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36화.
산닭이라는 것 자체가 시장에서 대량으로 구할 수가 없다보니 그냥 일반 닭을 쓰려고 했더니.
“안 됩니다. 음식 이름 자체가 혜산 산닭구이인데, 일반 닭을 쓴다는 건 거짓말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장사를 하고싶진 않습니다.”
“그래도 이왕 찾아온 사람들을 봐서라도 어느 정도 타협은···.”
“사장님, 전 정직하게 장사하고 싶습니다.”
너희 집안이야 말로 수십 년간 사람들을 속인 이력이···.
물론 이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겪어본 김태영이란 인물은 적어도 이전의 김씨 부자들과는 달랐으니까.
산닭 몇 마리를 손질해 뼈를 발라내고 태영이가 직접 만든 양념장에 재워뒀더니 그래도 양이 그리 적지는 않았다.
다만 이걸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느냐가 문제인데···.
‘저기에 들어간 술만 생각해도 가격을 따지기가 힘든 건데···.’
거기에 이익까지 생각하자면 일인당 5만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는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금액이고.
“···결국 오늘도 적자 장사를 해야겠구나.”
“사장님 돈은 상관없다고 하셨잖습니까.”
사실이 그렇긴 하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에 수십 억이 들어오는 판국에 이런 가게를 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
이건 일종의 내 취미생활인 셈이다.
메뉴판에 낯선 이름이 적혀 있어서인가? 어쩌면 북한 음식이라는 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덕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손님이 많이 찾아 재료가 일찍 떨어져 버렸다.
“이제 겨우 초저녁인데··· 그렇다고 벌써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사장님, 원래 유명 맛집들은 일찍 재료가 떨어져서 마감이 빠른 법입니다.”
“···너도 참 적응이 빠르구나.”
북한에도 맛집이라는 개념은 있겠지만, 저런 걸 배운 건 분명 한국에서겠지. 내 손목을 걸어도 좋다.
오늘만큼은 태영이가 주방을 담당하고, 내가 홀을 책임졌다.
둘 다 익숙한 위치가 아니라 조금 버벅이긴 했지만 단골들이 알아서 움직여준 덕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사장님, 오늘 음식 정말 맛있었습니다. 북한 음식이라서 그런가 뭔가 기분도 묘하고. 산닭이라고 해서 질길 줄 알았는데 엄청 부드럽네요. 냄새도 하나도 없고.”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증류주로 만든 과실주에 담궈 재웠으니 냄새가 날 리가.
아마 상한 고기를 넣어도 회생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나가는 손님들 계산을 마치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봤다.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태영이.
“얼마나 남았어?”
“잠시만요··· 이제 한 6인분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뭐랄까 조금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혜산 산닭구이라는 이름의 음식은 술로 재운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사실 밥과 곁들이는 찬이라기 보단 오히려 안주에 가까운데.
막상 술을 즐길 이들이 오기도 전에 이미 재료가 떨어져 버린 셈이니까.
“안녕하세요. 장사하는 거 맞죠?”
그리고 마침 또 새로운 손님이 가게로 들어섰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궁금증은 잠시 뒤로한 채 자리를 안내했는데, 주방에서 태영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고개를 내밀었다.
‘쟨 또 왜 저래?’
눈빛이 요상한 게 마치 날 처음 봤을 때랑 비슷하다.
“사장님. 저 여기 엄청 힘들 게 왔어요.”
“그러신가요?”
지금 가게에 오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오다가다 들릴 수 있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미리 신청을 한 뒤, 국정원 직원이 내미는 비밀유지 서약서에 서명을 한 뒤에야 겨우 입장이 가능한 외지인들.
사실 같은 서울에 살면서 외지인이라는 표현이 우습기도 하고, 국정원이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 그 사람들이야 간혹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지는 파급력이 얼마나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알고 있으니, 딱히 제지하지는 않았다.
아마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느긋하게 장사를 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 어찌보면 상부상조 하는 셈이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긴 하지만 처음보는 여자 손님은 아마도 후자.
“일정도 다 미루고 겨우 온 거라고요. 그런데 오늘은 메뉴가 좀 독특하네요?”
“아, 네. 오늘은 북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데··· 일행은 없으신가요?”
“저희 사장님이 오시기로 했어요. 이제 곧 오실 때가 된 거 같은데.”
“그럼 주문은 그 때 받을까요?”
“아뇨. 그냥 미리 2인분 주문할게요. 금방 오신다고 했으니까.”
일정을 미루고 왔다는 말에 그제야 여자가 누군지 떠올랐다.
아마 최근에 제법 인기가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다는 여배우였지 아마?
티비라고는 뉴스가 아니라면 간혹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예능 정도나 지나가며 보는 나로선 그리 감흥이 없긴한데.
“태영아, 2인분 주문이다.”
“네!”
평소에도 매사 최선을 다하는 녀석이긴 하지만 이번은 또 각오가 남달라보이는 표정으로 고기를 심각하게 쳐다봤다.
“안 챙기고 뭐해?”
“잠시만요. 남은 부위 중에서 어디가 가장 맛있을까 하는 생각중입니다.”
닭을 통째로 손질한 탓에 여러가지 부위가 섞여있는 통을 유심히 보고 있는 모습은···.
그래.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한심했다.
“쓸데없는 짓이야. 어차피 얇게 저며놨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역시 다리와 가슴 살의 비율을 적절하게 맞추는 게 좋겠죠?”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무슨 수술실의 의사처럼 집게를 움직이는 태영이를 뒤로 하고, 기본으로 제공되는 찬을 챙겨 홀로 나왔는데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가게로 들어섰다.
“이거 이제야 찾아오게 됐네요.”
“안녕하세요. 아, 혹시 사장님이라는 분이···.”
옆집 남자였다.
분명 무슨 엔터테인먼트 사장이라고 했었지.
그런데 이렇게 여배우와 단 둘이 식사같은 걸 해도 괜찮은가? 괜히 사진이라도 찍혔다가 구설수에 오르면 이미지에 타격이 가지 않나 싶었지만.
뭐, 알아서 하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적어도 이 식당에서 사진이 찍힐 일은 없다는 점이고.
“사장님. 왜 이렇게 늦었어요. 제가 미리 시켜놨어요.”
“응. 잘 했네.”
애고가 섞인 목소리, 그걸 익숙하게 받아 넘기는 따듯한 미소.
한 눈에 보기에도 단순한 직원과 사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음식 나왔어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주방에서 흘러나오고.
“응? 이거 다 가슴살 부위같은데?”
“네.”
“···왜 또?”
“아니에요.”
아니긴.
“너, 저 여자 손님 누군지 알지?”
“당연히 알죠. 우리도 요즘은 한국 드라마 많이 봅니다.”
“그럼, 팬?”
“···팬은요. 무슨.”
이 자식이 왜 나한테 화풀이야.
한대 확 쥐어박을까 하다 괜히 심난한 애 마음이 더 상할까 내버려뒀다.
“팬이 달궈지면 구워서 드시면 됩니다. 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그럼 사장님. 술 한 병 부탁해도 될까요.”
“소주로 드릴까요?”
“음··· 듣기론 여기에 제법 좋은 술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한국 연예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커다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지.
권력과 줄이 안닿아 있을리가 없을 테고, 아마 복분자주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있다는 의미다.
“판매용은 아니지만, 이웃 사촌이니 한 병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이웃 사촌이라, 오랜만에 듣는 단어네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딱히 잘해줄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웃에 사는 사람이니까.
어차피 요리에도 들이붓는 마당에 한 병 정도 내어주는 건 괜찮다.
“삼촌-!”
아끼고 아꼈던 술이 하루 아침에 싸구려(?)가 되는 느낌이 조금 이상하지만 한 병을 따라 내어주는데, 시은이가 가게로 들어왔다.
아니, 들어오려다가 말고 입구에서 잠시 굳어버렸다.
“어, 어···.”
“너도 아는 구나?”
“진, 진짜로 설미나?!”
시은이가 입까지 틀어막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나?
“이름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배우라고 하던데.”
“···삼촌, 설미나도 몰라?”
“유명한 사람인 건 알겠는데, 너무 아는 채하면 불편할 거야.”
“안다, 뭐. 내가 어린 앤가?”
어린 애들은 자꾸만 자기가 어린 애가 아니라고 하지. 행동도 그에 걸맞게 하면 좋겠는데.
“안녕하세요.”
가게라고 해봐야 테이블이 겨우 4개 뿐인 작은 공간이다. 모른 척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상황.
어색하게 옆 테이블에 앉은 시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네? 네··· 안녕하세요. 참! 드라마 너무 재미있게 잘 보고 있어요!”
“어머, 고마워요.”
꾸며진 얼굴인지,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설미나라는 배우는 시은을 향해 참 매력적인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시은이가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도진이가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질투심을 느끼려나. 그러진 않겠지.
“삼촌, 나도 밥.”
“그래. 시연이는?”
“언니도 좀 있다가 온다고 했어. 나 먼저, 배고파 죽을 거 같단 말야.”
이러고도 애가 아니라고?
“그래. 잠깐만 기다려.”
아쉽지만, 오늘 장사는 이걸로 끝이다.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지금 와서 다른 걸 준비할 수도 없으니까.
“삼촌, 시은이 왔어요?”
메뉴판을 걷으러 밖으로 나가는데 마침 시연이가 들어섰다.
“그래, 얼른 들어가봐. ···놀라지 말고.”
“네? 무슨 일 있어요?”
의아해 하면서도 안으로 들어가는 시연이.
그래도 시연이는 진짜 어른이지, 아마 시은이처럼 대놓고 놀라거나 하지는···.
꺄아-!
내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높은 환호성에 가까운 소리.
시연이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나? 이건 좀 의외인데.
“···도대체 연예인이 뭐라고.”
고개를 젓고선 메뉴판을 집어드는데, 검은 정장 차림의 국정원 요원이 마침 기다렸다는 듯 다가왔다.
“선생님. 저희 쪽에서는 준비가 다 됐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가면 됩니까?”
“주말이 편하실 것 같아서, 이번 주말로 일정을 잡아뒀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은 시은이의 입학식.
그 전에 찜찜한 일은 마무리하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
* * *
딱히 의전을 바라는 건 아니다.
아니, 그런 겉치레는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다.
그래서 그냥 홀가분하게 혼자 얼른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그걸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도대체 그 만약의 사태가 뭔지 모르겠지만 한사코 따라나서야 한다는 안정민이야 그렇다 치자.
어떤 부분에서 이건 국가적인 행사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네.
“···넌 왜 가는 건데?”
“말했잖아. 형 혼자가면 진짜 전쟁이라도 낼 것 같아서 불안해서 안 되겠다고.”
“야, 김이루. 아무리 그래도 내가···!”
나도 나이가 있는데, 수틀린다고 내 맘대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무책임하진 않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래. 역시 진 혼자서는 불안하지.”
“라미야, 너는 네스티나 보고 있지. 뭘 굳이 너까지···.”
“네스티가 언제까지 애인줄 알아? 이미 고등학생 수준까지 성장했다고. 그 놈의 자식 이젠 아예 저 혼자 살겠다고 기숙사로 나갔다고.”
물론 섭섭한 마음이야 있겠지만 언젠가는 일어났어야 하는 일.
차라리 이렇게 한 번에 떼어내는 게 덜 아플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번의 게이트를 공략하는 사이 그렇게 성장했나?
게이트의 마력을 몽땅 흡수해버리는 능력 덕분에 같은 조원들의 불만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쨌든 그들의 입장에서는 실전 훈련을 갖지 못하게 되는 셈이니까.
“언니, 나 중국은 처음이야!”
창가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시은이.
“네가 어디는 가봤고?”
“아, 그러네? 헤헤-.”
이루가 간다고 하니, 도진이가 따라 나섰다.
그리고 도진이가 간다니 시은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썼고, 결국 시연이까지. 당연하는 듯이 나리까지 함께했다.
머리가 지끈 거린다.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지금 경호 목적의 국정원 요원들과 우리 가족들.
그리고 이루를 포함한 어중이 떠중이까지 스물이 훌쩍 넘는 인원이 탑승한 상태다.
‘그냥 혼자 조용히 다녀오는 게 속 편한데···.’
그래야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처리(?)할 수 있는데 말이지.
이렇게 보는 눈이 많아지면 아무리 나라도 점잖게 나갈 수 밖에 없어진단 말이다.
적어도 조카들이 보는 앞에서 깽판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은데 말이지.
뭐, 정 수틀리면 또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