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39화 (139/153)

귀환자 식당 139화.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단순히 거대하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부지에 지어진 건물이 텅 비어서 오히려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니.

“장막은 이제 그만 거두시죠.”

“···알겠습니다. 굉장히 넓게 펼쳐진 터라 조금 걸릴 겁니다.”

마치 내게 너무 놀라지 말라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저우비장.

나와 이루, 라미야, 하밀이 서 있는 곳 뒤에는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시립해 있었다.

모두가 중국의 각성자들.

다만, 그 힘이 너무 미약하다.

‘단순히 숫자가 적은 게 아니라, 한국 각성자들에 비하면 너무 볼품없는 마력들인데.’

이유는 모른다.

전 세계에서 왜 하필 중국만 이러는 지는.

아마 정작 본인들은 더 미칠 노릇이겠지.

그게 비록 세뇌에서 비롯되었다곤 하지만 늘 자신들이 세계 제일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이들이었으니까.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각종 조롱에 악을 쓰며 받아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나서서 중국을 돕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봐야겠지.

다들 저 살기도 힘든 시기였는데, 남을 도울 여유까지 있는 국가는 없었으니까.

그나마 있다면 한국이었는데 그런 한국마저도 오늘이 지나면 완전한 적으로 돌아서게 될 거다.

“선생님.”

“응? 아직 안 돌아갔나?”

분명 라미야에게 다른 이들은 모두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는데.

“난 보내려고 했지. 그런데 얘가 자기는 절대 안 가겠다고 한 거야.”

“제가 모시고 왔으니, 갈 때도 제가 모셔야죠. 혼자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아무리 선생님이 가라고 하셔도 말이죠.”

이런 고집스럽고 미련한 인간같으니.

하지만 이런 것도 그리 나쁘진 않구나.

“그렇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볼 것 없어. 이번엔 지난 번처럼 늦지 않을테니까.”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그래도 중국에서 살긴 싫거든요. ···그리고 사장님이 해주시는 음식도 좋아하니까요.”

설마하니 중국에서 살기까지야 할까.

···아니, 정민이라면 정말 그럴지도.

“널 위해서라도 빨리 돌아와야겠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기, 미안한데··· 아직 들어가려면 좀 남았거든? 저기 저 사람들 작업 속도 안 보여? 얄짤없이 저녁이나 되야 끝나겠는데.”

솔직히 심각하긴 하다.

애초에 저 정도 마력으로 이런 거대한 게이트에 일루젼 마법을 펼쳤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다.

물론 엄청난 양의 마석을 쏟아부어서 가능했겠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가려야할 필요가 있었나? 정보 기관이 있는 곳이라면 벌써 눈치챘을지도 모를 일을.

“아마 자신들이 가진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건축물에 작으나마 오점이 남는 걸 싫어서 그랬을 겁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천문학적인 돈을 들인다고? 그 돈이랑 마석으로 차라리 연구를 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까.

“그 자의 말도 맞지만, 이번에는 그것 외에도 다른 이유도 있어.”

정민이의 말을 하밀이 이어받았다.

“다른 이유?”

“진. 너도 알겠지만 여긴 중국 최고의 관광지이자 중국 경제의 중심인 베이징이다. 이 주변의 건물 가격이 얼만지 알면 너도 놀랄 정도일걸?”

“···설마, 그럼 건물 가격이 떨어질까봐 그랬다고?”

“단순히 건물 가격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었지. 오히려 그 이유만이었다면 중국 정부도 이런 미친 짓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문제는 그 건물의 주인들이 중국 경제의 핵심인물들이라는 사실이지.”

한 마디로 자신들이 가진 건물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불명예’를 얻기 싫었다는 말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게 목숨보다 귀하다고 여기는 건 그저 한심하게 보일 뿐이라는 걸 왜 모를까.

“진짜 미쳤군.”

이루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의견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규모의 게이트가 생기는 건 장소가 넓은 지역만 가능한 건가? 전에는 태평양 한가운데 였잖아. 이번에도 이렇게 넓은 곳이고.”

“···그건 나중에 설명해줄게.”

신주희 박사가 찾아낸 ‘게이트 지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사실 그게 그렇게 알아내기 어려운 정보는 아니니, 어쩌면 다른 나라에서도 알면서 서로 쉬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라미야는 정말 모르는 것 같지만.

“형, 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서 도와야 하는 거 아냐? 이러다가 정말 밤 새겠는데···.”

이루 말처럼 정말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느린 속도다.

“아카데미에 있는 중국인 훈련생도 이런 수준인 건 아니지?”

“이 정도는 절대 아냐. 처음에 올 때는 그래도 평균은 됐었거든.”

“처음 올 때는? 그럼 지금은 아니란 소리야?”

“아, 좀 그렇지. 다른 훈련생들은 성장 속도가 엄청 빠르거든. 그런데 이상하게 중국 출신은 속도가 느려서···. 지금은 꽤 차이가 나는 상황이 되버렸어. 처음에는 게을러서 그런가 싶었는데, 진짜 열심히는 하거든. 그래서 걔들 보고 있으면 좀 안타깝기도 해.”

이루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긴 하다.

중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이렇게 안하무인에 철면피 외교를 할 수 있는 것은 넓은 국토를 가진 것도 이유겠지만, 정말 무식하게 많다 싶을 정도의 인구수에서 나오는 힘이었다.

전 세계에 화교가 없는 나라가 없고, 차이나 타운이 없는 곳이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까.

그런데 10억이 훌쩍 넘는 인구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이들이 고작 평균치를 맴돈다? 그 말은 다른 이들은 그 평균치보다 훨씬 못하다는 소리다.

그리고 지금 그 증거가 눈 앞에 있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렇다고 우리가 나서서 도와줄 수는 없어. 지금은 힘을 아껴야 하니까.”

“라미야 말이 맞다. 그리고 우리 중에서 딱히 도움될 만한 사람도 없고.”

“그건 그렇지만 뭐···.”

딱히 도울 사람을 꼽으라면 라미야 정도.

이루야 검을 쥐고 도륙하는 건 자신있을지 몰라도, 저런 마력 컨트롤에는 젬병이다.

하밀이야 그나마 낫겠지만, 이 거만한 녀석이 저런 일에 나설리도···. 어?

“하밀. 뭐하려고?”

“나도 양심이란 게 있는데, 이거라도 해줘야지.”

하밀. 역시 이 녀석은 게이트에 같이 들어가려고 온 게 아니었구나.

그럼 대체 여기까진 왜 온 거지? 지구 반바퀴나 날아서.

“뭐야? 넌 안 들어가?”

“난 사양하겠어. 너희들도 감정만 앞세우지 말고, 이성적으로 잘 생각해 봐라. 진과 과연 함께 들어가는 게 정말 진을 위한 일인지 말이야.”

하밀은 그렇게 말하고선 중국인 각성자들에게 다가갔다.

잠시 뭐라 이야기를 나누더니, 떼로 달려들어 일루젼 마법을 해제하던 각성자들이 모두 허둥지둥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왜 저러는 거지?’

설마, 혼자서 하려는 건가?

아무리 중국인 각성자들이 걸리적 거린다고 해도 저런 대규모 작업은 여럿이 힘을 합치는 게 빠를텐데.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자 하밀이 텅 빈, 아니. 텅 빈듯 보이는 광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내 주변의 마력이 소용돌이 치는 게 느껴져 왔다.

“저 자식, 지금 뭘 하려는 거야?”

“···글쎄. 근데 뭔가 불안한데. 설마 저거 지금···!”

휘몰아치는 마력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대의 기후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저, 저··· 미친 놈.”

“···이, 인간의 몸으로 이런 것도 가능한 겁니까?”

이루나 라미야를 포함한 우리 세 사람은 또 저런다며 혀를 찼지만, 이런 걸 실제로 처음보는 정민이의 감상은 조금 달랐다.

한정적인 지역에 한해서라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날씨를 바꾸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겠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밀의 저런 모습을 이미 겪어던 세 사람을 제외하고, 지금 이 곳에 있는 모든 이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일 거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그 중에는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는 이도 보였으니까.

대체 누구에게 하는 기도인 지는 모르겠지만.

쿠구구구-.

쿠르릉···.

순식간에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진동을 시작하자 마력이 더욱 요동쳐댄다.

아마 지금 베이징을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던 사람들도 지금 이 장면을 보고 있을거다.

그리고 급격히 변하는 하늘을 보며 더욱 공포에 떨고 있겠지.

으으-. 추, 추워졌어.

나만 그런가? 갑자기 기온이···.

하밀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짓을 벌이는 지는 알 것 같다.

아마도 태화전-자금성의 정전正殿-앞에 펼쳐진 일루젼 마법 자체를 얼리려는 의도라는 것은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이런 게 가능할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거다.

‘제 정신 박힌 인간이라면 이런 짓을 할리가 없으니까.’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하지 않은 게 아니다.

그저 이런 건 너무 비효율적이니까.

이곳의 상황이 조금 답답하게 흘러간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하다.

쩌저적-.

원래도 아직은 공기가 찬 겨울의 막바지이긴 하지만 하밀의 마법이 펼쳐지면서부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저 소용돌이의 중심은 이미 생명체는 감히 발을 디디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기온인 건 물론이고, 우리 뒤쪽에 있던 각성자들 조차 몸을 움츠릴 정도로.

쩌적-.

거대한 무언가가 급속도로 얼어붙어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이곳에 있는 이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고 있다.

“하여튼 가끔 보면 하밀 저 녀석이 나보다 더 무식해. 그렇지 않아?”

이루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데.

‘···결국 네가 무식한 건 인정한다는 말이잖냐.’

그래도 핀잔은 주지 말아야지.

명색이 아카데미의 부학장씩이나 되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데.

“···조용. 이제 곧 나온다.”

“어디, 이번 녀석은 얼마나 큰 지 보자!”

긴장되지 않을리가 없다.

정민이는 거의 굳은 채로 서 있었고, 이루나 라미야도 눈에 힘을 가득 주고선 흔들림없이 전방을 주시했다.

쩌저저적-!

지금까지의 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울림.

거대하게 펼쳐진 일루젼 마법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굴복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파창-!

“깨졌다!”

석판이 깔린 거대한 돌바닥이 유리처럼 변하며 깨져나가는 광경은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아름다웠다.

얼어버린 마법이 햇살을 받아 무지갯빛을 뿌리며 산산히 부서지고, 곧이어 바닥 전체에 일렁거리는 푸른 물결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친.”

이루가 욕설을 뱉어냈고, 라미야도 입을 반쯤 벌린 채로 굳어버렸다.

“이··· 이, 이게··· 게, 게이트?”

나조차도 놀랐으니, 라미야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겠지.

솔직히 이 넓은 태화전 앞 마당 전체를 덮을 정도로 클 줄은 몰랐으니까.

단순히 크기로만 비교하자면 태평양에 나타났던 게이트보다 1.5배는 되어 보인다.

게다가 이 일렁거리는 물결을 보고 있으니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혼자 들어갈 것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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