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15화.
조금은 생소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통 복장을 갖춘 이가 나와 대표로 제를 지내고, 사람들은 각자가 준비한 헌식을 바다에 던지는 위령제.
해양 몬스터에게 배가 전복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인데, 굳이 바다의 신에게 헌식이나 제를 지내는 게 이해가 안 되기도. 또 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나가 일을 하는 이들에게 기댈 곳이라곤 그뿐일 테니까.
“···이런 걸 보면 참 마음이 아프네요.”
쓸쓸한 표정으로 위령제를 보던 여기자가 혼잣말처럼 말을 건네왔다. 전혀 알지도 못한 사람들을 위해 제를 지내는 곳에서 어째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몬스터는 재해라고 봐야 합니다.”
“알아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지만, 모든 걸 예방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재해라고 불러도 되는 현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테니까.
비단 이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 명을 달리했다는 걸 제외한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몬스터는 대체··· 왜 나오는 걸까요? 어째서 인간을 미워하는 걸까요.”
나라면 알 거라고 생각해서 물은 질문은 아닐 거다. 하지만 대답은 기대하고 있겠지.
“몬스터가 인간을 미워한다? 아마도 그건 아닐 겁니다.”
“···그럼요? 대체 인간을 왜 죽이려는 건데요?”
“인간도 살아가기 위해 많은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습니까. 그중에는 그저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는 경우도 있죠.”
“설마, 인간이 몬스터에게 해가 된다는 말인가요?”
어쩌면.
“당신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그딴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귀환자인지 뭔지면 다야?!”
눈시울이 붉고, 얼굴이 달아오른 젊은 청년 하나가 내가 한 말을 들었는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움켜쥘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얼굴이 달아오른 건 아마도 술기운때문. 그 와중에 조금 전의 말을 들은 사람치곤 상당히 이성적인 대응이다.
내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거겠지만.
“···미안하네.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
“꺼져! 당신 같은 사람 조문 따위 필요 없으니까!”
더 있고 싶었지만 주변의 분위기를 보아 하니 오래 있어야 좋을 게 없어 보인다. 바로 조금 전만 하더라도 날 둘러싸고 눈을 빛내던 사람들이라곤 믿기 힘든 표정들로 날 보고 있었으니까.
말을 좀 조심히 할 것을 그랬나? 하긴. 아무리 사실이라곤 해도 이 자리에서 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지.
“···실례했소.”
그래. 이거면 되었다.
인연이 닿았던 이에 대한 인간적인 도의는 했으니.
“정말 가시게요?”
“불청객이니까요.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있겠습니까.”
“그래도 여기까지 직접 오셨는데···.”
세계 최강의 헌터, 귀환자, 재단 이사장, 유전의 주인, 아카데미 학장 등등···.
날 지칭하는 단어는 나열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많지만, 이들에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관계자들이야 날 만나면 가문의 영광이네 따위의 소리를 당연하듯이 입에 올리지만, 이들에게 나는 그저 신문이나 뉴스에서 간혹 나오던 사람일 뿐이다.
지금은 그저 자신들이 지내는 위령제에 찾아와 귀에 거슬리는 소리나 지껄여대는, 말 그대로 불청객.
쿰쿰한 냄새가 나는 머리 고기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생전에 함께 마주 앉아 잔을 기울이지는 못했지만, 늦게나마 찾아왔으니 방 선장도 용서해주길 바라며.
우웅-.
미처 어촌계 건물 앞의 공터를 벗어나기도 전에 울리는 전화.
이루였다.
“어쩐 일이야?”
-형, 큰일 났어!
꺄아아아악!
기쁨의 비명인지, 공포의 괴성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네.
이번엔 제주도에 갈 때처럼 느긋하게 움직일 수가 없어서 대마도로 곧장 날아왔는데, 함께 동행한 이의 목소리가 이리 우렁찰 줄이야.
“···누구?”
“아, 여긴···.”
소개를 해주려고 봤더니, 아는 게 없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대체 왜 데려온 거지?
내가 말문이 막히자, 직접 나서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게이트인포의 유승은 기자입니다. 김이루 선생님이시죠?”
“···기자요?”
이루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데,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어쩌다 보니 동행을 하게 됐는데, 상황이 애매해서.
“취재 같은 거 아냐. 그냥··· 어쩌다보니.”
“그래? 흐음.”
그 표정은 뭔데?
“그래서, 상황은?”
“아, 오늘 게이트 실습으로 들어간 조가 있는데, 아무래도 안에서 사고가 난 것 같아.”
게이트에 들어간 뒤에 ‘사고’라고 부를 만한 일은 하나다.
게이트는 일종의 문.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은 정해져 있다. 얼마나 커다란 마력을 통과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바로 게이트의 등급.
그리고 그건 이쪽에서 들어갈 때도, 저쪽에서 넘어올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니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가 모두 넘어올 수 있는 게이트가 생겨난단 소리고. 한마디로 하자면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의 마력을 합친 것이 게이트의 최대 마력이 되는 셈이다.
최대 마력을 초과한 마력이 통과하면 게이트는 사리지고, 본래 게이트 안에 있는 모든 마력체. 즉, 모든 몬스터가 사라지고 나면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이 처음 게이트가 생성됐던 장소에 나타나고, 게이트는 자취를 감춘다.
이게 바로 공략이다.
하지만 아주 간혹, 게이트가 마력 최대치 이상을 받아 사라지고 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걸 예전에는 ‘등급 외 게이트’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마력 최대치를 잘못 측정했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런 ‘등급 외 게이트’안에는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닌, 특별한 것들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들어간 아이들은?”
“지금은 알 수 없어. 상황을 알자마자 라미야가 게이트로 따라 들어갔어.”
“···라미야까지 들어갔는데도 게이트가 안 닫혔다고?”
“그래서 형한테 연락한 거야. 마지막으로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거라면, 나보단 형이 확실할 테니까.”
E등급의 게이트.
마력으로만 따지면 라미야 혼자만 들어가도 이미 게이트는 닫혀야 정상이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라 아카데미의 훈련생들은 각국에서 선출된 이들.
거의 전부가 신체 강화 능력자인 만큼 마력 수치를 기준으로 선정되었으니 귀환자들이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현시점에서는 가장 강한 헌터들인 셈이다.
그런 이들이 10명이 들어가고, 거기에 라미야까지 들어갔는데도 게이트가 남아있다? 이건 정말 위험할지도 모른다.
“게이트 위치는?”
“4번 체육관에. 이제 체육관이나 운동장도 거의 끝이야. 다음에 열리는 게이트는 아마 산 속에서 나올 확률이 높겠지.”
그리고 낮은 등급의 게이트 역시 거의 마지막이겠고.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게이트에 들여보내는 건 실전 감각을 키워주기 위한 체험의 일환이었을 뿐이니까.
“유승은 기자님?”
“네? 아, 넵!”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걸 느낀 모양인지, 바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건 기사로 쓰시면···.”
“안 써요! 절대로 안 쓸게요!”
얼떨결이긴 하지만 내가 데려온 사람이다. 다행히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인데.
“대신!”
대신? 여기서 조건을 단다고? 무슨 말을 하려나 싶었는데.
“저도 데려 가주세요!”
“···어딜요?”
질문을 하면서도 이미 답을 알고는 있다. 그리고 아마 저 여자도 내 대답을 알고 있을 텐데?
“게이트요.”
“각성자가 아니면 게이트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데려갈 수는 없다. 애초에 각성자가 아니면 게이트를 통과하지도 못하고, 설사 가능하다 해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짐까지 달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그때,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최우혁? 네가 왜 여기 있지?”
물으면서 이루를 쳐다봤다.
이곳에 있다는 건 결국 이루가 불렀을 거란 소리니까.
“저 녀석은 마력 수치에 영향을 받지 않거든.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 슈트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설마 나보고 저 짐 덩어리를 데리고 가라는 소린 아니겠지?”
표정을 보니 짐 덩어리라는 소리에 얼굴이 달아오른 건 화가 나서가 아니라, 아마 부끄러워서인 모양인지.
“저, 저도 이제 한 사람 몫은 합니다!”
“한 사람 몫···?”
내 앞에서 저런 말을 할 정도라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가 막히는데, 이루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가 없긴 한데, 저 슈트라는 거. 확실히 성능 하나는 엄청나. 물론 그만큼 엄청난 양의 마석이 필요하긴 한데···. 그거야 저 녀석 사비로 채우니까.”
“최우혁, 그렇게까지 해서 들어가고 싶은 이유가 있는 거냐?”
목숨을 걸고서라도 들어가고 싶어할 이유가 있을 정도의 게이트가 아니다. ‘등급 외 게이트’는 일종의 변덕에 가깝다. 아니면 어떤 오류라든지.
굳이 따지자면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재수없이 걸렸다는 표현이 맞는 곳.
“···보고 싶어서요.”
“보고 싶다고? 뭘.”
“선생님의 옆에서요. 선생님의 전투를 보고 싶습니다.”
이 녀석, 정말···. 멍청하네.
그동안 아카데미에서 대체 뭘 배운 거야. ···물론 다른 이들에 비해 그리 길진 않았지만.
“네가 왜 그렇게 날 바라보는 지는 알겠는데,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어.”
오기겠지.
평생 그렇게 맞아본 적은 처음일 텐데, 악감정을 갖기보다 오히려 호승심을 가졌다는 건 칭찬할만 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
신체 강화 능력자는 신체 강화 능력을 다루는 이에게 훈련을 받는 게 좋다. 반대로 이능력 계열은 같은 계열을 다루는 이에게 받는 편이 좋다.
100m 달리기에서 우승을 하고 싶은데, 양궁 선수에게 활 쏘는 법을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같은 이치다.
아무리 내가 세계 최강이라 일컬어 진다고 한들, 슈트를 입고 신체 강화를 하는 녀석에게 가르쳐줄 건 없다.
도진이도 그래서 이루에게 훈련을 맡긴 거고. 덕윤이에게도 기본적인 마력을 컨트롤 하는 방법만 가르치는 것이지.
나는 덕윤이가 어떤 식으로 버프를 걸어주는 지까지는 알지 못하니까.
“그래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절대로 짐은··· 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이루가 이런 의견을 받아들였을 때는 이유가 있겠지.
나름 강하다고 판단해서겠지.
“어차피 마력 수치에 영향도 주지 않으면 상관은 없지만··· 안이 어떤 상황일지 모른다.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해.”
“무, 물론 입니다!”
라미야까지 들어갔는데도 게이트가 열려 있는 상황이다. 안에 어떤 괴물같은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 S급 게이트에서나 나올 법한 몬스터가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하기 어렵진 않겠지만··· 지금 안에는 지켜야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다른 훈련생이 위험하다면 나는 너보다 다른 이들을 우선할 거다. 너와는 달리 그 녀석들은 내가 책임 져야 하는 아이들이니까.”
“물론! 그 정도는 충분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따라오겠다니.
더는 말리지 않았다.
“그럼 저도-!”
“유승은 씨는 절대 안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민간인을 데려가는 건 고민할 가치도 없는 일.
···어쩌면 유승은은 각성자라고 해도 데리고 가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