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14화.
옆자리에서 자꾸만 힐끔거리는 게 느껴진다. 이 여자, 정말로 모르고 저러는 건가? 알면서 저러는 건가.
“···할 말 있습니까?”
“네? 아, 아뇨?!”
“근데 왜 자꾸 쳐다보는 겁니까?”
“잘 생기셔서···.”
······.
창밖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그런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해. 사람 민망하게.
“···각성자들은 다 그렇죠.”
“그런가요? 좋겠네요. 저도 각성이란 걸 해보고 싶어요. 어떤 느낌이에요? 막 슈퍼맨 같은 느낌인가요? 하늘도 날 수 있으시니까 진짜 그렇겠네요.”
신선하네.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던가? 예전에야 만나는 사람들이 죄다 각성자여서 그랬나. 이런 식으로 물어온 사람이 없었다.
“능력은 어떻게 쓰는 건가요? 없던 힘이 갑자기 생겨나는 건데, 어색하거나 그러진 않나요?”
각성자가 아닌 사람들은 궁금할 수 있을 법한 질문이긴 하네.
“이거, 인터뷰입니까?”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아, 혹시 기사로 써도 될까요? 아마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 내용이긴 한데요.”
써도 상관없는 내용이려나.
“본능같은 거라고 해두죠. 개미는 다리가 6개지만 움직이는데 어색해하지 않을 것처럼, 능력이 생긴다고 해도 본인의 의지로 움직이는 팔이 하나 둘 더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죠.”
“팔이 더 생기는 느낌이라···. 솔직히 저는 모르겠네요.”
그야 당신은 비각성자니까.
“아! 선생님. 그럼 여쭤본 김에 조금만 더···.”
어째 본격적으로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모양새긴한데, 가는 동안 할 일도 딱히 없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러세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지금 사람들이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거든요. 워낙에 베일에 가려져 계셔서요.”
그저 귀찮았을 뿐인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혹시 애인 있으세요?”
“···네?”
“만나는 여성분이 있으신가 하는 거요.”
궁금하다는 게 그런 류였나? 조금 더 고차원적인 부분을 물어올 줄 알았는데.
“없습니다. 생각도 없고.”
“왜요? 이렇게 잘 생기시고, 능력도 엄청나신데··· 인기가 많으실 것 같은데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살아온 기억만 가지고도 이미 50이 넘었다. 비록 신체가 젊다곤 하지만, 이성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는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를 도륙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었고, 돌아온 뒤로는··· 글쎄.
“그럼 혹시 이상형 같은 건 있으세요? 예를 들어, 여자 연예인이랑 비교를 하신다면?”
“여자 연예인은 누가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간혹 보긴 하지만, 티비를 보는 건 대부분이 뉴스뿐이다. 앵커라면 알지만.
어느새 켜둔 스마트폰 녹음기가 살짝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질문 자체가 시답잖은 내용이니 놔둬도 상관없겠지.
“그럼 다음 질문으로··· 이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인데요. 선생님은 왜 식당을 하시는 건가요? 재산도 엄청나게 많으시고, 마음만 먹으시면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는 능력도 있으신데요. 왜 그런 작은 식당을 하시는지.”
“하고 싶어서요.”
“···네?”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은 걸까? 황망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여기자를 보니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거다. 어쩌면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부터 기억에 남는 거라곤 그저 몬스터를 도륙하던 것 뿐이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아가며 느낀 감각이라곤 뼈를 가르던 끔찍한 떨림이었다.
몇날며칠이나 잠을 자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신체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말라죽었을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가진 기억이라곤 모두 그런 것들 뿐이었다.
추억은커녕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악몽의 순간들.
꿈을 꾸는 게 두려워, 잠이 드는 걸 거부하고 싶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꿈 속에서 날 즐겁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시연이나 시은이, 도진이나 덕윤이도. 심지어 이루가 나와도 요즘은 예전의 안 좋은 시절이 아니라 어이가 없을 정도로 웃음이 나는 꿈들을 꾸곤 한다.
이제는 굳어버린 검붉은 피빛의 도화지 위에, 하얗게 빛나는 물감을 쏟는 느낌이랄까. 아직 모두 지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점차 번져가는 그 환한 느낌이 아련하게 느껴질 정도다.
“요즘처럼 사는 게 즐거웠던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합니다, 식당.”
지금의 삶에서 그 무엇도 바꾸고 싶지 않다.
* * *
보고를 받은 안정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뭐, 뭐라고? 동행이 있으셨다고?”
“네, 분명 탑승은 따로 했지만 옆 자리로 발권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차장님, 잠시 귀를.”
귀? 보고서에도 적지 못한 내용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어차피 지금은 둘 뿐인데, 뭘 걱정하는 지는 알겠다.
“괜찮다. 이 사무실은 마력 차단이 되는 곳이니까.”
북한에서 마련해준 곳이지만 이미 같이 온 각성자들에게도 확인을 마쳤다. 도청의 우려는··· 아마도 없겠지.
“그럼···. 같이 동행한 여성분의 신원이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그게, 온라인 뉴스 채널의 유승은 기자입니다.”
“···기자?”
‘그럴리가. 이진 선생님은 기자라면 질색을 하시는 분인데?’
안정민 차장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비서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후, 안정민 차장의 고개가 들렸다.
“제주도에는 장례식이 있어서 가셨다고 했지?”
“네. 식당에 줄곧 해산물을 보내주셨던 선장이 탄 배가 새벽에 해양 몬스터의 공격에 배가 전복되어 실종됐다고 합니다.”
먼 바다에 나가 전복된 사고는 사실상 사망과 다르지 않다. 특히나 그 원흉이 해양 몬스터라면 사망이라고 확정짓는 편이 오히려 낫다.
쓸데없는 괜한 희망은 되려 남은 이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 뿐이니.
“그래서, 수색도 하지 않고 바로 장례식을 치른다는 건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부표같은 걸 붙잡고 버티고 있을···.”
안정민 차장은 말을 하다 끝을 흐려버렸다.
자기가 생각해도 이건 헛된 기대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무엇보다 최근 들어, 어선 전복 사고가 점차 늘고 있다.
육지와는 달리, 해양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는 처리가 지극히 힘들다. 점차 늘어나고 있으니 이대로 가다간 정말 식탁에서 해산물을 보기 힘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점점 오르기 시작한 수산물 가격에 이미 방송에서도 몇 번이고 보도를 한 일.
해양 몬스터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포착된 이후, 수색에서 발견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니,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을 거다.
그래서 유가족들 역시 서둘러 장례를 치르려는 거겠지.
“일단, 제주시장···. 아니, 제주도지사님에게 연락을 하도록 해. 합동 장례식이 열리는 곳이 평대리라고 했나?”
“네, 평대리에 있는 어촌계에서 한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아마 그쪽으로 가시는 중일 것 같습니다.”
“일단, 제주도지사님께 연락해서 그쪽으로 최대한 지원해달라고 해. 비용처리는 게이트 관리국에서 모두 책임진다고.”
“네? 어떤 지원이요?”
“뭐든.”
인력이든, 음식이든. 하다 못해 근조화환이라도 깔아야 한다.
‘이진 선생님은 아마 조의금이나 내시겠지, 그런 부분은 모르실 테니까.’
가시는 곳이 곳인만큼 레드 카펫을 깔아드릴 수는 없지만, 선생님이 가신 만큼 적어도 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임팩트는 남겨야 한다.
그게 안정민 차장의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비서가 나가고, 안정민 차장은 스마트폰은 들었다. 그리고, 조금 전 들었던 기자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별 달리 특별한 점은 없는 건가?’
직업이 기자인만큼 의도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말은 어불성설이겠지만, 그 의도가 이진 선생을 해할 목적이 아닌지는 확인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 * *
네이트는 실습으로 처음으로 들어와보는 게이트는 무척이나 낯설었다.
조금 전까지 체육관에 있었는데, 겨우 한 걸음을 딛자마자 순식간에 바뀐 주변 환경.
아직은 겨울이라 차가운 공기가 있던 체육관과 바뀐 것은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습한 공기와 우거진 나무들. 거기에 음습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기까지. 흡사 새벽녘의 정글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네이트, 어서 주변 정찰.”
“아. 그렇지.”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은 없다.
선발대인 자신이 먼저 해야하는 것은 뒤를 이어 들어올 조원들을 위해 미리 위험요소를 확인하는 일.
‘집중···. 집중···.’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두근 거리는 긴장감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마력이 퍼지는 게 선명히 느껴진다.
박쥐가 초음파를 이용해 주변 지형을 느낀다는 게 아마도 이것과 비슷한 감각이겠지. 어둠 속에서 물결의 파동처럼 퍼져나가는 마력 사이로 나뭇잎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느껴진다.
“···없어. 주변 30미터 이내에 움직임은 없어.”
“후우··· 다행이다.”
네이트 역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첫 실습인데 들어오자마자 몬스터와 마주치는 건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인 상황. 그걸 마주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겠지.
설사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대비할 수 있는 훈련을 받긴했지만, 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공포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살이 베이고, 뼈가 부러지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저 견딜 수 있을 뿐이지.
“네이트!”
“테린, 난 괜찮··· 엌!”
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네이트를 향해 돌진한 테린은 갈비뼈의 강도를 확인하고 싶기라도 하듯이 안겨들었다.
아무리 게이트 안이고, 이곳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이들만 남아있긴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
“적당히 하지? 들키면 둘 다 퇴출이야.”
“냅둬라. 이 안에서 설마 들킬 일이야 있겠어?”
“너 부러워서 그러냐?”
“부럽긴··· 빨리 이동이나 하자고, 삼 일 안에는 공략해야 시험 통과야.”
“삼 일이면 충분하지! 여기 겨우 E급 게이트라며. 우리 실력이면 충분해!”
“그래! 지금까지 최고 기록이 얼마지? 그 기록 우리가 깨버리자!”
호기로운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조원 한 명이 코웃음을 쳤다.
“그건 어려울 걸? 1등으로 통과한 건 3조야.”
“3조면···.”
“그래. 그 괴물 꼬맹이가 있는데지. 공략 시간은 겨우 2시간 40분.”
“···2등을 목표로!”
자신감과 만용.
게이트의 끔찍함을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그 둘의 차이를 아직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 게이트 실습은 이들에게 그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 어떤 곳임을 뼈에 새겨주기 위한.
일종의 관문임을 이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 * *
제주도에 있는 한 마을의 작은 공동어촌계.
해안가에 위치해 바람이 제법 매섭게 부는데도 푸근한 느낌이 든다.
어촌계 건물 앞에 줄지어 놓인 영정(影幀)들과 앞에 차려진 제사상을 바라보고 섰다.
“저··· 어떻게 오셨습니까?”
작은 마을.
아마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겠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사람은 나 혼자 였다.
“방 선장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혹시, 이진 선생님 이십니까?”
내 정체가 드러나면 소란이 생기진 않을까? 오늘은 절대 눈길을 끌고 싶지 않다. 그저 방 선장의 지인으로 참석하면 그만이니까.
‘그냥 예전에 잠시 썼던 가명으로 둘러댈까···.’
그게 좋겠지. 마음을 굳히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와! 역시, 선생님은 유명하시네요.”
···그래.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지. 잠시 잊고 있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옆에서 헤실헤실거리며 웃는 여기자를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퍼져나간 소문을 듣고 온 동네 사람들이 날 둘러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정원 요원들이 그립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