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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34화 (134/153)

귀환자 식당 134화.

“어? 벌써 오셨어요? 좀 더 오래 있다가 오실 줄···. 근데, 삼촌. 표정이 왜 그러세요?”

“그냥··· 아무것도 아냐. 애들은?”

“훗-. 둘 다 도착하자마자 들어가서 뻗었어요. 삼촌은 식사하셔야죠?”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저녁을 안 먹을 수는 없고.

원래는 식당에서 태영이랑 함께 간단하게 차려먹을까 했었는데, 상황이 이리 된 거 어쩔 수 없지.

시간을 보니 9시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 이제와 뭘 하기엔 너무 번거로운 시간이다.

“음··· 그럼 우리 치킨이나 시켜 먹을까?”

“전 치킨은 별로···.”

늘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봐왔던 시연이의 거절은 조금 예상외였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싶어 살짝 당황하던 찰나.

“치맥이면 모를까요. 헤-.”

순간 맥이 탁 빠지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시은이야 진즉에 알아서 말을 놓을 정도로 이미 날 편하게 대하고 있지만, 시연이는 아직까지도 내게 조금 거리감을 느낀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녀석, 이제야 겨우 마음이 좀 열린 건가?’

오랫동안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살아온 탓에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시은이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저렇게 티 한 점없이 해맑게 자랄 수 있었던데는 시연이의 그런 숨은 노력이 있었으니 가능했던거다.

내가 그걸 몰랐을리 없고.

아마도 시연이는 자신의 상황이 조금 변했다고해서 또 금방 헤실거리는 것 자체가 너무 속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우려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시연이라면 분명 그런 생각도 했을거다.

이건 과거의 잔재에 남은 중압감이 시연이를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랫동안 따라다니다가 이제야 겨우 손을 놓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런 시연이가 대견스러웠다.

마음같아서는 그동안 고생했다고, 이제는 또래 친구들처럼 마음 편히 즐기면서 살아도 된다고 다독여주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지금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애절하게 변해질 것 같아 참기로 했다.

“그래, 치맥 좋지!”

목소리가 너무 컸나.

“으음··· 치맥?”

이건 내 목소리가 컸다기보단 시은이의 알콜 사랑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봐야겠지.

“···자다 일어나서 맥주가 들어가?”

하암-.

그래도 어느새 옷은 갈아입고 누웠는지, 잠옷차림으로 입이 찢어져라 기지개를 켠 시은이가 정색을 하고선 날 쳐다봤다.

“삼촌, 그게 무슨 말이야. 자고 일어나서 입이 텁텁할 땐 역시 탄산이지. 깔끔하게 씻어줘야 하는 거라고!”

“그래. 맥주에 탄산이 있긴 하지···.”

하지만 보통은 자고 나서 입이 텁텁하면 양치를 하지 않니?

“그런데 너 이 시간에 치킨이랑 맥주같은 거 마셔도 괜찮겠어?”

“삼촌. 잊었나 본데, 나도 각성자거든? 살찔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좋긴 하네. 히히히-.”

도진이는 저런 시은이를 보며 ‘귀엽다’고 하지 아마?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해.

“그래 그럼 치킨은 후라이드, 양념 하나씩. 두 마리면 되려나?”

“···으응?”

이번엔 시연이까지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일인일닭. 모르세요?”

“···그래.”

결국 뒤이어 나온 나리의 몫까지 우린 총 4마리를 시켰다.

물론 나리가 먹을 콜라에 맥주까지.

곧이어 도착할 배달기사의 양손이 아주 묵직하겠구나.

* * *

늦은 시각, 국정원 회의를 마친 안정민은 사무실로 돌아와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어지간해서는 회의 조금 한다고 피곤함을 느끼진 않았는데, 오늘은 그만큼 길고도 어려운 주제라서 정신적으로 지치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차륵-.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안정민은 다시금 회의 자료를 넘겼다.

회의 자료에는 중국에서 들어온 각성자 파견과 헌터 장비 제작 의뢰 리스트로 빽빽했다.

“···도대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새어나간 거지? 그렇게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했는데. 거기다 이 말도 안 되는 요구들은···.”

“그도 그럴 게, 지금 중국은 하루에 사망자가 네 자리 숫자를 넘긴지 오랩니다. 재수 없으면 만 단위가 나오기도 해요. 아마 더 이상 자존심만 세우기는 힘든 지경이라는 말이겠죠.”

“아무리 그래도 이진 선생님을 보내달라니, 이건 도무지 들어줄 수가 없는 요청이야.”

국가 공식 문서에 경제 보복을 암시하는 단어까지 쓸 정도면 확실히 절박하긴 한 모양이다.

어째서인지 중국은 인구수에 비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각성자가 적은 상황.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해결책 마련을 위해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 요청을 한 셈이다.

문제는 이진이란 인물은 나라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란 점이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만 터지게 생겼네.’

아마 대상이 이진이 아닌 헌터였다면 이렇게까지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을 거다. 그 점이 또 묘하게 씁쓸한 맛을 남겼다.

“중국에서도 이진 선생님에게 직접 이야기는 꺼낼 생각도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그래봐야 오히려 반감만 살 테니까···.”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간 직후.

중국인 헌터들이 독단적으로 움직이다 전멸한 탓에 공략은 더욱 힘들어졌었다는 이야기에서 이진이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건 바보가 아니라면 알아챌 수 있을테니까.

“그래서 만만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거겠지.”

“하지만 경제 보복을 이렇게 대놓고 문서에서 언급하다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나도 화는 나지만 어쩌겠어. 아무리 우리나라가 지금 전 세계 헌터들의 중심이라곤 하지만 경제력은 아직 중국을 따라가기는 힘든 상황인데. 정말 저들이 마음 먹고 경제를 압박하면 헌터들이야 몰라도 일반인들은 버티기 힘들어져.”

“···모르는 사람들은 또 이진 선생님을 욕하겠죠.”

빌어먹을 상황이지만 그게 사실이다.

“소수민족들 독립은 어떻게 되가고 있어?”

“난리도 아닙니다. 묘족이 얼마 전 시위를 위해 모이려고 했었는데, 공산당에서 군대까지 동원해서 저지했습니다. 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외신에도 뉴스 한 줄 조차 나오지 못했어요. 그 뒤로는 다른 쪽도 상황을 지켜보는 추세고요.”

“젠장, 차라리 시원하게 분열이라도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질 거 같은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일이라는 건 그들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일.

그러니 쉽게 포기하진 않겠지만 어려운 길은 분명하다.

“대통령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뭐라고 하시고 말고 할 게 있겠어? 당장은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보자고 하시지.”

“들어주는 척이라니···.”

우선 헌터 파견은 당장 어렵다.

오래 전 일본에서 있었던 일때문에 헌터 파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무시하지 못하는 데다, 당장 한국도 마냥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니.

“우선 삼영그룹에 물건 확보가 얼마나 가능한지나 알아봐야지. 그거라도 보내주면 당분간 시간은 벌 수 있을테니까.”

“저, 차장님.”

비서가 굳은 표정으로 안정민을 불렀다.

“···왜?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이런 말, 조금 이상하게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나, 너 아니라도 이미 피곤하다. 할 말 있으면 시간끌지 말고 얼른 말해.”

안정민은 그래도 우물쭈물하는 비서에게 네가 언제부터 내 눈치를 봤냐고 웃으며 분위기를 조금 풀어주자,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진 선생님께 부탁을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뭘··· 설마 중국에 가달라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서는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 믿었는데.

“아뇨.”

단호한 대답이 들려오고, 비서는 방금 전보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말했다.

“역으로 중국에 압박을 해달라고요.”

“···중국을?”

“네.”

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민폐를 끼치는 국가지만 전 세계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화교를 가지고 경제를 흔들 수 있는 중국을 상대로 협박? 미친 생각이다.

‘아니지··· 저쪽에서 경제 보복이니 뭐니 들먹이며 협박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건 또 뭐야?’

똑같은 사람, 아니. 똑같은 국가가 된다고?

그러라고 하지 뭐.

“···나 내일 오전에 선생님 식당에 들렸다가 출근할 테니까, 누가 나 찾으면 잘 둘러대.”

“비밀로 하시는 겁니까?”

“그럼? 한 나라를 무력으로 협박해달라는 이야기를 대놓고 할까? 국제적으로 매장당할 일 있어?”

국제적으로 매장당하지야 않겠지만 적어도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거다.

상대가 아무리 그 중국이라고 해도 말이지.

“알겠습니다.”

* * *

주말을 잘 보내고 아침 일찍 가게로 갔더니, 태영이는 평소와 다름 없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도진이가 있을 때 만들었고, 덕윤이가 수련을 했던 곳은 이제 태영이의 차지가 되었다.

“후우···. 오셨습니까.”

“그래. 마력이 제법 늘었네?”

“네. 다음 주 정도면 굳이 파주까지 가지 않아도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실하다고 해야할까?

태영이는 머리도 좋고 확실히 재능이 있다고 말할만 했다.

라미야처럼 지구상 어디든 이동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아직은 요원한 일이지만, 적어도 제 몸 하나 정도는 북한을 오갈 수 있을 정도.

···이 녀석 이거 나중에 딴 맘 먹는 건 아니겠지?

‘아무렴 그럴 리는 없겠지. 똑똑한 녀석이니까.’

아마 이곳에 와서 더 절실하게 느꼈을 거다.

본인의 능력을. 그걸 알게 되었으니 나중에라도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

“아, 사장님. 안 쪽에 손님이 와있습니다.”

“손님?”

이 이른 시간에 손님이라면···.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정민의 입에서 선생님이라니,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네.

그렇다는 말은 아카데미의 학장으로서가 아닌 헌터로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다는 소리겠군.

“태영아, 아무래도 오늘 시장에는 너 혼자 다녀와야겠다.”

“네. 걱정마세요. 저도 이제 한국 장마ㄷ··· 아니, 시장에 익숙해졌으니까요. 뭘 사오면 될까요?”

사실 어제 저녁에 치킨을 먹다가 문득 생각한 메뉴가 있기는 했다.

아마도 한국사람이 닭을 떠올리면 치킨 다음으로 떠올리는 메뉴가 아닐까?

하지만 굳이 그걸 해야할 필요는 없지.

“오늘은 네가 한 번 정해보면 어때?”

“···제가요?”

“왜. 자신 없어?”

당황은 하지만 자신이 없는 표정은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었으니 그간 얼마나 맛있는 산해진미들을 맛 봤겠나.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도 가르쳐주면 금세 따라하는 것 자체로 이미 증명된 셈이다.

원래 요리란 많이 먹어본 사람일 수록 만들기도 잘 하는 법이니까.

아마 태영이라면 한국 사람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메뉴이면서도 입에 잘 맛는 음식을 알지 않을까 싶어서 꺼낸 말이다.

“아뇨. 해보겠습니다. 그럼 재료 구매에는 얼마까지 써도 됩니까?”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예전에 먹었던 것 중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걸로 해보겠습니다.”

“기대할게.”

부담을 주려는 말이 아니라, 정말 기대가 된다.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그렇지만 나도 북한 음식이라곤 먹어본 적이 손에 꼽으니까 말이지.

이왕이면 새로운 걸 기대해보겠다는 말이다.

“괜찮겠습니까?”

태영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서자 이번엔 안정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뭐가 괜찮냐는 의미일까.

“음식이? 아니면 시장에 혼자 보내는 게?”

“···둘 다요.”

“괜찮을 거야. 저 녀석, 생각보다 믿을만 하거든.”

“어떤 부분이요?”

“둘 다.”

내 말에 안정민은 조금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태영이는 오롯이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데려온 거니까.

“그건 됐고. 오늘은 아침부터 무슨 일로 온 거야?”

그 말과 동시에 안정민 과장이 자세를 바로 했다.

지금까지도 딱히 삐닥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가짐의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제스처인 셈이다.

“오늘은 국가를 대신해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살짝 긴장이 되네.

이렇게 나올 정도면 대체 얼마나 거창한 부탁을 하려고 이러나.

사람 불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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