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13화 (113/153)

귀환자 식당 113화.

각성자는 일반인에 비해 감각이 수십 배나 발달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이렇게 대놓고 미행을 하면 각성자가 아니라, 유치원생도 알아챌 것 같은데···.

하지만 여기까지 쫓아오진 못하겠지.

네? 일등석이요?!

뒤에서 들리는 절규에 비슷한 외침을 뒤로하고 나는 곧장 탑승구로 향했다. 왜 날 쫓아오는지는 알겠지만, 오늘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굳이 비행기를 이용해 가는 것도 오늘만큼은 각성자나 귀환자가 아닌, 그저 방 선장님의 지인으로 가고 싶어서이니까.

비행기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은 어찌보면 공간 이동을 할 때 떠오르는 느낌과 비슷한 면이 있네.

내 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힘에 의해 강제로 떠오르는 것.

“저어···. 안녕하세요?”

옆자리에서 조심스럽게 건네오는 인사.

“기자 월급이 생각보다 많은가 봅니다.”

“···역시 알고 계셨네요. 그래서 일부러 일등석으로 선택하신 건가요? 절 떼어 놓기 위해서?”

자의식 과잉인가?

“따라오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헛수고하는 겁니다. 오늘은 그저 아는 분의 장례식장에 가는 거니까요. 기대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안 일어납니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근해라곤 해도 어업을 나간 고깃배가 전복된 곳에서 각성자도 아닌 일반이니 육지까지 헤엄쳐서 올 수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해양 몬스터까지 나왔다면···.’

어지간한 각성자라도 수중 전투에 특화된 능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살아남기 힘들겠지.

“죄, 죄송해요. 저는 그런 거라곤 생각을 못 해서···.”

“미안하지만, 그냥 조용히 갔으면 좋겠네요.”

“네···.”

시체도 없는 장례식이 되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저녁 장사 준비는 대강 해뒀으니 덕윤이나 시연이라면 내가 없어도 큰 무리는 없을 거라는 정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 가깝다 말할 수 있는 사이는 분명 아니었다. 만난 적도 없거니와 늘 전화통화로 주문이나 하던 사이였으니까. 사실 가지 않아도 그만일지도 모른다.

도의를 따진다고해도 그저 계좌 이체로 조의금이나 보내주면 될 일.

하지만 돌아와서 거의 처음으로 맺었던 인연 중 한 명이다. 이제라도 가는 것이 도리겠지.

···너무 늦어버렸지만.

* * *

게이트 관리국 아카데미 관리처.

지금 대한민국 게이트 관리국에 있는 다양한 처부중에서 가장 입지가 튼튼한 부서다.

그리고 그곳의 실질적인 수장이 바로 안정민 차장.

“후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그가 곧장 비서를 호출했다.

“혹시 지금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아봐.”

“서울에서요? 갑자기 무슨 사고라도 난 겁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연락은 아직 없었는데요.”

“선생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소리야.”

“아··· 알겠습니다!”

게이트 관련 사고일까? 아니면 조카들 문제?

‘아냐, 시연이나 시은 양이 얽힌 문제였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우선 게이트 관련 사고에 대해서 알아보고.”

문을 나서려는 비서에게 한 마디를 추가했다.

두 사람에게는 지금도 늘 24시간 경호인원이 따라 다닌다. 심지어 근처에는 각성한 요원도 대기 중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각성자나 빌런 의심 인물에 대해서도 철저히 감시를 하고 있으니, 두 사람에게 일이 생겼을 확률은 낮다.

덕분에 국정원이나 게이트 관리국 요원이 늘 인원 부족에 시달리긴 하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이진이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한 측에서 임시로 내어준 사무실을 나서니 곧장 따라붙는 인원들만 여덟.

넷은 한국 요원들이고, 나머지 넷은 북한에서 안내 및 감시로 붙인 요원들이다.

서로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각성자들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곧바로 국경개방이 과연 가능할까? 그건 앞으로 양국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오늘 일정은 어딥니까?”

“혹시, 개성 공단이라고 아십니까?”

모를 리가 있나. 이미 오래전 폐쇄된 곳이지만, 한때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입주해 다양한 물건을 제작하던 대단위 규모의 공장단지.

그 정도 공부도 하고 오지 않았다면 자격을 박탈당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곳을 가는 모양이군요.”

금강산 여행과 수출입을 허가한다면 개성공단의 재개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 중의 하나다.

당연히 그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채라면 보수를 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몫이 될 거다.

“···가시죠.”

말을 아끼는 북측의 요원들을 보며, 안정민은 생각했다.

그동안 소통의 창구를 그렇게 꼭꼭 닫아뒀던 북한이 갑자기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미는 게, 단순히 김태영 혼자만의 의지였을까?

아무리 북한이라고 해도 이 정도 사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고위급 간부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선 불가능했겠지.

‘그 말은, 개성에··· 뭔가 있다는 이야기군.’

첫날의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미 한국에 금강산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 사람들은 ‘통일’이라는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상황.

개성공단을 찾는 게 왜 하필 마지막 날의 일정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하다.

이들의 원하는 무언가가 개성에 있다는 소리다.

“차장님.”

이동하는 중에 비서가 다급히 뛰어왔다.

“잠시.”

아무리 안내와 감시를 목적으로 수행 중이라곤 하지만 대놓고 엿들을 수는 없는 노릇.

북측 요원들이 잠시 거리를 벌리고, 안정민은 대한민국 요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예전이라면 그저 거리를 벌리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세상은 귀를 기울이면 100m 밖에서 파리 날갯짓 소리까지 듣는 게 가능한 이들이 있는 시기.

음성 차단막은 필수다.

“말해.”

“알아본 결과 어제 세 곳에서 게이트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래? 혹시 위치가 이진 선생님이 있는 곳과 가까운 곳인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하루가 멀다고 나타나는 게이트가 그리 놀라운 소식도 아니고, 삼영그룹에서 본격적으로 마력 충전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뒤로는 인명 피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의 압도적인 1위가 대한민국이고, 손에 꼽히는 갑부들이 한국에 들어와 지내길 원할 정도니.

간혹 등급이 높은 게이트의 경우 인명 피해가 전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만약 그런 게이트가 이진의 집이나 가게 근처에 나타났다면? 오늘 오지 못한다는 것이 설명된다.

하지만 대답은 전혀 달랐다.

“아뇨. 세 곳 모두 서울이 아닌 지방이었고, 게이트 발생 2시간 이내에 모두 공략 완료됐다고 합니다. 인명 피해도 사망자는 없고, 부상자가 12명이긴 하지만 모두 관리국 소속 각성자들이었습니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이지?”

“그게, 하나 확인된 것이 있는데. 이진 선생님이 비행기를 타셨다고···.”

안정민 차장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가 하는 표정으로.

“···비행기를 타셨다고? 설마, 외국으로 나가신 건가?”

“아닙니다. 제주도행이었습니다.”

* * *

미처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몰랐다.

아니, 전혀 의식을 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은 걸까?

나···. 제주도에 처음 와봤네.

공항에 내려서니 북적이는 인파가 상당했다.

특히나 외국인들을 이렇게 많이 보는 건 외국에 나갔을 때 정도?

무턱대고 오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제주도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네.

심지어 합동 장례식장이 차려진다는 방 선장의 마을도 어딘지를 전혀 모르겠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 그만이긴 한데, 빈손으로 온 데다···.

‘장례식을 가 본 적이 없네···.’

사람이 죽어가는 걸 얼마나 봤을까? 세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이 봤다.

몬스터에 찢기고 먹히는 걸 직접 본 적도 있고, 누구누구가 게이트에서 죽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수백 번.

그런데 왜 장례식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을까. ···죽음이라는 게 너무 익숙해서? 아마 다 찾아다녔다면 인생의 절반은 장례식장 찾아다니는 기억만 남았을지도.

“이봐요.”

“···네? 저요?!”

따라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니 눈치를 보면서도 끝끝내 뒤를 따라온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보통 장례식 갈 때··· 뭐 사가야 하는 겁니까?”

“아뇨. 근조화환을 보내거나 조의금만 들고 가죠. 보통은?”

조의금으로 낼 돈은 찾아왔다.

근조화환이라.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 식당을 개업할 때도 제법 여러 사람들이 화환을 보내줬었지.

“근처에 아는 꽃집 있습니까?”

“···그냥 인터넷으로 알아보시는 게 빠를걸요?”

하긴 제주도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제주도에 있는 꽃집을 알 리가 없겠지. 내가 생각해도 이번엔 조금 멍청한 질문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스마트폰을 들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뭐라고 검색을 해야 하지?

“저기, 선생님. 제가 대신 주문해드릴까요?”

“···부탁 좀 할까요.”

뜻하지 않게 동행을 허락해줬으니, 이 정도는 부탁해도 되겠지. 알아보자면 나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겠지만 익숙하지는 않으니까.

굳이 내가 왜 선장님과 전화로 거래를 했겠나.

그녀는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선 잠시 날 쳐다봤다. 뭔가를 물으려는 눈치를 보내더니 이내 고개를 젓고선 다시 상대방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냥 제일 큰 거로 가져다주세요. 주소는 평대리 어촌계로···. 네, 거기요.”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주소.

어떻게 안 거지?

“네. 돈은 현장에서 현금으로 드릴게요. 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서 내 눈빛을 보더니.

“아···. 제주도에 장례식 가신다고 하셔서 오는 길에 조금 알아봤어요. ···새벽에 어업 중이던 선박 5척이 전복됐다고 기사에 나왔더라고요. 가시는 데가 거기 맞죠?”

“맞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셨던 거에요?”

기자로서의 질문인가, 아니면 그저 대화의 흐름으로 묻는 말인가.

“딱히 기사로 쓰거나 할 생각은 아니에요. 치, 저도 인간적인 양심이라는 게 있다고요. 아무리 기사에 눈이 멀었어도 다른 사람들 상처를 후비는 기사 같은 건 안 쓰거든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마 으름장을 놔서라도 따라오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 여자는 따라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가만히 두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시연이를 닮은 듯한 외모에, 어딘가 모르게 시은이와 비슷한 말투.

그런 이유로 묘하게 거슬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냥, 돌아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라고 해두죠.”

그래서 그런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대답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비록 전화 통화만 하는 사이였지만, 거래처 사장님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비록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방 선장과 나는 분명 거래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처음으로 찾아온 제주도.

마음 같아선 걷고 싶었지만, 그러자면 체력이야 문제가 없을지는 몰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리고 제주도까지 와서 굳이 공항 근처의 아스팔트 위를 걷고 싶은 마음도 없고.

택시를 잡아 세우고, 뒤를 돌아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쭈뼛거리며 서 있는 그녀.

“안 갈 겁니까?”

“네? 아, 가요! 갈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