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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11화 (111/153)

귀환자 식당 111화.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한결 더 기분이 좋아진다. 덕윤이가 옆에서 입술을 달싹 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것만 아니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놈아. 뭘 그렇게 눈치를 봐.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시원하게 해.”

내 말에 베시시 웃어보인 덕윤이가 슬며시 입을 연다.

“다른 게 아니라요. 그··· 그 사람이 오면요.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을까요? 아무리 티비에서 잘 안보였다곤 해도, 그···.”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마 상상도 못할 거다.”

“그럴까요? 그래도 만약 알려지면 정말···.”

“알려지면 또 어때.”

“···네?”

공식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긴 했지만, 알아보는 사람이 분명 나오긴 할거다. 그것도 아마 머지 않아 그리 되겠지. 아무리 언어가 같다곤 하지만, 북쪽 지방 특유의 말투도 그렇고. 무엇보다 단어의 사용이 상당히 많이 달라졌을 테니까.

부던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언젠가는 정체가 드러나게 될 테고,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이 따르게 될 건 분명한 일이다.

“알려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언제 알려지느냐가 중요한 거지.”

어떤 식으로 알려지느냐가 중요한 경우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알려지는 시기가 중요하다.

형태 변환 능력자.

처음에는 도플갱어 능력자와 구분을 짓지 않았었다.

아니, 처음에는 그런 능력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지 않아서 원래라면 도플갱어 능력자라는 이름은 어쩌면 잘못 붙여진 셈이다.

내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복제할 수 있는 능력.

이것 역시 첩보 작전에서 상당히 좋긴하지만, 마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곳곳에서 헛점이 드러났다.

시전자나 피시전자가 마력이 차단되는 장소에 갈 경우 해제된 다는 게 가장 컸다.

마력 차단 물질이 나온 이후, 중요한 정보를 보관하는 곳이나 고위급 인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은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도포되었으니까.

하지만 형태 변환 능력은 다르다.

타인을 완벽하게 복제할 뿐 아니라, 가장 결정적으로 복제된 대상의 능력 마저도 어느 정도는 흉내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총이라곤 잡아본 적도 없다해도 일류 스나이퍼를 복제한다면 어지간한 군인보단 훨씬 더 총을 잘 쏘는 정도는 된다.

본인이 나서서 밝히거나, 가족 정도가 아니라면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공산주의에 극도로 폐쇄적인 국가라는 특수한 환경이었으니 찾아낸 것이지, 출국이 가능한 외국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셈이다.

“사장님. 저 아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어느새 가게가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가득한 인파들도.

“···기자들인가?”

이런 건 차라리 북한이 좋기도 하네.

찰칵-.

마당에 내려서자마자 들려오는 셔터 소리에 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곳은 내가 운영하는 식당. 어떤 식으로든 사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마음대로 사진을 찍는 것은 불법인 셈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찍히는 것은 더욱 불쾌하고.

“···지금 찍은 사진 지우시죠.”

내 말에 기자들이 코웃음을 치네.

“저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사진을 찍은 겁니다. 공인이시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내가 공인이었어? 전에 비행기에서 내릴 때 사진을 찍힌 게 생각나네. 누가 찍었는지 찾으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퍼진 상태였고, 공공연하게 돌아다니지 않아서.

그냥 넘어간 거였는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

옆에 덕윤이도 있는 상태고, 저 인간들이 그렇다고 덕윤이의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해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난 사진 찍는 데 동의한 적도 없고, 이 곳에서 기자 회견을 하겠다는 말도 한 적이 없는데? 요즘에는 초상권이라는 게 사라졌나?”

사라지긴 개뿔, 더 심하면 심해졌지.

요즘 시기에 허락없이 얼굴이 찍힌 사진 올렸다간 곧장 고소장이 날라온다. 기자라고 해서 다른가? 다르지 않다.

저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만약 내가 정말 ‘공인’으로 분류가 된하더라도 내가 공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한시적으로 허용될 뿐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허락도 없이 찍는 것은 명백한 위법인 셈이다.

파삭-.

내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셔터를 누르려던 기자의 카메라를 공중에서 분해시켜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으읍!”

“시끄럽군.”

짖어대는 기자의 입을 틀어막고서 가게 입구 밖으로 밀어냈다. 마음같아선 그냥 확 날려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한 것 같아서.

한 놈이 그렇게 쫓겨나자 기고만장하던 기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간다. 갑자기 기자들이 왜 몰려왔는지는 모르겠네. 일단은 그것부터 확인을 해볼까?

“그래서,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누군가를 지목해서 물은 게 아니다. 덕윤이와 함께 가게로 들어서자 쭈뼛거리면서도 따라들어오길래 넌지시 물었다.

“그··· 그, 금강산 여행이 다시 재개 된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묻지?”

내가 관여한 건 맞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확정된 것 맞나?

어쨌든, 그걸 내가 발표할 문제는 아니다. 여기까지 우르르 몰려온 이유가 결국 그것 때문이었나?

“그럼··· 다른 걸 여쭤볼게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 이번에 대한민국과의 무역로를 개방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안경을 쓴 모범생 스타일의 여기자였다. 도대체 이런 정보를 어디서 들은 거지? 그 방 안에 있던 사람은 겨우 7명 뿐이었다. 이야기가 끝난 지 겨우 6시간 남짓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기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흘린 게 분명하다.

물론 그 의도에 날 엿먹일 생각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귀찮아진 것은 틀림없지.

대답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가 이딴 걸 왜 고민해야 하지? 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들었다.

“가게 있는 인간들 좀 치워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말하고선 대답도 들리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기자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지긴 하지만 상관없다. 이들이 날 어떻게 깍아내리든 관심도 없고.

“끌려 나갈래, 니들 발로 나갈래.”

* * *

[평소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귀환자 L씨]

[이모씨, 기자에게 폭력 행사 후 “고소하던가” 발언 논란.]

[북한에서 혼자 돌아온 ‘그’는 무슨 일을 벌인 걸까?]

“아니, 뭐 이런 것들이 기자야?! 자기들 마음에 안든다고 이렇게 기사를 마음대로 쓰는 법이 어딨어. 삼촌, 우리 이것들 다 고소해요!”

코웃음도 나지 않는 기사들을 보며, 시은이가 씩씩거리며 열불을 터트렸지만 사실 별 상관없다.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이진이 폭행이라···. 그러니까 상대를 죽이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했다는 건가?

-결국 이진이 북한 가서 금강산 여행 다시 갈 수 있게 됐다는 말인데, 그럼 좋은 거 아냐?

-귀환자 재단 이사장도 이진이라며.

-ㅇㅇ. 그것도 전부 개인 돈으로 운영됨.

-그래서 우리 이진님이 뭘 잘못하셨는지는 어디에 써 있어?

“와, 사장님 인기 엄청난데요? 거의 다 옹호하는 댓글 뿐이에요.”

“그야 당연하죠. 우리 삼촌 아니었으면 한국 사람들이 지금처럼 맘 편히 살 수 있었겠어요?”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기자들의 선동 기사에 놀아나는 것도 이젠 옛말, 인터넷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이 유독 한국에만 없다는 것.

그게 누구덕분인지, 알만한 사람은 죄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근데, 삼촌. 이제 진짜 금강산 갈 수 있는 거예요?”

예전에 대한민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금강산 여행을 오픈한 적이 있어서 기반 시설이 어느 정도는 남아있을 거다. 물론 배로 새로 마련해야 하고, 각종 시설들의 건설이나 보수도 해야하고. 무엇보다 양국 간의 실무자들이 만나 다시 자세한 협의 사항을 정해야 되겠지만···.

“바로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내년 쯤이면 되지 않을까?”

“와아······. 금강산이라니. 상상도 못해봤어요!”

하긴, 그건 나도 그렇다.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금강산이라···.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산가족은 없겠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는 있을 거다.

촌수로 따지면 제법 멀 수도 있겠지만, 피가 이어진 가족이라는 것만으로도 울림을 주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는 법이니까.

생각은커녕 존재하는 지도 모르고 있던 사촌 조카들을 만난 나도 이렇게 좋은 걸.

영원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를 가족을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이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 나처럼 세상에 혼자 뿐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말이지.

* * *

커다란 체육관에 있는 게이트 하나.

그리고 그 앞에 줄지어 10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학장님, 오늘 오전 게이트 실습은 21조 입니다. 여기 명단입니다.”

이루는 이제는 아카데미 직원이 된 국정원 요원이 내민 조원 명단을 받고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째 익숙한 얼굴이다 싶었더니.

“요즘은 욕실 문제로 안 싸우나?”

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우렁차게 대답하는 걸 보면 확실히 해결은 한 모양이다.

“그래서. 요즘은 한꺼번에 다 같이 씻나?”

문득 궁금해진 이루가 물었다.

남녀의 차이를 무시하라고 했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관념이라는 게 남의 말을 듣고서 한 순간에 바뀔리는 없겠지.

물론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만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나간 이들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여자긴 했지만.

“이젠 그냥 훈련 마치고 먼저 숙소로 들어온 사람들 순서대로 씻고 있습니다. 그래서 휴식 시간도 늘어나서 더 좋습니다.”

“그래? 그거 참···.”

놀랍도록 효율적이긴 하다.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거 같이 씻다가 눈 맞아서 연애하고 그러는 거 아냐? 하하하.”

장난삼아 한 말이었는데···.

몇몇 교육생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이루가 놓칠리 없다.

지금은 넘어가야 한다.

이루의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이걸 공론화 시키면 아카데미의 존속 자체가 어려워 질지도 모른다고.

솔직히 이루는 처음부터 연애 금지라는 조항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최후의 게이트.

그 지옥 속에서도 연애를 한 게 바로 이루와 메를린이다. 물론 오히려 그런 상황이다보니 자포자기 심정으로 저지르자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녀가 모여 생활하는데 마음이 안 생기기도 힘들다.

기침과 가난, 그리고 사랑은 감출 수 없다는 말을 이루는 너무 잘 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억지로 감추려 하면 할수록 더욱 크게 터져버리고 만다는 것도.

“···게이트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점은?”

걸리지만 마라.

그것도 다른 사람은 다 괜찮으니까, 딱 한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

“가장 먼저 뒤에 올 팀원을 위해 안전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루는 화제를 돌리고 싶었고, 아이들도 그 의견에 적극 협조했다.

다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몰랐다.

아카데미에서 일하고 있는 국정원 요원들 대부분이 상세한 내용의 보고서를 매일 작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보고서의 내용에 아무런 제재없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 중에 이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딸칵-.

방문이 열리고, 시은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삼촌, 아침 다 됐어요. 헤헤-.”

그리곤 내가 보고 있던 컴퓨터 화면으로 쪼르륵 달려오더니 대뜸 묻는다.

“그래서 21조에 테린이랑 네이트는 결국 어떻게 되가는 거예요?”

“결국 둘이 사귀는 모양이야. 네가 보기엔 어때? 이 사진은 역시 데이트하는 거 같지?”

아카데미는 곧 대마도 전체.

휴식 시간에는 개인 훈련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관광지였던 만큼 소소하게나마 관광지를 돌아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중 한 곳에서 찍힌 CCTV영상이 보고서에 첨부되어 있었다.

“이건 완전 애인이네요. 진짜 잘 됐다. 처음엔 서로 그렇게 앙숙이더니···.”

아카데미 훈련 진행 상황 일일 보고서.

요즘은 아침마다 읽는 이 보고서들이 상당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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