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37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훅하고 들어오는 향신료의 향기.
그리고 그 안에서 굉장히 불쾌한 냄새가 풍겼다.
공기야 물론 서울과 다를 수 있지만, 이건 그보다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 풍겨오는 기분 나쁜 냄새.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좋은 냄새도 나쁘게 느껴질 수는 있다.
나 역시 중국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공기 자체가 이렇게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건가?
‘내가 이렇게 편협한 사람이었나?’
아무리 싫은 곳에 왔다곤 하지만 공기가 기분 나쁘다니.
“···삼촌, 여기 뭔가 이상해요.”
하지만 이런 걸 느낀 건 비단 나뿐이 아닌 모양이다.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 중에 상당수의 인상이 좋지 않은 걸 보면 확실하다.
시연이나 시은이, 나리까지도.
처음 와본다며 설레하던 아이들이 중국에 그리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텐데.
“진. 이거···.”
그 중에서도 라미야의 표정은 특히나 좋지 않았다.
우리 중에서 ‘공간’의 기운에 가장 예민한 그녀는 이게 단순히 나쁜 기분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줬다.
“···아, 그래.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라 잠깐 잊고 있었는데 맞는 것 같아.”
“이거 설마···!”
이 둔감한 이루까지 알아챌 정도면 생각보다 더 가까울지도.
그래. 이건 오래 전 느꼈던 그 날의 감각.
최후의 게이트를 앞에 뒀을 때의 기분이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상이 제법 괜찮아 보이는 장년의 남자가 가장 앞에서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당연히 나야 상대가 누군지 알지 못했는데, 정민이가 조용히 뒤로 다가와 상대에 대해 귀띔해줬다.
“저 자가 바로 현 중국 국무원의 총리인 저우비장이란 자로 주석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중국의 최고 실세입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주석을 뒷방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란 말도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생각보다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마중을 나왔다는 소리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도 방문하지 않는 이상 보기 힘든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드는 생각은 하나다.
“그러니까, 여기로 날 오라고 한 게 저 놈이란 소리네?”
“네?”
당황한 안정민이 뭐라 더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나는 저우비장이란 자의 앞으로 나섰다.
“반갑소. 한국에서 온 이진이오.”
초면임에도 일부러 하오체를 사용했다.
그리고 통역 마법 역시 이번에는 제대로 기능을 했다.
“···중국어를 하시는 것 같진 않고, 이게 통역마법이군요.”
“이곳에도 쓰는 사람은 제법 있을 것 같소만.”
상대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낮추지 않기 위함이지만, 아마 국무원 총리라는 자리에 있으면 듣기 쉽지 않은 말투겠지.
그의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뒤에 있던 수행원들 역시 그런 내 말투에 잠시 발끈하긴 하지만 섣불리 나서진 않았다.
‘미리 언질을 해둔 건가?’
내가 이런 식으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예상을 했다는 말인데, 역시 만만히 볼 인물은 아니다.
수십 억 인구의 정점에 오른 자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의 깊이.
“무리한 요청이었음에도 이렇게 흔쾌히 와주신 점, 중국인민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무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청한 것 자체가 문제 아니오?”
“상황이 워낙 다급해 무례라는 걸 알면서도 도리가 없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시길 바랍니다.”
계속되는 내 하오체에도 불구하고 이자는 내게 끝까지 존칭을 사용했다.
마치 자신이 하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이 대화에서 놀란 건 나뿐이 아니다.
각성자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지만, 안정민을 비롯한 국정원 요원들은 심적 동요가 느껴지는 게 보지 않아도 전해질 정도로 였다.
“다급한 상황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지는 군.”
“자리를 마련해놨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심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일행 분들은 그 사이 불편함이 없도록 저희 쪽에서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국가의, 그것도 이런 초강대국의 실세라는 사람으로서 쉬이 보일 수 있는 자세는 아니었다.
뒤에 있는 이들이 참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걸 보면 그만큼 아랫사람들에게 받는 신망도 두텁다는 의미였다.
조금은 달라보인다.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저 자세로 나오는지는 이미 예상이 되는 바.
“일단 게이트부터 봤으면 좋겠소만. 그 때문에 나를 부른 게 아니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설명을 한다해도 내가 직접 보는 것보다 더 나은 설명은 없으니까.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한국의 정보력도 보통이 아닌가 봅니다.”
“와서 안 것이오. 이렇게 지저분한 마력은 잊을 수 없는 법이니까.”
“저는 각성자가 아니라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군요. 그럼 바로 가보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랐다.
십여 대가 넘는 차 보닛에는 오성홍기가 꽂혀 있었고, 가는 길에는 그 어떤 막힘도 없었다.
신호도, 차량도 아무것도 막을 것이 없는 넓다란 도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 안에서 나는 다시 물었다.
“언제 생겼소?”
“그리 오래 되진 않았습니다. 워낙에 거대한 탓에 쉽사리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변만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공략팀을 구성해 봤지만···.”
“들어가지 못했겠지.”
이번에는 내 말에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차 안에는 두 사람뿐, 운전기사는 어차피 듣지 못하니 실상 그 어떤 말을 해도 거리낄 게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물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내가 가진 물건에 대해.”
“···그저 게이트와 관련된 것이라는 예상을 한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공동 연구를 요구했나?”
하오체도 아닌 명백한 하대.
하지만 총리는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고개를 조아릴 뿐.
“그 건 멍청한 자들이 멋대로 벌인 일이었습니다. 제가 미리 알았다면 절대 그렇게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하나 더. 북한 각성자 문제도 모르는 일이었나?”
“···그건 제가 지시한 게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마음에 드네.”
“네?”
실수를 인정할 줄 안다면, 잘못된 것은 바로 잡으면 된다.
차가 달린지 30여분이나 지났을까.
마음이 묘하게 가라앉기 시작할 즈음 차가 멈춰섰다.
내려선 곳은 너무나도 잘 아는 장소.
외국에 별 관심이 없는 나지만 저 사진만은 모를 수가 없다.
중국 민주화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
자금성 입구였다.
“설마, 게이트가 이 안에?”
“네. 지금은 입장을 막아둔 상탭니다.”
넓이만 70헥타르에 달한다는 거대한 궁궐.
“언니, 여기 자금성이야! 저 사람이 그 사람이지?”
“사진 찍자, 사진.”
“도진이 오빠 우리 사진 찍어줘. 여기서 사진 찍어도 되죠?”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에 잠시 정신이 혼미하긴 하지만,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
어차피 저 아이들을 데리고 가진 않을테니까, 입구에서 찍는 사진 정도는 눈 감아줘야 불평도 하지 않겠다 싶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정확히는 하늘처럼 보이는 게이트를.
아마 일반인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헌터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잘 가려뒀다.
“···크기만으론 절대 뒤쳐지지 않겠네. 우리가 들었던 게이트랑 비교해도.”
나도 그렇지만, 라미야의 눈을 가리는 건 불가능하다.
어쩌면 라미야가 나보다 더 또렷하게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들어가 보자.”
“준비도 없이 이렇게?”
“지금 바로 간다고?”
내가 들어가자고 한 건 자금성 내부를 말한 거고, 라미야와 이루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다.
“무슨 소리야. 너희가 게이트를 왜 들어가.”
“···설마, 혼자 들어갈 생각은 아니지?”
왜 아니겠나.
이제 저번과 같은 일은 사양이다.
물론 중국을 비롯한 다른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내가 강해진 것은 맞지만, 절대 그런 상황을 바란 건 아니었다.
될 수 있으면 모두가 살아돌아가길 바랬다.
네가 전前 게이트 관리국장에게 부탁해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던 건, 정말 만약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모두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절대 그들의 죽음을 통해 강해지겠다는 마음을 먹은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알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오히려 그 전까지 내 등을 맡겼던 동료들이 오히려 걸림돌이기도 했고.
그러니 누군가와 함께 들어갈 이유가 없다. 적어도 지금은.
* * *
“당연한 것 아닙니까. 게이트는 중국의 것이니 안에서 나오는 것도 모두 중국의 소유물입니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어서 외부에 도움을 청한겁니다. 그런 논리로 나온다면 누가 돕겠습니까.”
“흥! 그래서 난 처음부터 반대했소. 어차피 언젠가는 나올 터, 몬스터라는 것도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 아니오? 밀어붙인다면 못 잡을 것이 없지.”
“그래서.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저 상태로 이렇게 계속해서 심력만 소모하며 기다리잔 말입니까?!”
난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 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어차피 알아들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직 게이트를 어찌할지 저들끼리 결론도 내지 못한 상황에서 날 부른 셈이다.
조금 짜증이 나려는 찰나, 안정민이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건네왔다.
“저들은 중앙정치국의 상무위원들입니다. 한 마디로 지금 중국 권력의 가장 핵심에 있는 자들이죠. 보통은 태자당과 상하이방, 청년단 이라는 세 계파로 나뉘는데.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저우비장이 속한 상하이방을 견제하기 위해서 태자당과 청년단이 힘을 합친 모양이네요.”
일명 상무위원이라 불리는 6인.
그 중에서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저우비장 총리도 있었다.
“아까는 저 사람이 지금 최고의 실세라며.”
“왕이라도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리지는 못하는 법이죠. 게다가 저우비장이 없다면 당장에라도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자들이니, 견제는 당연한 걸 겁니다.”
권력을 위한 견제?
그게 지금 저들이 싸우고 있는 이유였나.
“···진짜 한심해서 못 봐주겠네.”
직책이 있어서 그런가 얌전하게 앉아서 열띤 논쟁을 벌이던 이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내 목소리가 똑똑하게 들렸을 테니까.
“···당신, 지금 뭐라고 했지?”
“중국어를 한 것 같진 않고, 이게 그 각성자들이 쓴다는 사술인가?”
이 와중에도 각성자들을 자신의 아래로 두고 싶어하는 저 우월주의.
이런 이들에게 나라를 맡겨야 하는 일반 시민들이 불쌍할 지경이다.
“지금 서로를 견제하는 게 문제인가? 당장이라도 저 게이트가 열리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지 생각은 해봤나?”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문제지, 외부인이 나설 일이 아니오.”
이건 또 무슨 개소린지.
이들은 게이트에서 넘어오는 몬스터들이 무슨 동네 건달 무리쯤으로 보이나 보다.
“몬스터를 본 적이나 있나? 아, 그럴리가 없겠지. 안전한 곳에 숨어서 애꿎은 각성자들만 보내 해결하라고 하니까.”
“당신! 더 이상 무례하게 나오면-!”
“어쩔 건데?”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