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27화 (127/153)

귀환자 식당 127화.

“그럼 문제는 없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처음부터 이전 각성자였던 분들의 가족들이 생활고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인걸요. 하물며 각성자 본인이라면 문제라고 할 것도 없죠.”

“잘됐네. 그럼 이후 진행은 알아서 해주게.”

“걱정 마십시오. 이미 직원이 나가서 생활 환경을 파악 중입니다.”

“아! 그 아이에게 아빠가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 부분은 문제가 없겠나?”

내 질문에 김지연 이사가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 아빠라는 인간이 아주 나쁜 인간이더라고요. 호적에는 올리지도 않았으면서 오나리의 엄마가 남긴 보험금은 본인이 전부 챙겼어요. 그러고 나서 나리를 자기 딸한테 하녀처럼 부려먹게 만든 거더라고요.”

“···허어.”

이건 정말 기가 막힌 인간이네.

아무리 혼외자라곤 하지만 그래도 자기 딸인데, 저렇게까지 잔인하게 굴 수가 있는 건가?

“하지만 다행히 그래서 법적인 절차는 거의 필요 없게 됐습니다. 일단 고등학생이라도 재단에서 지원한다는 명목이 있으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요. 우선은 홍대 근처에 있는 하숙집을 얻어줄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학생이니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하숙집? 요즘도 그런 게 있나?”

“물론 있죠. 예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꽤 좋은 분들이 운영하시는 곳들은 몇 군데 남아있습니다.”

하숙집이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한데, 왠지 마음에 걸린다. 특히나 그 아버지라는 인간이 괜히 해코지하지나 않을까 하는.

“그 하숙집이라는 거, 혹시 허가가 필요한 건가?”

“네? 물론 허가를 받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한두 명만 받는 경우에는 그냥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집에 방이 하나 남지 아마?

라미야가 잠시 쓰던 방이지만 라미야도 이제 아카데미로 가서 지금은 비어있는.

“그 문제는 내가 다시 연락하지.”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참, 아버지라는 인간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그게··· 나름 유명인사이긴 합니다. 영무건설이라고 100대 기업엔 들지 못하지만 나름 상장도 해서 튼실한 중소기업이라는 평가도 듣는 곳입니다.”

“그래?”

하긴, 시연이가 다니고 있는 미술 학원이 제법 비싼 곳이라고 했었지. 딸로 생각하진 않지만 두 사람을 보낼 정도면 경제적으로 충분히 여유가 있는 집안일 거란 예상은 했었다.

“아, 영무건설은 대마도의 아카데미 신축 사업에도 참여 중인 곳입니다.”

“그으래?”

그렇단 말이지?

“우리 집에서요?”

“우선 물어보는 거야. 나보단 너희가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많을 테니까, 너희 의견이 제일 중요하지.”

“음··· 저는 괜찮을 것 같아요. 심성도 착해 보이고, 또 삼촌 말 들어보니 다른 곳보단 여기가 안전할 것 같기도 하고.”

“언니가 그럼 나도 찬성! 여동생 하나 생긴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두 사람 모두 찬성의 의견을 내긴 했지만, 당장 모든 걸 일사천리로 진행하지는 않았다.

“그럼 우선 당분간만 지내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기로 할까?”

“네. 삼촌.”

“응!”

아침 식사를 마무리하고 시연이는 곧장 학원으로 향했고, 시은이는 날 따라 가게로 향했다.

도진이도 없는데 어쩐 일로 아침부터 가게로 오나 싶었는데.

“덕윤이 오빠!”

“응?”

“내일 대마도로 내려간다면서요.”

“그치, 근데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지가···.”

“당연히 잘 할 거예요!”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뜸 응원부터 하고 보는 게 역시 그저 덕윤이에게 인사를 하러 온 건 아니었다.

“이거 도진 오빠한테 좀 전해주세요.”

“어? 어어··· 근데 이게 뭐야?”

“편지예요.”

편지? 그걸 왜 직접 전해달라고 하는 거지?

“···대마도에도 우편은 가는 거 알지? 택배도 되고.”

“그거야 당연히 알죠.”

물론 내가 훈련생들의 집중력을 위해 다른 여가생활 공간이나 면회객을 포함한 일체의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마도를 무슨 감옥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다.

당연히 우편이나 택배 같은 것들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물론 택배로 술이나 게임기 같은 엉뚱한 물건을 들여올 수도 있어서 약간(?)의 검열은 하고 있지만, 편지는 예외다.

그건 정말 100% 사생활에 들어가는 분야니까, 양심이 있어서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그건 좀 특별한 편지에요.”

“음, 좀 크긴 하네.”

내가 보기에도 단순한 편지라고 보기엔 봉투가 좀 과할 정도로 크긴 하다.

“엉뚱한 거 보내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냐, 삼촌. 저거··· 언니가 그려준 거란 말이야.”

“시연이가? 아···.”

시연이의 그림이라.

확실히 그런 거라면 직접 전할 만하지.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진짜 만에 하나라도 엉뚱한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간 세상에 시연이의 존재가 드러나게 될지도 모르니.

‘그런데 굳이 나한테까지 비밀로 해야 했던 내용인가?’

최근에 시연이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도 예전처럼 기억을 잃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걱정을 조금 덜었는데···.

“절대, 저얼-대로 열어보면 안 돼요. 아셨죠?”

“어? 어어···. 알았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도진 오빠 본인한테 직접 전해줘야 하고요. 이루 오빠도 안 돼요. 알았죠?”

“알았어. 대체 뭔데 그래?”

“그거야 당연히 비밀이죠. 알려줄 거면 왜 열어보지 말라고 했겠어요.”

그건 또 그렇네. 근데 이렇게 사람 궁금하게 해놓고 알려주지도 않는 건 반칙 아냐?

실제로 덕윤이는 투시 능력도 없으면서 봉투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고.

“아! 삼촌, 근데 오늘 메뉴는 뭐야?”

“오늘? 오늘은 중식인데.”

“중식이면 설마 짜장만 하게?”

뭐 대부분은 저런 반응이려나. 하지만 짜장면은 솔직히 어지간한 중국집보다 맛있게 할 자신이 없다.

비슷하게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럼 굳이 할 의미가 없지.

“짜장면은 아니고, 새우 볶음밥이랑 멘보샤?”

“볶음밥은 알겠는데··· 멘보샤는 뭐야?”

일본과 앙숙이 되며 일식이 한국에서 보기 힘들어진 만큼, 중식도 예전처럼 성황을 이루진 못했다.

중화요릿집들도 대표적이고 수요가 많은 요리 이외엔 거의 사라졌다.

멘보샤 같은 것들은 재료 덕에 가격이 높아 그리 많이 찾는 음식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한때는 꽤 유행을 했던 음식인데 요즘 아이들은 모른다니 격세지감이네.

“다진 새우를 식빵 사이에 넣고 튀긴···. 시, 시은아?”

“뭐, 뭐야 그거···. 엄청 맛있겠다아아!”

설명도 대강했는데 그것만 듣고 이런 반응이라고?

···오늘 메뉴판에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네.

* * *

아카데미에서는 정규 훈련 시간을 제외하면 그 이외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든 자유다.

이미 오래 전 망하긴 했지만, 대마도는 관광지로 유명했던 곳이라 마음먹고 놀자면 굳이 여가시설이 없어도 즐길 거리는 충분하다.

하지만 말이 자유일 뿐이지, 그걸 진짜 자유시간이라 믿고 옛 관광지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는 바보는 없다.

적어도 아카데미 훈련생 중에서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대마도에 있는 모든 이들이 훈련생은 아니다.

그들이 먹을 식사를 만들어주는 요리사들, 장비나 이동 수단을 정비해주는 기술자들.

그 외에도 훈련생들을 묵묵히 서포트 해주는 각종 지원팀.

그리고 그런 지원팀 중에서는 후송대라는 팀도 존재한다. 훈련하다가 다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팀으로 나름 전문적인 응급처치 및 환자 이송에 대한 훈련을 받고 투입된 이들은 자신들의 일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

삐잉- 삐잉-.

손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신호음을 내는 최첨단 위치추적기는 주변의 지형을 3D로 보여줄 뿐 아니라 신호가 나오는 지역을 겨우 20cm의 오차 범위로 표시한다.

“팀장님, 이거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뭐야. 설마, 몬스터야?”

추가 훈련 중이던 장소에 날아든 후송 요청에 대기 중이던 후송 2팀은 지체없이 출발했다.

아카데미 훈련생들의 신체 능력은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이들이긴 하지만 후송 요청 시에는 그래도 비교적 평탄한 곳에서 대기한다.

역할은 훈련지에서 발생한 환자나 혹은 갑작스러운 이상 증상을 보이는 훈련생들.

당연히 몬스터에 대한 위험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가 몬스터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인 마력탄 무기를 소지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최소한의 수단.

후송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도망이다.

그런 이유로 주변에 마력을 가진 생물을 탐색할 수 있는 이런 최신 추적기가 지급된 이유고.

-아카데미 훈련생은 본인 스스로가 몬스터와 싸우겠다는 목표로 이곳에 온 이들이다. 특히나 추가 훈련은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일. 후송팀의 목숨까지 걸고 구할 필요는 없다.

이루 부학장이 후송팀이 만들어지던 날 당부한 내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누군가의 목숨을 자신의 판단으로 저울질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늘 마음 한편으로 고민은 해왔다.

만약 정말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자신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팀원 전체의 목숨을 걸고 훈련생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팀원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구조 요청을 무시할 것인가 하는 고민.

“아뇨. 다행히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지금 후송 요청한 사람은 최우혁 훈련생 아닙니까? 이 사람 각성자 아니죠?”

“각성자는 아니지만 각성자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장비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마력 수치가 잡혀서요.”

“···몬스터는 아니라고?”

“네. 교육 시간에 분명히 확인했었는데, 이런 마력 반응을 내는 건 절대 몬스터는 아니에요. 거기다 지금 훈련장 위에 뜬 게이트, E등급이라면서요. 몬스터도 그린 오크고···.”

팀원은 손에 들린 위치 추적기의 화면을 팀장이 잘 보이도록 돌려 보였다.

“보세요. 제가 장담하는데 이거··· 절대로 E등급 몬스터가 아니에요.”

“···그럼 이건 대체 누구 마력이라는 건데?”

“그러니까요.”

네 쌍의 눈이 일제히 팀장을 향했다.

분명 지금 요구조자는 최우혁이다. 몬스터와 싸우면서 휴대폰을 들고 가는 훈련생은 없지만, 개인에게 달린 신호 발신기는 고유 번호가 달려 있으니까.

‘최우혁이 갑자기 각성이라도 한 건가? ···아냐, 그렇다고 해도 마력 수치가 너무 높잖아 이건.’

갓 각성한 경우에 마력이 낮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그렇다면 결정해야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신호가 잡히는 곳까지 가서 확인할 것인지, 이대로 물러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것인지.

“···내가 현장으로 먼저 간다. 문제가 없으면 무선을 할 테니까 올라오고, 10분 뒤까지 연락이 없으면 너희는 내려가서 상황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해.”

“팀장님, 그냥 지금 지원 요청하죠?”

“그럼 적어도 30분은 기다려야 할 텐데, 부상이 심각한 상황이면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지도 몰라.”

상처 부위가 안 좋다면 과다출혈로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시간이다. 게다가 이미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벌써 30분이 지났으니, 앞으로 또 30분을 기다린다면 최우혁이 기다리는 시간은 총 한 시간이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이게 만약 몬스터라면 팀장님 혼자선 절대 못 이겨요.”

“···둘이 돼도 별 차이는 없을 거다. 그냥 내 말대로···.”

마음은 고맙지만, 희생은 최소한으로 하는 게 맞다.

딱히 팀장이라서 목숨을 걸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팀장이니까 이런 일일수록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셋이면 어때요.”

“너희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우리가 아무리 무기를 가지곤 있다곤 해도 상대는 몬스터야. 대對 몬스터 훈련이라곤 기초밖에 안 받은 우리가 다섯이서 어떻게 한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그래도 적어도 확률은 오르지 않겠습니까.”

“맞아요. 부학장님이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훈련생만 그런가요? 우리도 따지고 보면 나름대로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려고 여기 온 거잖아요.”

직업적인 사명감? 그런 게 아니다.

사지 멀쩡한 젊은 녀석들이 굳이 이런 곳까지 온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자신이 그렇듯, 이 녀석들 모두가 몬스터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이 있는 녀석들이다.

비록 직접 싸울 능력은 없더라도 어떻게든 몬스터를 때려잡는데 작은 손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온 마음을 왜 모를까.

“···그래. 우리도 목숨 걸고 온 건데, 고작 이 정도에서 물러설 순 없지.”

“갑시다.”

“그래. 그까짓 오크 하나 못 잡을까!”

호기롭게 외친 다섯 사람은 200여 미터를 남겨둔 신호를 향해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