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31화 (131/153)

귀환자 식당 131화.

“진, ···이게 뭐야?”

내가 꺼내어 놓은 물건을 본 이들의 반응은 모두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비슷한 생각을 했었으니까.

“일종의 열쇠라고 하더군.”

“이게 열쇠라고? 이게 무슨 열쇠야. 생긴 것만 보면 그냥 원판인데?”

“아니, 라미야. 잠깐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루 녀석이라미야의 말을 막아섰다.

“응? 그럼 뭐가 문젠데?”

“형이 말해줘. 이거 열쇠라고 들었다며, 누구한테 들었다는 거야?”

평소에는 멍청해 보이는 주제에 꼭 이럴 때만 예리하지.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 일전에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자신을 결투장··· 아니, 마왕의 사자使者라는 녀석을 만난 적이 있다. 이건 그 녀석이 남기고 간 물건이고.”

“사자? 그러니까 심부름꾼이 다녀갔다고?”

의미가 가장 빠르게 전달되는 단어는 따로 있었네.

유리코프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메를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턱을 괴고 있었고, 유리코프는 그걸 지금까지 비밀로 했다며 성을 냈다.

이루와 라미야는 원판을 살펴보기에 여념이 없었고.

“근데, 여기에 있는 이 구멍들은 뭐야?”

손바닥만 한 작은 원판은 의미를 알기 힘든 기이한 문양으로 빽빽했고, 그 주변에는 일정 간격을 유지한 채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음각된 문양은 모두 8개의 구멍을 서로 이어주는 듯한 모양새였는데, 그 구멍 중에 하나에는 붉은색의 돌멩이가 박혀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반대편에 있는 곳에도.

“···아마 그게 우리가 전에 이야기한 8개의 게이트를 말하는 것 같다.”

8개의 푸른 물결.

그게 의미하는 게 게이트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나눴었으니까.

“이 8개의 구멍이 게이트라고 해도 우리가 닫은 건 하나뿐이었잖아. 그런데 왜 2개에 구슬이 박혀 있는 거지?”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답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 붉은 돌은 단순히 게이트를 닫는다고 생각기는 게 아니야.”

“···그럼?”

생각을 접은 메를린도, 날뛰던 유리코프도 하던 것들을 멈추고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내 입에서 나올 어떤 소리를 위해.

“그 원판의 소유자가 보유한 구슬의 숫자를 나타내는 거겠지.”

“···소유자라는 건 혹시 진, 너를 말하는 건가?”

“잠깐만! 지금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그래, 이 멍청아.”

이루가 메를린과 투닥거리는 사이 유리코프는 심각한 얼굴로 원판을 들었다.

리안 네필스가 남긴 예언.그리고 열쇠라고 한 원판에 뚫린 구멍의 숫자.

“···우리가 사는 세상도 결국 반대쪽에서 본다면 게이트라는 건가?”

“그래. 우리가 몬스터라 부르는 것들 역시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지.”

“우리가··· 몬스터라고?”

이걸 단순히 생각이나 종족의 차이로 오는 괴리감이라고 단정 지어야 하는 걸까?

“거기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래도 지금 말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진 않겠지.”

글쎄, 과연 어떨까?

“게이트 너머의 세계. 그게 지구라고 하는군.”

게이트 너머의 공간이 어디로 연결되는 것인지는 정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연구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신주희 박사가 내린 결론이 맞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진짜?”

이번에는 되레 놀람의 강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래. 나조차도 신주희 박사가 말을 하기 전,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었는데 이들이라고 전혀 몰랐을 리는 없겠지.

“예상했었나?”

“솔직히 말은 안 했지만 다들 한 번쯤은 봤을걸?”

이루의 말에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거대한 폭포를 보고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를 떠올렸듯이, 이들 역시 비슷한 것들을 본 것이다.

“근데 이상해. 아무리 그래도 지구에 옷을 녹일 정도로 지독한 산성비가 내리는 곳은 없잖아?”

“지구라고 했지. 그게 지금과 같은 시대라곤 안 했어.”

“···설마 그게 미래?”

“과거일지도.”

언제부터 달라진 것인지 모르지만, 아마 그곳에 살고 있는 괴물들도 인간과 다르게 ‘진화’해간 생물일 거다.

-우리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다.

심부름꾼 녀석이 남긴 말이 이제나마 조금 이해가 된다.

이렇게까지 환경이 다른 곳에서 수십, 수만 년을 다르게 진화한 생물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겠지.

다양한 괴물이 살아가도록 진화한 지구.

어쩌면 그곳에는 인간이 없는 걸까? 몬스터들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 *

“언니, 저기 봐요! 엄청 커다란 등대!”

“저게 아마 이번에 새로 지은 걸 거야. 해양 몬스터 접근을 확인할 용도라고 하더라.”

실제로는 등대가 아닌 일종의 소나(수중음파 탐지기)가 장착된 구조물이었지만 겉으로 보이기엔 등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네 사람.

앞 좌석에는 도진이와 시은이가 타고, 뒤에는 시연이가 나리와 함께 탑승했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도로를 달리는 군용 지프가 향하는 곳은 대마도에서 유일하게 남은 식당이었다.

“원래 일본 사람은 전부 본토로 귀환시켰는데, 몇몇 분들은 대마도에 남기로 했다고 해요. 그중에 식당을 하시는 할머니는 대마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 데다 다른 친척도 없어서 한국 정부에서도 예외를 인정한 분 중 한 분이죠.”

“되게 외로우시겠다.”

“그렇지도 않아요. 유일하게 남은 민간 식당이라 일과 이후에는 정말 엄청나게 성황이거든요.”

가는 길에 이어지는 도진의 설명은 가이드를 방불케 했다.

세 사람은 도진의 설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즐겼고, 곧이어 목적했던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빠, 사람이 없는데? 혹시 문 닫은 거 아냐?”

북적거린다던 도진의 말과 다른 모습에 시은이 걱정스럽게 말을 꺼냈다.

“훈련생들은 지금 한창 수업 중이지. 아, 오늘은 자율훈련이겠지만···.”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교수들이 지금 전부다 회의 중이니까.

그렇다고 서도진 혼자서 수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인원을 다 감당할 수도 없고.

그래서 결국 오늘 오전은 자율 훈련이 된 셈이다.

“자, 들어가자. 어르신! 계세요?”

나무문에 천으로 만들어진 발을 걷으며 들어가는 전형적인 일본식 가게의 입구에서 나머지 세 사람은 사진을 찍기 바빴다.

어쨌든 이곳은 한국이면서도 동시에 얼마 전까지 일본 땅이었던 곳이니까.

세 사람이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가게로 먼저 들어갔던 도진이가 다시 나와 세 사람을 불렀다.

“얼른 들어와. 장사 하신데.”

“와-! 근데 여긴 뭐 팔아요?”

처음 접해보는 제대로 된 일식.

시은이는 잔뜩 부푼 마음으로 기대를 했는데.

“초밥이랑 회.”

“···응?”

“왜? 시은이, 너 회 좋아하잖아.”

“아니 그냥. 난 좀 더 뭔가 확~ 일본스러운 음식을 생각했는데.”

시은이의 표현에 도진이가 피식 웃었다.

“일단 먹어봐. 아마 한국에서 먹던 거랑은 다를 테니까.”

“회가 회지. 무슨 차이가···.”

“···시은아, 괜찮아?”

“어, 언니. 이거···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진짜··· 맛있어요. 뭐예요? 이게 무슨 회에요?!”

시은이와 나리가 호들갑을 떠는 사이.

“흘흘. 어때, 맛있지?”

“네, 할머니! 근데 이게 무슨 회에요?! 아니, 그보다 한국말을 왜 이렇게 잘하세요?”

“여기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운영하시던 곳이래. 그 할머니는 한국 분이셨고. 그래서 주인 할머니도 한국말을 잘하시고.”

“아아-.”

한국 정부에서 예외를 적용할만했다고 생각하는 사이.

나리는 얼른 회 한 점을 더 가져가 입에 넣었다.

“음총 브두릅다아!”

“···나리야, 입에 음식 넣고 말하면 못 알아들어.”

식당에 있는 손님이라곤 네 사람뿐이라, 할머니는 접시를 내려놓고선 설명을 곁들였다.

바쁜 시간이라면 불가능했을 일.

“한국은 보통 활어회를 즐기지만, 일본은 숙성 회를 즐긴단다. 이건 어제 손질을 해서 냉장고에서 숙성시켜둔 벵에돔이라는 거다.”

활어회 특유의 단단한 식감은 없지만, 엄청나게 부드러운 회에서 씹을 때마다 나오는 감칠맛은 확실히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달랐다.

거기에 일본식 간장인 쯔유에 고추냉이를 갈아 넣은 것은 회의 감칠맛에 더해져 묘한 향까지 전해졌다.

“자, 이건 초밥.”

“감사합니다. 근데 이 생선들은 어디서 구하세요?”

대마도에 얼마 남지 않은 민간인들은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

그게 대마도에 남을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였으니까.

당연히 어업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가게 하나를 위해서 생선을 대주는 업체가 이곳까지 올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드니 당연히 드는 의구심.

“그야 노인들이 배를 타기도 힘들고, 그저 근처에서 낚시로 걷어 올리는 것들이지.”

“역시 자연산!”

초밥 하나를 입어 넣던 나리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구식인 감정표현이었지만, 할머니를 기쁘게 하기엔 충분했다.

“어린 처자들이 참 어여쁘네. 그려··· 그럼 이쪽이 도진이 여자친구인가?”

“앗! 네. 제가 여자친구예요. 이시은이라고 합니다!”

활짝 웃는 시은이의 모습에 할머니는 뭐가 그리 기분이 좋으신지 어묵탕이라도 하나 끓여줘야겠다며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근데, 가게가 생각보다 큰데? 할머니 혼자 어떻게 운영하셔?”

“보통 할머니는 주방에서 잘 안 나오셔. 훈련생들이 음식 나오면 알아서 가져가고, 주말에는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 도와주러도 오시고.”

“아아. 그럼 남은 분들도 모두 할머니처럼···.”

“재일교포냐고? 그건 아냐. 한국어를 잘하시는 건 할머니뿐이고, 다른 분들은 그냥 일본어만 하시지.”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생판 모르는 이들이 가득한 곳에 가서 마감하고 싶지 않았겠지.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비록 외국의 땅이 되어버린 대마도지만, 자신의 고향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거다.

“저야 그분들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어째선지 알 것도 같아요.”

조금 숙연해진 마음이 들었는지, 연신 입을 오물거리던 나리가 살짝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나도.”

“음식도 맛있고, 유일한 식당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 여길 찾는 훈련생들도 그런 마음으로 오는 걸 거야.”“할머니···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시은이의 말에 도진은 나이에 안 맞게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시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시은이를 바라보던 도진의 표정은 그렇게 한참이나 이어졌다.

“자! 이런 음식에 역시 술이 빠질 수가 없지?!”

시은이가 그 말을 외칠 때까지.

* * *

“그럼 이걸 게이트에 대면 되는 건가?”

“아니. 그건 이미 해봤어.”

원판의 사용법에 대한 의견이 오가는 학장실.

벌써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지만 딱히 이렇다 할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고 있다.

“진, 만약 이 붉은 돌이 소유자가 가진 라이프 베슬이라면···. 너도 라이프 베슬이 있다는 의민가?”

메를린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더니,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이제 와 감출 필요는 없겠지.

“맞아. 그 녀석이 말하기론 내가 ‘인간들의 왕’이라고 하더군.”

“···하밀이 들으면 쓰러질 이야기네.”

나에게 이상할 정도로 경쟁심리를 가진 녀석이라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단순히 누군가가 왕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럼 만약 네가 죽으면···?”

메를린의 질문에 다른 이들이 모두 침음성을 삼켰다.

누구나 궁금해했을 질문이지만 쉬이 물어보기가 어려웠던 질문. 아마도 그 대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할.

“···너희가 생각하는 데로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죽으면, 아마도 이 세계는 사라진다.

최후의 게이트에서 마왕이 죽던 순간, 그곳이 사라졌던 것처럼.

결국 그 질문에는 아닐 거라 믿고 싶고, 절대 확인되어서는 안 되는 답변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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