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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29화 (129/153)

귀환자 식당 129화.

손님들이 모두 빠지고 나면 식당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침묵이 내려앉는다.

덕윤이의 비질하는 소리와 태영이가 주방에서 정리하며 내는 식기들 소리를 들으며 나는 캔 맥주 하나를 들고 마당의 테이블에 앉았다.

“음, 역시 이래서 종업원이 두 명은 있어야 하는데.”

“하하. 인건비를 줄여야 소득이 오르죠.”

덕윤이가 비질을 마쳤는지, 역시 손에 캔맥주 하나를 들고선 내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말했다.

“준비는 다 한 거냐?”

“할 게 뭐 있나요. 옷이나 싸면 그만이죠.”

하긴,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이젠 어차피 같은 한국 땅인데.

“부모님이 부산으로 이사를 하신데요.”

“부산으로? 너랑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셔서?”

“네. 좀 극성이시죠?”

“극성은 무슨, 일에 지장만 없으면 가까이 살고 싶어 하시는 게 당연하겠지.”

하나뿐인 아들인 건 물론이고, 한때는 영영 보지 못할뻔했던 자식이니.

그 정도 극성은 어쩌면 당연하다.

“걱정 안 끼치는 게 최고의 효도란다.”

“이젠 그럴 일 절대 없어요. ···생각해보니 이게 다 사장님 덕분이네요.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됐다. 영영 안 볼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일은 나도 같이 간다. 작별 인사는 그때 해도 된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하하···.”

덕윤이가 어색하게 웃고 있으니 태영이도 합류했다.

치익-.

태영이는 맥주를 따고선 한 모금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맥주만큼은 우리 쪽이 더 나은 거 같습니다.”

“그럴 리가.”

“진짭니다. 대동강 맥주 모르십니까?”

“들어보긴 했다만··· 갔을 때 한 번 마셔볼 걸 그랬나?”

그땐 평양냉면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생각도 못 했는데, 새삼 아쉽네.

아무래도 냉명에 맥주는 좀.

“이제 곧 남한에서도 대동강 맥주를 마실 날이 올 겁니다.”

“그래. 기대된다.”

아마 지금쯤 정부에서는 본격적인 무역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겠지. 곧 대동강 맥주뿐 아니라 많은 것들이 오갈 거다.

“저는 갈 수 없겠죠?”

“대마도에?”

음. 어떠려나?

지금 대마도는 유엔 본부 이상으로 다양한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거기다 대부분이 각 국가에서 정치, 외교 분야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파견된 곳.

김태영이라는 인물이 나타나면 단번에 알아낼 이들이 수두룩하게 모여있다는 말이다.

언젠가는 알려지겠지만-사실 이미 미국은 알고 있지만- 태영이의 존재를 벌써 드러내는 것은 시기상조다.

한국의 통일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면 환영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어떻게든 틀어지게 만들고 싶어서 안달일 곳도 있으니까.

“가고 싶은 이유라도 있는 거야?”

하지만 방법이야 찾으면 없진 않다.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야.

“다른 각성자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마 제 훈련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고요.”

타당한 이유네.

“좋아. 하지만 명심해라. 가는 건 상관없는데, 북한 훈련생을 만나는 건 절대 안 된다.”

“···네.”

만나고 싶겠지.

그들의 노고를 치하해주고 싶기도 할 테고.

하지만 그래서야 변장까지 해서 가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눈치 빠른 누군가 보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집에서 살았으니 할 이야기가 있겠지 싶어 두 사람을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 순간, 처음 보는 종류의 신발이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시은이나 시연이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두 사람의 사이즈와도 조금 다른.

“시연아, 집에 누가···.”

“아, 안녕하세요.”

시은이보다 조금 작은 키를 가진 아이 하나가 날 보더니 바짝 긴장한 채로 허리를 숙였다.

아직은 한참 앳돼 보이는 아이였는데 얼마나 긴장을 한 건지, 숨까지 참고 있었다.

“삼촌-. 오셨어요? 일찍 오셨네요.”

“아아. 준비해둔 재료가 좀 빨리 떨어져서. 그런데 이 아이는?”

“혹시 잊으신 거에요? 재단에서 하숙집 구하기 전까지 여기서 지내게 하자고 삼촌이 먼저 말씀하셔놓고.”

아차. 시연이가 말했던 게 이 아이였구나.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라 미처 그쪽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랬지 참. 반갑구나. 그래, 우리 시연이랑 같은 학원에 다닌다고?”

“네, 네!”

뭐랄까, 긴장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해야 하나?

내가 나름 유명인사긴 하지만 앞으로 한집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는데 저렇게까지 뻣뻣하면 서로 불편하다.

“너무 그렇게 어려워할 필요는 없어. 당분간이지만 편하게 지내도 된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일단 김지연 이사에게는 이 아이가 지낼 수 있는 하숙집을 몇 군데 알아두라고 하긴 했다.

“아 참, 이름은?”

“네! 오나리 입니다.”

“나리라··· 예쁜 이름이네?”

부드럽게 웃어준 게 조금은 도움이 된 건지, 나리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시연아, 시은이는? 먼저 집으로 간다고 갔는데.”

“씻고 있어요. 삼촌도 얼른 씻고 나오세요. 저녁 드시고 오신 거 아니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데, 두 사람은 늘 내가 올 때쯤에야 저녁을 먹는다.함께 식사를 해야 가족이라나 뭐라나.

네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아 밥까지 먹고 나자, 시연이가 딸기를 씻어 거실 테이블에 내려놨다.

평소와 달리 조금 어색한 저녁 식사였긴 하지만 지금은 그냥 두는 게 제일 자연스러운 거겠지.

이런 건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북한 금강산 관광의 재개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관광공사는 봄이 시작되는 4월부터 본격적인 예약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예약은 신설되는 온라인 예매 사이트나 구청 및 주민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게 됩니다.

-금강산 관광과 더불어 개성공단 역시 재가동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요. 오대기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양복에 안전모를 쓴 기자가 마이크를 쥐고 화면 뒤쪽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뒤로는 커다란 공장단지가 비친다.

“삼촌, 진짜 북한이랑 통일되는 거야?”

“시은아.”

“응? 아아···.”

시연이가 눈치를 주자, 시은이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짓는다.

나리가 자신 때문에 이야기가 끊겼다고 생각했는지 손사래를 쳤다.

“저,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여기서 보고 들은 건 절대 외부에 발설 안 한다고 벌써 비밀유지서약서도 썼어요. 그리고 저 입 진짜 무거워요.”

“걱정은 안 해. 그리고 나리때문이 아냐. 시은이가 입이 가볍단다.”

“삼촌!”

그런데 사실 이건 뭐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지.

“뭐 아마 되지 않을까?”

“진짜?!”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영이도 그쪽으로 마음먹은 것 같고···.”

“태영 오빠도? 그럼 뭐 확정이네. 거기선 태영 오빠가 결정하면 끝 아냐?”

솔직히 공산주의 체제로는 더 버터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알 거다. 특히나 요즘처럼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세상에서는 더욱.

세계에서 지금 가장 대응을 잘하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인데, 가장 가까이에 두고서도 도움을 요청도 하지 못한다.

아무리 북한에서는 신에 가까울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김씨 집안이라도 주민이 수십만 단위로 죽어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다 체제가 붕괴하면 국민들의 분노가 향할 곳은 한 곳이니 차라리 그 전에 개방하는 게 맞다.

“···태영이요?”

아··· 되려 이게 비밀인데.

나리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하다가 눈이 점점 커진다.

“제, 제가 아는 그··· 태영이요?”

“···비밀. 지킬 수 있지? 하하···.”

딸꾹-.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나리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네.

생각해보니 이 집안에서 오가는 일상적인 대화가 참··· 엄청난 정보들이었네.

* * *

아직 창밖이 밝아오기도 전인 시간부터 일어나 준비를 서둘렀다.

헬기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훈련생들의 일과는 6시부터 시작이니 지금부터야 아무리 서둘러도 늦지만, 최우혁은 이미 훈련에서는 제외된 상황.

쉽게 포기할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각성을 해버렸다는 것도 놀랐는데, 오히려 그 뒤에 모든 훈련을 자진해서 빠졌다.

‘특수 능력자겠네.’

아마 그 녀석이라면 단박에 알아챘겠지. 자신이 무슨 능력을 가지게 된 건지.

날 보자고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 거다.

솔직히··· 조금 기대된다.

어떤 능력을 가졌을지.

샤워를 마치고 간단하게 우유나 한잔할까 싶어서 거실로 나왔더니.

“삼촌. 준비 다 했어요?”

“어어··· 너희는 왜?”

“왜라뇨. 저야 당연히 가는 거죠.”

그러니까 그게 왜 당연한 건데.

“도진이 오빠 만나러?”

“···너 삼촌을 네 연애에 이렇게 막 이용해도 되는 거야? 이거 권력 남용이다?”

“이용할 수 있는데 놔두는 건 낭비라고 삼촌이 그랬잖아요.”

내가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나? ···듣고 보니 또 틀린 말도 아니네.

“그럼 시연이는?”

“이루 오빠한테 전해줄 게 있거든요.”

“···그림?”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시연이.

그래, 다 좋다···. 다 좋은데.

“···나리까지?”

“그러면 여기 혼자 두고 가요? 아직 적응도 못 했는데 그럴 순 없잖아요.”

그렇네.

너무 당연한 걸 물은 내 잘못이다.

“후우. 그래··· 가자.”

시연이는 그럴듯한 명분이 있고, 시은이는 내가 막는다고 막아질 녀석이 아니지. ···나리야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가게 마당에는 커다란 케리어를 쥐고 있는 신주희 박사와 덕윤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 마중할 목적으로 나온 듯한 태영이까지.

“언니··· 호, 혹시 저기 있는 사람이···.”

“응? 아, 태영 오빠?”

입을 떡하니 벌리고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나리.

그냥 이렇게 보면 그냥 잘생긴 동네 오빠처럼 보이는데, 한 나라의. 그것도 북한의 지도자라는 게 믿기질 않는 건가.

···그도 아니면 그냥 너무 잘생겨서 놀랐던가.

‘그러고 보니 나리도 각성자라고 했었는데··· 무슨 능력인지 확인을 못 했네?’

에이.

다녀와서 확인하면 되겠지.

나리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그저 덕윤이와 함께 둘이서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인원이 늘어난 거지?그나마 도착한 헬기가 제법 컸기에 망정이지.

생각해보면 조용한 동네에 새벽부터 이런 대형 헬기가 시끄럽게 굴면 화를 낼 법도 한데, 아무도 나에게 그런 불평을 하질 않네.

···뭐, 덕분에 앉아서 재산을 수십 배나 불려서 그런가?

헬기를 타고 공항으로 도착하니 벌써 전용기가 대기 중이었다.

대부분은 그러려니 했지만 처음 겪는 나리는 이 모든 상황이 꿈인 것 같았는지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비행기에 타서도 자동차 뒷좌석에 태운 강아지마냥 창에서 눈을 떼질 못했기도 하고.

대마도 공항에 비행기가 내려서자마자 시은이가 가장 먼저 달려 나갔다.

당연하게도 그곳에서는 도진이가 서 있었고.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한 줄 알겠다.

고작 4일 전에도 같이 있었으면서 말이지.

그래도 내 앞이라 그런지, 입맞춤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려나.

“최우혁은?”

“아카데미에요. 학장님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나자마자 안부 인사도 없이 대뜸 용건부터 꺼내는 게 조금은 서운할 법도 하겠지만, 도진이는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그 난리를 쳤으니 그냥 용건이나 꺼내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도대체 무슨 능력이길래 꼭 날 보고 이야기한데?”

“저도 모르죠. 그런데 조금 이상하긴 해요.”

“이상하다니, 뭐가?”

“이제 갓 각성한 사람치곤 마력이 굉장해요.”

마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도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정말 굉장하다는 건데?

‘혹시 마석을 너무 처먹어서 그런가?’

각성하기도 전부터 마석을 그렇게 처먹었으니 정말 그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잘됐네.”

“···네?”

“특수 능력자도 결국은 마력 수치에 따라 능력이 결정되는 법이니까, 희귀한 특수 능력자인데 마력까지 높다면 우리한테는 잘된 일이지.”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요.”

거의 비어있을 학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는 최우혁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이 시연이보다 10배는 더 커 보인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일 줄이야.

“저 각성했습니다. 근데 이 능력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선생님이라면 아시겠죠?”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아주 칭찬받고 싶어서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같아 보이는데.

“오다가 듣긴 했다. 보급용 슈터로 오크 3마리를 죽였다고?”

듣고서 최우혁의 능력을 조금 유추를 해보긴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나 마력 증폭.그리 흔하지 않긴 하지만 벌써 꽤 많은 이들이 이 능력으로 활약 중이니 지금 상황을 생각한다면 아니겠지.

그다음이 마력 속성 부여.

하지만 이건 증폭보다 더 흔하다. 그러니 역시 패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얼마 없다.

당시 유일한 무기였던 캐논 슈터 자체를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어떨까?

아직까지 마석 자체를 인간의 기술력으로 가공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가능했었지.

바로 마석 가공이라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극소수의 각성자들 덕분에.

“혹시 마석 가공이냐? 정말 그거면 날 부른 것 정도는 봐줄 수 있다만.”

“아뇨.”

···그렇다면 조금 실망인데.

내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는데, 최우혁은 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거보다 더 좋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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