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16화.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광경.
지금까지 받았던 훈련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아카데미를 들어오기 전에 몬스터와 전투를 해본 적도 있고, 실제로 괜찮은 성적을 거뒀었다.
덕분에 아카데미의 1기 입학생이 될 수 있었던 거지만···.
자신은 있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환경이나 생태가 지구와는 달라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차원이 다르잖아···.’
숨은 쉬기 힘들고, 땅은 마치 물귀신이 다리를 잡아끄는 것처럼 무거웠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그래··· 언제부터 이랬지?’
처음 게이트에 들어오고 이동을 시작한 뒤부터인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상황이었다. 그것밖에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뭔가 이상해. 게이트에 들어갔던 조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이렇게 어렵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그래, 이건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거야···.”
“우리··· 여기서 다 죽는 건가? 이제 조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E급 게이트에서 죽는 거냐고!”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시간 감각이 사라져가고 있다.
하루. 아니, 이틀이 지났나? 해도, 달도 보이지 않는 공허한 잿빛의 하늘. 그런데도 보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신비한 공간.
웃긴 건 지구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이런 이상한 장소에 대해 분명 알고 있다는 점이다.
‘축축한 흙냄새에 잿빛 하늘. 가지가 없이 바늘같이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분명 수업 시간에 들어봤는데.”
‘몬스터의 생태’ 시간.
지루하기만 했던 수업인 데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굳이 저런 걸 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냐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무시했던 수업.
그 시간에 분명 배운 내용이었다.
굳이 몬스터들이 뭘 먹으면서 살아가는 것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자신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수업을 왜 듣지 않았을까 뼈저리게 후회하는 중이다.
“누구··· 머드 골렘이 어떤 지형에 숨어서 사는지 생각나는 사람 없어?”
“몰라, 씨발···. 그딴 수업 누가 제대로 들은 사람이 있겠냐고.”
“습한 지역에서 산다는 것밖에.”
“진흙이니까 일단 축축한 땅으로만 안 가면 되지 않을까?”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우리가 공략 못 하면 못 나가는 건데.”
마지막 말이 결정타처럼 사람들의 작은 희망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E급이라며! 씨발, 골렘이 나오는데 어떻게 E급 게이트냐고! 빌어먹을 관리국 새끼들··· 마력 측정도 제대로 못 해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이런 곳에서 소리를 지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진 않지만, 아무도 그에게 핀잔을 주지는 못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와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그래···. 여긴 E급이 아니야!”
“···그걸 이제 알았냐?”
“생각해 봐! E급이 아니니까 최대 마력 수용치가 다를 거 아냐. 그럼 게이트가 아직 안 닫혔을 거고, 아카데미에서 그걸 알아채지 않았을까?”
“그, 그렇지! 이게 진짜 등급 외 게이트라면··· 분명 구조대가 올 거야!”
부상자만 절반이 넘는다.
골렘과의 전투? 아니다. 도망치는데 전력을 다했지만, 그 와중에 다친 사람만 절반이 넘었다.
머드 골렘이라면 골렘 중에서도 공략하기가 어려운 편이에 속해서 적어도 C등급의 몬스터로 분류된다. 훈련생 10명으로 구성된 팀이라면 한 두 마리 정도까진 어찌어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수십, 수백 마리가 있을지도 모를 게이트 하나를 공략해야 한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팀원은 모두가 신체 강화 능력자. 다친 사람을 치료해줄 힐러도 없고, 재치를 이용해 돌파구를 찾을만한 버퍼 같은 능력자도 없다.
“···일단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구조대가 오길 기다리자.”
“안전한··· 장소? 이 안에 그런 게 있을까?”
테린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찾아봐야지. 테린, 정신 차려. 넌 우리 21조의 조장이야! ···너까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절대 안 돼.”
“···조장···.”
멍한 얼굴로 되뇌는 테린의 얼굴에는 이미 희망이란 글자가 반쯤은 사라진 표정이었다.
“···고칠 수 있을 거야. 분명 살아서 나가기만 한다면 블랙 선생님이 있잖아! 네 팔의 부상도 분명··· 고쳐주실 거야!”
“이걸 고친다고? 아무리 블랙 선생님이라도 이미 뜯겨나간 팔을 무슨 수로 고쳐···.”
“블랙 선생님은 가능해! 그러니까 정신 차리란 말이야!”
힐러가 재생력을 극한까지 올려주면 잃어버린 신체의 수복도 가능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블랙이라면 전 세대 힐러중에서도 전설적인 인물.
알려진 게 거의 없는 데다 아카데미에 와서도 수업은 거의 하지 않지만, 다친 이가 있을 때는 두말하지 않고 치유해줬다.
게이트 실습도 어떤 의미에서는 아카데미 수업의 일환이니 분명 고쳐주겠지.
‘처음부터 인솔자가 있었으면 되는 일이었잖아!’
그랬다면 이런 상황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아카데미에 부아가 치밀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게 우선.
“내가 주변을 둘러보고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응.”
지금은 일단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처음 게이트로 들어왔던 곳이 그나마 가장 안전할 것 같긴 하지만, 부상자까지 데리고 그곳까지 돌아가는 건 불가능.
멀지 않은 곳에 은신처를 마련하는 게 그나마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누군가가 분명히 와 주겠지?’
만약 게이트가 닫혔다면? ···죽는 수밖에 없다.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순간, 아니. 각성자가 되어 헌터로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순간부터 목숨을 걸 각오를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싫다.
적어도 무언가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뒤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힘을 짜내고도 안되는 거라면 모를까, 이렇게는 싫다.
그저 아카데미의 첫 기수가 되었다고.
나가면 승승장구할 거란 생각에 해이해졌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다.
같은 동기들에 비해 자신의 성취가 조금이지만 앞서고 있었고, 가진 자질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기 시작한 뒤로 그런 경향은 더욱 커졌다.
이론 수업은 재미가 없고, 별 쓸모도 없다는 생각에···.
그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좌우하게 될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내용이라고 제대로 설명을···!’
난 지금 누구에게 화풀이를 하는 거지?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은 본인이면서, 이제 와 엉뚱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자신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이론 수업은 대부분 라미야의 담당이었다.
전투에 특화되지 않았으면서도 마력 컨트롤에서는 가장 뛰어나서긴 하지만, 신체 강화 능력자들에게 라미야는 그저 ‘보조적인’ 헌터에 불과할 뿐이었다.
솔직히 우습게 본 적도 있다.
검 하나로 바다를 가른다는 이루 부학장이나, 주먹으로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유리코프.
마음만 먹으면 지구에 빙하기를 불러올 능력이 있다고까지 하는 하밀 로넌, 그런 쟁쟁한 헌터 중에서도 방어력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독일의 메를린.
죽지만 않았다면 어떤 상처든 치유할 수 있다는 블랙 양호 선생.
그 사이에서 직접적인 전투 능력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공간 이동이란 능력은 신체 강화 능력자들 사이에선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라미야 교수가 하는 이론 수업에도 흥미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게 이렇게 뼈저리게 후회할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동굴?’
바늘처럼 하늘로 솟구친 나무들 사이로, 바위 아래로 난 작은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조금만 깊게 파여있으면 누군가가 오기 전까지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
네이트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빠르게 동굴로 다가갔다.
허리를 숙여서야 통과할 수 있는 입구와 달리, 안의 공간은 제법 넓었다. 조금 더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는 구조처럼 보이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하나 단점이라면 바깥보다 바닥이 더 축축한 게 조금 기분 나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바깥에 그대로 노출된 것보단 낫겠지?’
조심스럽게 돌아가서 조원들을 데리고 오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여기서 조금만 더 버티고 있으면 분명··· 구조대가 올 테니까. 지금은 오직 그것에 기댈 수밖에 없다.
* * *
“머드 골렘 서식지인가?”
게이트를 통과하고 눈에 들어오는 시야를 통해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답.
“···이상한데?”
라미야의 고개가 갸웃했다.
분명 머드 골렘의 서식지이긴 한데, 뭔가가 조금 다르다.
“머드 골렘 서식지 치곤 지나치게 마력의 농도가 짙어···.”
마력의 농도는 곧 몬스터의 강함의 척도라고 해도 될 정도로 상관관계가 깊다.
이 정도 마력의 농도라면 라미야의 경험상 적어도 A급 게이트 이상.
하지만 머드 골렘은 아무리 잘 쳐줘도 B급을 넘지는 못한다.
“···이상하지만, 일단 애들부터 찾아보자.”
21조에는 제법 유능한 훈련생들이 있지만, 훈련생 10명이 골렘 서식지를 공략하는 건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똑똑한 애들이니까 분명 근처 어딘가에서···. 응?’
주변에 느껴지는 기척이 없다.
아이들이 들어가고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아서 이루에게 연락이 왔었다. 그래서 들어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2시간 남짓.
‘···이동을 빨리했나?’
라미야가 마력 탐색을 위해 파장을 넓혔다.
마력 농도가 짙다는 건 그만큼 다른 마력이 침투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니 탐색도 어려워진다.
특히나 이런 짙은 마력 속에 있는 작은 마력을 찾는 일은 더욱.
‘···없어. 설마?’
불안한 느낌이 스치지만 라미야는 애써 불안감을 지우며 파장을 더욱 넓혔다. 원형으로 퍼져나가서 기하급수적으로 마력에 부담이 늘어나긴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피잉-.
그 순간, 라미야가 21조로 추정되는 이들의 마력을 찾아냈다.
원형처럼 퍼져나간 파장을 한 곳으로 집중하자 확연히 느껴진다.
“···말도 안 돼! 어떻게 2시간 만에 저기까지···!”
조원 모두가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니 마음먹고 달리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긴 달리기 트랙이나 잘 포장된 도로가 아니다.
곳곳에서 몬스터가, 그것도 자기들이 감당하기 힘든 강력한 녀석들이 튀어나오는 곳을 무턱대고 달리는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다.
‘잠깐··· 설마, 전투 중?’
10명으로 구성된 아이들.
그리고 그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마력 덩어리가 3개.
당장 선택을 해야 한다.
아이들 10명을 이곳으로 데려올지, 아니면 본인이 그곳으로 갈지.
‘게이트는 아마도··· 닫혔겠지?’
마력 농도로 따져서 만약 A급 게이트라고 해도 이미 10명의 아이가 들어온 데다, 자신까지 들어왔다면 아직도 열려 있을 거라고 낙관하긴 힘든 상황.
10명이나 되는 인원을 이곳으로 옮겨오려면 상당한 마력이 소모된다. 게다가 어차피 공략해야 나갈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선다.
팔을 뻗은 라미야의 몸이 떠오르고, 환한 빛을 뿜어내며 한순간에 사라졌다.
* * *
“세··· 세 마리···.”
머드 골렘은 그저 그런 진흙으로 이뤄진 골렘과는 다르다.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지만, 진흙 속에 사는 온갖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건 물론이고 썩은 흙에서 나는 고약한 악취.
거기에 둔기 같은 것은 충격이 흡수되어 버리고, 칼은 한 번 박히면 잘 빠지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체 강화 능력자들이 상대하기엔 최악.
꺄아아아아악!!
박혀버린 발을 타고 기어오르는 벌레들 역시 지구의 그런 하찮은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살을 파먹는 것은 예사고 온몸에 독이 있기라도 한 건지, 피부에 닿을 때마다 검게 물들어간다.
저런 비명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직접적인 신체 공격은 피하라고 했잖아! 얼른 빼서 뒤로 빠져!”
“바, 발이 안 빠져!”
젠장. 이렇게 되면 테린의 팔처럼 결국 자르는 수밖에 없나.
네이트는 단검을 쥐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21조에서는 아직까지 테린과 자신, 둘만 가능한 기술.
“···미안하다!”
“짤라! 빨리 잘라버려!”
눈을 질끈 감은 네이트가 검을 내려치는 순간.
턱.
“결단력은 칭찬하지만··· 괜찮겠어?”
“···라, 라미야 교수님.”
“물어볼 게 많지만··· 우선 이것들부터 정리할까?”
감사하다. 와주셔서 너무나도. 그런데 왜 하필···.
다른 교순님도 있을 텐데, 왜?
처음 라미야를 본 순간, 네이트의 머리를 스친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3초 후.
네이트는 자신이 얼마나 멍청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