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28화.
긴장감이 가득한 순간.
이 풀을 헤치고 나가면 기다리고 있는 게 과연 무엇일지.
후송 2팀 5인은 각오를 굳힌 듯 서로를 향해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 쥐어진 건 보급형 캐논 슈터.
일반인도 몬스터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제작된 무기이지만 당연하게도 마석을 재료로 한다.
한마디로 한 발을 쏠 때마다 어마어마한 비용이 나가는 셈.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보고서를 써야 하게 되겠지만, 사람의 목숨보다 중할까. 심지어 그게 최우혁이라면 더욱.
그가 단순히 삼영그룹이라는 거대한 회사의 후계자 후보라서가 아니다.
솔직히 그것만이라면 지금 후송 2팀에는 그리 큰 의미도 없다.
‘아카데미의 최상위 훈련생··· 그가 앞으로 살려낼 목숨을 생각하면 우리 팀 전원이 죽더라도 살려내야 한다.’
입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아마 팀원들 모두 자신과 비슷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을 거다.
그러니 후회는 없다.
‘살린다.’
“···이야아아아!”
머리까지 자라난 풀을 헤치며 동시에 괴성을 지른 이들 다섯이 뛰쳐나왔다.
“···뭡니까. 그 괴성은?”
붕대를 여기저기 감은 게 분명 거동이 힘들어 보이는 최우혁의 주변에 세 마리의 초록색 피부를 가진 오크가 널브러져 있었다.
정확히 미간에 구멍이 하나씩 뚫린 채로.
‘뭐지? ···이미 같은 조원이 처리해주고 간 건가?’
그게 제일 합당한 생각이었다.
최우혁은 추가 훈련에 참여할 때는 기본 장비만 착용하니까. 즉, 자신들이 가진 무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보급형 무기로는 아무리 오크 중에서도 가장 약한 그린 오크라도 한 방에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볼 것 없어요. ···곧 다 알게 될 테니까.”
“각성··· 한 겁니까?”
“뭐, 그렇게 됐네요.”
미친놈 취급을 했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신체 자체는 각성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반인. 무기 하나만 들고서 이런 곳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할 수 없는 짓이었으니까.
강제 각성?
그건 그야말로 해외 토픽에나 나올 정도의 확률로 일어나는 일종의 기적에 가까운 거지,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애초에 각성할 사람이 그저 상황이 그런 순간 각성을 하게 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니까.
“지, 진짜 가능한 겁니까? 그, 강제 각성이라는 거···.”
몸이 떨려서 그런지 묻는 목소리도 떨렸다.
최우혁은 다른 팀원의 도움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뭐, 그렇게 됐네요. 근데··· 절대 추천은 안 합니다. 이거,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라서요.”
된다.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확률이 존재한다.
그 한 마디면 족했다.
“목숨은 이미 걸었습니다.”
* * *
조금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각성?”
-그래. 그 녀석, 진짜로 각성을 했다니까? 아무튼, 시간 되면 한 번 내려와. 형을 꼭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니까.
“각성한 건 그렇다 쳐도, 날 왜?”
-자기 능력에 관한 거라던데? 형한테 물어보기 전까진 절대로 공개 안 하겠데.
알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으니 덕윤이가 다가왔다.
“누가 각성을 했데요?”
“그래. 훈련생 중에서 강제 각성을 한 녀석이 나왔다네.”
“아카데미에서요? 거긴 전부 각성자만 있는 거 아니에요?”
“대부분 그런데, 딱 한 녀석이 있었어. 비 각성자로 입학한 녀석이.”
“아! 혹시 그 최우혁이라는?”
“그래.”
내 말에 덕윤이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기하네요. 그게 진짜 되긴 되는 거구나···.”
“그러게.”
나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없었던 것 같은데.
하기야, 그때야 게이트가 생겨도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전에 대부분은 헌터들이 먼저 공략을 했었으니까.
처음 사고를 제외한다면 희생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반인들의 안전으로만 따진다면 지금이 더 위험하지.
‘그래서 그런가?’
강제 각성이라는 게 등장한 이유가 말이다.
인간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닥뜨리면 초인적인 힘을 내는 경우가 있다는 거야 종종 들어봤으니 어쩌면 이것도 그와 비슷한 맥락을 가진 걸지도 모르겠다.
“귀환자 식당에 어서 오세요. 일행은 모두 몇 분이십니까?”
“네? 아··· 저희 그냥 여기 앉으면 될 것 같아요.”
가게로 들어오던 손님이 김태영의 도가 지나친 응대에 잠시 당황한다.
내일부터는 덕윤이가 없으니 홀 서빙 일을 가르칠 겸 주방에서 나오게 했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태영아. 여긴 그냥 동네 식당이야. 무슨 고급 레스토랑 웨이터처럼 굴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 옷도 너무···. 대체 이런 연미복 같은 건 어디서 구한 거야?”
“자고로 식당의 품격이란 홀에서 일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긴 그런 태도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곳이라니까.
“사장님께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우리 식당은 이미 한국에서 가장 오기 힘든 곳입니다. 모르십니까?”
“무슨 소리야. 여긴 그냥 지나가다 들리는 식당인데.”“···후우.”
너 이 자식, 그 한숨 무슨 뜻이냐.
“이 동네 집값이 3개월 사이에 20배가 넘게 오른 건 아십니까?”
“그래.”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안다. 그게 설마하니 20배까지 오른 줄은 몰랐지만.
그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대체 지금 얼마나 한다는 거지?
“사장님이 파신다고 하면 원래 가격에나 팔리겠죠. 애초에 사장님이 거기 계신 이유로 오른 가격인데.”
“···그렇네. 근데 너, 독심술도 하냐?”
“굳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요. 게다가 자고로 지도자라면 다른 이들의 생각도 어느 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하는 법이죠.”
덕윤이나 도진이가 굉장히 살가운 녀석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스친다.
“위쪽에는 문제없고?”
“없을 겁니다. 중요한 안건은 보안 메일로 지시하고 있으니까요.”
철두철미하네.
근데 한국에서 북한이랑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가?
나중에 정민이한테 물어봐야지.
“훈련은 열심히 하고 있는 거 맞지?”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의견이 있습니다.”
“의견?”
“저는 사장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이곳까지 오겠다는 큰 결심을 한 건데, 실제로 사장님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오전에 겨우 듣는 몇 마디 정도니까요.”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발현되는 능력이 달라서 내가 가르칠 건 별로 없다고, 그저 마력 다루는 법이나 좀 알려줄 수 있을 뿐이지.”
그래도 괜찮다고 온 주제에 이제 와서 이런 불평을 하면 안 되지.
“그럼 저는 누구에게 배워야 하는 겁니까?”
“최선은 너와 동일한 능력을 가진 사람, 아니면 적어도 그와 비슷하거나.”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주억거린 녀석은 고개를 들더니 익숙한 이름 하나를 입에 올렸다.
“라미야 빈트 알 사우드.”
“그래.”
하지만 김태영을 아카데미로 보낼 수는 없다.
애초에 내가 데리고 있겠다는 조건하에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거였으니까.
“제가 거기에 갈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군요. 여기서라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여기서라도? 너 그거 무슨 뜻이야. 야!”
칼등으로 눌러 으깬 새우에 전분과 달걀흰자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새우완자를 식빵 사이에 넣고 튀겨낸 멘보샤는 인기가 좋았다.
토마토케첩을 베이스로 만든 달달한 소스와 칠리소스를 베이스로 만든 매콤한 소스 두 가지를 함께 내어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포장을 해가는 사람도 많다 보니 생각보다 만들어둔 음식이 너무 빨리 떨어져 버렸다.
“삼촌, 어떡해? 아직 8시밖에 안 됐는데···.”
“그렇게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또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멘보샤용 새우는 벌써 다 써버렸다.
남은 거라곤 볶음밥에 넣는 칵테일 새우뿐인데, 그걸로 멘보샤를 만드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고.
‘그렇다고 볶음밥 하나만 달랑 낼 수도 없고···.’
급하게 냉장고를 찾아보니 재료라고 해봐야 딱히 마땅한 것도 없고, 돼지고기를 해동 시켜 탕수육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볶음밥에도 어울리고, 술안주로도 적당한 메뉴가 하나 번뜩 스쳤다.
“시은아, 근처 편의점 가서 맛살 좀 사 올래?”
“맛살이면 게맛살? 그걸로 뭘 하게?”
“수프.”
시은이를 보내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파를 길게 채를 썰고, 냉장고에 있는 대파와 표고버섯, 양파를 썰고 있는데 태영이가 들어와 멀뚱하니 날 쳐다보고 있었다.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
“뭐 하시나 궁금해서요. 참, 방금 이상한 여자 손님이 한 명 왔는데 사장님을 찾네요.”
“···그래?”
마침 주방으로 들어오는 덕윤이에게 나머지 재료 준비를 부탁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다름 아닌 신주희 박사였다.
살짝 상기된 채로 찾아온 걸 보니 또 뭔가 발견이라도 한 모양인지.
“오늘도 할 말이 있어서 온 겁니까?”
“아뇨! 오늘은 밥 먹으러 왔어요. 오늘 멘보샤 하셨다면서요! 그거 저 어릴 때 먹어봤었는데, 요즘은 파는 데가 없거든요.”
그나저나 메뉴는 어떻게 안 거지? 근처에 첩자가 있나.
이렇게 단숨에 뛰어올 정도면 상당히 좋아했던 음식 같은데 어쩌나.
“죄송한데, 준비한 게 모두 팔렸어요.”
“···네? 마, 말도 안 돼···. 대체 왜 그렇게 조금 밖에 안 하셨어요?!”
아니, 나름 많이 준비했던 것 같은데?
거기다 멘보샤는 일일이 다 손이 가야 하는 음식이라 상당히 긴 시간을 주방에서 덕윤이와 태영이까지 달려들어 만들었었다.
못 먹어서 아쉬운 마음이야 알겠지만, 이런 비난을 들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아··· 죄, 죄송해요. 너무 먹고 싶었던 거라 그만···.”
“그럼 집에서라도 해 드시지 그랬어요. 그렇게 어려운 음식도 아닌데.”
“···저 요리는 소질이 없어서. 그,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고요!”
어려서부터 천재 소릴 들으며 연구했으니 그럴 시간은 없었겠지.
이해한다. 그게 뭐 부끄러운 일이라고 얼굴을 붉힐 것까지야.
“멘보샤는 없지만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볶음밥이라도 드시고 가시죠.”
“···그럴게요.”
“근데 정말 그것뿐이에요? 다른 뭐 할 이야기 없습니까?”
“네? 네, 오늘은 정말 없어요.”“네? 네, 오늘은 정말 없어요.”
쩝- 언제나 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던 사람이 대뜸 음식만 먹고 가겠다고 하니 내가 다 뭔가 허전하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해줄 테니까.”
볶음밥을 하는 사이 시은이가 맛살을 가지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고급 맛살이라 잘 찢어진 맛살을 준비해두고, 팬에 버섯과 채소를 넣어 굴 소스와 간장으로 간을 해서 볶은 곳에 뜨거운 물을 붓고 끓였다.
금세 끓기 시작한 수프에 맛살과 달걀흰자를 잘 풀어 주고 전분 물을 넣어 농도를 걸쭉하게 맞춰주기만 하면 끝.
부드럽게 넘어가는 중국식 달걀탕이다.
“볶음밥이요. 자, 이건 게살 수프에요.”
급하게 만들긴 했지만, 볶음밥과 함께 먹기엔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사이드 메뉴.
까슬하게 볶아진 밥과 채소에 통실한 칵테일 새우가 씹히고, 게살 향이 나는 부드러운 달걀탕을 먹으면 금상첨화다.
“와- 게살 수프도 엄청 오랜만이네요. 잘 먹을게요. ···근데 게살 수프는 메뉴판에 없던데, 혹시 저 때문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멘보샤가 떨어져서 그냥 추가로 만든 겁니다.”
“그, 그렇군요.”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 맞다! 선생님.”
“···네?”
“삼영 그룹 최우혁이요. 각성했다는 소식 들으셨죠?”
“네, 그렇지 않아도 내일 내려가 볼 생각입니다.”
덕윤이가 가는 길이라 배웅도 할 겸, 근데 이 여자 그 소리를 듣더니 눈을 빛낸다.
“그럼 혹시 저도.”
하아. 어쩐지 멘보샤는 핑계였던 거 같기도 한데···.
나름 도움이 되는 사람이니까.
“···아침 일찍 출발할 겁니다.”
늦으면 기다려줄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