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09화.
북과 남은 한민족이긴 하지만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가기 힘든 곳이 바로 북한이니까. 오히려 외국인들은 여행비자를 받아 관광을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북한이니 더 아이러니하다.
오늘 갔다가 내일 다시 온다는 말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거리로 따지자면 서울에서 대전에 가는 정도니 그리 어렵진 않다. 물리적으로 보자면 말이지.
“선생님. 그, 그건 아무리 그래도···.”
“···저희 쪽만 수락하면 문제없겠습니까?”
내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을 때보다 분위기가 더 묘하게 변했다. 그 말은 즉 내가 한 말을 수용하겠다는 뜻이니까.
“위, 위원장 동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뭐 어떻습니까. 만약 이진 선생이 마음먹고 넘어온다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따지고 보면 그렇지만, 그걸 암묵적으로 눈 감아 주느냐와 공식적으로 수락하느냐와는 천지 차이다. 당연히 김태영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도 없고.
“정민아, 괜찮은 거야?”
“그건···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 질문을 받은 안정민이 난처한 표정으로 외교부 차관을 바라봤고, 그는 다시 외교부 장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예전부터 느낀 건데, 참 답답들 하다.
그럼 결정할 수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될 것 아니냐고.
* * *
조심조심.
탁-.
오늘은 그래도 바닥에 금도 가지 않게 착지를 잘했네. 뛰어오를 때는 워낙 급하게 가는 경우가 많아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진짜 발사대라도 만들어야 하나.
“어? 삼촌, 못 오시나 했는데···. 뉴스에서 보니까 일정에 모레까지라면서요. 근데 어떻게 혼자만 오신 거예요?”
조심스럽게 도착했는데도 시연이가 가게 안에서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마당으로 나오며 물었다. 특수 능력자라도 신체적 감각은 역시 일반인에 비할 바가 아니네.
“당연히 와야지. 뭐, 내일 다시 가기로 하긴 했지만.”
“내일 다시··· 어딜··· 북한에요?”
“응. 축하 공연을 준비했다고 꼭 좀 참석해달라고 해서, 오전에 장보고 좀 다녀오려고. 그런데 넌 왜 여기 와있어?”
장보고 다시 간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또 그러려니 한다.
“덕윤 오빠한테 전화가 왔어요. 오픈 시간은 다 돼가는데 삼촌 연락이 없다고 혼자 너무 불안하다고···.”
“다 큰 녀석이 그런 걸로 불안해하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살짝 미안하긴 하다. 오면서 연락을 하겠다고 한 건 나였으니까. 나라고 설마하니 날아서 오게 될 줄 알았겠냐고. 그래도 결국 미리 일정을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 맞긴 맞다.
“근데 오늘도 메뉴는 그대로예요?”
“응.”
“이틀 연속 같은 메뉴를 한 적이···. 오늘 처음이네요?”
“게장은 오래 두면 살이 녹아버리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건 핑계려나?”
“아뇨. 다른 식당은 매일 똑같은 메뉴만 하는 곳이 대부분인데요. 뭘.”
그래도 내일 메뉴는 바꿀 생각이다. 어차피 게장도 오늘이 지나면 남지 않을 것 같고, 조금 남은 건 집에서 먹으면 되니까.
여차하면 동네 단골분들에게 조금 나눠 줘도 그만이고.
“시은이는 집에 있고?”
도진이가 시은이는 가지 못하는 대마도로 내려갔으니 또 집에서 헤어진 연인처럼 훌쩍이고 있으려나 싶었는데.
“아뇨. 오늘부터 신촌에 있는 어학원에 다닌다고 갔어요.”
“어학원?”
“의사들은 영어가 수준급 이상이어야 한다면서 의욕이 넘치던데요?”
녀석, 도진이랑 노느라 정신없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할 일은 하는구나. 역시 내 조카답다.
“저기···. 혹시 영업합니까?”
“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시죠?”
도착하자마자 손님이라니. 본래 오픈 시간보단 조금 이르긴 하지만···. 그냥 흔쾌히 받기로 했다.
“열었데요. 얼른들 오세요.”
일행이 제법 되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마당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더니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간에도 단체 손님이 온 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긴 하지만, 모두 예약이거나 파티를 할 때뿐이었지. 이렇게 갑자기 온 적은 처음이다.
순간적으로 날 보려고 온 사람들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닐 거란 확신이 든다. 왜냐면 가게로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년 여성들이었으니까. 게다가 어째서인지 모두들 복장이 휘황찬란하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모피코트 같은 것을 입은··· 귀부인들. 남자도 두엇 정도 있긴 했지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적었고.
그래. 딱 어딘가에서 땅을 보러 다닐 것 같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사람들이었다.
“자자, 천천히 안쪽으로들 들어오세요. 이 가게가 바로 ‘그 가게’입니다. 그러니 너무 소란 피우시면 안 돼요. 아시겠죠?”
무슨 유치원 병아리 반 선생님처럼 말한 남자가 인솔자처럼 사람들을 자리에 안내하고선 서글서글한 얼굴로 날 향해 걸어왔다.
“이거,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이진 사장님··· 맞으시죠?”
이놈의 영광이라는 소리는 언제쯤 적응이 되려나.
“맞긴 한데, 혹시 다른 용무로 오신 거라면···.”
“아닙니다. 오기 전에 벌써 국정원 분들에게 다 확인받았습니다. 신원도 확실한 분들인 건 물론이고, 이제 곧 이 동네 주민이 되실 분들이신데요.”
“동네 주민이요?”
내가 뭘 모르는 건가. 이 동네에 저 정도의 사람들이 한 번에 들어올 정도로 부동산 매물이 많았나?
이 동네는 단독 주택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이 빌라들인 일명 빌라촌에 가깝다. 조금 걸어 나가면 나름 번화한 거리가 나오긴 하지만 솔직한 말로 그렇게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하긴 어렵지.
하지만 지금 저기 앉은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부유함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 같은데, 옷이며 치렁치렁한 액세서리들만 봐도 ‘나 부자요’하는 사람들이 살만한 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근처에 고급 빌라라도 하나 들어서는 건가?’
그렇다면 이해가 가지만.
“삼촌, 잠깐 저 좀···.”
무슨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시연이가 조심스럽게 주방으로 날 끌었다. 덕윤이는 주문을 어떻게 받아야 하냐고 당혹스러워하고 있고.
“응? 아, 혹시 시연이 넌 뭐 아는 거라도 있어?”
“저도 자세히는 몰랐는데 지금 저 사람들 보니까 생각나는 게 하나 있어서요. 얼마 전에 예령이한테 이야기를 하나 들은 게 있거든요.”
“예령이한테? 무슨 이야기?”
“자기네 이사할 수도 있다고요. 엄청나게 고민 중이시래요. 아저씨 회사도 근처고 아주머니도 이 동네 거의 토박이시라 떠나기 싫으시다던데···.”
“그럼 이사를 안 하면 되는 거 아냐?”
내가 알기로 예령이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차가 아니라 마을버스를 이용해서 출근한다고 들었으니까.
예령이 학교도 멀지 않은 건 물론이고 친구들도 근처에 모두 있지. 한미희 통장도 말 그대로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불릴 사람이니 굳이 이사를 가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최근에 이 근처 집값이 엄청나게 올랐다나 봐요. 일단 내놓기만 하면 금액이 아무리 높아도 순식간에 팔린대요. 요즘엔 사라졌는데, 얼마 전까지는 여기저기서 찾아와서 팔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이 근처에 뭐 지하철역이라도 들어서는 건가?”
“···아뇨. 그게 아니라.”
아휴.
시연이가 설명을 하려다 말고선 작게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날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진짜 삼촌은···. 그게 다 삼촌 때문이잖아요.”
“···엥?”
내 입에서 저런 말투가 튀어나올 줄이야. 나도 놀랐단다, 시연아.
나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했는데.
“삼촌, 잘 생각해봐요. 요즘같이 게이트가 나오는 세상에서 저랑 시은이가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딜까요?”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당연히 내 옆이······. 아.”
“이제 아시겠죠? 왜 이 근처 집값들이 오르는지?”
이야.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이 근처에 부동산이나 더 사둘 걸 그랬나? ···이런.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을 나 스스로한테 실감하고 있네.
“하긴, 가게 근처에 게이트가 생기면 내가 두고 볼 리는 없지.”
사람들 참 발 빠르다. 아니지, 이 정도면 오히려 늦었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나쁜 건 아니네.
“돈도 좋지만, 그래도 안전을 생각하면 떠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돈독하다고 까진 못하겠지만, 오며 가며 인사하면서 쌓은 정이라는 게 무시하기 힘들다. 예령이네야 특히나 시은이 친구라 자주 보기도 했으니 개인적으론 남아주면 좋겠는데.
시은이에게도 좋은 친구가 근처에 있으면 좋은 일이니까.
“일단 예령이네는 안 가기로 할 거 같데요. 근데 판 사람들이 제법 많았던 건지, 벌써 재건축 이야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라니.”
“흠···.”
이거 뭐 나 때문에 올랐다곤 하지만, 엄연히 자기들 운이 좋았던 셈이기도 하니 뭐라 참견할 명분이 없긴 한데.
그래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심지어 그게 나 때문이라니.
“얼마 못 갈 텐데.”
“네? 그건 무슨 말이에요?”
“지금이야 게이트가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 같지만, 신주희 박사의 연구가 진전을 보인다고 하니까.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 출현 조건을 알게 될 거다. 그럼 언제 어디서 어떤 게이트가 나타나는 지까지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세상일이라는 게 100퍼센트는 없는 거긴 하지만, 아마 멀지 않아 그렇게 될 거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내가 있는 곳 근처라고 해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지는 않겠지. 뭐, 어느 정도의 영향이야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럼 예령이네도 일단 집을 팔라고 해야 하나 하면서 중얼거리는 시연이를 뒤로하고, 다시 홀로 나섰다.
이 사람들이 온 목적이 뭐든, 이 동네 주민이 되든 말든.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일단 장사부터.
* * *
커다랗다기보단 거대하다고 할 법한 크기의 솥에 밤새 핏물을 뺀 소갈비를 채워 넣었다. 추가로 사태도 넣고, 푹 우렸다.
마늘과 통후추, 생강, 월계수 잎의 향이 솔솔 피워 오르면서 국물이 조금씩 짙어지기 시작하자 불을 줄였다.
후우-.
주방에 있다가 나와서 찬 공기를 맞으니 시원하네.
“사장님, 뒤에 가서 김치 꺼내올까요?”
“어? 그래.”
굳이 아침 일찍 나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가게에 오니 벌써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혼자서는 불안하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갈비탕이 다 끓고 나면 다시 위쪽에 다녀와야 하지만, 그사이에 딱히 할 일도 없고.
“덕윤아.”
커다란 장독 하나를 통째로 들고서 주방 뒷문으로 들어오던 덕윤이를 불러봤다.
“네?”
“김치는 미리 썰어두지 말고. 김치 꽁다리 부분만 제거하고 가위랑 내주게.”
“아~ 알겠습니다.”
자신감이 생겨서 그런지, 많이 밝아졌다. 설에 집에 다녀오고선 한동안 우울해 보였는데. 우울했다기보단 화가 난 사람 같았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대강 어떤 일인지 짐작이 가기도 했고.
“덕윤아.”
“네?”
김치를 꺼내 꽁다리를 잘라서 차곡차곡 통에 담다가는 날 올려다본다. 순수한 녀석, 너무 순수하기만 해서 이용당할 뻔했지. 그날 날 만나지 않았다면 당장은 잡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언젠가는 토사구팽당하고 옥살이를 했을 녀석.
“너··· 북한 가봤니?”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뭐. 한 사람 더 데려가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기분 전환도 좀 시켜주고, 일석이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