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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24화 (124/153)

귀환자 식당 124화.

누군가는 이런 날 비난할 수도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든 내 가족만 소중하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전 세계에 하루에 나타나는 게이트만 200여 개가 넘는다.

한국에서도 하루에 2~3개의 게이트가 평균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그게 목숨이든 재산이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모든 걸 다 해결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게 가능하려면 나는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한 채 온종일 대기만 해야 하는 몸이 돼버리는 셈이니까.

그래서 아카데미를 만들었고, 이후에 벌어질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내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니 어지간해서는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위험한 순간이 올 때마다 결국 나서야 한다면 기대감이라는 게 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정민이도 그런 생각을 알기 때문에 최근에는 사건이 벌어져도 정말 최악이 아니라면 연락하지 않으려는 거고.

하지만 시연이나 시은이가 연관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 아이들은 내 가족이니까.

이건 분노인가? 그렇다면 누굴 향한 분노지?

감히 시은이를 해치려고 하던 몬스터들? 아니면 이런 곳에 시은이를 데리고 온 도진이?

허공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괴성을 지르는 몬스터들 사이로 다가온 도진이 녀석이 대뜸 용서를 구한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저 녀석들부터 처리하자.”

“···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저렇게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몬스터들의 생각이야 인간인 나로선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겠지.

“이상한데?”

“네? 뭐가요?”

“왜 저렇게 조용하지? 건물이 저런 상태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야 정상인데, 너무 조용하잖아.”

안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수백 이상의 기척이 분명히 느껴지니까.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시은이의 마력도 분명하게.

삐잉-삐잉-.

멀리서 들리기 시작하는 경보음.

“헌터 부대가 이제야 도착하는 모양이다.”

늦은 대처는 아니지만, 만약 도진이와 시은이가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오지 않았다면?

‘가정은 필요 없겠지.’

대피소를 향해 한 걸음을 뗐다.

비서처럼 내 뒤를 도진이 조용히 따른다.

손을 뻗고, 가만히 숨을 골랐다.

건물을 둘러싸고도 푸른빛에 막혀 다가가지 못하고 있던 몬스터들이 그제야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급히 몸을 돌렸다.

핏빛의 동공을 담은 노란 눈.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느껴지는 눈빛이 날 보며 잠시 으르렁거리지만 이내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설마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왼손을 뻗어 마력을 분산시켰다. 뻗어 나간 마력이 수십 갈래로 나뉘며 놈들의 숨통을 움켜쥐었다.

콰득.

콰드득-.

역시나 허공에 떠오르며 목뼈가 분쇄되는 소리는 소름 끼쳤지만 불쌍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것들이 바로 다른 지구의 생물들이란 건가···.’

이 녀석들은 어쩌면 그곳의 애완견이려나? 주인이 사이클롭스같은 것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없진 않을 것 같다.

땅바닥에 떨어진 시체들이 먼지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도진은 대피소를 향해 달려갔다.

쾅쾅-.

“시은아! 시은아!”

강철 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대피소 문을 부서져라 두들기고, 난 그 뒤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철컹-.

묵직한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그 안에서 시은이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희미하게 웃는 얼굴로.

“···오빠.”

“시은아! 너, 몸은?! 괜찮아? 어디 다친 덴 없고?”

“바보야, 난 안에 있었는데··· 내가 왜 다쳐. 오빠야말로 어디 다친 거 아니지?”

“나는··· 아, 그보다 학장님이 오셨어.”

“아하하하. 삼촌···.”

도진의 말에 시은은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이내 이를 드러내며 손을 흔들었다. 누가 봐도 잘못한 사람처럼.

막상 도착하고 보니 할 일이라곤 마석 줍는 거랑 시민들의 부상 여부와 피해 규모 확인 정도가 다였던 헌터 부대.

부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게이트 관리국 대응 3팀 팀장 방대석이라고 합니다. 오늘 주신 도움 잊지 않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나선 거니, 어지간하면 언론에 나가는 건 막아주세요.”

“네, 차장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정식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을 예정이지만, 온라인에 퍼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목격 인원이 워낙에 많은 탓에···.”

그것까진 어쩔 수 없겠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대응팀장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더 할 말이 남은 겁니까?”

“아, 학장님이 아니라 이시은 양에게 확인할 사항이 있어서요. 잠시 이야기 괜찮겠습니까?”

대강 무슨 일인지는 알 것 같은데.

“시은이는 내 조카고, 맞습니다. 각성자.”

“역시···. 그럼 대피소 안에 있었던 일의 조사에 대해 참고인 자격으로···.”

“방대석 팀장님이라고 하셨죠.”

“네!”

시은이를 그런 곳에 불려 다니게 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시은이의 능력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고, 결정적으로 본인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그건 내가 안정민 차장에게 이야기하죠.”

“···하지만.”

“아니면 관리국장에게 말해도 되고요. 그도 아니면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하면 됩니까?”

대통령까지 언급하고 나서야 그는 물러났다.

이런 일에 언급하기엔 미안한 사람들이지만 시은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게이트 네가 열었냐?”

어쩔 줄 몰라하는 도진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처음 왔을 때는 눈이 뒤집혀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도진이가 게이트를 만든 것도 아니고 알면서 데려온 것도 아닌데.

“네?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데려왔고···.”

“됐다. 알면서 데려온 것도 아니고, 근데 두 사람이 여긴 어쩐 일이야? 아, 데이트하러 나온 건가?”

연애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남녀가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거야 흔한 데이트 코스지.

그 정도는 나도 안다. 당연히 그런 걸로 뭐라고 할 생각도 없고.

“···네. 잠시 바람도 쐴 겸.”

“응! 내가 오자고 그랬어. 내가. 오빠 맨날 아카데미에만 있어서 답답할까 봐.”

“알았다. 이 녀석아. 네 남자친구 안 잡아먹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

“헤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방실거리는 시은이를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젊은 남녀가 데이트하면 다 그런 거지. 삼촌 그렇게 꽉 막힌 꼰대 아니다. 막말로 너희가 무슨 1박으로 여행이라도 가려고 나온 것도 아니고.”

“······.”

“······.”

분명 시작은 웃으며 꺼낸 말이었는데, 두 사람의 굳어가는 표정을 보고서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천천히내려오는 게 느껴진다.

“···서도진?”

“네, 네?! 학장님!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둘이 놀러 갔는데 갑자기 차가 고장 나고, 게이트 때문에 기차가 연착이 돼서···.”

“오, 오빠!”

아하. 이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것 같다.

그렇게 변명을 하려고 준비해뒀다 이 말이네.

“도진이 넌 계획이 다 있었구나?”

딸꾹.

딸-꾹.

“···시은이. 너도 알고 있었어?”

“삼촌, 오빠 아냐. 이건 오빠한테 내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거야!”

이 녀석들이 나를 무슨 조선 시대 영감으로 아는 건가.

“그럼 됐다.”

“···응?”

“···네?”

“이제 시은이도 어른이야. 자기가 결정해서 행동하는 걸 충분히 알 나인데,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는 없지.”“삼촌···.”

요즘 같은 시대에 혼전 순결을 지키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고.

“두 사람이 좋다면 그걸로 된 거지.”

내가 이렇게 나오는 게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지, 두 사람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길래 한마디를 더 했다.

그나마 이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삼촌이자 인생을 더 살아온 어른으로서.

“다만, 두 사람 모두 가벼운 마음이진 않길 바란다. 시은아, 너는 이제 법적으로 성인이 되긴 했지만 아직은 어려. 더 깊게 생각해보고, 정말 서로에게 이 사람이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아. 삼촌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살면서 이런 충고를 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이건 진심이다.

당연히 이런 일로 시은이나 도진이에게 실망할 일도 없다.

금전적인 지원 같은 걸 빌미로 시은이를 내 입맛대로 살게 할 생각도 전혀 없고.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만 겪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니까 신중하길 바라는 것뿐이지.

“응! 고마워, 삼촌.”

그러고선 나에게 덥석 안겨 오는데, 눈가로 얼핏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시은이는 그렇게 잠시간 나에게 매달려 있었다.

“다 큰 녀석이··· 남자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 이렇게 덥석덥석 안고 그럼 안 돼.”

“피이.”

내 목을 꼭 감았던 팔을 풀고 떨어지는 순간, 시은이의 팔에 걸려 있던 팔찌에서 푸른색의 작은 조각들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 삼촌, 이거. 나 삼촌이 준 거 망가뜨려 버렸어.”

“잘했다.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준 건데.”

“···고마워. 삼촌이 준 팔찌가 아니었으면 진짜···.”

그 순간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지, 커다란 눈망울에 금세 또 눈물이 고여간다.

“두 사람, 다음엔 어디 갈 거면 간다고 말하고 가. 알았어? 오늘도 뉴스 안 봤으면···. 늦을 뻔했잖아.”

마침 그 시간에 도진이를 봤으니 망정이지.

시은이에게 준 팔찌가 발동하고 난 뒤에 알아차렸다면 자칫 큰일이 생겼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삼촌, 근데 이거 대단해! 건물 전체를 감쌀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보호 대상이 너 한 명이었으면 적어도 세 시간은 버틸 수 있는 마력을 담아놨었으니까.”

팔찌는 내 ‘의지’를 담은 물건이다.

시은이가 내 말을 듣고선 잠시 멍해 있다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한 모양이다.

“아! 그럼 설마, 내가 하는 생각으로?”

역시 똑똑한 내 조카.“그래. 시은이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보호할 영역이 달라지는 거야. ···설마 오늘처럼 많은 사람을 지키려고 한단 생각을 못 했었지.”

“아···.”

내가 없는 곳에서 시은이 혼자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주변에 소중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만들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을 보호하려고 할 줄은 몰랐다.

덕분에 정말 까딱 잘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막이 걷혔으니까.

만약 도진이가 없이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저번에 쓴 마석이 중급이었나?

아무래도 이제 그 정도로는 불안해서 안 되겠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중년 여성 하나가 이쪽을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우리 세 사람을 향해 분명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뭐가 됐든, 우린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의 목숨을 구한 셈이니까.

물론 헌터들은 제외지만, 저 아줌마가 어디로 보나 헌터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봐요! 거기 젊은 남자, 당신이지? 아까 우리 차 박살 낸 인간이!”

“···네?”

“거짓말할 생각하지 마! 아까 당신이 우리차 날려버리는 장면 내가 똑똑히 봤으니까! 이거 어떻게 보상할 거야?!”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건가?

황당한 눈으로 도진을 쳐다보니 분명 저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눈앞에 몬스터가 달려오는 걸 보지 못한 게 아니라면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아니, 그건 상황이···!”

도진이가 억울하다는 듯 나서려길래, 내가 제지했다.

이런 인간들은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으니까.

“보상이요? 원하시면 물론 해드려야죠.”

“흥,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하나는 있네. 당연히 해줘야지, 무슨 말이 많아.”

“···종이에 차종, 연식, 연락처와 거주지를 남겨주시죠. 차를 원하시면 차로 드리고, 금전적 보상을 원하시면 시세에 맞춰 보상해드리죠..”

그 말에 도진이가 울분을 토했다.

“하지만 학장님, 이건 말도 안 돼요! 어차피 그냥 뒀어도 몬스터들에 의해 찢겼을 텐데! 그게 아니라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됐다. 그리고 내가 이런 인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잘 봐둬라.”

“···네?”

여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얼굴 그 어디에서도 목숨을 구해줬다는 고마움따위는 없었다.

목숨을 구해줬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가 당연히 해야 했었던 ‘의무’가 된 셈이다.

피식-.

그저 웃음이 나왔다. 우스워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다.

나는 옆에서 같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응 팀장에게 종이를 건넸다.

“관리국에 연락해서 내용 확인 후 전액 보상해주세요. 물론 비용은 저에게 청구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굳이 이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관련 법규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과연 저 탐욕스러운 인간에게 그런 말이 통할까?

“아뇨, 해드릴게요.”

그 말에 주변에서 그 여자를 욕하던 사람들까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이분이 사는 주거지 근처에서는 그 어떤 위험 등급의 게이트가 나오더라도 저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여기 있는 이 친구도요.”

거만한 자세로 서 있던 여자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간다.

“괜히 또 나섰다가 이분 집에 금이라도 가면 큰일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미리 피해야드려야죠. 그렇죠? 아, 걱정마세요. 이사가셔도 그 주변으론 안 갈테니까요.”

“자, 잠깐만. 이런 경우가 어딨어! 왜 우리 집만···!”

“이 친구 때문에 피해를 입으셨다면서요. 그러니까 앞으로라도 그런 피해를 드리지 않도록 사전에 조심하겠다는 거죠.”

“아,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음. 아파트나 빌라에 사시는거면 그 주변 분들에게도 알려드려야 겠네요. 그건 게이트 관리국에서 알아서 하겠죠?”

“네, 물론입니다.”

방대석 대응 팀장은 내 말에 속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바라봤다.

“혹시 여기에 보상 원하시는 분 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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