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21화.
“안 돼.”
너무 단호한 대답에 9명이 일순 당황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미처 상황을 다 설명하기도 전에 들려온 거절은 냉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교수님···!”
“너희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테린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알지만 그건 말해줄 수 없다.”
예상을 못 했던 건 아니다.
수업 시간에도 몇몇이 예의에 벗어날 정도로 집요하게 물었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그래서 약간의 희망을 품고 오긴 했다. 특히나 테린은 성적도 우수해서 교수들 사이에서도 기대가 컸으니까.
“하, 하지만!”
“그만.”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단호함.
‘···아는 사람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소중한 사람이야.’
네이트는 서도진 교수의 표정에서 보이는 단호함 사이로 언뜻 비치는 걱정을 읽어냈다. 그가 거절하는 이유는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한다는 걸.
설령 아끼는 제자가 재기불능이 된다고 해도, 만약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될 가능성이 생기는 걸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다들··· 잠시 자리 좀 비켜줘.”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우리가 다 같이 사정해도 안 되는 걸, 너 혼자 무슨 수로 설득하겠다고.”
“부탁할게.”
다른 훈련생들이 모두 나가고, 서도진 교수실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네이트,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만.”
“교수님. 저 테린을 사랑합니다.”
뜬금없는 고백을. 그것도 당사자가 아닌 사람한테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아카데미에서 테린과 네이트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이렇게 말을 꺼내는 건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더 깊다는 의미겠지만.
“아마도 교수님이 많이 아끼시는 분이겠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서도진은 그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각성했지만 헌터가 되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듣긴 했어요. 특히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능력자라면 오히려 숨기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도···.”
정말로 잘려 나간 팔을 재생시킬 수 있는 능력자라. 아마 세상에 그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건 분명하다.
심지어 그런 능력자라면 전투 능력은 거의 전무할 가능성도 다분할 테니, 노출이 된다면 매 순간 위협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건 물론이고, 심할 경우 어딘가에 납치되어 평생 갇혀서 능력을 갈취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중한 이에게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교수님이 그 분을 생각하시는 것만큼, 저도 테린을 사랑합니다. 그녀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어요. 정말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은데, 지금의 저는 그저 이렇게 교수님께 부탁드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설득해야 하는데 설득할 자신이 없다.
네이트는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뭔가 크게 변화가 생길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서도진 교수가 조금이나마 자신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랬을 뿐이다.
“···교수님, 적어도 그 분에게 한 번만 여쭤봐 주실 수는 없을까요? 거짓말이라도 좋아요. 만약 그 분이 거절했다고 하시면 다시는 이런 부탁드리지 않겠습니다.”
서도진은 잠시 네이트를 쳐다봤다.
두 눈 가득한 진심을 마주하고, 서도진은 의자를 돌렸다.
“···나가 봐.”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 * *
투두두두두-.
헬기에서 내려서자마자 비릿한 바닷내음이 코를 찔렀다. 요즘 참 자주 찾아오네.
“이럴거면 그냥 식당을 여기에 차리지 그래?”
“정말 2호점이라도 낼까? 그럼 네가 사장할래?”
“···나 아카데미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거든?”
흠. 매번 올 때마다 마중나올 필요없다는데도 꼬박꼬박 나오는 걸 보면 그렇게 바빠보이지도 않는데.
그래도 원래라면 내가 해야하는 일을 혼자 죄다 처리하고 있으니 핀잔을 주는 건 참아야지.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최우혁 좀 만나러 왔어. 할 말이 좀 있어서.”
“···전화로 해도 되는 거 아냐?”
안 될 것도 없긴하지만,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만나서 해야할 이야기라.”
중요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대화란 사람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훈련중일텐데. 불러올까? 아니면···.”
“아냐. 내가 가보지. 훈련하는 것도 좀 볼 겸.”
내 말에 이루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좋지. 아마 깜짝 놀라게 될 거야. 기대해도 좋을 걸?”
자신만만한 미소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물론 이루가 저렇게 자신감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아카데미에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된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인데.
아무렴.
“어때? 놀랍지?”
“···전부 다 이 정도 수준이라고?”
훈련중이라고 해서 난 일종의 ‘수업 시간’을 떠올렸다. 나도 학교를 다닌 적은 있어서 그 정도 상상은 가능하니까.
그런데 이루가 데려온 곳은 내가 생각했던 건물이나 운동장, 혹은 체육관 같은 장소가 아니라 지명도 있을지 없을지 모를 법한 야산이었다.
대마도야 어차피 대부분 산지로 되어 있긴하지만 굳이 이런 곳에서 수업을 하나 싶었는데, 다가갈 수록 느껴지는 건 엄청나게 다양한 마력.
그것도 몬스터의 마력이었다.
이내 눈 앞에 펼쳐진 건 수업이라기보단 그저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를 도륙하고 있는 훈련생들이었다.
아니, 저런 모습이라면 그냥 헌터라고 불러야할 모습인데.
“전부 다 이런 수준이라니. 무슨 그런 소릴.”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모아서 실전 감각을 기르는 훈련이었나?”
어쩐지. 그런 거라면 조금 이해가 되네.
“그 반대라고.”
“···반대?”
“여기 있는 녀석들은 훈련생중에서 훈련 성적이 제일 낮은 최하위 그룹이야. 일종의 보충 수업같은 거지.”
“하지만 최우혁이 이 수업을 듣는다고 하지 않았어?”
불과 며칠 전에 그 녀석을 데리고 게이트를 들어갔었으니 내가 착각을 하고 있을리는 없다.
슈트와 캐논 슈터로 무장한 녀석은 적어도 E급. 조금만 무리한다면 D급 헌터와 비교해도 될 수준이었지.
“그런 녀석이 최하위 그룹이라고?”
같은 게이트에 들어갔던 조가 최우혁 혼자 처리했던 머드 골렘 3마리에 거의 전멸 위기까지 몰렸었다는 보고서를 이미 확인했는데? 앞뒤가 맞질 않는다.
“그 놈은 좀 예외야. 알다시피 슈트가 없으면 일반인이지. 거기다 그 슈트라는 것도 마석을 엄청나게 쳐먹는 돈 덩어리고.”
“돈이야 썩어나는 녀석이니까.”
“그건 그렇지. 근데 이 녀석이 마석이 부족할 때의 상황에 대비한다나? 그래서 성적은 최상위권이면서도 보충 수업에도 참여를 하거든. 마석을 최소한으로 쓰는 훈련을 한다면서 말이지. 아! 마침 저기 보이네.”
이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열심히 산 길을 달리는 인형人形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검은 훈련생 옷을 입은···. 어?
“···슈트를 안 입은 거 같은데?”
“그래. 저 녀석, 지금 무기만 빼면 일반인이나 다른 없어. 말 그대로 목숨 걸고 훈련하는 거지.”
“왜 그렇게까지?”
“몰라. 가끔 보면 변태같기도 하다니까?”
열심히 달리곤 있지만, 다른 훈련생들에 비해 움직임이 확연히 느렸다. 잠깐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천만한 순간이 몇번이나 있었을 정도로.
굳이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정확한 횟수야 모르지만, 아마 블랙을 가장 많이 만난 훈련생일걸?”
“설마 강제 각성을 노리기라도 하는 건가?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은 한 거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갑자기 각성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종종 발생하는 모양이다.
확률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기적에 가까운 수치인 모양인데, 설마 그걸 노리는 건가? 나름 과학을 한다는 녀석이 그런 운에 목숨을 건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되는데.
“행운은 때때로 바보를 찾아가는 법이니까.”
“···그거 독일 속담아냐? 심지어 그 뒤에 뭐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뒤는 몰라.”
표정을 보니 아는 것 같은데? 뭐, 이 상황에서 굳이 뒤에 올 내용은 필요없겠지만.
“이루, 넌 저 녀석이 마음에 드나보네?”
“저렇게 노력하는 걸 보고 있으면 미워하기가 더 힘들지 않겠어?”
잠깐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고 있다. 가만 보니, 캐논 슈터도 최소한으로만 사용하고 있네.
가능하기만 하면 내가 나서서 정말 강제로 각성이라도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그럼 최상위 그룹은 어느 정도야?”
“글쎄. 모르긴 해도 D급 게이트 정도는 우습게 깰 수 있을걸?”
“고작 한 달 훈련으로?”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각성자는 경력이 곧 강함의 척도에 가깝다.
극소수의 특수 능력 보유자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능력은 경험을 얼마나 쌓느냐에 따라 그 활용도가 높아진다.
심지어 시연이의 예지 능력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먼 이후를 보게 될 수 있고, 더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게 될 수 있겠지.
그리고 더 자주.
각성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공략대 구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체 강화 능력자의 경우엔 그런 차이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고작 한 달만에 D급에 근접했다는 건 예전의 경우에 비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성장이 빠른 셈이다.
그리고 그건 아카데미의 존재 유무 하나만의 차이는 결코 아닐테고.
‘분명 뭔가 다르긴 한데, 그게 뭔질 모르겠네.’
이번이 2번째라?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대강 정리된 모양이네. 근데··· 무슨 일로 만나려는 거야?”
“별건 아니고, 뭘 좀 만들고 싶은 게 생겨서.”
“만들다니? 뭘?”
“그건 만들면 보여줄게.”
나는 이루의 어깨를 툭툭치고선 최우혁이 널브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땀에 절은 건 물론이고 찰과상이 온 몸을 덮고 있다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태.
블랙에게 실려갈 건 분명하겠네.
“그 돈이면 편하게 살아도 될 텐데, 왜 하필 헌터가 되겠다고 이러는 거냐?”
심지어 각성자도 아닌 녀석이.
굳이 목숨을 걸고 이러는 이유가 이해가 되질 않느다.
슈트나 캐논 슈터에 먹이는 마석을 파는 게 훨씬 더 이윤이 남을 텐데, 다른 헌터들이 마석을 팔아 경제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에 완벽하게 반대되는 행동이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할 수록, 이 녀석은 돈이 더 많이 나가는 구조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은가.
인사도 없이 대뜸 건넨 말에 최우혁은 감고 있던 눈으로 날 힐끔보더니 끙끙거리면서도 일어나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었으니까요.”
“처음? 뭐가 말이냐?”
“날 그렇게 대한 사람이요.”
······.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전개인데.
“난 반드시···!”
“아아, 그만. ···그 뒤는 별로 듣고 싶지 않네.”
“물어보셨잖아요.”
“아냐. 내가 잘못 생각했어.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그 뒤에 무슨 말이 나와도 기분이 좋을 것 같진 않으니까. 차라리 얼른 본론으로 넘어가는 게 낫겠다.
“최근에 꽤 다양한 물건을 개발하는 모양이던데?”
“···어떤거요?”
선뜻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낸 건가? 이 녀석, 생각보다 능력이 좋은건가.
어차피 직접 개발하는 게 아니긴 하겠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은 결국 그런 이들을 데리고 있는 것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래서 뭘 좀 만들었으면 하는데.”
“···저한테 부탁하시려는 겁니까? 주문 제작은 꽤 비싼데요.”
“괜찮다. 나도 돈이라면 제법 있거든.”
“아 참, 그랬죠.”
거들먹 거리려던 얼굴이 한 순간 일그러졌다. 진짜 자기 감정에 솔직한 녀석이네,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음이 가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아마 만드는 게 쉽진 않을거다.”
“대체 뭘 만들어달라고 하시려고 시작도 전에 겁부터 그렇게 줍니까. 아무튼, 노력은 해볼게요. 그래서 뭘 만들어드리면 되는데요?”
“···능력을 담을 수 있는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