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32화.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갔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확인해보자는 것.
어쩌면 회의 시작부터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해보지 않고선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이 주제였으니까.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원판을 들고 있는데, 시연이가 문득 물었다.
“삼촌, 그게 뭐예요? 뭐길래 아까부터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 있어요?”
“글쎄.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아직 모르겠네.”
2개의 붉은색 돌이 박혀있는 둥그런 원판.
이걸 남기고 간 녀석은 이게 열쇠라고 했는데,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는 오리무중이다.
이왕이면 사용법도 좀 알려주고 갈 것이지.
게이트에 가져다 대보기도 하고, 적당한 게이트 하나를 골라 손에 들고 게이트에 직접 들고 가보기도 했다.
하지만 원판이나 게이트나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마력을 주입해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도대체 이걸로 뭘 어쩌라는 건지.’
“무슨 단추처럼 생겼네요.”
“그래? 시연이가 볼 때는 이게 어디에 쓰이는 거 같아?”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건데, 막상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니 왜 그랬나 싶다.
어차피 봐도 모를 텐데 말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엄청 중요한 거라는 건 삼촌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은데요?”
“이거, 열쇠래.”
“···열쇠요?”
원판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시연이.
그리고 그 뒤로 눈시울이 붉게 물든 시은이가 비행기에 오르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도 올라오는 거지? 도진이 녀석은.”
“아마 그렇겠죠? 요즘은 매주 올라오잖아요.”
주말이라고 해봐야 이제 겨우 이틀 남았는데,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
“시은아, 손 그만 흔들고 이제 앉아야지.”
“···힝. 삼촌은 이해 못 해.”
지금 이 비행기 안에서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나뿐인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언니 손에 든 건 뭐야?”
“아, 이거? 삼촌 물건인데··· 어딘가에 쓰이는 열쇠래.”
“열쇠치곤 희한하게 생겼네? 꼭 무슨 별자리 지도 같아.”
···별자리 지도?
“별자리라니?”
“왜 그런 거 있잖아. 일 년 동안 하늘에 별자리 변하는 거 그려놓은 거 보면 이런 모양이지 않나? 그··· 뭐라더라, 천문도라고 하던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느낌을 받았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물이 넘치는 걸 확인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나?
“···아무래도 너희 셋만 가야겠다.”
“삼촌은요?”
“갑자기 할 일이 생겼어. 식당 오픈 전에는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애들데리고 먼저 돌아가.”“···알겠어요.”
살짝 해롱거리는 시은이가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연이가 함께 있으니 별걱정은 하지 않았다.
문이 닫힌 비행기에서 다시 내려 곧장 아카데미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오후 수업 진행해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이루와 단둘인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게 별자리라고?”
“아마도.”
하필이면 둘 다 이런 쪽으로는 문외한이라 봐도 잘 모르겠지만, 이 작은 원판에 복잡하게 그려진 선들이 별자리일 거라는 느낌은 강하게 든다.
“난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그러게. 나도 너만 있을 줄 알았으면 굳이 안 왔을 텐데.”
“···이거 폭력이야.”
“나도 너랑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괜찮아.”
그렇다고 이걸 민간 천문학자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괜히 이상한 소문이라도 퍼졌다간 또 무슨 난리가 벌어질지도 모르고.
“이런 거 잘 아는 사람 없나?”
“흠. 훈련생 중에서 천문학을 공부한 사람을 찾아볼까?”
“괜찮을까?”
아카데미에 있는 훈련생들의 나이는 네스티를 제외한다면 많게는 20대 후반까지 있긴하지만, 대부분이 18세에서 20대 초반이다.
그런 걸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는 나라도 천문학이 쉽지 않은 공부라는 걸 아는데, 이렇게 복잡한 걸 어린 나이에 통달한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그런 의문이 드는 거다.
거기다 외국 국적이라면 더욱 보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을 테지. 관리자로 따라온 이들은 훈련생들이 혹여나 다른 국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까 철저하게 보호하니까.
아무리 비밀 유지를 철저히 시킨다고 해도 개인 면담이라도 하면서 원판에 대해 유출하면 곤란해진다.
“···역시 신주희 박사한테 맡기는 수밖에 없나?”
“그래도 그 여자라면 제법 믿을만하지 않아?”
제법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내가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지.
아니, 거의 유일한 존재지.
“그래야겠네. ···이만 가봐야겠다.”
“비행기는 출발했다며?”
“그렇잖아도 그래서 말인데, 라미야 지금 어디 있어?”
* * *
잠깐의 눈부심과 함께 사라지며 눈앞의 풍경이 변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이럴 때만 찾는다며 투덜거리던 라미야 대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직원이 서 있었고.
“저기···. 누, 누구신지.”
연구자들은 의사도 아니면서 왜 굳이 흰 가운을 고집하는 걸까? 박사는 흰 가운을 입어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 건가.
연구소 한 가운데 갑자기 나타났는데도 생각보다 대응은 침착했다.
“신주희 박사를 보러 왔습니다만.”
“아아-! 호, 혹시··· 이진 선생님?”
이제 알려질 대로 알려진 얼굴이라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특히나 신주희 박사와 함께 게이트를 연구 중인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네. 혹시 지금 좀 만날 수 있습니까?”
“무, 물론이죠. 이쪽으로 오시죠.”
내가 먼저 찾아오는 건 두 번째인가? 그 사이 연구소도 옮기고 많은 일이 있었는지 분위기가 사뭇 밝아졌다.
예전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있던 것보단 나아졌겠지.
“선생님! 갑자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대마도에서 바로 공간이동으로 왔으니 연락할 겨를은 없었지. 하지만 결코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갑자기 찾아왔으니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부탁이라니. 저한테요? 대체 무슨 부탁이길래 여기까지 직접 오셨어요?”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직접 행차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 조금 민망한데···.
어차피 원판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도 없는 일이라 직접 움직이는 것도 너무 당연하고.
“이것 좀 봐주셨으면 해서요.”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걸 보면서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젠 각성자가 늘어나면서 이런 것들이 일상생활에서도 간혹 보인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신주희 박사는 더 하겠지.
“이건··· 뭔가요? 오래된 유물 같기도 하고···. 아니지. 인벤토리에서 꺼내셨으니 게이트 안에서 얻은 거라는 말인데···.”
“혹시 그 원판 안에 그려진 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내 말에 그제야 안경을 쓰고 안에 그려진 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경을 다시 벗으며 말했다.
“얼핏 보기엔 별자리 같긴 한데, 저도 이쪽은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혹시 이걸 보여주러 오신 거예요?”
“네. 주변에 믿고 맡길 사람이 신주희 박사밖에 떠오르질 않아서요.”
“저, 저를 믿으신다니···.”
아니, 자꾸 그렇게 감격한 표정 짓지 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주변에 ‘박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당신 하나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어떻게. 연구해보면 알아낼 게 있겠습니까?”
“할게요! 어떻게든 해낼게요!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드시요!”
“아뇨··· 목숨까지 걸 필요는.”
애초에 별자리 연구 좀 한다고 목숨이 위태로울 일이 있겠냐.
‘···아, 중국!’
그래. 하필이면 중국에서 이걸 알고 있었지.
정확히 무슨 물건인지까지는 알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전 세계 최고의 막무가내 국가다.
막말로 특수부대를 투입해서 신주희 박사를 납치했다며 증거를 찾아 들이밀어도 자기들은 아니라고 뻔뻔하게 발뺌을 하겠지.
그렇다고 원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고, 설혹 다른 후보가 있다 한들 신주희의 상황과 별반 달라질 것도 없겠지.
사실 내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혹시 연구소에 남는 마석 있습니까?”
“마석이요? 그건 갑자기 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둬야지.
적어도 내가 부탁한 일로 신주희 박사에게 해가 가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명색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최고레벨 게이트 연구소인데, 마석이 없을 리는 없겠지.
그렇게 받은 중급 마석 하나를 받아들고, 곧장 마석의 겉면에 진陳을 새겨넣었다. 시연이와 시은이에게 건넨 것과 비슷한 일종의 위치 추적기.
“금붙이··· 그 목걸이 좀 잠시.”
“네? 아··· 네!”
마침 목에 걸고 있는 금목걸이를 받아들고, 끝에 달린 메달을 살짝 녹여 손톱만 한 마석 조각을 박아 넣었다.
단조롭던 금목걸이에 순식간에 푸른 사파이어가 박힌 모양새가 되자, 신주희 박사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각성자는 이런 것도 되는군요. 아니면 선생님이라서 가능한 건가요?”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가능합니다.”
물론 체내의 마력을 이용해 열기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말이다.
“···예뻐요. 그런데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게 뻔히 보이길래, 얼른 막아섰다.
이대로 갔다간 상상 속에서 면사포를 뒤집어쓸 기세라.
“일종의 신변 보호용 조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주희 박사는 각성자가 아니다. 시연이나 시은이처럼 마력을 불어넣어 발동하는 방식은 무용지물.
마석을 깨서 발동하게 하는 방식도 있지만, 위급한 순간에 괜히 그런 행동을 했다간 되려 적을 자극하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보호라니··· 저를요?”
“신주희 박사님이 없으면 그 원판을 해석해 줄 사람이 없거든요.”
“선생님에겐 저밖에 없는 거군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건 분명한데, 의미 전달이 왜 이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그걸 연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립니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물론이죠. 저 신주희! 이 정도 위험은 늘 각오하고 있다고요!”
“···든든하네요. 설마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믿지만, 만에 하나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무모한 행동하지 마시고, 절 기다리세요. 반드시 구하러 올 테니까요.”
“네···. 꼭 기다릴게요.”
···일부러 납치되거나 하는 짓은 안 하겠지?
“아, 선생님.”
용건을 끝내고 돌아가려는데, 신주희가 날 불러세웠다.
“뭐 궁금한 거라도?”
“네. 혹시 여기 박혀있는 이 붉은색 보석 두 개는 뭔가요? 마석은 아닌 것 같고···.”
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줘야 하려나.
사실대로 전부 말해주는 건 오히려 도움이 되질 않을 것 같은데.
“그것도 함께 알아내 주셨으면 좋겠네요.”“그럼 혹시 꺼내서 살펴봐도···.”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 원판은 눈으로 보기만 하세요. ···혹시라도 뭔가 압력을 가하거나 마력을 쏘인다거나 하는 건 절대 금물입니다.”
저 아쉬워하는 얼굴을 보니 진짜 그런 생각을 하긴 했구나.
마지막에 당부하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네. 마력을 주입한다고 뭔가 변화가 있진 않았지만, 진짜 만에 하나라도 시간? 같은 게 맞아서 엉뚱한 변화가 일어나면 정말 큰 일이다.
원판에 그려진 게 진짜 별자리라면 시간이나 계절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괜히 내가 한 부탁으로 신주희 박사가 몬스터에게 죽임이라도 당하는 건 사양이니까.
“약속하세요. 절대로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네. 약속할게요.”
굉장히 못 미더운 목소리지만, 내가 왜 이런 당부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멍청한 여자는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