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23화 (123/153)

귀환자 식당 123화.

이미 지역 전체에 경보 발령이 나서인지, 그 넓은 고속도로에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도로를 무단으로 건너오는 무리.

도진은 그것들을 보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야 했다.

빠른 속도로 적을 배는 게 주특기였던 이루에게 배운 것과 달리, 도진은 홍대의 사건을 겪으며 자신에게는 커다란 한 방을 날리는 일격필살이 더 맞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훈련생들을 가르치며 무기를 대검으로 바꿨고, 이제는 이루에게 받은 무기보다 오히려 지금 손에 쥔 무기가 더 익숙해졌는데···.

‘빌어먹을! 하필이면 스케일 하운드라니···.’

단단한 비늘로 덮인 피부 때문에 방어력이 좋을 뿐 아니라 네 발로 달리는 몬스터의 특성상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은 단조로운 공격 덕에 피하기는 수월하지만··· 대상이 움직이지 않는 벽이라면 얼마 버티지 못한다.

최악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

도로에서 가까운 쪽에서부터 세워져 있던 차들이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하운드라곤 하지만 그 덩치는 어지간한 송아지. 단단한 비늘로 덮인 몸을 믿고 속도로 밀어붙이면 승용차 같은 것들은 그야말로 종이접기로 만든 것처럼 찌그러지며 튕겨 나간다.

새까만 비늘로 덮인 피부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게 더러 역겹게 느껴진 도진이 대검을 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을 준 채로 허리를 틀었다.

그리 자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처음 한 방으로 몬스터들의 기를 죽이는 데는 이만큼 효과적인 기술도 없다.

이루의 발검술을 대검의 형태로 변환시킨, 도진만의 독자적인 기술.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지만, 파괴력만큼은 더욱 자신 있었다.

‘지금은 위력이 조금 약해지더라도 최대한 넓게 공격하는 게 좋아. 그러려면 당기는 팔에 힘을 조금 빼고··· 공기를 밀어내듯이 터트리면.’

한껏 틀어져 있던 도진의 허리가 발목에서부터 회전하며 어깨를 당겼다. 동시에 밀어지는 대검에 응축된 마력이 폭발하듯이 도진의 전방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콰과과가각-!

차량 수십 대를 집어삼킨 폭발이 돌무더기와 함께 달려오던 몬스터 무리를 무자비하게 덮쳐갔다.

케에엑!

뒤집혀버린 휴게소 바닥의 돌무더기에 휩쓸린 몬스터들의 괴성이 먼지구름을 뚫고 들려왔다.

하지만 소리만 듣고도 감이 온다. 절대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는 걸.

그런 도진의 마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뿌연 먼지 사이로 검은빛을 내는 무언가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마치 누군가 지휘라도 하는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도진을 둘러싼 녀석들이 이를 드러냈지만, 섣불리 덤비진 않았다.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듯 바짝 긴장하는 녀석들 뒤로 몇몇 스케일하운드가 다른 곳을 향해 달렸다.

“···젠장!”

차라리 드넓은 벌판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혼자 버티라고 하면 몇 시간이고 버틸 자신이 있는데.

누군가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수백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 하나를 방어하면서 싸우는 건 힘들었다.

건물이 버텨주길 바라는 수밖에.

와아아아!

대피소에서 화면을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새까맣게 몰려오던 몬스터들을 덮쳐가는 거대한 폭발.

그건 지금까지의 불안을 말끔히 씻어줄 정도로 통쾌한 장면이었다.

“우와! 저 사람 뭐야? 엄청난데?!”

“잠깐··· 저 남자. 그냥 헌터가 아니잖아! 서도진이야! 서도진 교수라고!”

“서도진? 설마, 아카데미 최연소 교수?!”

“그럼 이진의 제자 아니에요?”

“아니, 근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갑자기 여기서 왜 나와요?”

“애인이랑 같이 있었잖아! 어디 놀러 가는 중이었나 보지, 뭐.”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몰렸고, 시은은 잘못한 게 없음에도 어쩐지 얼굴을 숙여야 했다.

‘오빠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었나?’

이름 하나만으로 절망에 잠긴 사람들에게 희망을 되찾아 줄 정도인가 싶었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으니까.

“어, 어떡해! 저것들 이쪽으로 오나 봐요!”

화면을 보고 있던 누군가의 외침에 잠시 밝아졌던 분위기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휴게소 전체를 뒤덮은 먼지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는 소름 끼칠 만큼 거대하고 공포스러웠다.

“역시 아무리 아카데미 교수라도 혼자서는 안 될 거야···. 대체 헌터들은 언제 오는 거야!”

“지, 지금 뉴스에 나오고 있는데, 오고 있는 중이래요! ···앞으로 10분은 걸린다는데···.”

[현재 가평 휴게소 대피소에는 320명가량의 시민이 있는 것으로 추정 중이며, 설악 IC에 대기 중이던 헌터 대응팀 2개 소대가 출동했습니다. 게이트 관리국에서는 부상자 후속 조치를 위해 힐러를 긴급 소집하는 한편···.]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던 누군가가 소릴 키우자 사람들이 잠시 소리를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때까지 대피소가 버틸 수 있긴 한가?”

“다, 당연하죠! 몬스터 방어용으로 지은 거라 엄청 튼튼하다고 했어요. 강화 콘크리트가 무려 2미터 두께에···!”

콰가가각!

끼이잉-!

벽면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들리는 끔찍한 소리.

들려오는 울림만으로도 벽 한편이 왕창 뜯겨나간 게 느껴질 정도였다.

“지, 지금 철근이 잘려 나가는 소리가···.”

화면에서는 서도진이 몬스터들을 상대로 무쌍을 펼치곤 있었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썰려나가면서도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그저 명령을 받은 로봇이라도 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콰콱!

콰드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막고 주저앉기 시작했다. 이미 빛을 잃어버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을 정리하기까지 하는 이들은 삶을 포기한 모습 그 자체였다.

시은은 가만히 숨을 고르고 팔을 들었다.

희고 가느다란 팔목을 보호하기라도 하듯이 감겨있는 금색 팔찌. 그 중앙에 매달린 작고 푸른빛의 보석을 시은은 가만히 감싸 쥐었다.

‘···삼촌.’

찡-.

맑게 울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사파이어처럼 빛나던 마석이 깨지며 시은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 빛이 이내 점점 커져 나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있던 이들이 시은을 멍하니 쳐다봤다.

기도라도 하듯이 눈을 감고, 푸른빛으로 둘러싸인 모습을 보던 모두의 눈에 희망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성스럽고 신비스러운 광경에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둘러싸고서는 가만히 양손을 마주 잡기 시작했다.

시은에게 기도를 하는 건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절대적인 존재를 향해서인지 모를 기도.

‘삼촌···.’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점차 밝아진 빛은 어느새 사람들을 품고, 점차 그 빛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빛의 품에 안긴 사람들의 몸에서 떨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어갔다.

끼에엑!

어느새 외벽에 구멍이 날 정도까지 파헤쳐진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괴물의 울음소리.

그 소리조차도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고 한참.

꾸우우우웅-.

휴게소 전체에 퍼져나가는 묵직하고도 거대한 울림.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져 내린 것과 같은 진동을 만들어냈고, 시은은 그것을 느끼며 작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삼촌.’

* * *

‘안 돼! 거긴 안 돼!’

차라리 날 덮치라고! 도진의 대검이 무차별적으로 휘둘리는 사이로 빠져나간 몬스터들이 건물을 새까맣게 덮기 시작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에 뭔가 먹이라도 숨겨놓은 강아지처럼 맹목적인 움직임은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으아아아압!”

묵직한 대검을 횡으로 휘둘러 주변에 달려드는 두 마리를 더 베어냈지만, 그 자리를 금세 또 다른 녀석들로 채워진다.

끝이 없게 느껴질 정도로 덤벼드는 녀석들은 마치 자신을 방해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대체··· 뭐냐고 이건!’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3분? 5분?

아직 체력의 안배를 걱정할 정도로 지친 것도 아니었고, 오래 걸리지 않아 헌터 부대가 도착한다.

힘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마구 짜내고 있음에도 부족했다. 더 노력할 걸, 더 필사적으로 훈련할걸! 하는 아쉬움.

콰드드득-.

뒤쪽에서 콘크리트가 덕지덕지 붙은 철근이 뜯겨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떨어져!!!!”

소리를 지른다고 힘이 솟아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짜낼 수는 있다는 생각에 마력을 뿌리는 순간.

깨개갱! 깨갱!

덩치에 비해 너무 처량맞은 울음소리를 내며 물러나는 녀석들.

‘···뭐지? 무슨 일이···.’

건물 전체를 감싸는 푸른빛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빛에 닿으면 마치 불에 지져진 거머리처럼 움츠러드는 몬스터들의 모습도.

심지어 도진에게 달려들던 녀석들은 한참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시은이?”

보고 있는 것만으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온화한 기운. 도진은 그게 마력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단순한 마력과는 또 달랐다.

멍한 표정으로 건물을 쳐다보던 도진이 다시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애매한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창이 떨어져 꽂혔다.

몬스터들이 모여있던 한 가운데에 떨어진 충격에 휴게소 주변에 아직까지 가득하던 먼지가 단숨에 흩어졌다.

깨애액! 끼에에에에···.

허공에 떠올라 발버둥 치는 수십의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다가 서서히 흩어져간다.

분명 좋은 일임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장면을 보면서 도진은 그 중심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곤 대뜸 무릎부터 꿇었다.

“···죄송합니다.”

* * *

점심을 먹고 잠시 두 사람의 훈련을 봐주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삐릭-.

심심한 마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티비를 틀었다.

[경기도 가평 휴게소 인근에서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입니다. 게이트 관리국은 긴급 대피령을 내렸으며, 가까운 곳에 있는 휴게소에 있던 시민들은 몬스터 방어용으로 얼마 전 완공된 대피소로 몸을 피했습니다. 강화 콘크리트로 무려 두께 2미터로 제작된 대피소는 설계상 500명의 인원의 수용이 가능하며···.]

최근에 티비를 틀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뉴스.

“어? 또 게이트에요? 요즘 자주 나오네요.”

덕윤이도 이런 뉴스가 제법 익숙한지, 다듬을 멸치를 한 바구니 가지고 와서는 내 건너편에 앉았다.

태영이는 아직 식당 일보단 기초 훈련이 급한 것 같아 손님이 있는 시간이 아니면 딱히 다른 일을 시키진 않았다.

사실 지금 뭘 시킨다고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러게. 얼른 아카데미 1기생들 수료를 시키면 좀 나을 텐데 말이다. 너도 가서 열심히 가르쳐. 알았어?”

“···그냥 최선을 다하는 거죠, 뭐.”

쓰읍-.

“너 인마, 그렇게 해이한 마음으로 가면···!”

한바탕 또 꼰대질을 하려고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 이 녀석이 눈치라도 챈 건지 말을 돌린다.

“어? 사장님··· 저기, 도진이 형 아니에요?”

“갑자기 도진이가 왜 저기에···. 어? 진짜네. 그럼 별 문제없겠다.”

촬영용 무인 드론이 비추는 곳에는 분명 도진이가 서 있었다. 또 희생자가 많이 나올까 싶어 불안하다가도 도진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분명 스케일 하운드이고, 단단한 비늘이 귀찮긴 해도 도진이가 감당을 못할 정도는 아닌데? 왜 이리 버거워 보이지?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저 녀석이 왜 저러지? 잠깐, 주말이라 올라온 거면···.’

시은이가 함께 있을 확률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는 순간, 내 몸은 이미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시은이에게 준 팔찌가 사용되는 게 느껴졌다.

···다행이다. 잊지 않고 사용해서. 이런 순간 쓰라고 준 거니까.

멀리 도로 옆에 놓인 커다란 휴게소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빛이 감싸고 있는 반쯤 뜯겨나간 건물 하나와 그 옆에 멍하니 있는 도진이도.

그리고 빌어먹을 몬스터 무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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