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 식당-112화 (112/153)

귀환자 식당 112화.

오늘이 마지막 날인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우선 식당으로 향했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많이 밝아진 덕윤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목소리에 힘이 넘친다. 어제는 북한에 간다는 이야기에 잔뜩 긴장하더니, 오늘은 오히려 기대되는 건가.

“내려갈 준비는 잘 하고 있는 거지?”

“네. 당장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거기 있는 애들은 이미 몇 주간 호흡을 맞춘 애들이야. 아마 처음 가면 텃세가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지만 자신 있다는 표정. 나쁘지 않다.

버퍼는 얼핏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기 쉽지만, 전투에서 실상은 전혀 다르다.

속도를 높여주고, 근력을 강화시켜주는 건 한순간이다. 게임이 아니니 무턱대고 마력을 쏟아붓는 건 그야말로 비효율적인 일.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버프를 걸어주는 건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근력이 올라가고, 속도가 빨라진다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니까.

바로 이 순간! 이라고 생각하는 찰나를 맞추는 것보단 오히려 ‘내가 3초 뒤에 근력을 올려줄 테니, 공격해!’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정확히 그 3초 뒤, 근력 강화 버프가 들어올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간의 그런 신뢰를 쌓는 건 평소의 훈련도 중요하지만 결국 실전이 반드시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버퍼라는 포지션은 전황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순간에 누구에게 어떤 버프가 필요한지,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대상자 역시 약속하지 않았어도 그 순간에 필요한 버프가 자신에게 올 것이라 믿을 수 있는 신뢰.

“그래. 넌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자신감이 과한 것도, 소심한 것도. 좋지는 않다. 평소엔 조금 소심하면서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자신감.

그래. 아마 지금의 덕윤이라면 괜찮을 거다.

“오늘은 서두를 것 없으니, 앉아서 마력을 운용해봐.”

“···네!”

이건 일종의 졸업 시험이다.

덕윤이가 자리에 앉아 마력을 펼치자 7갈래로 뻗어나가는 마력의 실이 느껴진다. 처음 2갈래였던 것에 비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의 발전.

근력, 민첩, 마력, 속도 강화처럼 눈에 띄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유연성이나 정확성처럼 개인의 능력이나 성격에 따라 효과가 좋아지거나 반감되는 것들도 있다.

그 모든 걸 파악해야만 하는 게 바로 버퍼다.

“열심히 연습했구나. 7갈래라면 아직은 부족하지만, 실전을 경험하기엔 나쁘지 않겠어. 이제부턴 네가 하기 나름이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녀석아,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강해지란 말이다. 언제까지 남을 위해서만 살 거냐.”

어쩌면 저런 성격이 버퍼로 각성하게 된 계기이겠지만, 하나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 하나뿐.

* * *

“···이상한데. 올 시간이 지났는데?”

오늘 저녁 메뉴는 모둠 생선구이.

그래서 미리 며칠 전에 제주도의 선장님에게 연락을 드려놨다. 오늘 받을 수 있도록 조기와 갈치, 옥돔을 부탁드렸다.

옥돔은 지금 제철이 아니긴 하지만, 작년 말에 잡힌 것들을 겨울 해풍에 말려 꾸덕해진 반건조라 더욱 맛이 좋아서 결정했다.

가격은 조금 나가지만 반 마리씩 구우면 큰 부담은 되지 않기도 해서.

제주에서 받는 물건은 늘 새벽 비행기 편을 통해 퀵으로 받곤 한다. 그러니 지금은 이미 도착했어야 하는 시간을 한참이나 지난 셈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

“글쎄.”

지금까지 1년 가까이 물건을 보내주신 선장님은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다.

그래서 물건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보단 걱정이 앞섰다.

따르르-.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전화기가 먼저 울렸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이 아닌 가게 전화.

“···여보세요?”

포털 사이트에서도 가게 전화번호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 개인적인 용무가 있을 법한 사람은 모두 휴대전화 번호를 알고 있어서 가게 전화가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쓸데없는 광고 전화 거나, 가끔 택배를 보내주는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는 경우가 거의 다라고 할 정도로.

-혹시 거기가 귀환자 식당 맞나요?

침울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네. 어디십니까?”

-···저는 제주도 방 선장님 손자인데요.

···빌어먹을.

“혹시 방 선장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겼··· 습니까?”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돈과 물건이 오가면서도 매일 전화로만 대화를 나눴던 사람의 안부.

입으론 물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이미 답은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새벽 조업 중에 배가 전복··· 됐습니다.

방 선장님의 어선은 새벽에 제주 근해에서 주낙을 이용해 잡아들이는 은갈치 잡이가 주력이다.

배가 뒤집힐 정도의 큰 파도가 있는 날은 애초에 조업을 나가지를 않는 셈이다. 혹시 나 때문에 무리해서?

-조업 중인 곳에서 해양 몬스터가 나왔다는 것 같아요. 멀쩡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어졌다고···.

“···해양 몬스터요?”

-네··· 그 근방에서 같이 조업 중이던 배가 열 척이 넘게 뒤집어져서··· 제가, 제가 같이 갔어야 하는데···. 크으윽!

마을 전체가 초상집이겠구나.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왜 그간 생각을 못 했었을까? 육지에 그렇게 많은 게이트가 생겨났는데, 바다라고 다르지 않았었을 텐데. 분명 모르는 게 아니었는데···.

예전에 물고기가 왜 그리 귀했는지, 나란 인간은 그사이에 벌써 잊어버린 건가? 이곳 사람들에게야 30년도 넘은 이야기니 그럴 수 있었어도···. 나는 잊어선 안 되는 거였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사장님께 꼭 알려드리라고 하셔서···.

전화로 툭하면 은퇴한다고 하셨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아직 멀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분의 나이도 제대로 몰랐으면서··· 뭘 안다고.

‘남들이 80이라고 하니, 정말 80년이라도 산 줄 착각한 거냐?’

스스로에게 자책하듯 물었다.

사람의 나이란 무엇인가, 육체의 시간이 곧 나이인가? ···아니다. 나이란 사람이 살아가며 쌓인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비로소 그 가치가 생겨나는 법이거늘.

“···정민아.”

가게 전화를 내려놓고, 곧장 정민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북한에 있으면서 유일하게 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

-네, 선생님. 오늘은 언제쯤 오실 생각이십니까? 오늘은 내려갈 때 저희와 함께 이동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회담의 공식 일정 중 마지막 날이지만, 오늘은 가지 못하겠다.

“아무래도 오늘은 가지 못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이쪽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민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화가 난다.

정말로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사, 사장님···.”

식당 건물 전체가 떨릴 정도로 마력이 흘러나간 걸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분노하는 거지? 몬스터? 아니면 나 자신?

당장은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당장은 조문을 가야만 한다는 걸.

* * *

20년이 훌쩍 넘은 구형 자동차.

자율 주행 시스템도 완전 자동이 아닌, 반자동 시스템이 달려있을 정도로 오래된 구닥다리다.

-너 하나 때문에 지금 우리 채널이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지 알기나 해?! 그러게, 이진을 왜 건드려, 이진을! 아무튼, 특종 하나 잡을 때까지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마. 알았어?!

“네? 편집장님. 아무리 그래도 요즘 세상에 특종이 어딨어요. 특종이! 무슨 종이 신문 읽을 때도 아니고, 10분이면 온라인에 다 퍼지는 세상에···. 펴, 편집장님? 편집장! 아빠!”

취재 차량이라곤 20년도 넘은 구닥다리 한 대뿐인 소규모 온라인 뉴스 채널.

직원도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자신을 포함해 겨우 7명뿐인, 소규모 중에서도 소규모인 이름 없는 신문사다.

어려서부터 봐왔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자가 되긴 했지만 이건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이 동경했던 할아버지 시대의 기자들과 달리, 요즘은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적당히 각색해서 그럴듯한 말로 꾸며 하루에도 수십 개씩 기사를 올리는 기자들이 태반.

그래도 난 그런 기자들과는 달라! 를 외치며 직접 발로 뛰겠다고 나섰는데, 생각보다 더 만만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얼마 전 취재를 나와 마주쳤던 그 이진.

“으으으으으! 진짜,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나이는 자기 할아버지도 많은 주제에, 기자들을 무시하던 그 태도는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솟았다.

물론 대뜸 찾아간 걸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굳이 그렇게 끌어냈어야만 속이 후련했냐?! 이 인정머리 없는 인간아?’

도대체 누구에게 전화한 건지, 치우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 끊었는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등장한 국정원 요원들에게 개처럼 끌려 나올 때의 그 수치심이란.

‘좋아, 특종? 까짓거 내가 잡고 만다!’

어제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다시 찾은 귀환자 식당.

물론 또 무턱대고 들어가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앞에서 기다렸다.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으면서도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들처럼 주로 차를 이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집에서부터 쫓아왔다.

조금 전 가게로 들어갔으니 이제 기다릴 시간이다.

‘북한에 가겠지? 나 참,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곤 하지만 북한이랑 남한을 자기 맘대로 왔다 갔다 하다니··· 이거 엄연한 차별 아니야? ···아닌가?’

조금 헷갈린다.

좁은 차 안에서 아침으로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에이-. 전자렌지에 데워왔는데도 그새 식었네···.”

고슬고슬함을 넘어 딱딱하기까지 한 김밥을 우물거리며 바나나 우유를 빨아 먹었다. 그러면서도 한 손에선 카메라를 놓치지 않았다. 언제 갑자기 튀어 오를지 모르니까, 그 순간이라도 찍으면 시말서는 안 쓰겠지 싶어서.

“어?”

날아오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가게를 나와 다시 차에 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지? 표정이 무슨···.’

동네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는 세상 친절한 동네 식당 주인이었고, 아카데미 관련자들에겐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사무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제 기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싸가지 없는 인간이긴 했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저런 표정을 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파직-.

진짜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직감이 온다.

‘···특종의 냄새?’

유승은은 입가에 미소를 걸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푸릉- 푸르르릉-.

누가 봤으면 매연 과다발생 차량으로 신고당할 법한 차에 겨우 시동을 걸고 서둘러 이진이 몰고 사라진 SUV의 뒤를 좇았다.

[김포 국제 공항]

“···공항에는 왜?”

전화 한 통이면 헬기가 오는 사람 아닌가? 아니지, 아마 집이랑 가게 주변에 고성능 헬기가 상시 대기 중일 텐데?

그런 사람이 공항엘 와?

‘특종이다!’

빠지지직-.

몸이 짜릿하게 떨릴 정도의 직감이 전신을 관통하는 기분에 유승은은 신나서 이진의 뒤를 따랐다.

‘검은 정장··· 이건 필시 정체를 감추기 위함이다.’

전 세계에서 아마 공항에 올 이유가 가장 없는 사람 아닐까? 확인된 정보는 아니지만 듣기론 공간 이동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거기에 하늘도 날 수 있고.

굳이 비행기를 이용한다는 건··· 필시 뭔가를 감추는 게 있다.

소형 카메라가 장착된 가방을 메고, 이진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제주도 한 장이요.”

‘오호, 제주도?’

하기사, 제주도가 아니라면 굳이 비행기를 탈 이유가 없겠지. 유승은의 입꼬리가 한결 더 높아졌다.

‘표정을 보아하니, 누구 하나 죽이러 가는 모양인데?’

어떤 놈인지 저런 인간에게 찍힌 인생이 불쌍해진다.

하지만 이진이 살인하는 현장을 잡아낸다면? 이건 단순한 특종으로 끝날 정도가 아니다.

“제주도 한 장이요. 방금 그 검은 정장 입은 남자랑 가까운 자리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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