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38화.
이들에게는 누군가가 나서서 경각심이라는 걸 심어줄 필요가 있어보인다.
“저, 저런 미친 놈이. 이봐, 밖에! 당장 이자를 끌어내!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없어! ···한국은 앞으로 단단히 준비를 해야할 거요!”
“끌어내? 나를 말인가?”
수치심에 턱살이 부들거리던 노친네 하나가 회의실 문을 부여잡고 힘껏 당겼다. 당연히 열릴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 뭐야. 이게··· 왜, 왜 이러지?”
“문이 안 열리나 보군?”
쾅쾅-!
“이, 이봐! 경호원! 밖에 아무도 없나?!”
아마 지금쯤이면 바보가 아닌 이상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건 눈치 챘겠지.
그정도 머리도 없는 자가 상무위원이란 자리까지 올라왔으리라 생각하긴 어렵다.
“몬스터를 본 적이 없으니, 각성자들이 어떤 능력을 가진지도 모르는 거겠지. 정말이지 아둔하기 짝이 없어···.”
이건 단지 저들을 조롱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이전에도, 지금도.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은 그게 마치 자신들의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착각을 하곤 한다.
정작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모든 걸 팽개치고 도망치는 주제에 말이다. 다른 이들에게 지켜질 수 밖에 없는 하찮은 목숨들.
“설령 이 건물에 있는 경호원 전체가 덤빈다한들 날 어찌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우, 우리 경호원 중엔 각성자도 있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소리치는 모습은 이젠 애처롭게 보일 지경이다.
“가뜩이나 각성자도 없다고 아우성인 나라에서, 어떻게든 몬스터 해결에 투입할 생각은 않고··· 자기들의 경호원으로 쓰고 있었다니.”
안정민조차 역겹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래, 이를 테면 살충제를 온몸에 뒤집어 쓰고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바퀴벌레를 쳐다보듯이 말이다.
그래.
애초에 이런 인간 이하의 것들과 대화를 해보려는 시도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알 것 같다.
“정민아.”
“네! 선생님.”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태도로 답하는 안정민을 향해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모두 한국으로 돌아가.”
“···지금 말입니까?”
“그래.”
지금 바로.
만약 막아선다면 그땐 한 두 명의 목숨으로 끝내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 애초에 이루와 도진이가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지.
“잠시만요. 이렇게 가신단 말입니까? 지금 이대로 가버리시면··· 중국은 정말 끝장입니다.”
“그쪽. 저우비장이라고 했지. 국무원 총리라고?”
“네? 네.”
그나마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유일한 중국인.
“할 일이 하나 있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행여라도 내가 함께 떠날까 불안함을 가득 담은 눈으로 묻는 질문에, 나는 차갑게 답했다.
“자금성 주변··· 아니, 북경에 사는 사람은 전부 대피시켜야 겠어.”
“북경에 있는 이들 전부를 말입니까? ···북경은 엄청나게 넓습니다. 확인된 거주 인구만 2천만을 훌쩍 넘는 도시의 사람들을 하루 아침에 대피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당연히 알고 있다.
서울의 20배에 넘는 크기에 광역권에 사는 인구는 정식 등록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가늠도 되지 않는 숫자.
무식하게 키워버린 몸집의 베이징은 이미 3환 이내가 아니라면 도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우선 오후 8시까지는 모든 베이징 후커우-중국의 주민등록-를 제외한 이들은 외부로 나가니 그 이후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베이징 후커우입니다. 정작 그들을 버려둔다는 건···!”
중국의 정세를 그나마 알고 있는 정민이가 나섰지만, 되려 이들의 추악한 면모만 더욱 부각시켜 버렸다.
중요한 사람.
그 말에 나도, 정민이도 인상이 찡그려졌다.
“중요한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그야, 정치인들이나 귀족 가문의 사람들은 대부분 베이징에 거주하니까요. 그 중에는 재계 인사들이나 외국의 귀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자는 지금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그나마 가장 낫다고 생각한 인물조차 자신의 말에서 그 어떤 괴리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니, 대체 어디까지 썩어버린 건가.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한 당연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여기서 설명을 하는 것 자체에 회의감이 들 정도다.
“정민아, 일단 일행은 모두 한국으로 돌려보내. 나머진 내가 여기서 해결한다.”
“설마 정말 이곳에 혼자 남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혼자가 낫다.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한 몸이라면 빼낼 자신이 있으니까.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내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거다.
누군가는 날 오만하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실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중국의 보복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감히 선생님의 가치와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굳이 이런 위험까지 직접 감수하실 필요까진 없습니다!”
고마운 말이지만 이건 피할 수 없는 일.
언젠가는 내가 맞닥드려야만 하는 인과나 다름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러니 피하지 않는다.
기다리기만 해야하는 것보단 차라리 들어가는 편이 낫겠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전장이 되는 것보단 그편이 확실히 좋으니까.
벌컥-.
마력으로 닫아둔 공간을 뚫고 방문이 열렸다.
“누구 맘대로 혼자야.”
“그러게. 우리는 여기까지 구경하러 따라온 줄 아나봐?”
이루와 라미야.
공포에 질려 있던 여섯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경호원을 부르짖으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어차피 이 두 사람이 여기 와있다는 의미가 뜻하는 바를 모르는 건가.
쯧-.
“저런 한심한 것들을 지도부라고 믿고 있는 중국 사람들이 불쌍하네.”
“권력이란 건 한 번 잡으면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한다고들 하지.”
“그래서, 형은 정말 저길 혼자 갈 생각이었어? 그럼 너무 섭섭한데.”
“···혼자인 편이 낫다.”
“저쪽은 혼자가 아닐텐데?”
이루의 말처럼 저쪽은 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혼자는 아니겠지.
자고로 ‘왕’이란 혼자서는 될 수 없는 자들이니까.
“···열 거지?”
“열어야지. 그래야 끝나니까.”
“그럼 저번처럼 저 게이트만 사라지면 다른 게이트들도 사라지는 건가?”
모르겠다.
지난 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어째서 이런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지금, 나는 과연 무어라 답해야 할까.
‘저걸 막아내도 5번은 더 이런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소리인가?’
지난 번에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데만 30년이 걸렸다.
이번에는 과연 어떨까?
작별인사···.
해야할까?
* * *
어디서부터 소문이 퍼졌는지, 베이징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공항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도로는 병목현상으로 인해서 마비가 되버렸다.
“뭐? 비행기가 없다니. 이게 무슨 개 소리야! 우리가 타고 온 건?!”
대한민국 정부의 전용기를 타고 왔다.
그런데 그게 없다니, 말이 되지 않는 대답에 안정민이 목에 핏대를 세웠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지금은 공항을 이용할 수 없으니, 일단 숙소로 돌아가 대기하시오.”
무슨 로봇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공안.
“막무가내군요. 아무리 중국이지만 이렇게까지 안하무인으로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당장 정부에 연락해서···!”
“됐다. 그런 압박이 먹힐 놈들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을 꾸미지도 않았겠지.”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그래도 그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조금은 나아졌을거라고 생각했던 내 잘못이다.
“라미야. ···가능하겠어?”
“그나마 거리가 가까우니까 어찌저찌 가능할 거야. 그래도 인원이 많아서 한 번에는 무리야. 시간이 필요해.”
“미안하다. 무리한 일을 부탁해서.”
“···미안하긴. 네 입에 그런 말은 안 어울려. 그리고 네가 그랬잖아. 넌 우리들의 ‘왕’이라고, 신하는 왕의 명령에 잘 따라야지 이쁨 받지?”
비꼬는 말투가 아니라 표정에는 은은하게 웃음기까지 머금은 대답.
라미야의 그 말이 내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준다.
“다시 말하지만. 난 절대 혼자 안 돌아가.”
“···내가 지켜주진 못한다.”
이루가 기가 막힌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내가 설마 내 몸 하나도 못 지킬까봐? 나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이래 봬도 형 다음으론 내가 지구상에서 제일 강하다고?!”
“미안하지만 그 말은 인정하기 힘든데?”
나가는 비행기는 없어도, 들어오는 비행기는 있다는 건가?
“···하밀. 네가 어떻게 여길?”
“네가 온다는 소릴 듣고 곧장 출발했지. 자금성에 전대미문의 게이트가 있다는 사실이야 벌써 알고 있었으니까. 너, 그거 처리하러 여기 온 거잖아?”
“다 알고 있었나?”
“뭐, 미국이니까.”
중국이 한국에 한 짓도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네.
뭐, 이 녀석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사실을 확인하니 은근히 열이 받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하밀 녀석이 방패를 쳤다.
“잠깐, 아무리 우리라도 중국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건 알아둬. 애초에 중국이랑 사이가 제일 안좋은 건 미국이라고. 한국에 압박을 한다고 해도 미국이 나서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
“···좋아. 그럼 네가 여기 온 이유는 뭐지?”
“그야··· 널 도우러 온 거지.”
입에 침이라도 발랐으면.
“···진짜 양심 없네. 하밀.”
“넌 왜 또 시비냐. 그리고 네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너, 그거 굉장한 착각이다.”
신체 강화 계열의 최강자로 손꼽히는 이루.
이미 오래 전에 이능력 계열 최강였던 하밀.
게다가 내가 능력을 완전히 개화하기 전, 하밀은 이미 명실상부한 최강자였다.
아마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거다.
그야말로 누가 먼저 공격을 적중시키느냐가 관건이겠지. 그리고 그런 일에는 당연하게도 운이라는 것도 큰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의미가 없는 싸움인 셈이다. 특히나 이런 상황에서는.
“삼촌!”
“어떻게 됐어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이들에게도 설명을 충분히 해줬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겁을 먹지는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일이 쉬웠을 텐데.
“라미야가 너희를 한국으로 보내줄 거야.”
“···그럼 삼촌은?”
“삼촌은 여기서 해야할 일이 있어서, 금방 따라갈게. 먼저 가 있어.”
“싫어! 난 죽어도 삼촌 옆에 꼭 붙어 있을거야!”
저 ‘죽어도’라는 말이 진짜 죽는다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시은이의 어리광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애들이 가겠다고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오면서 라미야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럼 강제로라도 보내야지.
-···괜찮겠어? 너 미움 받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내가 무사히 돌아간다고 해도, 아이들은 날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우선시 해야하는 건 너무나 명확하다.
“라미야.”
“···알았어.”
상관없다.
이 아이들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원망이나 미움 같은 거야 얼마든 받아줄 수 있으니까.
후우웅-.
시연이와 시은이, 나리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시, 싫어! 싫다고! 삼촌!”
“···삼촌, 한국에서 기다릴게요.”
그나마 시연이는 눈 시울이 붉어진 채로도 현실을 받아들였다.
떼를 쓰는 시은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결국 시연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침통한 표정을 지은 도진이가 시은이의 손을 잡았다.
한사코 남겠다는 녀석을 돌려보내려는 설득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 한 마디면 됐으니까.
-일이 시작되면 한국에도 무슨 영향이 끼칠지 몰라. 그러니 네가 가서 아이들을 지켜줘야지.
시은이의 손을 잡은 도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아이들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놀랐어. 꽤 저항하던데? 언제 저렇게 마력을 키운 거야?”
“···그럴리가.”
지금 공간이동을 한 사람중에서 저항한 사람은 시은이뿐이었다.
하지만 시은이는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도 할 줄 모르는데, 마력을 키우다니.
“정말이야. 네 사람 다 꽤 마력이 대단하던데?”
“네 사람 전부 저항했다고?”
“그래. 특히··· 시연이가. 자칫했으면 못 보낼 뻔했어. 도대체 그 동안 아이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그렇지 못한 건가.
아마 그 중에서 가장 가고 싶지 않았던 사람은 시연이 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마 이미 알고 있었겠지.
그려준 그림 중에는 거대한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담겨 있었던 적도 있으니까.
거대한 게이트가 수 없이 펼쳐진 하늘이 그려져 있던 그림.
다만 그 아래 빌딩의 전광판에 새겨져 있던 시간은 오늘이 아니었다.
그리고 난 그런 시연이의 예지가 틀린 것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