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18화.
각성을 하는 데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력 공학. 즉, 마력을 이용한 장치를 만드는 능력의 각성자만큼은 다른 이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나타났다.
이유는 역시 아무도 알아내지 못했다.
마력 공학은 지금 삼영그룹에서 제작하고 있는 마력탄 무기나 슈트를 만드는 기술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들 역시 마석을 이용하는 장비이긴 하지만, 마석은 그저 에너지 충전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하지만 마력 공학 능력자가 만드는 장비는 그 개념 자체가 다르다.
마석을 녹여 장비 제작 단계에서부터 마석이 함유된 소재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게 가능한 것이 바로 각성자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마석 용해가 가능한 마력 공학 능력자들뿐이다.
덕분에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로 많은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할 거란 기대는 이미 처음 각성한 이들이 나타난 직후부터 시작됐다.
단점이라면 하나.
마석이 함유된 소재로 제작된 장비들은 각성자밖에 사용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녀석이 슈트를 사용하는 걸 보면 이번엔 좀 다를지도 모르겠네.’
슈트의 능력은 내가 예상하던 범위를 넘어섰다.
깔보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사실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건 정말 예상외라고 할 정도다.
게다가 최도혁은 마치 ‘이것이 바로 미래의 군인이다.’를 온몸으로 외치는 듯한 전술까지 보여줬다.
이름은 조금 촌스러운 캐논 슈터라는 무기는 이름에 걸맞게 ‘캐논’의 위력을 보여줬다.
6발을 쏠 때마다 마석 하나를 집어넣던 건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저 정도 위력을 내려면 그 정도는 필요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실제로 만약 저런 무기가 보급된다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물론이고 일반인이 슈트를 입고 게이트를 공략하는 날이 머지않았을 것 같은 생각도 들 정도로.
까드득-.
간혹 뒤에서 이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마석을 씹어먹는 걸 보고 있으면 정말 연비는 최악중의 최악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움직임을 보조하는 슈트와 엄청난 파괴력과 정확도를 자랑하는 휴대용 무기의 조합이라니.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녀석 혼자서도 E급 게이트 정도는 무리 없이 공략할 수 있을 것 같네.
···다음에 한 번 실험해볼까?
심지어 이 녀석은 게이트의 마력 최대 수용치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장착한 장비는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들었을 거라 생각되는 슈트는 제외일 테고.
그래 봐야 저 캐논 슈터 정도? 각성자 한 사람이 들어갈 마력 수용치와 비교하자면 아마 20~30자루는 가능할지도.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연달아 마석을 몇 개나 입속에 털어 넣더니 이젠 달리면서 말을 할 정도로 적응을 한 건가? 재능 하나만 놓고 보자면 탐이 나는 녀석이네.
“말해.”
“라미야 교수님이랑 21조 애들이요. 왜 저기서 안 움직이고 있는 걸까요?”
“···휴식 중이겠지.”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나도 조금씩 의문이 생기던 차다.
게이트를 처음으로 통과했다는 21조 훈련생들이 들어온 게 대략 5시간 전, 그리고 라미야가 그로부터 2시간 뒤에 게이트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최우혁을 데리고 들어온 건 다시 그로부터 3시간 뒤.
‘훈련생팀이 먼저 움직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상당히 급하게 움직인 건 맞다. 그런데 그 뒤로 저렇게 한 장소에서 머물러 있다고?’
이상하잖아.
혹시 내가 게이트에 들어온 걸 알아챈 건가? 라미야가 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마력 탐색을 하는 건 라미야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찾으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저절로 알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라미야는 분명 자신이 들어온 뒤에 누군가가 또 들어올 거라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실시간으로 마력 탐색을 할 리는 없겠지.
근처까지 다가가면 자연히 알겠지만,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나를 알아내기는 힘들었을 테니 기다리는 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애초에 내가 들어온 걸 알아챘다면 공간이동을 시도했을 텐데, 그런 낌새도 전혀 없었고.
“그래도 휴식치고는 너무 긴 거 아닌가요?”
“···가보면 알겠지.”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다친 환자가 있나?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오히려 게이트 공략을 서둘러야 하는 게 맞다. 훈련생 중에는 힐러가 없고, 라미야도 다른 이의 치유는 불가능하니까.
그렇다면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유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애써 부정하고 싶은 이유를 굳이 하나 떠올리자면 있지만.
‘라미야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몬스터가 있다는 건가···.’
공간이동 능력은 분명 뛰어난 능력이긴 하지만, 전투에 특화된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특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지 전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라미야는 공간이동 능력을 이용해 상당히 뛰어난 전투가 가능한 체계를 만들었을 정도로 전투 센스는 발군이다.
기본적인 신체 능력도 어지간한 신체 강화 능력자에 비해 그리 뒤처지지도 않고.
A급 게이트 정도라면 혼자서도 하루면 씹어먹고도 남을 능력자인데.
그런 그녀가 막혀있는 거라면 어쩌면 최악의 가정을 생각해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최초의 골렘.
일명 타이탄이라 불리는 마운틴 골렘의 등장.
지금까지 S급 게이트에서도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은 몬스터라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오래전 북유럽의 어딘가에서 열린 게이트에서 등장했었고, 당시 최상위 헌터로 이뤄진 3팀이 전멸할 정도로 끔찍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헌터 등급으로 따지자면 겨우 B급에서 A급을 오가는 수준이어서 들어갈 자격조차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당시 마지막 팀에 참여했던 이를 하나 알고 있긴 하다.
유리코프 이바노비치 바실로프.
-그야말로 압도적이었지. 마운틴 골렘이라고 부르는 건 진짜 산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큰 덩치 때문이었어. 너무 커서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게 아니었다면 아마 토벌하기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다시 볼 일은 없겠지? 그런 녀석들은 보통 한 번 토벌되고 나면 두 번은 안 나타나니까.
언제가 유리코프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그때까지 S급 게이트의 보스로 등장했던 몬스터들은 모두 두 번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다.
늑대들의 왕, 최초의 골렘, 좀비 군주, 불꽃의 주인···.
모두가 등장과 동시에 세계의 수많은 헌터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몬스터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몬스터들과는 달리 단 한 번씩만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저 그때까지는 그랬었던 것뿐이니까.
이번에도 과연 그런 법칙이 그대로 이어질까?
‘모르겠네.’
자문자답을 하며 이동을 하다보니 라미야가 있는 곳과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아마 몇 분이면 이제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의 거리.
“···선생님. 근데 저건 뭐···죠?”
빌어먹을.
* * *
총 기간 3년.
사업비 규모만 무려 30조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가 체결됐다.
80%가 대한민국의 부담이지만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을 얻었다.
“그럼 앞으로 3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그나저나 정말 다음 달부터 금강산 관광을 시작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관련 시설물 보강이 조금 필요하겠지만, 한국 건설사들이 일 빨리하기론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금강산이라면 역시 봄에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계절마다 다른 이름 넷 중에 금강산이란 이름은 봄의 이름이다. 김태영은 그걸 말하는 거였다.
“금강산도 좋지만, 역시 무역 개방이란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북한도 언제까지나 문을 걸어잠가서야 되겠습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지만,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하는 말이다. 심지어 그게 일인 권력 체계에 가까운 북한이라면 그 말이 가지는 무게는 두말할 가치도 없이 중요하다.
“그 말씀은···.”
“저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양국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건··· 의미가 큰 말이네요.”
통일부 장관의 얼굴이 살짝 상기될 정도로 의미가 크다. 양측 모두 직접적인 단어의 언급은 없었지만, 이번 회담에서 ‘통일’에 대한 불꽃을 분명 느꼈다.
이전처럼 희미하게만 보이다 이내 없었다는 듯 사그라들던 작은 스파크가 아니라, 불쏘시개와 산소만 잘 공급해준다면 이내 커다랗게 타버릴 수 있을 정도의 불씨를.
김태영과 통일부 장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맞잡은 서로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개성공단의 소식까지 전해지면 간만에 주식장이 활기차지겠네요.”
“호재가 될 건 분명하겠지.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겠지만.”
“···중국 말씀이시군요.”
북한이 남한의 요구사항을 이렇게까지 이례적으로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것에는 또 다른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국의 간섭을 차단해 달라는 것인데, 이것만은 많은 협의를 거쳐야 하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지금 소수민족들의 독립 움직임이 활발하다곤 하지만, 중국 인구의 90% 이상은 결국 한족이다.
문제는 그들이 독립을 하면서 가지고 나갈 땅덩어리. 그걸 잃게 되면 중국의 국력은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될 텐데, 그걸 두고 볼 공산당이 아니니까.
“혹시 중국에서 북한까지 흡수하려는 걸까요?”
얼핏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상대가 중국이다. 헛소리가 분명한데도 말하는 게 중국이라면 단순히 헛소리라고 무시만 하고 있다간 뒤통수를 맞기 십상.
“대비는 해야겠지. 우선, 돌아가는 즉시 신분 세탁할 준비 완료하고. 사이버안전센터에 말해서 온라인에 떠도는 사진이나 동영상은 물론이고, 캐리커처같은 것도 있으면 전부 삭제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아무것도 남겨선 안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태영이 한국에서 생활을 하게 될 거다.
그것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걸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식당이 귀환자 식당이라는 걸 알면 또 고개를 끄덕이게 되겠지.’
결국 언제가 알려지긴 할 거다.
아무리 남아있는 사진을 지운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까지 조작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최대한. 정말 최대한 공개를 늦춰야 한다.
얼마나 늦출 수 있느냐에 따라 북한과의 협상에서 더욱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테고, 그만큼 통일이라는 위업에 한층 더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단어.
그걸 위해서 이제 남은 건, 이진의 결정뿐이다.
“아, 선생님은? 제주도에서 올라 오셨나?”
“이진 선생님이라면 지금 대마도에 계신다고 합니다.”
“대마도?”
“네. 조금 전에 들어온 소식인데, 게이트에 문제가 생겨서 직접 해결하러 가셨다고 합니다.”
“잠깐, 게이트에 직접 들어가셨다고?”
지금 대마도에는 교수로 있는 5명의 귀환자가 있다.
어지간한 게이트 정도는 혼자 들어가서도 산책 수준으로 다 때려부수고 나올 수 있는 사람들만 5명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진을 불렀을까. 안정민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러다 결국 전화를 걸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이진 선생님까지···. 등급 외 게이트?”
처음 듣는 건 아니지만, 익숙하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현상.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진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서에 한 두번 정도만 등장했던 일.
“라미야 교수까지 들어갔는데도? 흐음··· 일단 알겠다. 수시로 상황 보고하고. ···그래.”
어쩔까? 지금이라도 대마도로 내려가야 할까?
‘하지만 선생님이 가셨으니 문제는 없겠지?’
청와대에 북한 회담에 대한 정식 보고는 두 장관이 하기로 했다.
안정민이 해야 하는 일은 이진의 의향 파악.
“식당으로 가지.”
오늘은 평일. 아마 6시가 되기 전에는 돌아오실 테니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될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