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 식당 108화.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하기까지 하던 회담장이 순식간에 적막에 휩싸였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거라고 생각은 못한 모양이지?
“지, 지금 무슨 소리를··· 이건 일개 개인이 결정할 문제가···!”
“안정민 차장.”
“네. 선생님.”
“게이트에서 뭔가가 나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까?”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함께 들어간 이들은 군인이었으니, 보고서에 거짓은 없었겠죠?”
“물론입니다.”
사전에 딱히 입을 맞추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안정민은 미소까지 지으며 여유롭게 내 연극에 어울려줬다. 이건 연극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긴 하지. 정말로 보고서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정민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고.
“뭘 근거로 그 안에서 ‘무언가’가 나왔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천리안 능력 각성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국가 기밀이다. 전투 능력이야 거의 전무하다고 할 정도지만, 정보 관련 부서에서는 천금을 주고서라도 데려가고 싶은 사람일 테니까.
“처음부터 중국이 왜 이런 일에 끼어드는 지 전 이해를 못 하겠네요. 이건 엄연히 북한과 대한민국의 문제인데 말입니다.”
“중국은 엄연히 북한과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맺은 동맹국이자 혈맹의 관계입니다. 형제의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으니 나서는 것이 당연한 도리가 아닙니까.”
중국이 북한을 관리하기 위한 조약이라는 것을 세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과의 조약 연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돌았는데, 이제 와서 저런 입장을 취한다?
북한의 각성자를 빼돌리기 위한 것은 물론이고, 아마 내가 가진 물건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안다.
천리안 능력을 가진 자가 어디까지 봤을지는 모르겠지만 물건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겠지. 그러니 공동 소유권을 주장하면서라도 연구에 참여하고 싶은 걸 테고.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해 무작정 소유권을 인정해 줘야 한다니, 중국은 마치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것 같군요. 두 나라가 우호적인 관계가 되는 게 불안한 겁니까?”
“이간질이라니! 중국에서 왜 대한민국 따위를 무서워한다는···!”
“···따위?”
내 말에 다른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통역사가 통역을 다른 식으로 해서 다른 이들은 몰랐겠지만, 나는 알아들었으니까.
중국 대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말을 했는지.
“···네 놈, 우리나라가 그리 우습게 보이더냐?”
나도 내가 이렇게 애국심이 투철한지는 몰랐는데. 사실 딱히 애국심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
근데 막상 눈앞에서 우리나라를 무시하다 못해 벌레 취급하는 놈을 보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고···.”
아무리 화가 나도 회담장인 홀 전체를 압박할 정도로 분별력이 없진 않다. 내가 압력을 가한 건 딱 한 놈.
커어억-.
지금 바닥에 엎어져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입으로 거품을 물고 있는 놈 하나다.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진 않았지만, 저놈이 지금 저러고 있는 게 누구 때문인지를 모를 사람은 이 안에 없다.
그러니 모두가 저런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거겠지. 마치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한 표정들.
정민이도 날 말리는 척하지만, 은근히 이 상황이 통쾌했는지 적극적이진 않았다.
중국 대사라는 놈을 짓누르던 마력을 거둬들이자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서둘러 달려와 그를 일으켰다.
눈에 핏발이 잔뜩 올라온 채로 날 노려봤지만, 함부로 입을 열지는 못했다. 또 그런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겠지.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그따위로 말하면 그땐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 못 믿겠어? 정 못 믿겠으면 해보던가.”
중국 대사? 외교관? 그게 뭐.
내가 가진 힘 하나 믿고 안하무인으로 굴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힘이 있는데도 멍청하게 당하고 있을 성격은 더욱 아니다.
아무리 나라도 중국군 전체를 상대할 수야 없을지 몰라도, 수뇌부들 찾아다니면서 암살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정말 그런다고 하면 전 세계에서 쌍수 들고 환영할 사람들 많을걸?
“조금 전은··· 제 실언이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차라리 발악하면서 달려들길 바랐는데, 의외로 차분하네. 하기사 그 정도 감정 컨트롤도 되지 않는 이라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겠지.
“다시 말씀드리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비무장지대, 즉 DMZ에서 나타난 게이트의 처리에 관련해 국제적인 관례에 따라 습득물에 대한 정식 공동 소유권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한국 정부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뒷말은 붙이지 않았지만 거절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보복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정민아, DMZ라는 게 여기 말고 또 있는 거냐?”
“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구상에 아직 20개에 가까운 지역이 DMZ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남극도 있고, 우습지만 우주조약이라고 해서 지구 이외의 모든 천체나 우주 공간도 DMZ로 분류됩니다.”
우주 전체를? 정말 우습네.
이미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을 누구 맘대로 비무장지대라고 선언한다는 건지. 인간들의 이 끝없는 오만함.
-인간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기분을 더럽게 하는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그 녀석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인하진 못했지만,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굳이 제 목숨까지 버려가며 와서 그런 말을 남길 이유도 없거니와, 그 녀석이 남기곤 그 물건이야말로 그 증거가 되기에 차고 넘쳤으니까.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인간들끼리 뭉쳐서 대책을 세워도 부족할 판에, 이렇게 서로 눈앞의 제 이득만 보고서 아등바등하며 달려드는 꼴이.
‘진짜 확 다 까발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랬다간 전 세계가 폭동으로 몸살을 앓겠지.
뭉치기는커녕 외부 세력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에 자멸할지도 모른다.
그런 꼴을 내 손으로 만들 수는 없지.
“나도 다시 말해주지. 그런 물건은 없다. 애초에 없는 걸 무슨 수로 공유해주지?”
“···이런 식이라면 회담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겁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진 선생의 발언을 지지하는 겁니까?”
정부에서 나서서 내 입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는 거지만, 이들이라고 무슨 힘이 있겠나.
내가 딱히 한국의 법질서를 무너트린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또 나에게 법률을 가져다 댈 간 큰 인간은 없지. 물론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말하기엔 또 너무···.
“이진 선생님의 말씀이 곧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저 외교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혹시 독심술 능력자는 아니겠지? 어째 내 속에 들어갔다 온 사람같이 말을 하네. 속은 시원하다. 근데 정말 그렇게 나가도 되는 거야?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중국 대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외교라는 건 명분이 중요한 법이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어느 쪽에서 먼저 총을 쐈는지, 사살 명령을 내렸는지를 그렇게도 따지는 게 바로 외교니까.
화가 나도 억누르며 얼굴 면면에 늘 미소를 띤 채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자리.
아마 나처럼 ‘몰라. 배 째.’라고 나오는 경우는 저들에겐 생소하겠지. 하지만 명분이라는 건 결국 힘이 없을 때 찾는 거다.
압도적인 힘이 있다면 명분은 결국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셈이지.
그리고 우리나라는 역사상 그런 힘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을 제외하고.
“게이트는 D등급 중하로 결정되었으며, 이에 따른 평균 마석 판매 비용을 책정해 20%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더 이상의 회담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는 통보의 시간.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좋소. 동의합니다.”
“이봐, 차원문 관리부장!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차원문 관리부장이라,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게이트 관리국장 같은 자리인가? 지금까지 줄곧 조용히 있던 인물이었는데···.
“최고지도자 동지는 제게 전권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니 두말하지 마시지요.”
“당신 지금···!”
남북이 하나 되는 순간인가? 뭔가 뿌듯하다.
철저히 고립되었다는 것을 느낀 중국인 한 명이 게거품을 물기 일보 직전이지만 뭐 어때.
내심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는데, 슬쩍 보니 나 뿐만이 아니네. 중국인만 제외한 모든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애써 미소를 감추고 있었다.
“정민아.”
“···네?”
내가 가볍게 툭 치며 부르자, 찡해진 코를 한 번 문지르느라 답변이 늦은 정민이가 날 쳐다본다.
이 녀석은 알까? 지금 이게 가능한 이유가 나 한 사람 때문이라는 걸.
“오늘 이 자리에 선생님이 오신 게 정말 신의 한 수였네요.”
다들 독심술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 * *
“이렇게 바로 가신단 말입니까?”
“네, 돌아가야 하는 일이 있어서요. 오래 있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공식 일정은 모레까지로 알고 있었는데요.”
중요한 회담이야 이미 끝났고, 나머지는 이제 축하 공연이니 뭐니 하는 것들 뿐이다.
그래도 수십 년 만에 이뤄진 공식적 회담이니 그 정도는 해야 양국 모두 체면이 설 테니까 이해한다. 그렇다고 나까지 굳이 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욕심 같아서야 나도 금강산에도 가보고, 대동강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도 기울여보고 싶지만···.
“바쁘신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아쉽습니다. 어디 급한 일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 돌아가서 식당 문을 열어야 하거든요.”
이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나?
“···아······ 식당······.”
리액션이 고장 나 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김태영이었다. 북한에서는 거의 신적인 존재라고 하던데, 자기와 있는 시간보다 식당 문을 열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차마 상상도 못 했다는 표정.
“제 본업은 식당 사장이니까요.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아아···. 이, 이해합니다.”
눈은 전혀 이해를 못 했는데? 그 흔들리는 눈동자 좀 가만히 두고 말이라도 하면 믿겠다만.
근데 내가 그전에 알던 북한 지도자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긴 하다.
어딘가 친근한 느낌도 들고. 딱히 각성자라서 그런 건 아니고.
‘성격이 유순해 보여서 그런가?’
넙데데에 욕심보가 덕지덕지 붙었던 선대들과는 달리 날렵한 이미지에 서글서글한 눈매와 각성자답게 잘생긴 외모도 한 몫은 했겠지. 그래서 그런지 나도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 다시 오기로 한 손님과의 약속도 있으니 반드시 갈 생각이다.
여차하면 덕윤이에게 혼자서 가게를 열고, 시연이나 시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되긴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지키고 싶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만···.”
북한에서 시간을 더 보낼 방법이 있긴 하다. 물론 이 방법을 쓰려면 한국과 북한, 양쪽에서 모두 허락을 해야 하고.
“내일 다시 오면 됩니다. 그리고 모레도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잖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을 뿐이지만.