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19화.
무슨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그건 비단 라미야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장소에 있는 다른 이들은 그저 떨기만 할 뿐,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
“······저, 저게···. 몬스터라고?”
아마도 눈이라고 의심되는 거대하고 깊다. 사람 수십 명쯤은 한 번에 빨아들이고도 남을 것 같은 심연처럼 보이는 어두운 구덩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느껴진다.
이게 바로 절망이라는 기분일까.
이길 수 있을까? 그런 의문조차 들지 않을 정도의 기운을 가진 것은 거대한 인간형 상반신이었다.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은 크기의 골렘.
상반신만 나와 있다는 걸 아는데,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쩌면 세상 끝으로 달린다고 해도 멀어지지 못하지 않을까?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알려줘, 진.’
무엇을 해야할지 감이 오질 않는다.
머드 골렘 수십 마리 정도야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저건 아니다.
그워어어어-.
공간 전체를 울리는 듯한 소리를 내는 화산의 분화구 같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마그마.
들기만 하면 구름 위 넘어까지 올라가고도 남을 듯한 거대한 팔.
“교, 교수님··· 저게 뭐예요? 진짜로··· 저런 것도 몬스터인가요?”
키만 십여 미터가 넘어간다는 거인형 몬스터가 있다는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질리도록 들어왔다.
어지간한 헌터라면 적어도 서넛은 붙어야 이길 수 있다는 몬스터.
하지만 학생들도 바보가 아니다.
그런 몬스터는 극히 드물 뿐이고, 그저 교수들이 자신들을 겁주려고 하는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적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실제로 목격하기 전까지는.
훈련생들의 눈이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렇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우린 이제 다 죽을 거니 마지막으로 기도라도 하라고 진실을 말해줘야 하나? ···입이 찢어져도 그런 말은 하지 못한다.
-게이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절망적인 상황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 보면 갑자기 예상치 못한 돌파구가 생겨날지도 모르는 게 바로 게이트 안이야. 그러니 너희도 혹여나 그런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해선 안 돼. 알겠지?
자신이 학생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그런 자신이 포기하자고 말해버리면 정말로 끝이 나 버린다.
만에 하나 기적이 일어나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한들, 21조는 절대 헌터가 되지 못할 거다.
‘생각해. 라미야··· 어떻게 하지? 어떻게···.’
그나마 다행인 건 저 거대한 골렘이 아직 자신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 짓밟을 수 있어서인지, 인지하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있을지도 모른다.
“···네이트, 일단 여기서 피해야겠다.”
“피하다뇨? 저걸··· 무슨 수로 피해요. 대체 어디로요.”
상황이 절망적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 가만히 죽길 기다리는 꼴은 보일 수 없다. 당장은 떠오르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면 우선 몸을 피하는 것이 답.
라미야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 대체 어디로 가야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거지?’
게이트 안의 공간은 한정적이다. 네임드 보스가 나타날 정도의 게이트이니 다른 곳보단 넓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무한한 것은 아니다. 그런 장소에서 과연 저런 괴물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잡아둘 사람이 있으면?’
보이는 것은 상반신뿐이지만, 정말 이동이 불가능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상반신만 이동을 할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피할 동안 저 녀석이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시선을 끄는 다른 게 있다면?
“네이트.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교수님···. 네!”
네이트도 순간적으로 라미야의 표정을 보고선 느꼈다. 그렇게 강하던 교수조차도 저런 괴물에게서는 방법이 없다는 걸.
그래서 그녀가 지금 자신의 목숨을 걸 각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럴 수 없다는 둥, 우리만 달아날 수 없다는 입에 발린 소리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았다.
자신들은 아직 배우는 학생의 신분.
설령 함께 자리를 지킨다 한들, 라미야에게는 그저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저 분할 뿐이다.
“지금부터 너희를 어딘가로 공간이동 시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서 나오지 마. ···상황이 마무리되면 내가 너희를 데려올 테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네? 어딘가로라니···. 거기가 어딘데요?”
“안전한 곳.”
이곳에서 벗어난다고 한들, 이 안에 안전한 곳이 과연 있긴 있을까?
아직도 곳곳에서는 머드 골렘이 튀어날지 모르는 공간에서 안전한 장소따위가 있을리 없다.
그런데도 라미야 교수의 눈에 가득찬 확신은 뭔가?
“···네!”
믿을 수밖에 없다.
지금 자신들은 그저 짐이 될 뿐이다. 게다가 라미야 교수가 저렇게 강한 확신을 담아 ‘안전한 장소’라고 말할 정도라면 지금은 그녀를 믿을 수밖에.
* * *
“최초의 골렘이라. 진짜 크긴 우라지게 크구나.”
“···저, 저런 것도 몬스터라고 하는 겁니까?”
“글쎄. 네가 보기엔 어떠냐.”
최우혁은 멍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더니.
“···몬스터보단 차라리 신이라고 하면 믿을 것 같은데요.”
피식.
그러고 보면 신화에 저런 비슷한 존재가 나오긴 했었던 것 같긴 하네.
“신이라··· 그래, 그것도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겠구나.”
“네? 저거, 진짜 신이에요?!”
별로 해줄 생각도 없는 대답이지만, 일단 뒤로 미뤘다.
그보단 지금 저곳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까.
라미야를 중심으로 게이트의 온 마력이 요동을 친다.
아무리 라미야라도 설마 저 타이탄의 핵을 찾으려는 건 아니겠지? 저 거대한 크기도 문제지만, 저 녀석이 가진 끔찍할 정도로 강력한 마력을 뚫는 건 불가능할 텐데?
그리고 잠시 후, 10명의 기척이 사라졌다.
‘···뭐지?’
공간이동을 시켰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게이트 안, 어디에서도 10명의 마력이 느껴지질 않는다.
설령 죽었다고 해도 잔존 마력은 남기 마련이건만, 이건 마치 스위치를 끈 것처럼 사라졌다.
그워어어어-!
그리고 이내 타이탄의 울음소리가 게이트 안을 울렸다.
마치 장난감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어린아이처럼.
“최우혁.”
“네! 선생님.”
“이 꽉 물어라.”
“···네?”
괜한 이목을 끌기 싫어서 조심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혼자 머드 골렘 정도야 잘 처리할 수 있는 걸 확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혼자 두고 가기엔 불안하니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야지.
후웅-.
몸이 떠오르자 흠칫하던 녀석은 이제 곧 무슨 일이 닥칠지 직감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눈치는 빨라.
정말 있는 힘껏 땅을 박차며, 라미야가 있는 곳을 향해 전력으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걸리는 엄청난 중력을 최우혁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슈트의 성능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
‘···왜 저리 빨라!’
움직이는 장면 자체만 봐도 현실감이 떨어지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기둥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두께의 팔이 하늘에서부터 휘둘러진다.
구름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에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손바닥이라 생각되는 부위가 마찰열에 의해 화구(火球) 현상이 일어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지.
운석은 떨어지면서 불이 붙으면 그 크기라도 작아지는데, 저건 불이 붙은 채로 떨어져 내리는데 작아지지도 않네, 빌어먹을!
저런 걸 정말 막을 수는 있나?
하지만 막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일단 어떻게든 저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뻐엉-.
다시 한번 대기를 박차자 공기가 터져나간다.
내 볼이 떨릴 정도의 속도에 최우혁이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해주겠지. 물론 블랙이.
‘들어오기 전에 블랙을 대기 시켜 두라고 할 걸 그랬나?’
이루라면 알아서 준비해둘지도.
주변의 시간이 느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속도.
시야가 좁아지고, 그 끝에 라미야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아이들은 안 보이는데···. 그런 대체 어디로 보낸 거지?’
모르긴 해도, 저 손바닥이 바닥에 떨어지면 게이트 안에서 무사한 곳은 찾기 힘들 거다.
그야말로 천지가 뒤집히는 충격이 휩쓸 텐데, 어디에 있든 영향을 받지 않을 곳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내가 막아낸다고 한들, 게이트 안의 공간 정도라면···.
차라리 내 근처에 있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모르겠네.
뭐가 되든, 일단 저 손바닥이 이를 악물고 있는 라미야의 머리 위로 떨어지게 두는 것보단 낫겠지.
“라미야!”
내 목소리가 닿은 건지. 아니면 다가오는 마력을 느낀 건지.
라미야와 내 눈이 마주쳤다.
“이진? ···네가 어떻게.”
지금 내 속도가 음속을 아득히 넘었을 테니, 소리가 닿았을 리는 없겠지?
그럼 여기서 소리를 질러봐도 닿지 않을것 같긴 한데.
“엎드려어어!”
안 닿는 다는 걸 알면서도, 냅다 소리를 질러본다.
인간의 본능인가?
하지만 라미야도 날 확인하고선 곧장 엎드렸다. 이게 바로 팀웍이라는 거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꾸우웅-.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크레이터를 만들면서 착지하고선 곧바로 양손을 힘차게 하늘로 뻗었다.
무너져 내리는 하늘을 받치기라도 하듯이.
* * *
해가 떠오르기도 한참 전에 일어나 가볍게 조깅을 한다.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가볍다 말하기 힘든 수준이지만, 각성한 덕윤에게는 이제 하루의 시작이 된 운동.
살짝 흘린 땀이 식어갈 즈음, 이진이 마련해준 가게 마당의 한켠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는다.
온 세상을 떠도는 따스한 기운이 덕윤의 몸 주변을 감싸는 게 느껴진다.
몸속의 기운을 천천히 끌어올리면 점차 확연해지는 그것들은 오직 이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아무리 집중을 해도 느끼지 못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곳이 덕윤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지금 내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폐관 수련이라도 하듯이, 덕윤은 지금 오직 능력을 단련하는 일만 하고 정작 실전을 겪어본 적이 없다.
각성을 하고 아주 처음에 실전이라 부르기 힘든 상황을 겪긴 했지만, 그건 결코 좋은 기억이 아니다.
덕분에 이진이라는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긴 했지만, 그런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자칫 인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지낼 뻔했었으니까.
“후우···.”
1시간 남짓.
명상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요즘 자주 얼굴을 보이는 시연이 마침 가게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 왔어?”
이제는 한결 편해진 호칭.
하루의 시작이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상쾌한 미소의 주인.
“네. 오빠도 좋은 아침이네요. 삼촌은요?”
“그게, 아침 일찍 어딜 가셨는데.”
“또 어딜요? 어제도 엄청 늦게 왔으면서.”
“그게, 새로 오는 직원이랑 무슨 홍보용 사진 찍으러 간다고 하시던데?”
“홍보용 사진··· 이요?”
에이- 아니겠지.
시연은 얼마 전 그렸던 그림이 떠올랐지만, 애써 부정했다.
삼촌도 자신이 절대 그런 옷을 입을 리가 없다고 못 박았으니까.
“근데, 직원이 새로 와요? 아, 덕윤 오빠가 곧 대마도로 가니까요?”
“응. 아, 맞다. 새로 오는 직원 이름이 좀 특이해.”
“···이름이··· 뭔데요?”
“이름이 김태영이래. 하하, 알지? 북한의 그. 어떻게 북한에 갔다 오시더니 또 딱 그런 이름의 직원을 데리고 오셨나 몰라. 하하하.”
어째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 걸까.
시연은 울고 싶은 얼굴을 하고선,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무슨 사진인지··· 알 것 같네요.”
제발 가게에 걸지는 않기를.
시연은 속으로나마 작게 기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