터가 계속 나온다면?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새로 각성하기 시작한 헌터들은 아직 너무도 미숙한 상태.
그나마 다양한 무기의 보급으로 어찌어찌 막아내고 있지만, 당장이라도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깨진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반드시 필요해 질 거라 장담한다.
간이 의자로 돌아가 늘어진 하밀이나, 강아지마냥 날 쳐다보는 이루.
늘 툴툴거리지만 그래도 맡은 역할에서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메를린.
그럼 메를린을 늘 말 없이 쳐다만 보고 있는 답답이 블랙.
호탕하기로는 세상 둘도 없는 러시아 상남자 유리코프.
그리고 지금도 자기 두고는 못 간다며, 누가보면 내 아내라도 되는 양 행동하길 서슴치 않는 아랍의 공주 라미야까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냐. 그저 너희들이 내가 없는 동안 이곳을 지켜줬으면 하는 거지.”
“이곳이라면 어디··· 중국?”
이루의 말에 라미야가 한심하다는 듯 잠시 이루를 노려보고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진, 네가 무사히 돌아오지 못하면 모두 소용없는 짓이야.”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분명한 건, 나보단 이 세상이 너희를 더 필요로 할 거라는 거야.”
“무슨 그런 말을-!”
난 지금 죽으러 가는 게 아냐.
반드시 돌아올 거다.
“그러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을 지켜줘. 너희가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치사해. 그렇게 말하면···.”
눈이 붉어진 라미야가 등을 돌려버렸다.
이루는 잠시 멍했지만 내가 한 말을 이내 깨닫고선 내 눈을 똑바로 마주쳐 왔다.
“···돌아올 거지?”
“당연한 소리를.”
내 모든 게 이곳에 있는데, 어딜 간단 말인가.
“알았어.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피식-.
그래. 이거면 된다.
* * *
우우웅-.
별자리가 복잡하게 그려진 원판을 들고 게이트 앞에 서자,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에 강하게 쥔 원판을 들어봤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원판은 내 손을 뿌리치듯 날아가더니 게이트가 있는 곳 중앙에서 멈춰섰다.
후우우웅-.
중앙에서 급격한 회전을 시작한 원판에서 사방으로 빛 줄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푸른 호수처럼 일렁거리던 게이트가 점차 잔잔해지고, 그 위로 원판에서 나온 빛 줄기가 만들어내는 별 자리가 게이트를 가득 메웠다.
셀 수 없이 많은 게이트를 넘나들었지만, 이런 현상은 처음이었다.
나 아닌 누구도 마찬가지겠지.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중국인들이 다급하게 어딘가로 연락을 하고, 저들끼리 언성을 높여가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나 역시 지금은 그저 이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만 집중하고 싶었으니까.
키이이이잉-!
원판의 회전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보통 인간의 청력으로는 듣지 못하는 영역의 초고주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의 각성자들이 귀를 틀어막고 주저 앉기 시작할 무렵.
“주, 줄어든다!”
이루의 말처럼 게이트의 크기가 점차 줄어갔다.
별 자리가 그려진 거대한 게이트가 천천히 회전하며 그 크기를 줄여가기 시작하고.
이내 평범한 크기보다도 더 작은 게이트 하나가 원판의 아래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다녀올게.”
“···진.”
라미야의 얼굴은 이미 눈물 범벅인 상태.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녀를 안아주기라도 했다간 더 힘들어질 게 뻔하다.
여기선 차라리 더 냉정하게 돌아서는 게 낫다.
내 이름을 나직하게 부르는 라미야의 젖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게이트로 발을 디뎠다.
천천히 회전하는, 이제는 너무 빽빽해서 별자리인지 그저 의미없이 마구잡이로 선을 그어둔 낙서인지 모를 푸른색 게이트 안으로.
* * *
하얀 하늘.
구름이 껴서가 아니라, 그저 하얗게만 보이는 하늘에는 검은 초승달 하나만 떠 있다.
타닥- 타닥-.
태양이 없어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하늘에는 늘 같은 모양을 한 검은 초승달만 떠오르고 지는 걸 반복한다.
밤이 되어 춥거나 어두운 게 아니지만 그저 버릇처럼 잔 가지를 모아 불을 붙였다.
“···이런 곳도 지구라니.”
하얀 하늘에 검은 달.
그리고 바닥은 온통 모래 사막뿐.
간간히 박혀 있는 나무들은 대부분이 이미 썩어서 말라비틀어진 것들 뿐이었다.
생명체라곤 보이지 않는 곳에 혼자 앉아 모닥불을 피워놓은 채로 혼자 중얼거리다니.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오늘로 벌써 14일째···.”
이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마력의 소모는 원래의 세상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그 빠져나간 마력이 채워지는 속도는 수십 배나 더딘 곳.
그래서 함부로 달리거나 날지도 못한 채, 그저 걷고만 있는 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굴 만날지 모르니까.
하지만 이쯤되니 이젠 몬스터가 아니라 바퀴벌레라도 반갑게 맞이해 줄 수있을 것 같다.
게이트에 들어와 2주가 흐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 이곳엔 물조차도.
죽어버린 나무들이 있는 걸로 봐서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주 희미한 소리조차 들리지를 않는다.
그야말로 완벽한 적막의 세상.
‘그럼 대체 누가 날 여기로 오게 한 거지?’
누군가의 부름.
적어도 내가 살던 세상과 이곳을 연결하는 게이트를 만든 존재라도 있어야하지 않나.
타닥-.
가만히 앉아 모닥불을 뒤적였다.
불쏘시개로 쓰이는 나무의 끝이 빨갛게 달아온 채 그렇게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뒤로 벌렁 드러누워 다시금 가만히 하늘을 쳐다봤다.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검은 초승달 하나.
이런 곳에서 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이대로 있다간 꼼짝없이 굶어죽을 판이다.
마력으로 어느 정도 대체는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렇게 무력할 수가 있나?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들어왔는데, 이루나 라미야가 이런 날 봤다면 뭐라고 할까.
-그러게 나랑 같이 왔으면 심심하진 않았을 거 아냐.
-내가 있었으면 어딘가로 이동이라고 했을 텐데.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네.
마력 보존이고 나발이고 진짜 저기 있는 달에라도 날아가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저기에 가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응?”
모래 사막에 누워있던 몸이 반사적으로 튕겨졌다.
조금 전 순간적으로 떠오른 작은 생각에서 내가 지금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 강하게 풍겼는데.
안개 속에 가려진 가로등 아래 서 있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명확하게 잡히질 않는다.
‘···달.’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달···.’
자꾸만 되뇌어 보다가 문득 생각을 바꿔봤다.
“···저게 달은 맞나?”
아니, 애초에 난 왜 이곳을 지구라고 단정지었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게이트의 건너편이 지구라는 건 알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고작 몇 가지 가설이 맞아들어갔다고 해서, 이곳이 어딘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지구라고 단정지었나?
정말 답답할 정도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을 했다.
이미 30년도 이전에 삼영 그룹의 박사 하나가 게이트 생성기에 대한 기본 설계와 원리를 정립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진 게이트 생성기가 ‘창조’의 경계를 넘어서진 못했지만, 인간의 손으로 게이트를 열었다는 점 하나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만약 게이트를 만들어낸 존재라면 어떨까?
차원과 차원을 잇는 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면, 이런 공간을 만드는 게 과연 불가능할까?
당연하게도 대답은 ‘가능하다’ 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자가 날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면 그곳은···.
확신이 섰으면 더 이상의 망설임은 시간 낭비.
어차피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면 확인을 하면 그만이다.
콰앙-!
더 이상 생각을 미룰 필요도 없이 곧장 발을 박찼다.
하늘에 오롯이 떠 있는 검은 달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