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17화.
퍼서석-.
핵이 부서진, 아니. 핵이 사라진 머드 골렘은 순식간에 마치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말린 진흙처럼 말라가며 부서져 갔다.
수십 년간 비라곤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논바닥이라도 된 것처럼 갈라지며.
조원 10명이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걸 마치 즐기기라도 하는 듯할 발걸음으로 뒤를 쫓아오던 그 괴물이 눈앞에서 부서져 내리는 걸 보며, 아이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기죽을 것 없어. 머드 골렘은 신체 강화와는 원래 상극이니까. 뭐, 나중에야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렵진 않겠지만, 지금 너희들은 아직 교육 중이고···. 뭐야, 표정들이 왜 그래?”
아이들의 표정은 그저 기가 죽었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보단 오히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굳어 있었다.
그래··· 마치 신의 강림이라도 본 것처럼.
“뭐야. 너희들··· 새삼 나한테 존경심이라도 느끼는 거야?”
굳어진 분위기를 조금 풀어줄까 싶어서 반쯤은 장난삼아 던진 농담이었는데.
“···네.”
“너무너무 멋졌어요.”
“교수님 최고···.”
목숨을 구원받았다는 사실보다, 지금 그들은 자기들이 어떤 사람들 밑에서 훈련받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자자, 정신들 차리고. 부상자부터 챙겨! ···뭐해?!”
존경심이 솟아나는 거야 차치하고, 지금은 아직 게이트 안이다. 넋 놓고 앉아 사제 간의 정을 쌓기엔 장소가 너무 안 좋다.
모든 건 이곳을 벗어나고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까.
‘A급 머드 골렘이 나오는 게이트이라니···. 설마 마운틴 골렘이라도 나오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 하나만 바라보고 있을 텐데, 그런 상황까지 갈 수는 없다.
“라미야 교수님, 우선 거동이 힘든 부상자가 한 명이고, 경상자가 3명입니다.”
“거동이 힘든 건 누구야?”
“테린이요···. 상처도 심한데, 충격이 커서 그런지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라···.”
얼핏 상처가 심해 보이는 건 한 명. 테린이었다.
21조의 조장이자, 학교에서도 유망주로 손에 꼽히던 아이였는데···.
오른팔이 팔꿈치 아래부터 완전히 사라졌으니 어찌 될지는 모르겠다.
‘A급 게이트라면 공략까지 앞으로 5일은 걸릴 텐데···.’
그것도 최단 시간 내에 공략이 가능할 경우.
지금은 유효한 전력이라고 해봐야 라미야 한 명인 데다, 보호해야 하는 학생만 10명.
간단하게 계산해봐도 일주일은 걸릴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블랙이라도 시일이 그렇게 지나버리면 치유가 어렵다.
아니, 그 전에 이미 자가 치유가 되지 않으면 죽게 되겠지.
“네이트. 혹시, 잘린 팔은?”
“···팔은 찾지 못했어요.”
라미야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그, 그래도 고칠 수 있는 거죠? 그렇죠? 블랙 선생님이라면 가능하잖아요!”
“···아무리 블랙이라도 사라진 팔을 다시 자라게 하진 못해.”
힐러는 신이 아니다.
사라진 팔을 다시 자라게 하는 건 대상자가 도마뱀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불가능하다.
치유란 대상자가 가진 자가 치유력에 마력을 더해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는 있지만 사라진 신체를 복구시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니까.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팔이 날아간 테린 본인조차도 그 말을 듣고선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테린, 아직 포기하긴 일러. 마석 공학 능력자가 나오면 지금 있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의수 제작도 가능하고···.”
예전에 활동하던 헌터 중에선 외팔로 상당히 이름을 날리던 이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까지는 굳이 하지 않았다.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은 아닐 것 같아서.
* * *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묵직하게 내려앉는 마력이 느껴진다.
“···여기가 게이트?”
“그래.”
곧장 뒤를 따라 들어온 최우혁이 살짝 질린 표정을 짓는다.
아마도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환경이라서 그렇겠지.
“그래. 들어와 보니 기분이 어떠냐?”
“···뭔가 짓누르는 느낌이네요. 그래서 그런지··· 숨쉬기도 좀 힘든 것 같고. 뭔가, 수업에서 배우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네요.”
물론 그렇겠지.
여긴 대강 느껴봐도 B급. 어쩌면 A급까지 생각해도 가능할 정도로 마력 농도가 짙은 게이트다.
아무리 마력 슈트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응?
“···지금 뭐하니?”
내가 뭘 잘못 본 건가?
“마력을 더 공급하면 해결되는 거 아닙니까.”
“···마력을 공급한다는 게, 그렇게 하는 거였어?”
생각도 못 해봤다.
아,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에도 저런 식으로 능력을 증폭시킬 수 있었던 녀석이 하나 있긴 했었지.
근데 그때랑은 다르잖아. 저 녀석은 슈트만 벗으면 그냥 일반인 아니었나? 저래도 되는 거야?
으적으적.
슈트를 입어서 저런 게 가능한 건가? 아니면 저런 짓거리를 맨정신으로 할 수 있어서 슈트를 입을 수 있는 건가.
뭐가 됐든···.
“···대단하네.”
까드득.
···지금 이 부러지는 소리가 난 거 같은데?
“모르셔서 그러는데, 이거 생각보다 할 만 합니다. 한번 드셔보실래요?”
“···사양한다.”
“신기하게 마석 등급이 높을수록 부드럽고 맛이 좋아요. 아셨어요?”
아니. 미친놈아. 난 마석을 안 먹으니까.
저게 무슨 소고기도 아니고, 부드럽다는 건 또 무슨 헛소린지.
“···다 먹었냐?”
“네! 이제 좀 힘이 나네요.”
그것참 다행스러운 일이구나.
멀리서 묵직한 마력 하나가 확연히 느껴진다. 이 정도의 마력 수치라면 아마도 라미야겠지.
그런데 거리가 상당한데? 라미야가 게이트에 들어온 지 이제 3시간 남짓 지났다고 했는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벌써 저만큼이나 이동한 건가?’
A급 게이트.
거기에 주변 환경을 봤을 때 여긴 골렘 출몰 지역일 확률이 높다.
라미야 정도의 능력이라면 아주 어렵진 않았겠지만,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른데?
“왜 저렇게 서두르는 거지?”
“어디요? 보이세요?”
“······.”
이 녀석이 원래 이런 느낌이었나?
하기야 처음 봤을 때부터 쥐어패느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긴 하지만, 첫 만남에서도 재수가 없었던 건 기억이 난다.
옆에 바짝 붙어서는 뭐가 보이나 싶어 고개를 빼 들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그냥 철없는 아카데미생 같아 보이는데.
“눈으로 보이는 게 아니야. 느끼는 거다.”
“느끼라면 어떤걸요?”
“뭐긴 뭐야. 마력을 느끼라고. 마력을.”
신체 강화 능력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녀석은 신체 강화 능력인 것도 아니잖아?
“으음··· 마력을···.”
검지와 중지를 이마에 대고선 눈을 감고 중얼거리는데.
진지한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네.
“뭐가 좀 느껴지냐?”
“···잘 모르겠네요.”
하기야 이렇게 대충 던진 말을 듣고 한 번에 알아낼 정도의 재능은···.
“···그래도 저쪽에서 뭔가 웅웅 꺼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요?”
···그걸 느꼈다고?
최우혁이 든 손가락은 정확하게 라미야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렇게 멀리 있는데? 이 녀석··· 망나니이기만 한 건 아니구나.
“크흠. 이런 건 각성자라면 기본적으로 할 수 있어야지.”
칭찬해주기엔 아직 이르다.
아니지. 이 녀석은 아예 칭찬해주면 안되는 타입일지도 모르겠네.
간혹 있거든. 칭찬 조금 해주면 기고만장해져서는 되려 망가지는 녀석들이.
“이제부터 달릴 거야. 따라올 수 있겠지?”
“당연하죠! 제가 이래 봬도 속도로는 아카데미에서 최상위권에 들어갔다고요.”
다른 이들보다 몇 주나 늦었는데? 이건 좀 놀랍네.
슈트의 기능이 그 정도로 엄청난 건가?
날아가면 편하겠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띈다.
만약 내 예상대로 머드 골렘 출몰 지역이라면 괜히 시선을 끌어봐야 좋을 게 없다.
단체 행동을 하는 녀석들이 아니지만 그래서 하나하나의 개체가 제법 강력한 편이다.
아무리 나라도 A급 게이트에 나오는 골렘 수십 마리를 한 번에 날려버리진 못하니까.
물론 상대하자면 상대할 수는 있겠지만, 그사이에 다른 아이들이 위험해진다면 구조하러 온 의미가 없지 않은가.
라미야의 근처에 다른 커다란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거로 봐서 당장 위험한 상황도 아닌 것 같고.
“따라오기 정 힘들면···.”
“네. 바로 말씀드릴게요.”
“아니. 나한테 말하지 말고, 그 말 할 힘을 아껴서 더 쥐어짜라고.”
대답은 듣지 않고, 땅을 박찼다.
물론 말은 저렇게 했지만 혼자서 앞뒤 재지 않고 달릴 생각은 아니다.
그렇다고 저 녀석 여건에 다 맞춰서 느긋하게 갈 생각도 아니지만.
‘···이 녀석, 생각보다 잘 따라오네?’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무작정 발을 놀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발을 디딜 위치에 튀어나온 돌이 있나도 살펴야 하고, 전방에 나무나 바위 같은 것들이 있으면 피해야 하기도 한다.
아카데미에서 재는 기록이 의미가 없는 셈이다.
그저 운동장을 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게 바로 게이트 안에서의 이동이니까.
게이트에 들어온 게 처음이니 당연히 처음 해보는 것이 분명한데.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몇 번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적응을 하더니 이젠 위태로워 보이질 않는다.
상당한 재능이네.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섭렵했다고 하더니 과연, 거짓은 아니었던 건가?
달리고 채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앞에서 늪 바닥이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왜 갑자기 서신 거예요?”
“앞에 몬스터다.”
“···몬스터요?”
최우혁이 보이지도 않는 몬스터를 찾아 눈동자를 굴리는 사이, 꿈틀거리던 바닥이 솟아올랐다.
“···으으. 엄청 더럽네요.”
늪 바닥의 진흙으로 일어난 녀석이라 그런지,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몸체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악취가 날 지경.
골렘의 상대는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다.
몸속 어딘가에 있는 핵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마력이 사라지면 골렘의 외형을 유지하는 것은 그저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 버리니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골렘이 그동안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문제지.
차라리 스톤 골렘이나 머드 골렘은 낫다.
상대하기 힘든 걸로 따지자면 역시 아이언 골렘이나 미스릴 골렘같이 그 몸체를 이루는 물질이 단단한 녀석들이지.
“어때? 네가 한 번 해볼래?”
“제, 제가요···?”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는 최우혁.
“넌 몬스터를 가려가면서 싸울 생각이냐?”
“그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이건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오히려 똥을 피하는 것 같은 표정.
“···됐다.”
기대를 한 내가 잘못인가? 한순간이라도 저런 놈의 어디가 변했다고 생각한 건지.
어차피 저런 마음가짐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한다.
머드 골렘은 징그럽고 더럽게 느껴지긴 하지만, 최악은 아니다.
시체로 이뤄진 플레시 골렘같은 것은 정말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나는 건 물론이고,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는 죽이는 것조차 끔찍할 정도로 역겨운 모습을 한 것들이 태반이다.
“아, 아뇨! 제가··· 제가 해볼게요.”
억지로 나서는 게 역력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해보겠다면 맡긴다.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다. 특히 다른 골렘과는 달리, 둔기로는 타격을 못 입혀. 원거리가 없다면 차라리 창 같은 무기가···.”
철컥-.
“이게 바로 제 연구진이 이번에 만든 캐논 슈터라는 겁니다. 어때요? 멋지죠?”
어째 슈트라는 거에 뭐가 덕지덕지 달렸나 했더니, 저런 것들이 달려 있었나? 기술의 발전이라는 게 놀랍네.
이제 추가로 마력 공학 능력자만 나온다면 어지간한 몬스터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슬슬 각성할 때가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