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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식당-110화 (110/153)

귀환자 식당 110화.

굳이 차를 타고 갈 필요는 없겠지. 이미 양측에 모두 허가받았으니 이동 수단이야 알아서 선택해도 불만이 나오진 않을 것 같다.

둥실-.

몸이 떠오르니 잠시 놀라긴 했지만 이미 내가 날아가는 걸 몇 번 봐서 그런지 생각보단 담담했다.

“그동안 훈련은 빼먹지 않고 했지?”

“네. 매일 아침 기초 체력 단련하고 알려주신 자리에서 2시간씩 명상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 열심히 했습니다.”

눈빛에 뿌듯함과 자신감이 흘러나온다. 거짓은 아니란 이야기겠고, 슬쩍 마력만 확인해봐도 농땡이를 부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다. 다만 덕윤이의 능력은 실제로 발현시켜야만 확인을 할 수 있는 종류.

“다음 주에는 대마도로 갈 준비해야겠네.”

“···벌써요?”

도진이는 거의 5개월을 가르쳤고, 덕윤이는 이제 겨우 2개월이다. 물론 도진이를 직접 가르친 건 내가 아니라 거의 이루였지만, 덕윤이가 생각할 때는 너무 짧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그저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

“도진이는 혼자 싸워도 되는 포지션이다. 자신의 능력만 있다면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혼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너는 달라. 너는 네 사람들, 너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팀을 찾아야 해.”

누가 더 낫다, 누가 더 강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잣대가 없다. 다만 두 사람은 전투에서 해야 하는 일이 극과 극에 서 있기에 덕윤이는 실전에서 감각을 키워야만 한다.

도진의 경우는 충분한 훈련을 하고 실전에 돌입해야 하지만, 덕윤이는 반대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실전을 통해서만 감각을 다듬을 수 있는 위치다.

“네가 들어가라고 말하면 널 믿고 드래곤의 입속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이들로만 구성된 하나의 팀을 오롯이 만들었을 때, 그때야말로 덕윤이의 능력은 꽃을 피우게 될 테니까.

그리고 아카데미는 그런 동료를 찾기에 그 어느 곳보다 더욱 안성맞춤인 장소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보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이미 몇 번이나 해준 이야기의 확인. 덕윤은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천천히 북쪽을 향해 나아갔다.

오늘은 급할 것이 없으니 천천히···.

‘이렇게 느긋하게 이동하는 건 처음인 것 같네.’

돌아온 뒤로 하늘을 떠오를 때는 늘 긴급 상황이었다. 소중한 이의 목숨이 위험하거나,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순간들. 결코 기분 좋았던 적이 없다.

휘이잉-.

살짝 앞머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이런 기분 좋은 바람을 제대로 느낀 적도 없지. 최후의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렇게 공공연하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없었고, 또 능력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기분은 나 역시 처음 맛보는 셈이다.

“···꼭 제가 슈퍼맨이라도 된 기분이네요.”

“너도 슈퍼맨을 알아?”

하기사 슈퍼맨은 오래전 영화이긴 하지만 이젠 그저 엄청난 사람을 대신하는 대명사 같은 단어가 된 지 오래지.

“요즘 다시 유행하거든요. 슈퍼 코리아 진이라는 사장님 별명 때문에요.”

“······아.”

그러냐.

* * *

길이 막힐 리 없는 도로를 이용해도 차로 이동했으면 2시간은 더 걸렸을 거리를 느긋하게 날아왔는데도 불구하고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최고 속력으로 날았던 적이 없는데, 정말 마음먹고 날아보면 어느 정도나 빨라질까. 문득 궁금해지네.

착륙 위치는 고려호텔의 옥상.

이미 사전에 약속이 돼 있었던지라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조심조심.

여긴 건물이니 더 조심해야지. 괜히 속도 조절 못해서 떨어졌다간 호텔 최상층의 스위트룸 천정에 구멍을 만들지도 모른다.

“선생님.”

“아, 안 과장··· 아니, 이제는 차장이지?”

“선생님과 저 사이에 호칭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편하신 데로 부르시면 됩니다.”

정민이가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속셈이 너무 뻔히 보인다.

옆에 함께 나와 있는 북한 요원들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게.

혹시나 나중에라도 내가 없을 때 외교적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거겠지. 그런 것들이 나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정민이의 어깨를 툭툭 치고선 함께 걸었다.

“나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지?”

“사실 일이 없진 않았습니다. 북측에서 조건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음··· 조건이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깝다고 해야겠네요.”

“부탁? 뭔데.”

들어보고 정하지 뭐.

“훈련생 한 명을 추가로 보내고 싶다고 합니다.”

조건이랄 것도 없지. 이 정도야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

비록 지불한 금액에 비해 많다곤 하지만 북한에서 보내온 훈련생은 고작 3명뿐이 보내지 않았으니 불안하기도 할 테고.

“그거야 네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문제잖아. 이루한테 연락하고 바로 내일 비행기로···.”

“아뇨. 아카데미로 보낸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카데미가 아니면 어디로···.”

말을 하는 도중에 한 곳이 떠오른다. 그리고 내 표정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느낄 정도로 찡그려졌다.

“설마 귀환자 식당으로 보낸다고?”

“···네.”

단순한 훈련생이 아니라, 나에게 제자를 받아달라는 소린데.

이건 좀 생각을··· 이 아니라.

“그건 귀찮아. 거절해.’

도진이도 보냈고, 덕윤이도 곧 보낼 예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명을 키워? 나도 이제는 진득하게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가르치고 싶다.

이번엔 각성자가 아니라, 요리사를.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그 한 명의 신분이 조금··· 대단합니다.”

“대단해 봤자지. 뭐, 왕족이라도 돼?”

“선생님, 그 한 명이 바로 김태영입니다.”

···미친 건가? 제정신이 아닌 거야?

북한의 김씨 집안이야 해방 이후 제정신이었던 후계자가 없긴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제안을 한 거지?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 중이다. 수십 년째 끝나지 않은 전쟁. 그러니 따지고 보자면 북한과 우리는 사실상 ‘적국’인 셈이다.

그런 나라에 최고사령관이자 국가의 지도자인 김태영 자신이 스스로 볼모가 되겠다고 나선 꼴인데, 이걸 과연 다른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무리 북한에서 김태영의 권력이 가히 신에 버금간다고 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결정을 묵묵히 따를 정도는 아닐 거다.

막말로 김태영이라는 호랑이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노릴 늑대나 여우들이 주변에 우글거린다는 말이다.

진짜 미치기라도 한 건가.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북한에는 크게 두 가지의 파가 존재한다.

그중 한쪽은 명백하게 과격파에 해당한다고 들었다. 만약 김태영이 자신의 자리를 비운 사이 그 과격파가 군부를 장악하면 한반도는 다시 전쟁의 화마에 휩싸이게 될 거다.

북한의 전력? 당연히 지금 대한민국의 상대가 되질 않는다. 문제는 북한을 빌미로 끼어들 게 뻔한 중국이다.

그리고 그 중국이 끼어들면 미국이 참전하게 될 거고, 일본은 이번에도 한국 전쟁의 덕으로 경제 좀 살려보자고 나서겠지.

그 어느 꼴도 보고 싶진 않다.

“아무래도 지금 좀 만나봐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모두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 * *

이곳에 와서 그나마 제일 좋은 점이라면 이런 이슈가 있어도 기자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

아무리 외신 기자라도 북한에서는 통제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간 골로 가기 십상이니 섣불리 움직이질 못한다.

커다란 방은 어제 왔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의 수가 좀 줄고, 표정이 조금 더 심각해 보인다는 걸 제외한다면.

“이진 선생님.”

호칭이 선생에서 선생님으로 변했다.

“김태영씨? 오면서 이야기는 대강 들었지만, 전 절대 허락 못합니다.”

“대신 금강산 여행을 재개하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외교부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십 년 만에 금강산 여행이 재개된다면 이건 그야말로 외교부 장관 재임 기간 중의 가장 큰 행보가 되겠지.

정치인으로서 아마 다음 목표에서 엄청난 이점이 될 건 뻔하다. 눈이 뒤집힐만한 제안이겠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난 금강산 안 봐도 그만입니다.”

일만 이천 봉이 간혹 궁금하긴 하지만, 정 보고 싶으면 그냥 가봐도 된다. 물론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돗자리 펴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즐길 수는 없겠지만···.

음, 시연이랑 시은이도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려나?

‘아니지. 이런 거에 넘어가면 안 돼.’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백두산까지 철로를 열겠습니다. 백두산 관광은 물론이고 물자 교류도 할 생각입니다.”

“서, 선생님!”

이런, 정민이까지 눈이 뒤집혔다. 관광은 몰라도, 물자 교류하겠다니. 이건 좀 예상외인데? 물자 교류를 수락한다는 건, 말 그대로 조건부이긴 하지만 국경을 개방하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교역을 위해선 당연히 물건을 사고파는 업체 간의 협의가 필요하고, 그건 즉 사업적인 만남까지도 허용하겠다는 의미니까.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지금의 약속은 의미가 없을 텐데요?”

국가 원수가 이렇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해도 되는 건가? 내가 말한 의미는 이거다.

지키지도 못할 공수표 던지지 마라.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겁니까? 본인이 직접 대한민국에 간다고 들었는데?”

“네. 전 선생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 역시 지킬 거고요.”

도진이도, 덕윤이도. 모두가 2층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물론 그게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음 직원도 그렇게 했으면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김태영은 지금 나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게 적어도 식당 일을 능숙하게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여기서 출퇴근을 한다는 말은 아닐 테고···.”

만약 그런 안일한 생각이라면 당장 턱주가리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는데, 고개를 젓는 걸 보니 다행이 그런 뜻은 아니었던 모양이고.

“그럼 이곳의 자리도 지키면서, 동시에 귀환자 식당에서 지내겠다는 겁니까?”

“네.”

씨익-. 웃음이 난다.

내가 아는 한 그게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은 다섯을 넘지 않으니까. 아니, 아무리 많아도 셋.

“각성자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설마 본인이 혹시 도플갱어 능력자이기라도 한 겁니까?”

많지는 않지만, 각성자 중에서는 자신의 신체와 같은 모습을 다른 이의 신체에 덧씌울 수 있는 이들이 간혹 있다. 완벽하지도 않고, 시전자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불안정하니, 평양과 서울이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자칫 멀리 이동할 경우 탄로날 확률이 높다.

내 질문에 김태영은 고개를 저었고, 남은 건 둘이지만 하나는 지금 세상에서는 절대로 불가능. 그렇다면 이제 남은 가능성은 딱 하나다.

이것도 확률로 따지면 엄청나게 낮긴 하지만···.

확신이 든다.

“대단한데? 벌써 형태 변환 능력자를 찾은 겁니까?”

도플갱어 능력자보다 더 희귀한 건 물론이고, 신체적인 차이로는 절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타인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

실제로 아주 오래전에도 이 능력을 가진 각성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돌았지만, 밝혀지진 않았었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찾을 수가 없으니까.

본인이 나서서 밝히지 않는 이상에야, 간단한 신체 접촉만으로 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하는 사람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운이··· 좋았습니다. 엄청나게.”

전투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정보단체에서는 미친 듯이 원할 능력.

그게 가능한 이가 지금 북한에 있다는 말이다.

이러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는데.

“···좋아.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어차피 이제 곧 내 제자가 될 거니까, 존댓말은 안 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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